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 드디어 합의이혼 접수를 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2년 4개월입니다. 그전에도숱한 일들이 있었지만 남편의 외도를 제가 알게된 시점부터 따지면요. 여기에 글 올렸었는데 자작이라는댓글도 많았지만 격려해주신 분도 많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제 남편은 외도 후 제가 예상했던 반응과 너무나 다른 행태를 보였어요. 보통은 잘못했다고 싹싹 빌든지 하지 않나요? 그런데 제 남편은 그 여자가 첫사랑이라는 둥, 너도 꼭 사랑을 해봐라. 사랑이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른다. 그 여자 잊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이런 말들을 저에게 했었어요. 어린 애가 징징대듯이요.제 남편이 자타공인 굉장히 미성숙한 사람인데 (상담선생님은 5세라고 하시더군요) 그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에 푹 빠졌었나봅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가정을 지켜보겠다고 이혼해 달라는 사람 계속 붙잡았고 무릎꿇고 빈 적도 있고요 그 여자는그 여자대로 저를 떼어놓으려고 직접 저한테 연락한 적도 있고, 둘이서 제 앞에서 너무 사랑하지만 여건상 우린 안 될 것 같다..이러면서 통화하는 것도 다 지켜봤고...하여간 더러운 꼴을 다 겪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어요. 남편은 원래 술을 과하게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때쯤 남편이 독립하여 창업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고충이 많았어요. 외도 사건, 사업 등으로 괴로우니 그 때부터 더더욱 술을많이 먹었어요. 저는 남편을 다 수용해주자는 마음으로 그냥 내버려뒀는데 새해 벽두부터 경찰서에서 우편물이날아왔습니다. xxx씨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으며 면허취소 예정이라고요. 남편의 음주운전은 결혼 후 적발된 것만 정지 1회, 취소 2번째입니다. 그리고 나서싹싹 빌던 남편은 그러고도 술을 줄이지 못하고 몰래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한저는 음주를 단속하기 시작했고 남편은 외도 후에 계속 퍼부었던 폭언의 정도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술먹고소리를 고래고래 지를 때는 눈빛이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몇달 겪다보니 제가 화병으로 가슴이 너무나 답답한증세가 시작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정신과 약을 복용 중입니다. 그리고 작년에 부정맥 진단 받아 계속 진료받고 있고요. 장이 완전히망가져서 조금만 찬 것이나 기름진 걸 먹으면 바로 화장실 직행입니다. 모든 게 스트레스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가 제 명의로 대출을 일으켜 사업자금을 대주었는데지난 달에 처음 흑자가 났다더니 이번달에 또 적자랍니다. 네… 2년넘게 돈을 가져가기만 했지 별로 받아본 기억이 없네요. 저는 나름 안정적이고 스트레스 적은 직장을 다니고있고 수입도 괜찮은 편입니다.
내 인생에 이혼은 없다. 어린딸 둘에게 그런 상처를 줄 수는 없다고 버텨왔던 저입니다. 상담선생님이 이혼하는 건 고려 안 해보셨냐고물었을 때 정색했던 저입니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자다가 깨서 돈이 없으니 집을 줄여가고 남편은 어디지방에라도 가서 일하라고 할까…그런 생각을 하는데 너무 좋은 겁니다.한 발 더 나아가서 이혼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는데 정말 너무너무 기쁜 거예요. 먹구름 잔뜩 낀 하늘에서 빛 한 줄기가 쫙 비치는 듯한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 드디어 이런 끔찍하고도 불안정한 생활에서 이제 벗어나는구나…생각하니흥분이 되어 그날 밤을 꼴딱 샜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남편이싫다고 하더군요. 돈 필요할 때만 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것처럼 얘기하다가 또 좀 사정이 나아지면태도가 돌변하고요. 그러고 8개월이 흘렀는데 이제는 도저히안되겠다 싶어 지난 주에 그간의 사정을 아무 것도 모르시는 엄마를 퇴근 후에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그리고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가 막 우시더군요. 의외로엄청 보수적인 아빠까지도 “몸까지 아프다면 그거는 안되는 거다. 누구도생각하지 말고 네 생각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같이 엉엉울고 엄마가 밥먹고 자고 가라고 하셔서 그리하고 그 다음 날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제 우리 부모님도 다 아시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랬더니또 막 소리를 지르더군요. 남편은 저에 대한 감정이 기본적으로 분노인가봐요. 그러더니 부부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그렇게 사는 거지 않냐더군요. 그냥 지나가는 나쁜 일이라고 하기에는 본인이 너무 큰 일을 저지르지 않았나요…?그러더니 조금 진정을 하더니 장인장모님도 아셨으면 이제 끝이라면서 할 거면 당장 하자고 해서 그 길로 법원에 가서 서류 접수했습니다.
엄마가 그 다음날 저희 집 앞에 찾아오셨어요. 애들 볼까봐 집에도 못 들어오시고 벤치에 앉아서 둘이 또 울었어요. 바람핀것만 보면 참고 살아보라고 할텐데 알콜중독에 정신연령도 낮다니 어쩔 수가 없는 건 알겠다. 씩씩하게잘 살자. 그러시면서 저한테 현금뭉치를 주시더군요. 이거그 놈 한 푼도 주지 말고 너 보약 한 제 지어먹고 애들하고 맛있는 거 사먹고 기운차리라고 하시면서요. 나중에 상가 팔아서 나눠주시겠다는 말씀을 비치셔서 그 와중에 염치없지만 뭔가 맘이 안정도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엄마한테 톡이왔는데 아빠가 제가 정말 이혼서류 접수했다고 하니까 눈물 훔치시더래요.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속상하던지요….정말 과묵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인데 얼마나 맘이 아프셨으면.....게다가 3남매 중에 이제 언니만 안정적으로 잘 살고 둘째인 저는 이제 애 둘 딸린 이혼녀가 되었고, 막내인 아들은 40 다 되도록 그냥 백수로 집안에 틀어박혀 살고있어서 엄마아빠가 너무 슬프실 것 같아 더 죄송하더군요.
그래도 하나 확신하는 것은 제가 엄마 입장에서 우리 딸이저처럼 사는 걸 속속들이 안다면 전 당장 우리 딸 손잡고 끌고왔을 거예요. 이렇게 사는 건 절대 효도가아님을 압니다.
그동안 재테크도 하는 족족 다 실패해서 모아놓은 돈도 없고이제 40대 중반에 아직 어린 딸 둘과 살아나가야 하지만 전 앞으로의 삶이 너무 기대가 됩니다. 지금도 외도 사건 이후로 시댁에 안 가고 있지만 이제는 더욱 당당하게 그동안 그저 싫기만 했던 시부모님 얼굴뵐 필요도 없고 명절은 자유롭게 쉴 수 있고요. 이사가면 이제 제 방도 생길 거고 제 취향대로 집도 예쁘게꾸밀 거예요. 이제 제 인생에 어둠을 걷어내고 씩씩하게 살 거예요. 남편은저에게는 참 어두운 이미지예요. 항상 우울하고 뭔가 불안정하고 숨기는 구석이 많고 방은 늘 더럽고….이제는 밝게 살고 싶어요. 이제 건강해지려고 1달전부터 달리기도 시작했어요. 딸들 잘 키우고 노후에는 집값 싼곳으로 옮겨서 조용하게 소박하게 살고 싶어요. 이제 좋은 날만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먼저 이 길을 가신 선배님들도 꽤 있으실 텐데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