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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어린시절 그 강가

오늘하루 조회수 : 1,824
작성일 : 2019-05-27 19:41:30

어제, 점심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푸르게 넘실대는 강물을 보았어요,

날씨는 뜨거웠지만, 햇빛은 너무나 맑고 깨끗해서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물결위에도 햇빛이

찬란하게, 투명하게 빛나고 있더라구요,


세월이 많이 흘렀더라구요,

제가 그 겨울날, 얼음이 녹으면서 그 강물속에

빠진게 10살이었는데,

목덜미를 침범하고 사정없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사나운 강물들의 손아귀속에서

사정없이 해매고 있다가

우연히 옆자리의 얼음을 딛고 올라와

엉금엉금 기어올라와 정신없이 벌벌 떨면서

얼음판위를 어떻게 걸어왔는지

집에 왔어요.

그렇게 생과 사의 길목을 헤매고 왔으면서

정작 집에와선 이불속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척했다가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된일인지 다그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이실직고가 끝나자

실눈뜬 얼굴로 제말이 다 끝나길 기다렸던 아빠가

순식간에 문을 발로 박차고

제 목덜미를 한손에 들어올린채로 그 강둑으로 끌고갔어요.

제 몸은 허공에 거의 들리고 가끔, 아무것도 신지못한 맨발은

깡총대듯 가끔 땅바닥에 마침표찍듯 발이 닿았어요.

가난에 찌든 동네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두 나와 득의양양하게 포로를 잡아오는 듯한 장군같은 아빠와

돼지같이 끌려가는 듯한 제 뒷모습을 보러 나왔어요.

그렇게 핏줄이 퍼렇게 돋은 억센 손아귀에 덜렁 붙들린채

가끔 한번씩 땅바닥에 발바닥이 스타카토처럼 찍히면서

저는 그 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둑까지 끌려갔어요.

아기를 업은 젊은 새댁, 찌그러진 털모자를 쓴 문간방 할아버지,

같은반 친구들, 때묻은 새마을마크모자를 쓴 옆집아저씨,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만화책처럼 순식간에 흘러갔어요.


높은 강둑에 올라선 아빠는 절 강이 넘실대는 그 비탈길아래로

밀었어요,

이런저런 생각도 없이 아빠의 옷자락을 잡았더니

그 크고 우악스런 손바닥이 제 뺨을 번갈아 치더라구요.

그런후 그는 우뚝선채 미동조차 하지않는 그 사람들속으로

어깨를 으쓱대면서 자랑스럽게 걸어갔어요,


그렇게 제 목구멍까지 차가운 푸른 강물이 들어가고,

허우적대다가 살아나온 그 열살의 기억이 아직도 있는데

전 이상하게도 강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어요,


허우적댈수록 땅이 닿지않았던 그 깊고 차가운 강물과

아빠에게 붙들려 그 높은 강둑을 오를때 몇번 닿지않았던

그 땅바닥의 감촉도 다 기억나면서

흔히 말하는 그 트라우마는 없어요.


"내가 저 강물에 빠져서 살아돌아왔을때

그날, 나는 싸대기 맞았어,두대,

오히려 내가 죽을것같은 기분은, 체념하고 순순히

끌려갈때, 살아서 돌아온 집에서 느꼈어.

아빠손에 목덜미를 잡혀서 허공에 닿지않고

가끔 땅에 내 맨발바닥이 닿을때 그때

다 체념했어, 울지도 않았고,"


"왜?"

"살아 돌아온게 어쩌면 큰 죄일수 있겠다 하는

맘이었던 것같아.

죽어서 온몸이 다 불은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싸대기를 맞지않고 그렇게 신발도 못신고

쫒겨나지 않았을텐데."


강물은 짐짓 시치미를 떼고

아무일없듯 그렇게 흘러가고 있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저 강물 자주 보았어요.

저는 고등학교때에도 저 강물을 보면서

버스를 타고 다녔고, 직장을 다닐때에도 그랬고

잠시 타지역에 가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강물은 어디서나 볼수있던 흔한 광경이었구요.

