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털어놓을 친구도 없고, 그냥 우물가 하소연 같은..
40대 비혼이고, 아버지와 살고 있습니다.
생활 습관의 차이 같은 데서 오는 불편함을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가끔 임계치만큼 힘이 들 때가 있네요.. 오늘도 그런 날인가봅니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꼰대와는 거리가 먼 분이십니다.
멋적고 부끄러워 표현은 못하셔도 가정적이시고 자상하시구요.
서툴러도 집안 일도 다 하시고, 입맛도 까다롭지도 않으시고.
잔소리 한번 하시는 적 없는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하는 부녀사이에요.
결국 문제는 저입니다.
성격이 아주 급한 편이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고,
머리로는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잘 안되는 ....
친구분에게 조기 한 상자를 산다고 하셨어요. 사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2인 가구, 게다가 직장에서 하루 2끼를 먹기에 일주일 동안 밥이라고는
고작 6,7인분 먹는 가구에서 조기 한 상자라니요..
열 마리 먹는데 석달이 걸리는 식단입니다.
- 냉장고엔 아직 지난 번 마트에서 사온 진공 포장된 생선이 두 어 종류가 있습니다.
말씀을 드렸는데도 굳이 고집을 부리시기에
매번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면서 일을 하시는 친구분에게
인사처럼 사고 싶으신걸 알기에 그럼 제발 큰 걸로.. 큰 걸로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오늘 택배가 와서 열어보니,
모나미 볼펜보다 조금 큰 조기들이 생선박스에 빼곡합니다.
선물용 사과상자만한 박스에 70여 마리가 들어있는 것 같네요.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마침 집에 똑 떨어진 지퍼백을 사러 거지꼴로 마트까지 다녀오면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퉁퉁 부어있었더니,
눈치를 보고 계시다가 이제는 도리어 퉁퉁 부어 방에 들어가십니다.
혼자서 생선가게 작업자 마냥 면장갑 끼고 4,5마리씩 담아 냉동실에 얼리면서
내가 이게 뭐하는 일인가 ... 싶습니다.
무엇보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울컥합니다.
똑같은 일이 몇 년 전에 있었습니다. 엄마가 조기 좋아한다면서 이런 일을 벌이셨죠.
냉동실에 정말 음식물 쓰레기마냥, 커다란 종이 박스 그대로
몇 마리씩 뒤엉켜 쳐박혀있던 피래미만한 조기들.
엄마는 그때 화가나셨던 건데, 그래서 잘 손질해서 저장한게 아니라 쳐박아두셨던건데.
아버지에게 화도 안내시고 그냥 한숨 몇 번 쉬시고서는
나중에서야 저에게 속상함을 토로하셨었죠.
하나를 먹어도 좋은 거 비싼거 몇 마리면 되지 이게 뭐냐고..
- 이 말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해요.
이런 비슷한 일들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터집니다.
과수원 하는 친구분에게서 떨어진 사과를 얻어왔다면서,
이삿짐 그 커다란 궤짝 아시죠.. 사람도 들어가는 거기에 서 너개를 싣고 와서는
집에서 몇 날 몇일을 닦고 손질하고, 그걸 어떻게 다 먹나요. 여기저기 퍼줬지요.
그 즈음에 이 많은 사과 어떻게 하냐고 82 에 물었던 글이 아직도 있네요.
누가 얼린 죽순을 줬다면서 커더란 김치통으로 하나를 들고 오셔서,
이리저리 난리 부리다가 결국 냉동실에서 반년 만에 버려졌구요.
생전 처음 만져보는 최소한의 손질도 안되어 있는 주꾸미를 한 박스를 들고오신 적도 있고,
길~다란 통갈치도 그랬구요.
그러면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그런 식이에요.
그냥 이렇게~ 해서 먹으면 된다는데...
그때마다 이런 감정 소모에, 모진 소리도 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고, 대충 아무거나 검정 봉다리 들고오면 뚝딱 음식 나오지 않는다고.
뭐가 먹고 싶으면 말을 하시라고 제일 좋은 식당 제일 맛있는 곳에서 사다드릴테니까.
나를 괴롭히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런 거 이제 그만하라고.
남들은 미혼에 애 없으니,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사는 줄 알더라구요.
오히려 애 둘 셋씩 키우는 동료들도, 생선 한번 만져본 적 없다는 이들도 많은데.
이것만큼 또 답답한 일은, 새로운 것에 대해서 전혀 '배우지' 않는 겁니다.
아직도 tv 조작도 서투르다 못해 채널 하나 바꾸려먼 하세월..
집에서 산지 3년째인데도 아직도 보일러 조작을 못하십니다.
사진까지 찍어서 나름 설명서도 만들어 붙여놓았고,
설명을 여러 번 해드려도 '모르겠다'.... 식이고.
이제는 내가 보호자라는 건 알지만,
한 번씩은 오늘이 당신의 남은 날 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인데,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까지 듭니다.
이건 어쩌면, 먼 훗날에는 온전히 혼자 늙어야할 내 모습이 그려저 그렇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주절주절 하고 싶어서 82 켜고 떠들다보니
언 생선 만지느라 같이 얼었던 손이 이제야 녹네요.
너무 답답하니 눈물도 안나고, 체한 듯이 꽉 막힌 느낌....
마음이 너무 힘든 저녁입니다.
길게도 주절주절 풀었네요. 영양가없는 하소연이라 조만간 펑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