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앞으로는 다시 있기가 힘든 호황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이전부터 몇 주위에 생각있는 분들은
한국의 거품경제에 대해 염려하기도 하였습니다.
-맞벌이 개념이 없이 가장 혼자 벌어서 식구들 다 부양하고도 집도 살 수 있었음.
-자영업자들도 이 때가 가장 돈이 잘 벌렸다고.
-대학생들이 공부를 안해도 취직하는데 문제가 없었으므로 데모도 자유롭게, 연애도 자유롭게
캠퍼스 낭만이 살아 있었고 대학생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물질보다는 진리와 정의를 추구함.
-지금처럼 부자동네, 가난한 동네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같은 동네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살았음.
학교에서도 부자집애, 가난한 애들이 같은 교실을 쓰고 같은 학교에 다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한국에는 슬럼가가 없다는 것.
물론 달동네 등이 슬럼가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외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건전함
-등록금이 저렴하고 장학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개천의 용 탄생이 용이했음.
-신분이동이 자유롭고 활발해서 흙수저라해도 기가 죽지 않았고 출산률도 낮지 않았음.
-대학졸업할 때면 과사무실에 여러 회사에서 추천서를 보내달라고 해 그 중 골라서 갔음.
-당시 유명한 회사는 대우, 기아, 뉴코아, 해태, 쌍방울...
-크리스마스 때는 온 시내에 초대형트리,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짐.
-지방국립대가 서울의 그저 그런 대학보다 입결이 훨씬 높았음. 지방에 공장이나 회사들이 많아서
지역인재 우대 채용함.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 광양제철소 등.
-교사임용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음.
-공사나 공무원은 월급이 적다고 다소 불쌍히 여기는 분위기.
-금리가 높아서 저축하면 돈이 불어나는 시기.
-경제적으로 활황이어서 출판문화, 음반문화 시장 성장.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등 대작 드라마, 여러 트렌디 드라마 유행.
하지만 경제학을 전공했던 저 또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IMF가 오기 훨씬 몇 년전에 월간 '말'지에서 각 회사의 재무회계를 대조한 것을 봤는데
'말'지에서는 이미 경고를 하고 있었어요. '나라 경제가 사상누각이다'
기사에 의하면 각 기업마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적게는 500%에서
심한 경우는 1200%인 경우도 있었어요. 기사를 읽으며 지금 그렇게 활황을 보이는
경제가 어쩌면 '거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의 가장 기본은 수입과 지출 관계인데 지출이 수입보다 많다면 적신호이구요.
빚이 많다는 것은 경제가 자립되어 있지 않고 채권자에 의해 언제라도 종속될 위험을 품고 있죠.
뭐든 자력이 아닌 타인의 힘을 빌린 것은 그만한 위험을 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라는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별 문제 없이 굴러가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만사는 문제가 표면화되면 그 징후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봐야죠.
저는 이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던 김영삼 정부 경제관료의 무능,
그리고 이 같은 사태에도 불구하고 낙관적 미래만 읊어댔던 조중동 등 언론들이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어딜가도 제대로 된 '선지자'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안 왔을지도 모른다고.
풍년이 있으면 당연히 흉년도 있으니 성경의 요셉처럼 풍년 때에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당시에는 아플지라도 미리 수술을 했더라면 온 몸이 곪는 일만은 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기업들은 이렇게 거품 경영을 했고,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지속적으로 고성장 중이었습니다. 금리도 높았어요.
반면 미국의 투기자본들은 미국의 금리가 낮아서 한국 및 동아시아에 대거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불려 달라고 한국에 맡겨둔 돈을 밑거름 삼아 한국기업들은 생산기반을 확충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잘 나갈때면 착각을 하는게 그 상황이 언제라도 지속될거라는 믿음을 갖거나 혹은
그 상황이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고성장과 수출을 믿고 또 당연히 빚은 갚을 수 있으리라 믿고 부채경영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영삼 정부가 오판한게 있는데
OECD가입을 위해 환율을 500원-900원 사이로 내린 것입니다.
그러면 수출에 적신호가 켜지죠? 우리 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낮아지니까요.
반대로 수입 물가도 낮아져 수입이 늘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의 외환이 빠져나가게 되겠죠?
우리 나라는 수출을 통해 외환을 획득해야 하는데 김영삼 정부는 반대로 나간 거예요.
기업들의 재무구조 역시 악화되었을게 뻔하구요.
거기에다가 외부 요인도 함께 닥쳤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투기 자본은 동아시아에 자본을 투자했는데
1997년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몇 투기자본이 크게 손해를 보자 투기자본들은 동아시아에 투자했던
자본들을 황급히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한국에는 외환들이 마르기 시작했죠.
달러화가 급상승해 1800원으로, 2000으로 뛰었습니다.
뒤어 물가도 올라 어제 100원이던 새우깡이 오늘 200원이 되고
밀가루 500그램이 400원이었는데 다음날 800원이 됩니다.
정부는 외자를 잡아 두기 위해 금리를 올렸는데 이게 또 기업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겼습니다.
