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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우리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을까요?

곰곰 조회수 : 3,686
작성일 : 2021-09-15 15:19:47

엄마 하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세요?
저는 
엄마가 버튼식 전화기로 우리집 전화번호 눌러보라고 했는데 제대로 못하니까 뺨인지 머리통인지를 맞아서
입에 피가 고였던 일이 떠올라요. 대여섯 살쯤 됐었으려나.
어릴 때부터 엄마가 외모에 대해 너무 비난을 많이 하셨어요.
집안이 체질적으로 다 통통하고 건장한데 그게 제 잘못이라는 듯이...
그래서 몰래 먹는 버릇이 생겼고, 친구랑 같이 길을 걷다가도 멀리서 거울이 보이면 피해 다녔어요.
제가 커서 외국에 나갔는데 1년 넘게 엄마가 먼저 저에게 전화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편지에 답장을 한 적도 없고요.
늘 제가 먼저 전화나 편지를 했어요.
아버지랑 싸우면 저에게 '너는 자식이 돼서 엄마 편도 안 들어주고'로 시작하는 훈계를 며칠이나 했어요.
그리고 이유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로 초4쯤에 아주 심하게 구타를 당했어요.
맹세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건만,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하도 때려서 
그날 앓아눕고 다음 날 수련회도 가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무섭고 떨려요.
한편 
사랑받은 기억도 없지 않아요. 어릴 때 도벽이 있었어요. 가게에서 거울이나 과자 따위를 훔쳤어요.
그런데 그토록 엄하고 무서운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는 저를 때리거나 혼내는 대신
무릎에 눕히고 귀를 파주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어요.
그 이후로 한 번도 도둑질을 한 적이 없어요.
다 자라서 독립해 살 때, 엄마가 제 집에 들르면 엄마가 들고 온 보자기 안에는
취미로 가꾸는 밭에서 딴 것 중에 가장 예쁘고 조그마한 호박이 있었어요.
엄마는 거의 무학이라 글씨 쓰기를 두려워하셨는데 어느 날 생일에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쓴 봉투에 용돈을 넣어준 일도 기억 나요.
우리 엄마는 정말 결단력도 있고 똑똑하고 재밌고 시원스러운 사람이었는데
한편 너무 자기 삶에 매몰돼서 자식 마음 돌볼 겨를이 없었고, 자기 고통이 너무 컸던 사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방법은 틀렸지만 자식을 이끌어주고자 하는 마음은 늘 한결 같았어요.
그런 엄마가 10여 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어요.
엄마 목소리를 들어본 지도 10여 년이 되어가는지라 
엄마에 대한 마음도 그리움도 많이 정리가 되었던 걸까요.
장례를 치르고 와서도 별로 생각도 안 나고 눈물도 안 나요.
엄마가 아시면 슬퍼하실까요?
우리 엄마는 절 사랑하셨어요. 그건 믿어요.
그렇게 믿게 해주신 것은 감사해요.
IP : 49.165.xxx.242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1.9.15 3:24 PM (136.152.xxx.204)

    좋은사람은 아니셨겠지만 사람이 꼭 좋은사람이여야 하나요
    성격적으로 많이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셨고 자라면서 환경때문에 그게 악화되었을 수 도 있고
    그 한계안에서 님에게 어떠한 표현은 하시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그게 님에게는 택도 없이 작았겠지만 그분의 그릇 안에서는 그게 최선이지 않았을까...

    위로 드립니다

  • 2. ㅁㅁ
    '21.9.15 3:27 PM (39.7.xxx.96) - 삭제된댓글

    알아요
    저 그기분
    울엄마두요 나 두들겨 팰땐 머리끄댕이잡으면 그게 다뽑혀야
    놔줬어요
    뭘 잘못해서 맞느냐?
    아니요
    뭔가 심부름시킨거 실수했을때
    (가령 일곱살인데 물동이에 물이고오다가 그 동이 깻을때라든지 )
    동네선 살림꾼 착한애 칭찬자자한애였는데 엄만 뭐가 그리 맘에
    안든건지

    그런데요
    양념딸이라고 다들 꼬무신신을때 운동화 사주고
    쉐터도 그당시 505엿나 그실이 고급이었는데
    쉐터 주문제작해 입혓구요
    가방도 남들 보자기일때 나만 가방이었고 ㅠㅠ

  • 3.
    '21.9.15 3:32 PM (211.117.xxx.241)

    외할머니가 계모였기에 모든 허물을 다 이해해요

  • 4.
    '21.9.15 3:40 PM (124.49.xxx.182)

