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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엄마도 나 어릴적 이런 마음이셨을까요.

조회수 : 5,267
작성일 : 2018-12-28 20:24:02
엄마의 빛나던 모습을 기억하는 딸은 가슴이 무너집니다.

치매에 파킨슨증상까지 겹쳐서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지고, 팔도 다리도 고개도 스스로 못 움직이셔서 요양병원에서 눕혀주는대로 앉혀주는대로 먹여주는대로 지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딸도 알아보시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언제나 딸 걱정을 하십니다. 

일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못내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엄마 점심밥이나 저녁밥을 챙기러 갑니다. 침대에서 주무시다가도 딸 목소리를 들으면 일어나시겠다고 일으켜달라고 하십니다. 삼키는 기능이 나빠져서 죽과 다진 반찬을 드시는데, 죽 한공기 드시려면 한 시간 꼬박 걸립니다. 이렇게라도 드실 수 있는게 다행이고 콧줄을 해야 하는 순간이 빨리 오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엄마에게 꿀꺽 삼키는 연습을 자꾸 시킵니다. 

좋아하시는 케이크를 사고, 과일 갈은 것, 종류를 바꿔가며 죽을 만들어갑니다. 비혼이고 일도 하지만 자영업이라서 엄마 밥시간에 일터를 비울 수 있습니다.내년 봄 쯤에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요양원이나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은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 때도 요즘처럼 매일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일터에 가는 중간에 병원이 있어서 오며 가며 들르기 쉬운데, 먼 곳을 가게 되면 어쩌나 종종 걱정을 합니다. 

오늘 점심에는 손톱을 깍아드리다가 손톱 밑 살을 찝어서 피가 많이 났습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두 번이나 엄마를 아프게 했습니다. 엄마한테 미안하고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어릴 때 제가 다치면 엄마가 속상해하셨는데, 이런 마음이셨을까요.

요즘 엄마가 잠을 잘자면 기쁘고, 잘 드시면 즐겁고, 저를 알아보시면 마음이 놓이고, 엄마가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시간이 지나서 엄마가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고, 준비해간 음식을 못드시게될까봐 겁이 납니다. 엄마와의 시간 속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엄마는 엄마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절 키우셨고, 사랑하셨다는 걸 압니다. 이제 곧 50이 될 딸은 이렇게라도 엄마가 좀 더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주기만을 날마다 기도합니다. 


IP : 211.248.xxx.98
2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ㅠㅠ
    '18.12.28 8:28 PM (1.226.xxx.227)

    원글님 마음 고우셔요.ㅠㅠ
    저도 내일 모레 쉰인데 지금 친정 엄마가 애들 어릴적부터 키워주시면서 같이 사시는데 미운정이 더 들어서..

    아이들 둘 다 장성한 지금 엄마랑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정말 힘들고 불편하네요. ㅜㅜ

  • 2. ...
    '18.12.28 8:30 PM (1.233.xxx.201)

    아 눈물이 나네요
    어쩜 구구절절 엄마의 마음을 잘 아시고 계실까요
    원글님 원하시는대로 부디 병세가 더디게 더디게 진행되어서
    살아계시는 동안 맑은 정신으로 따님을 알아보시고
    따님이 해가신 음식을 콧줄없이 드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원글님도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어머님 병간호 잘하시고
    힘든 상황에서라도 웃을수 있는 시간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 3. 저도
    '18.12.28 8:33 PM (115.140.xxx.180)

    엄마 간병해 드리면서 그런 생각했었어요
    전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 손 만지고 코에 손대서 호흡하는지 아닌지 확인했었죠 조금이라도 이런 순간이 길어지길 바라면서요 그렇게라도 엄마가 옆에 계시길 바랬지요
    님 바램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4. ㅡㅡ
    '18.12.28 8:36 PM (121.143.xxx.117)

    제가 첫 아이 손톱 깎을 때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가슴이 철렁했지요.
    근데 애는 기억을 못하더라구요.
    그저 사랑받은는 기억만 남으실 거예요.
    걱정은 접어두시고
    엄마랑 내 생각만 하세요.
    화이팅입니다^^

  • 5. 일장춘몽
    '18.12.28 8:36 PM (182.230.xxx.136) - 삭제된댓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님의 마음이 보이네요.
    전 어릴 적 부모님 두 분 다 무뚝뚝하고 별 교감 없이 자랐고 고등 때부터 학교 때문에 떨어져 산 기간이 길어서인지 부모님 생각도 안 나고 덤덤합니다.

  • 6. 네..
    '18.12.28 8:42 PM (112.186.xxx.45)

    그런 시간이 와요.
    언젠간 나도 못 알아보고,
    준비해간 음식도 못 드시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만 내시고..
    내가 하는 말도 못 알아들으시는..
    그런 시간이 오더라고요.

    그런 시간마저도 다 돌아가신 지금 돌이켜보면 무척 그리운 시간이지만
    그땐 너무 슬프더라고요.

    저희 부모님은 제게 너무 잘못을 많이 하셨거든요.
    어머니는 능력이 안되서 제게 못해주셨고,
    아버지는 너무 나쁜 분이라서 제게 정말 못되게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부모님도 나이드시니 너무 가여워지더라고요.
    용서했다는 것은 아니예요. 단지 부모님의 인간적인 한계를 이해했다는 거에요.