상식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 기업에게 좋아야 하지만 이미 빚쟁이가 된 기업들은
이런 기회를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금리가 갑자기 25% 뛰는 것을 감당할 수 없잖아요?
그들이 가진 자산은 유동성 자산이 아니라 대부분 생산설비로 묶여 있었을 것이고
수출해서 돌아올 금액은 당장 갚아야 할 고금리보다 적거나 나중에나 돌아오니까요.
이렇게 해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직에다가 자살이 급등하며 취업난이 온 것입니다.
한국은 IMF에 외환을 빌려야 했지만 더불어 굴욕적인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했습니다.
외산자본에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것...당장 돈이 필요했던 한국은 받아들일수 밖에요.
외환사태로 나라의 부는 절반으로 줄었고 모든 실물자산의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외산자본들은 이때다.. 좋아라 하고 한국의 자산들을 헐값에 샀습니다.
(이를 일명 '양털깎기'라고 표현합니다. 신용대출을 확대해 거품을 조장하고 통화량을 갑자기 줄여
경제불황과 재산가치 폭락을 유도한 뒤 헐값에 손에 넣는 수법)
원래 흉년에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나락으로 빠져간다죠?
폭락한 압구정동의 아파트가 당시 1억 6천...
돈 있는 사람은 이때 집들을 줍다시피 했다는 말도 있구요.
외국에서 한국상품을 수입해 팔던 친척은 갑자기 수입이 두 배로 늘어나 큰 부자가 되었고
저의 시어머니도 저축한 돈이 금리가 오른 바람에 갑자기 큰 돈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때만큼 돈이 불어난 적이 없다고 지금도 말씀하세요.
유동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더 돈을 벌었습니다.
경제는 제로섬이니까 잃은 사람도 있으면 얻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나라에는 너무 혹독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부의 집중, 양극화가 발생했습니다.
중산층이 없어졌다는 가장 체감되는 현상 중 하나는
규모는 작아도 탄탄한 상품을 생산했던 중소기업들이 도산한 탓에
가격 좋고 품질 좋은 물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중산층의 소비를 지탱할 계층이 무너져 버린 탓입니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잠바가 1995년 산인데 아직도 품질이 짱짱합니다.
그런데 2010년 구입한 잠바는 그보다 못해요. 중산층을 겨냥한 상품들은 없어지고
아주 고급품 아니면 최저가 상품만 남은 것이 현재 한국경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사실 언젠가는 왔었을 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제인들의 안이한 발상이 컸고 기업들의 '모럴해저드' 또한 상당했습니다.
자동차 기업 기아는 수출이 줄어들어 적자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주나 노동자 그 누구도 희생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턱없는 임금인상과 상여금지급,책임질 일 없는 전문경영인의 방만한 운영 등으로 도산했고
이는 세계경영을 부르짖던 대우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기업들이 늘상 하던 말이 '대마불사'였습니다. 자기들처럼 고용을 많이 책임진 기업을
정부가 망하게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들이었죠. 그러나 이 일을 겪은 후 국민들은
방만한 경영으로 망해가는 대기업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으며
어차피 망할 기업은 빨리 망하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외환위기가 남긴 가장 큰 영향은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입니다.
배우 김정은이 비씨카드 선전할 때 '부자되세요' 할 때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전만해도 대놓고 부자되고 잘 살자 하는 것은 속된 일로 여겼었거든요.
속으로는 얼마든지 생각해도 공중파에 대 놓고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것이 외환위기 이후에 사람들의 달라진 가치관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또 한편 기억나는 이슈는 '금 모으기 운동'입니다.
이 금액은 20억불로 환산할 수 있었고 자동차 수출액 일년금액에 맞먹었습니다.
IMF를 비롯한 전세계는 놀랐고 이 같은 어려움 극복을 위한 단합정신이 인상적이어서
대출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거국적인 국민들의 단합은 다른 나라에선 거의 없어요.
오히려 나라야 어찌 되던 말던 자기 돈 더 빼가려고 할 뿐이죠.
김대중 정부는 IMF때 취임해 소비진작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카드발급을 늘립니다. 찬반여론이 있겠으나 그 정책은 맞았습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소비까지 얼어 붙으면 한국은 외환위기 수렁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IT 산업에 적극 지원해 한국이 아날로그를 벗어나 디지털 사회로
오도록 기반을 쌓았고 문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지금의 '한류'의 기틀을 쌓았습니다.
노무현 정부때 늘어난 유동성으로 집값이 많이 올랐으나 당시 전세계가 호황이어서
다른 나라 역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던 시기였습니다.
외환보유고도 엄청나게 늘었던 경제지표로는 상승세였죠.
조중동이 너무 이간질을 많이 했어요.
결론을 내리자면, 경제는 복잡한게 아닙니다.
어렵더라도 원칙에 충실해야 위기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은 그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이 배운 듯,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털어야 할 것 털어 내고 세울 것 세우면서 버텼습니다.
위기는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나 거품을 빼는 시기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000억달러가 넘습니다.
20년전 100억도 안되는 외환보유고로 IMF에 손 벌렸던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
짓밟힐지언정 쓰러지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갈채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