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020년 대입 수능 원서 접수 기간이다. 나는 현재 고3 담임으로 우리반 학생들 수능 원서에 학교장 직인을 1명당 2번씩, 총 60번이나 찍었다. 학교 철인 2번씩까지 포함하면 나는 엊그제 하루에만 학교장 직인을 100번 넘게 찍은 셈이다. 나는 학교장이 아닌데 우리 반 학생들의 수능 원서에 필요한 학교장 직인을 내가 직접 찍었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 당연히 자신이 학교장 직인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학교장 직인을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20년 이상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학교장 직인을 찍었다. 재학증명서나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 각종 증명서뿐 아니라 각종 경시대회를 비롯한 교내 상장에 이르기까지 학교장 직인이 수없이 찍혀 있고,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의 각종 증명서에 학교장 직인을 받았다.
단 한번도 우리 교장 선생님이 찍어 준 적이 없다. 항상 직인을 관리하는 행정실 직원이 그냥 찍어주었다. 특별히 서류에 기록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가 이럴 진대 대학은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대학 총장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수천번 사용될 학교장 직인을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찍어주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조국 후보자의 부인이 근무하는, 조국 후보자의 딸이 봉사활동으로 총장 표창장을 받았다는 동양대학교의 총장은 총장 명의로 찍힌 모든 직인을 다 기억하는 듯이, 마치 자기가 총장 직인을 직접 찍는 듯이 말한다. 단언컨대 결코 그런 총장은 없다. 그런 유치원 원장, 그런 초중등학교장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조국 후보자 측의 해명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동양대는 학교 홍보를 가장 공격적으로 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며, 그 일환으로 지역행사나 문화행사 등에까지 총장상을 남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학교이다. 총장이 총장 명의 직인이 어디에 찍혔고, 누구에게 총장 명의 상장이나 표창장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니 모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동양대 총장이 조국 후보자 딸의 봉사활동 표창장에 총장 직인을 직접 찍었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말로 조국 후보자의 딸이 그 학교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봉사활동을 했느냐?' 하는 것과 '이 봉사활동을 이유로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받았느냐?'하는 것이다. 누가 직인을 찍었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언론은, 자유한국당은 계속 총장이 찍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다.
자유한국당도 당대표 직인이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당대표 직인을 황교안 대표가 직접 찍나? 황교안 당대표는 당대표 직인을 찍은 시기와 문서, 관련된 사람을 모두 기억하고 있나?
나경원 원내대표는 어떤가?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각종 행사에, 특히 지역 학교들의 졸업식에 국회의원상이라는 명목으로 상을 준다. 우리 학교에도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원상을 주고, 구청장이나 의회 의장도 자기 이름으로 상장을 준다. 어쩌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자기 지역구 학교들에 졸업식 등에 참석하거나 상장을 준 적이 있을 것이다.
나경원 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자기 명의로 각급 학교의 학생들에게 준 국회의원상을 언제, 어느 학교, 어떤 학생에게 주었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쩌면 국회의원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의원실의 보좌관이니 비서관들이 한 일이라 자기 이름의 국회의원상이 학교에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조국 후보자 딸의 동양대 총장 표창을 총장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름으로 준 국회의원상을 받은 학생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