    예쁜 호박이라니.. 같이 마음이 뭉클하네요

  • 5. Hy
    '21.9.15 3:46 PM (216.66.xxx.79)

    글을 담담하게 분석적으로 잘 쓰셨네요. 엄마가 배우지는 못했어도 딸을 잘 키워서 좋은 엄마입니다

  • 6. 엄마도
    '21.9.15 3:57 PM (14.32.xxx.215)

    사람이고
    기분따라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었겠죠
    엄마가 완벽한 성인은 아니니까요
    사랑하는 마음은 불변의 진리에요

  • 7. ..
    '21.9.15 4:05 PM (183.107.xxx.163)

    님 어머니 좋은 분이셨을 듯. 외국에 있을때 전화 안하고 편지 안쓴 건 무학이라 선뜻 실행하기 어려웠을거고, 님한테 화풀이는 남편하고의 스트레스를 어린 딸한테 푼 거, 그러면 안되지만 인간이기에...

  • 8. ...
    '21.9.15 4:16 PM (1.236.xxx.187)

    어린 딸 숫자공부(전화번호)에 집착하고 외국 전화 못하고 편지도 못한건 어머니의 컴플렉스와 두려움 때문으로 보여요....
    저희엄마도 너무나 다혈질에 욱하시고 정말 개패듯이 맞았는데, 옷은 세상 예쁘게 비싼옷 입히고 할수있는 선에서 온갖 가르침 받게해주고... 어린 딸을 기르고있는 요즘들어서 더 양가감정이 들어요. 양육에 일관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거같더라구요.

  • 9. ㆍㆍㆍ
    '21.9.15 4:25 PM (59.9.xxx.69)

    나름 사랑은 한거 같은데 젊은 시절 본인의 스트레스를 어린딸을 줘패면서 풀었던거 같네요. 딸이 어려서 힘이 없을때는 마음껏 패다가 애가 크면서 힘이 세지니 꼬리 내린거지요. 저의 엄마도 그랬거든요. 잘해줄때도 있었지만 남편 시댁스트를 큰딸인 저를 패면서 풀었어요. 진짜 별것도 아닌걸 트집잡아 머리채를 잡아뜯고 마구마구 여기저기 때리면서 화풀이를 해대는데 중등까지 쳐맞다가 고등가서 맞다가 확 밀쳐버리니 그때부터는 때리는건 멈추고 말로 상처주며 풀더라는.그리고 또 잘해줄땐 잘해줘서 나를 사랑한다 생각하고 병신같이 40살까지 휘둘리며 살다가 40넘어서 확 거리둬버렸더니 조심하네요. 제 엄마도 매우 똑똑하고 재미있고 영리한 사람인데 부모한테 이용만 당하고 사랑을 못받았네요. 그냥 상처받은 비열하고 성숙하지 못한 평범한 인간인거지요. 차마 자기 새끼니까 내치지는 못하고 어쩔땐 이쁘기도 하다가 가슴속에서 부아가 치밀면 화풀이하고 그런거지요. 돌이가셨으니 아련한 그리움도 있겠지만 살아계셨다면 저희 모녀처럼 거리유지하고 살았을지도.

  • 10. ㆍㆍㆍ
    '21.9.15 4:28 PM (59.9.xxx.69)

    외모지적도 웃기네요. 본인 닮아 그리 생긴거 아닌가요? 본인이 그리 낳아 놓은거잖아요. 비슷한 엄마를 둔 입장에서 좋은 분 같지는 않네요. 전ㅈ제 엄마도 좋은 사람이란 생각 안들어요.

  • 11. 우리나라사람들
    '21.9.15 5:31 PM (112.161.xxx.15)

    DNA에는 난폭한 폭력성? 다혈질 기질이 내재돼 있나봅니다. 어젯밤 김복준의 강호순 사건 유튜브 시청했는데 강호순의 아버지가 그리 난폭하진 않았으나 술만 마시면 아내를 때렸다, 강호순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혐오가 가득했다고 하니까 함께 진행하는 프로파일러 여자분이, 강호순 69년생..
    이면 그 당시의 한국 아버지들은 거의 다 그렇게 폭력적이었다며 그건 한국에선 보통 가정이다라고 하자 김복준은 아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어머니들도 장난 아니게 난폭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하고 좋은 엄마였다고까지 하시는 원글과 댓글들 보니 참...그나마 건강히 긍정적으로 잘 자랐네요만 많은 경우 어릴때 저러한 부모의 폭력은 대부분 상처로 깊숙히 남아 있고 종종 나쁜 길로 빠져 범죄자로 전락하는 첫번째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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