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5세후니가 TBS는 시사프로그램을 한 적이 없다고 했죠.
뉴스공장이 시사프로그램이니까 없애야 한다는 밑밥을 깔면서....
그것에 대한 TBS 작가의 페북글인가 봅니다.
TBS 이윤정 작가의 페이스북 글. (글이 조금 수정됐기에 다시 올린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TBS를 향해 쏟아지는 온갖 왜곡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항의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것 만으로도 버거운데
10년 가까이 TBS 아침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내 귀에 .... 급기야
“TBS에는 시사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숨이 턱턱 막힌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당시 편성표만 들춰보고
내가 쓴 원고는 물론 오디오 파일만 뒤져도
저게 거짓말인 게 금세 드러나는데....
대체 저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십 수 년간 지속되어온
(제목과 진행자만 바뀌었을 뿐)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을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까?
대체 왜?
2008년 MBC 보도국
인터넷 방송 PD였던 나는
쇠고기 촛불집회 영상 하나가
MBC 출신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의 주인공)
여당 중진 의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동료 피디가 하루 아침에 해고되는 꼴을 목격했다.
MBC 사장 앞으로 의원실에수 보낸 팩스 한 장이
당시 국장으로 부터 들은 해고 사유의 전부였다
“장차 문광위원장 되실 분 심기를 왜 건드려!”
선배의 해고는 부당하다 항의하던 나 또한
같이 해고됐다. 아니, 해고 수준이 아니라
당시 우리팀이 만들던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됐다.
서른 한 살에 경험한 세상 억울한 일..
당시 미디어 오늘 기자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니가 제대로 취재해서 기사 좀 써달라고
일주일 뒤 녀석에게서 이런 문자가 왔다
“미안해... 국장 취재해 봤는데 이거 기사 내면
1억원 소송걸거래 나 못 내겠어”
이건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MBC에
더 참담한 일이 생길거란 예감이 들었다
다급하게 1층 MBC 노조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요 우리는 정규직 노조라...
당신들은 비정규직이잖아요”
당시 나는 MBC 보도국으로 주 5일 출퇴근하며
데스크의 지시를 받아 영상을 만드는 정규직 피디였다. 4대 보험도 있었고 내가 만든 영상의 클릭수가 높으면 월 20만원의 인센티브도 받았다.
하지만 서류상 나의 공식적인 신분은
영상시장이 어찌될지 몰라 투자를 하기 어렵다며
M사가 보도국 내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직원이었다.
내가 만든 영상이 MBC 뉴스의 한 꼭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하루 아침에 여당 의원의 팩스 한 장에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MBC 노조는 이를 외면했다.
(물론 그들도 머지 않아 같은 꼴을 당했고. 시민들은 그들이 나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과 똑같은 크기로 그들의 외침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무려’ 14년째 MBC 뉴스를 보지 않는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하나
고민했던 나는 다시, 작가로 변신해(?)
불교방송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을 맡았다.
출근한 지 2주 만에 프로그램 진행자가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 교체될 때 잠시 고민했지만
엄혹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
지리멸렬했던 야당 보다 존재감 뿜뿜하며
‘여당 속 야당’으로 통하던 친박계 인사여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첫 인터뷰 상대가
박형준 홍보 수석이었던 것 또한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만든 특종이다.
이제는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땅 직불금 문제..
당시 한나라당 내 경선에서
MB 캠프 수장으로 청와대까지 진출한
박형준은 승자의 위치에서 능글능글
덕담을 해주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정색하고 물어본 질문
“거기 차관이 직불금을 탄 모양이에요”
사전에 전혀 조율되지 않았던 이 질문음
아침 6시 불교방송으로 출근해 조간 신문을
훑던 내 눈에 띈 <한겨레신문>의 놀라운 특종이었다
이건 꼭 물으셔야한다고
진행자에게 몇 번이고 강조한 질문이 결국
차관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청와대 내사 사실을 얼결에 밝힌 박 수석은
이후 불교방송 인터뷰에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절
인연을 맺은 분들이 참 많다.
중앙대 교수였던 이상돈 의원님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뻘짓인지를
알리는 그의 칼럼이 너무나 속시원해
집요하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하고
또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잠시일 뿐
노 대통령 서거 후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이 때문에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TBS 아침 시사로 자리를 옮겼다.
남산으로 출퇴근하면 살도 좀 빠지겠거니
라는 헛된 기대도 하며 ㅋㅋㅋ
TBS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인터뷰.
불교 방송 시절에는 그토록~ 응해주시지 않으시더니,
교통방송에서는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웬일, 결과는 방송사고.. -..-;;
남산 2호인지 3호 터널인지를 지나며
뚜뚜뚜 전화 연결이 끊긴 것이다.
바로 그 때 그 시절
TBS 이침 시사 프로그램 이름은 <서울광장>
전 KBS 퇴직 기자가 진행을 맡고 있었다.
그렇게 1-2년 일했나...
어느날 갑자기 아침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할 예정이니 시정 홍보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건 무슨 쌩뚱 지시????
아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
MC 리스트를 올리라고 하여
1. 프리 선언한 김성주
2. 신애라 차인표 더블 엠씨
막 이런 걸 미친듯이 올렸는데 결론은
3. (본부장픽) 정미홍 이었다
방송작가로서 가장 꽃다워야할 나의 30대는
그렇게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오세훈으로
점철된 엄혹했던 시절이었다
매주 월요일 방송되는 대통령의 주례연설도
무려 3년간 들었다
그 힘든 시절을 버티고 버텨
2020년이 되었는데 나는 요즘
과거로 강제 소환되고 있다.
슬프고 참담하다.
“바보야! It’s 2021!”
#누군가의기억은 #생태탕보다생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