지금도 그 강가를 수시로 지나가고있거든요.

그런데도 제겐 그 어떤 트라우마도 없어요.

지금까지 아무렇지않게 살수 있는게  더 신기하지만

그건 35년전의 모래알처럼 작은 ,그나마 생각나지않던

일이었어요,

그러고도 정말 아무렇지않게 시치미떼지않고도

이렇게 살수있는것

이게 더 놀라운 일같아요~

IP : 220.89.xxx.149
2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글을
    '19.5.27 7:54 PM (116.127.xxx.180)

    집중해서 읽게하네요 글을 잘쓰셔요
    근데 왜 아버지는 님을 그리 모질게 끌고갔대요?

  • 2.
    '19.5.27 7:54 PM (110.70.xxx.195)

    실화인가요?
    습작인가요?

    실화라면 아빠가 왜 그랬나요?????????

  • 3. 원글
    '19.5.27 7:57 PM (220.89.xxx.149)

    아빠가 알콜중독자에, 직업을 평생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것을 억울해했어요,
    그런 아빠라, 크면서 아빠라는 호칭도 되도록이면 쓰지않았어요,
    그런데, 그 강물에 대한 기억이 언제 떠올랐냐면,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과 고애신이 꽁꽁언 강물위를 걸어가는 장면이 나올때
    그때 얼음깨질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그들이 무사한 모습으로 다음장면에 나올때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지.
    그것말고는 다른 트라우마가 없어요^^

  • 4. ...
    '19.5.27 7:59 PM (122.59.xxx.76)

    아빠가 미친 인간이군요.

  • 5. 원글
    '19.5.27 8:04 PM (220.89.xxx.149)

    엊그제는, 이력서를 내면 사무실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동네 사장님의 부고를 들었어요,
    일의 특성상, 거의 같이 움직이고, 차로 이동해서 아침저녁으로 할머니들 데려가고,집엔 데려다주는
    그런 일이었는데, 그 사장님을 보는순간, 내가 이분밑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이득될일이 없을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력서도 내지않고 거절했는데, 그후로 4개월지난 엊그제 그분의
    교통사고소식을 들었어요, 저대신 일하게된 어떤 젊은여자분도 같이 돌아가셨다고 하고요,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인가보다~번번히 죽을고비를 이렇게 넘기고,,
    이득될일이 없을것같다는 예감은 이런 뜻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 6. ...
    '19.5.27 8:35 PM (180.224.xxx.141)

    인생이 영화소재같아요
    아버지에대한 트라우마가
    언젠간 나올거예요
    저 깊은 심연의 그 맘속에 깊이 박혀있어
    못느끼시는거예요

  • 7. 원글
    '19.5.27 8:42 PM (220.89.xxx.149)

    놀랍게도, 제 생의 한순간을 집어삼킬뻔했던 그 차갑고, 왕소금같은 소름 잔뜩 돋았던 그
    그 강물속에서 기어나왔으면서도, 오히려 그 강물위에 덧입혀진 햇빛과 바람결을 보면서
    참 예쁘구나, 하는 감상도 하고,,
    언젠가는 나주 영산강에 대한 짧은 글을 읽은적이 있었는데 붉게 노을진 저 강은 날선 도끼가
    빠졌는데도 유장하게 세월을 흘러간다는 그런 글을 읽으면서도 제 어린시절의 그때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어요,
    별로 특별하지 않는한, 그 일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 편이에요,
    아마도 제가 낙천적인 면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트라우마없이 지나가서
    다행이고,저도 한때는 돌소금에 왕창 절여진 갈치같은 쓰라린 아픔으로 짓이겨질 뻔했다고
    툭툭 털어놓으니 다행이지요,

  • 8. 아빠는
    '19.5.27 8:43 PM (39.7.xxx.107)

    그런스타일이라도
    엄마한텐 사랑 듬뿍받고 자랐나요?