    원글님은 원글님 어머니와 좋은 관계여서 이렇게 애달픈 마음이 우러나는게 자연스럽겠지만
    저는 부모님과 좋은 관계가 아니었는데도 연로하시니까 안쓰러워지고
    점점 더 끝을 향해 가시는 순간순간이 안타까워지더라고요.

    원글님.
    버티어내기에 버거운 시간이겠지만
    힘내시길 빕니다.

  • 7. 눈물
    '18.12.28 8:44 PM (221.162.xxx.233) - 삭제된댓글

    글읽고 눈물납니다
    친정엄마께서 예즨모습이아닌 말도어눌 행동도 잘못움직이시고 집에서 하루종일티비만보십니다
    한번씩가면 머리도 못감으셔서 ㅠ 맘이찢어져요
    5년되서 적응해야되는데 무너집니다 ㅠ
    파킨슨에 귀도안들리시고.. 진짜슬픕니다

  • 8. ㅁㅁ
    '18.12.28 8:46 PM (121.130.xxx.122)

    제 경험상 다를거같은데요
    어릴때의 자식은 내게 신비로움 황홀 그자체였는데
    부모님의 마지막길지킬땐 희망은없고 더더 나락으로 멀어져가시는걸
    불안 불안 억지로 부여잡고 버틴 기억밖에 ㅠㅠ

    나중에 나도 내자식가슴을 이리 무너지게해준다면
    어쩌지,란 생각을 했거든요

  • 9. lovemonica
    '18.12.28 8:49 PM (110.70.xxx.168)

    착한 따님이세요.
    어머님과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 10. nake
    '18.12.28 9:09 PM (59.28.xxx.164)

    님엄마는 자식복도 많네요

  • 11. 다들
    '18.12.28 9:12 PM (125.131.xxx.8)

    훌륭하신분들이세요
    저는지나고나서 깨닫네요

  • 12.
    '18.12.28 9:40 PM (211.36.xxx.236)

    오늘은 왠지 저녁 내 맘이 아파서 누군가와 얘길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썼는데, 여러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위로해주시니 마음이 좀 풀립니다. 고맙습니다.

  • 13. ㅇㅇ
    '18.12.28 9:54 PM (219.250.xxx.157)

    눈물이 납니다
    참 따뜻하고 애잔하고 서글프면서도 가슴 훈훈하기도 한 그런 글이네요
    원글님 어머니의 남은 모든 시간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포근하시기를
    그래서 원글님이 어머니와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들면서
    더 오래오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 14. ...
    '18.12.28 10:18 PM (14.55.xxx.56)

    요양병원을 여건상 멀리 옮겨야한다니 맘이 아프네요..말로는 안와도 된다,뭐하러 매일 오냐 하시지만
    병상에 있으면 식욕도 떨어지니 개인 간병인이 잘챙겨주어도 입맛없어 먹기싫다가도
    제가 식사시간에 찾아가서 반찬올려주며 두런두런 말상대해주면 생기가 올라와서 잘드시는걸 아니 하루에도 한두번씩 꼭 가게 되더라구요..
    식욕도,생기도, 자식과 손주들 재롱으로 업되시대요..
    울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신지 두달 되셨네요..
    병원으로 ,,직장으로,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보니 그때가 행복했어요..
    이렇게 이별이라는게 힘든건줄 몰랐네요..

  • 15. ...
    '18.12.28 10:38 PM (14.55.xxx.56)

    곧 50된다니 저랑 또래신거 같아요..날은 너무 춥고 끝까지 자식걱정하던 엄마생각은 나고 ...보고싶어서 좀전에 울었어요
    원글님..콧줄도 닥치면 또 인정이 되대요..
    날도 추운데 맘이 힘드시죠..
    따뜻하고 달달한거 드시고 푹 쉬세요..
    원글님 싱숭생숭하고 대화필요할땐 언제든 글올려주세요..
    말벗해드릴게요..

  • 16. 울컥
    '18.12.28 10:48 PM (36.39.xxx.237)

    사랑하는 엄마가 님과 제 곁에 오래 계시길 기도해요.
    엄마 사랑하고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 17. 맘아파요.
    '18.12.28 11:07 PM (211.49.xxx.118)

    저희 엄마도 지금 많이 아프셔서 제가 간호중인데 님 글 읽으니 너무 맘아파요. 님 마음이 제 마음과 같네요. 저도 40대 미혼이고 ... 이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해요. 그래서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제발 오래 제곁에 있어주면 좋겠어요. 오직 그것만 바래요.

  • 18. ㅠㅠ
    '18.12.29 12:05 AM (175.223.xxx.200)

    엄마랑 굳어버린 맘의 벽이 있는 ... 어린 딸을 키우는 일인으로서 눈물이 나네요. 휴우~ 많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ㅠ

  • 19.
    '18.12.29 5:29 AM (223.38.xxx.71)

    저도 이제야 굳어버린 마음 허무는 중인데,

    엄마가 제 생각보다 빨리 가셔도

    늦게 가셔도 어려울게 걱정입니다.

    결국은 내 발등 불이 먼저....

    저번주에 본 ‘거리의 만찬’이라는 프로 생각나네요.

  • 20.
    '18.12.29 11:15 AM (119.206.xxx.163)

    저도 한때 굳었다 생각한 마음이 아빠 가시고 혼자된 엄마가 내생각보다 여리고 힘이 없는 분이란 걸 느끼니 점점 풀려갔어요. 나 어릴적 엄마가 그러셨듯이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돌볼 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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