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우리겨레에게 큰 인물을 두 번 내려 보내셨는데!
세종대왕
일러 무엇 하랴!
어쭙잖은 내 글로 대왕을 찬양하는 것조차가 대왕에 대한 무례일 것이다.
지구상에 살다간 모든 인간, 그 중에서도 일국을 통치한 왕들 중 세종대왕을 따를 자가 또 있는가?
단언하건데 없다.
대왕이 안 계셨다면 지금 우리겨레는 어느 질곡을 어떻게 헤매고 있을지?
하늘은 이 땅에 대왕을 내려 보내시면서 그 시기까지 섬세하게 고려하시었다.
비록 부왕의 3자로 태어나 왕위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3남의 빼어난 자질과 성품을 간파한 부왕은 차기 임금으로 망설임 없이 세종(충녕대군)을 낙점 했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장남과 차남은 동생 충녕이 자신들보다 천배 만 배 나음을 통감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안 낼 수 없는 왕위를 헌 짚신짝처럼 내 팽개치고 주유천하와 부처님 모심으로 생을 마쳤으니!
조금 아쉬웠던 점은 대왕께서 한 20년 정도 더 사시면서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선정을 베푸셨다면 우리나라는 그때 벌써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인류역사상 비교상대가 없는 최고최상의 성군이시다.
그렇다면 하늘이 우리겨레에게 내려 보낸 다음 인물은?
바로 다산 정약용선생이시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임금이 세종대왕이시라면, 최고의 관료(신하)는 바로 다산 정약용선생이시다.
그런 선생께서 세종대왕이후 보기 드문 현군이었던 정조 대왕을 보필하여 국정을 이끌어 가시었으니 조선은 세종대왕 이후 다시 한 번 비약할 기회를 맞이했다.
유학자라는 것들은 학문을 오로지 출세(과거급제)하는 수단으로나 삼았던 반면 다산선생께서는 유학에 통달함은 물론 새로운 세계사조인 서양문물과 과학(실학)을 깊이이해하고 받아들여, 갈고 닦으신 동서양의 학문을 바로 국정에 반영하였으니 나라는 발전하고 민생은 태평세월을 구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준 기회는 거기까지 뿐이었다.
정조 대왕께서 한 참 더 나라를 이끌어 가실 나이에 의문의 흉사를 당하시니 뒤를 이은 몽매한 왕들과 국정을 바둑판 위의 바둑돌 주무르듯 했던 안동김씨의 흉중에서 조선은 낭떠러지에서 구르는 돌과 같이 급전직하의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정조대왕께서 한 20년 왕위에 더 계셨든가, 뒤를 이은 왕들이 정조대왕의 반의 반 만 되었어도 천하의 현신 다산선생을 저 전라도 바닷가 강진으로 유배를 보내서 후세를 위한 수많은 책의 집필로 생을 마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조대왕이 한 20여 년간 다산선생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경영했던가, 뒤를 이은 왕이라도 다산선생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이끌어 갔다면 다산선생께서 남기신 수많은 저서는 바로 조선의 정책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조선은 세종대왕 이후 또다시 눈부신 발전을 구가했을 것이다.
아- 애석하도다!
정조대왕이 의문의 흉서를 하시고 다산선생이 강진 유배 길에 올랐을 때 이미 조선은 왜의 식민지가 될 외통수의 막다른 길로 들어선 것이다.
자- 작금의 한반도는 어떤가?
세계에서 나 홀로 분단국의 고통을 앉고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두 번 세계에서 따를 사람이 없는 인재를 이 땅에 보내셨던 하늘이 끝내 모른 체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하늘이 세 번 째로 한반도에 인물을 보낼 때가 되었다.
과연 그 세 번째 하늘이 이 겨레에게 베푸시는 인재는 언제쯤 이 땅에 태어나려는지?
혹시 이미 태어나서 어는 곳 어디에서 코흘리개로 자라고 있거나 더벅머리로 이 나라의 혼란스러운 작금의 꼬락서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도리질 하며 앞날을 위하여 입을 앙 다물고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5천만이 눈을 까뒤집고 찾아봅시다.
실수는 두 번으로 족합니다.
세 번째 실수는 하지 맙시다.
지금 그 세 번째가 되겠다고 썩은 도토리들이 여기저기서 내 키가 더 크다고 썩어 문드러진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실수하면 우리민족은 하나님께서도 고개를 돌리십니다.
5천만이 눈 부릅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