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의 전형이시던 엄마가 떠나신 지 100일이 지났네요.
아직도 엄마가 떠나신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오늘 키톡 사진과 글을 보니 더욱 그립네요.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5남매 키우시며 고생하시다 자식들 졸업하고, 취직하고 손자/손녀들 태어나고
이제 좀 허리펴고 사시나 보다 했는데, 70세 생신 지나자마자 뇌종양과 폐암 투병,...
두번의 수술과 표적치료제로 항암치료, 3년동안 그래도 잘 버텨주셨는데...
제일 맘에 걸리고 생각나는 건, 젊은 50대 폐암수술 받은 환자들도 힘들다고 누워서 있는데
자식들 번갈아가며 간병한다고 중환자실에서 나오신 지 며칠도 안되어 산소통과 호흡기, 링거 줄 여러개 달고
열심히 복도 힘겹게 걸으시던 모습, 안 넘어가는 밥 꾹꾹 넘기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분명히 견디시기 힘들었을텐데도 자식들 때문에 견디시던 엄마 모습을 보면, 아이 하나 키우면서도 맨날 힘들다 투정하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작년 겨울부터는 뇌종양이 심해져서 점점 신체와 언어기능이 마비되어 말도 못하시고 누워만 지내셔야하는데도 자식들 주말에 왔다가면 힘들까봐 내색도 안하시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셨을테네도 소리 안내고 참으시고... 진찰받고서야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였을지 자식들이 알게되고... 정기검진 받으러 않지도 못하는 몸으로 응급차타고 시골과 서울을 오가던 모습이 자꾸 떠오르네요. 가시는 날까지 자식들이 식사 챙겨드리면 억지로라도 받아드시던 모습이 더 가슴이 아파옵니다. 마지막 떠나시던 밤 밤새 거친 숨소리로 .. 남동생이 잠깐 서울다녀온다는 말에 고개 끄덕이던 모습이 선하고, 그냥 모든 모습이 생각나서 자꾸만 울음이 나네요.
돌아가신 그 순간에는 눈물도 한 방울 안 흐르시더니 왜 이렇게 순간순간 자꾸만 생각나고 울음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작년에 아프셔서 눕기전에도 그 힘든 몸으로 아빠 혼자 김장하신다고 옆에서 김장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고, 좋아하시건 과일보면 또 생각나고... 모든 순간순간마다 문득문득 사무치게 그립고, 서럽네요. 엄마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만으로...
아무리 제사상을 잘 차리고 무덤을 장식한다한들 살아계실 때 같이, 식사 잘 하시고 다리 튼튼하실 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생각듭니다. 엄마는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고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고 세상 사람들이 다 웃었다.
네가 죽을 때 세상 사람들 모두 울고, 너 혼자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엄마는 늘 세명의 며느리중 맏며느리가 아닌데도 모든 일 도맡아 하셨고, 새벽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5남매 도시락 준비해두고 밭일 나가셨고, 행여 늦잠자느라 밥 굶고 학교가면 버스 정류장까지 사과나 고구마, 빵을 쳥겨와주셨고, 자식들 대학시험 볼때마다 교문앞에서 기도해주셨고, 5남매 손자손녀들 돌봐주셨는데...
제일 힘든 이별은 죽음인듯합니다. 세상 무엇보다도...
부모님 아직 정정하실 때 맛있는 거, 좋은 것, 행복한 거 함께 하세요.
시간이 늘 우리를 기다려주지는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