  • 9. 생존?
    '19.5.27 8:46 PM (175.115.xxx.5)

    아버지 아직 살아계신가요?

    돌아가셨다면 고독사 하셨길 바랍니다.

  • 10. 원글
    '19.5.27 8:46 PM (220.89.xxx.149)

    엄마도 많이 힘들었던 사람이라,
    제가 엄마를 많이 이해한 입장이었어요,
    지금도, 엄마와 한시간이상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요,
    공감을 잘 못해주어서요,,

  • 11. 원글
    '19.5.27 8:47 PM (220.89.xxx.149)

    십년전에,,
    이런저런 큰 병이 한꺼번에 와서,,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 12. 장하신 분
    '19.5.27 9:25 PM (213.225.xxx.73)

    너무 담담히 쓰셔서 가슴이 더 아리네요. 정말 장하신분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세요? 어린시절 보다는 행복하신거죠?

  • 13. 지나가다
    '19.5.27 10:25 PM (223.62.xxx.48)

    일단 자리에 가방 던져두고,
    천천히 읽어볼게요

  • 14. 으싸쌰
    '19.5.27 10:37 PM (123.212.xxx.43)

    글을 잘 쓰시네요
    트라우마는 없었어도 기억이 또렸하구요
    언젠가는 짐승같이 울음을 토하며 상처를 어루만질 날 올것 같아요

  • 15. 333222
    '19.5.27 11:24 PM (203.243.xxx.106)

    원글님

    글을 아주 잘 쓰시네요.22222

    상처를 안으로 삭히는 내용인데도, 이렇게 아름답게 섬세하게 표현을 하다니요.. 몇 번 비슷한 느낌의 글을 접한 적이 있는데, 같은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감탄했어요.

  • 16. ..
    '19.5.28 12:29 AM (211.117.xxx.145)

    살기 위해서는
    아빠를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을 것 같아요
    넘나 끔찍한 기억..
    잠시 잠깐 악몽을 꾸었던걸로...

  • 17. ㅁㅁ
    '19.5.28 1:34 AM (121.148.xxx.109)

    너무 담담하게 쓰셔서...
    아빠 욕이라도 쓰시지..ㅠㅠ

  • 18. 착륙
    '19.5.28 7:44 AM (110.5.xxx.184)

    전혀 아름답지 않은 일들을 참 아름답게 잘 쓰셨네요.
    담담한 정도가 아니라 다 태워버리고 재까지 바람에 날아가버려 남은 자리엔 그슬린 자국만 희미하게 남은 글로 느껴집니다.
    님은 그 그슬린 자국 정도면 오케이! 하실 분으로 보여요.
    이렇게 글로 님 마음 속 덩어리들을 털어놓는 일이 님에게는 소각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털어내고 싶은 일보다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 19. 원글
    '19.5.28 1:40 PM (220.89.xxx.149)

    아마 착륙님의 리플이 맞는 말 같아요^^
    사실 트라우마로 남은 것도 없고,
    오히려 어딜가든만나게 되는 저수지든, 강가든
    하늘과 수면이 어우러진 그 풍광이 절로 맘에 들어오고 아름답잖아요,
    감탄하면서 바라보는 중에도 그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왜 그런걸까 하는 어리둥절한 맘은 있어요,
    사실 강물보다, 더 힘들었던건 폭력적이고 늘 황달기 있던 아빠였어요,
    그 눈동자로 비춰진 세상을 향해 술로 되갚고 가족들을 못살게 굴던 아빠가 더 무서웠어요,
    그런 아빠도 이제 없고, 솔직히 간절하게 보고싶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철저히 안보고 싶고, 오히려 예상치않게 꿈에 나타난날은, 오히려 화가 나요,,

  • 20. ...
    '19.5.29 1:25 PM (14.46.xxx.169)

    착륙님 댓글이 참 좋으네요. 글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네요.
    그건 내가 느낀 감정일텐데, 제 3자가 느낀 감정인 것처럼 느껴져요.
    님, 행복하게 사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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