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이상한 사위에 대한 글을 읽고 친정 엄마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제가 그 친정 엄마랑 비슷한 경우라 글을 써봐요
유학생이었던 남편과 소개로 만나 롱디로 불 같은 사랑을 하고 이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죠
남편은 기본적으로 나를 사랑했지만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일에는
불같이 화를 냈어요 분노조절 장애라는 말도 한참이나 후에 듣게 된 용어이지요
이국에서 30여년 전 언어도 서툴렀고 사회 지도자급의 남편을 생각해서 사생활은 철저히 가려졌고 누구에게서도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었어요
남편은 자기만 바라보고 맞추고 살기를 원했고 제가 사회 생활을 하거나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딸을 낳고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산후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이해도 보호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가 물끄러미 밑을 바라보며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명망이나 명예가 중요한 남편은 파멸할 것이고 어린 아기 우리 딸은 끔찍한 삶을 살아야 할 게 자명하니까 끝내 결심을 하지 못했어요
조신하게 남편에게 순종하고 화내도 참고 삭히는 것을 태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아이들 앞에서도 많이 싸웠어요
남편은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해 늘 나를 통역사처럼 가운데 두고 문제를 해결하고 이야기를 했지요
전혀 언어의 문제는 아니고 그는 남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어디서 육아를 배우지도 조언을 들을 수도 도움을 줄 사람도 없었어요
사회 지도자였던 제 아버지는 가방 끈이 짧았던 엄마를 (또 다른 큰 이유도 있었지만) 무시하고 싫어했습니다
그 다른 이유로 인해 아버지는 저를 익애했고 그런 딸을 엄마는 본능적으로 미워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컸고
그 옛날 배운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제가 중3 때 집을 나갔습니다
커서는 여자로서의 엄마가 가엾고 얼마만큼은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기질을 물려받았나 봅니다
남편과 애증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독립을 하면
별 재주가 없는 나는 입주 시터를 하든 입주 가정부를 하든 남편으로부터 독립을 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딸과 한 살 터울 아래의 아들이 고3 때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와 남편의 애증의 폭은 더 커졌고 아이들과 아빠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2년을 투병하고 남편은 먼길을 갔습니다
아들은 멀리 뗠어진 대학에 진학했고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는 작정하고 먼 지방에 직장을 잡아 떠나갔습니다
딸은 기질적으로 아빠를 많이 닮아 자기밖에 모르고 아기 때부터 키우는 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여느 애들과는 퍽 다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정도는 아니고 아마 지금이라면 ADHD라는 진단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공부도 제법 잘했고 친구도 많지는 않지만 늘 있었고 요즘과 달리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에게 자상하지 못했고 엄마인 나도 딸과 친밀하지 못했고 부모가 좋은 사이와 안 좋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며 또 외부적으로 위선적인 모습을 보며 딸도 성장하며 많은 데미지를 받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딸이 26살이 되는 날입니다
몇 년간 카톡으로 이어지던 딸과의 관계는 딸이 시민권을 받으며 이름을 개명하고 카톡을 지우며 끊어졌습니다 남동생과는 사이가 괜찮아 소통을 하고 있는데 입막음을 했는지 소재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매년 딸 생일에 카톡에 생일 축하를 했습니다만 올해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네요
저는 보통의 한국 엄마들처럼 아이들에게 극진한 애정을 주지도 못했고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도리를 다하라고 매달리지도 않는 조금은 냉정한 엄마입니다
딸이 찾지 않는 한 포기하고 살 겁니다
남편을 잃고 남편으로 인한 모든 인연과 배경도 함께 잃고
아무 재주도 없던 50대 중년 여인은 운 좋게 현지에서 번듯한 직장을 잡고
제 앞가림하며 한꺼번에 닥친 가족 해체의 슬픔을 서서히 극복하고 그럭저럭 잘 삽니다
아들 외에 아무도 딸과 연락하지 않고 사는 것을 모릅니다
엄마도 나를 떠났고 남편도 나를 떠났고 딸도 나를 떠났고
어느덧 눈물도 말랐고 누구 원망도 하지 않아요
딸이 엄마 아빠 원망을 해도 할 수 없어요
어떤 고침도 불가능한 과거의 일이니까요
딸은 엄마를 떠나서도 꿋꿋하게 혼자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가족의 역사는 대를 이어 아픔을 이어왔지만 딸은 그 사슬을 끊기를 바랍니다
딸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하는게 조금은 미안합니다만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