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 넘어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있어요.
모임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냥 딱 마음에 들더라구요.
서로 필이 통했는지 가끔 만나면 늘 즐거웠구요.
친구 남편이 삼남 이녀중 막내인데요 우여곡절 끝에 아흔이 훌쩍 넘은 시어머니를 집에 모시게 되었어요.
본인은 물론 저 포함 주변 사람들 걱정이 대단했죠.
저도 시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20여년을 모신 경험이 있는지라 그 힘듬을 잘 알거든요.
그 시어머님이 아흔 중반의 연세에도 굉장히 총명하고 자존심도 센 그런 분이예요.
큰 아들, 작은 아들 집에 몇 년씩 사시다가 결국 혼자 독립하셔서 사셨는데 최근에 뼈가 너무 약한데
살짝 넘어져서 병원에 몇 달 계셨어요.
이제 혼자는 안되겠는데 본인이 병원 생활이 너무 싫다시니 어쩔 수 없이 막내 아들집으로 모시게 된 거죠.
어른 모신지 한 달 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얼굴이 너무나 밝은 거예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고 같이 사니까 오히려 돈이 적게 들어서 좋다고....
혼자 계실 때 생활비니 집세 같은 거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퇴원해서 집에 오시던 날 남편과 시누이가 모시러 갔었는데 어머님이 오해를 하셔나봐요.
며느리가 싫어서 같이 안 왔는가 싶었나봐요.
근데 이 친구는 집에서 어머님방 멋지게 꾸며 놓고 홈웨어를 두 벌이나 만들어 침대위에 올려 놓고
고기 삶고, 잡채 하고 완전 잔치 음식을 하고 있었대요.(재주도 많고 매우 부지런한 친구예요)
현관문에 들어선 어머님이 "짐덩어리 왔다!" 이러시더래요.
친구가 얼른 나가 어머니를 꼭 안으면서 "어머님 어서 오세요" 했대요.
어머니가 들어와 보니 집안에 음식 냄새 가득 하고, 어머니방 너무 맘에 들고 이러니까 감동을...
요즘 잘 지내고 있다네요.
어머님이 절대 간섭을 하지 않으신대요. 집안에서만 생활하시는데 혼자서 밥도 잘 챙겨 먹을 수 있으니까
바깥일 얼마든지 보라고 하시고 평소 생활하던대로 하라신대요.
살림 정말 잘 하는구나 하면서 칭찬을 자주 하신대요.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어머님이랑 둘이 너무 친해져서 알콩달콩하대요.
어머님이 귀가 어두우셔서 친구가 가끔 큰소리로 말을 하면 강아지가 싸우는 줄 알고
친구에게 으르릉 거린대요. 전에는 엄마가 최고였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고....
친구 남편이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귀가가 늦고 힘들었는데 어머님의 폭풍 잔소리땜에 착한 남편이 되어간대요.
어떤 친구는 이제 한달이니 그렇지 좀 더 살아봐~ 하더라는데
거동이 많이 힘드시면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모셔야겠지만 그 때까진 이 친구가 잘 해내리라 전 믿어요.
어머님이 잠 드실 때마다 "이대로 깨지 말고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신다네요.
제 친구지만 참 대단하다 싶어요.
오십 중반 넘어 갑자기 모시게 된 시어머님을 참 잘 모시는구나...칭찬해줬더니
그 친구는 오히려 제가 생각났대요.
너는 젊은 시절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다고...
다시 하라면 절대 못 할 일이긴한데 지나고 보니 남는 것도 조금은 있네요.
그리움도 쬐끔은 남았고, 아직도 고마워 하는 남편과 식구들, 이제는 마음껏 즐기는 내 생활....
하지만 우리는 정신이 남아 있을 때 시설로 들어가자고 남편과 약속을 했네요.
부디 친구가 무사히 숙제를 잘 마치기를,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친구 시어머님이 편안하게 사시다가 평온하게 가시기를 빌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