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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82님들은 크면서 미움을,아니면 사랑을

가끔 조회수 : 515
작성일 : 2017-04-06 12:37:15

 

간혹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한다거나, 빵가게에 들러서 빵을 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몇마디 대화도 없이 사무적으로 마주친 그 찰나에, 이사람은 어릴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행복하게 큰 듯한 사람인가보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런 사람은 어딘지 기품이 있고 귀여운 뉘앙스가 향수처럼 풍기더라구요.

 

왜 그런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먼저 따듯하게 맞아주고 예의바른 태도가 녹아있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 언제나 온화함이 그 사람옷깃에조차 입혀져있어서 그옆에만 있어도 따듯한 불앞에 손쬐고 있는 마음도 들어요.

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아주 어릴때부터, 엄마아빠의 폭언과 구박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어요.

일곱살때 아빠엄마의 가정불화로 결국은 생계로 이어가던 식당도 문을 닫고 엄마는 혼자 나가셨고 아빠도 저를 고모네집에 맡겨둔채 2년을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빠는, 알콜중독자였어요. 아빠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65세까지도 술을 끊지 못하고 마시다 갔는데 술만 마시면 대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오고 밥상 뒤엎고, 어린 우리들앞에서 식칼들고 달려와 엄마를 죽이겠다고 펄펄 날뛰던 날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던 그 유년시절들이 지금도 여러 기억들과 범벅이 되어 종종 생각나요.

 

의처증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면, 그 증세가 더 심해져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엄마를 밤 10시까지 기다렸다가

인정사정 볼것없이 머리칼을 움켜쥔채 담벼락으로 끌고 가곤했어요.

그런 아빠가 참 미웠어요. 여자와 북어는 사흘마다 한번씩 패야 한다는 말이 동네사람들 다 잠든 컴컴한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릴때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눈물은 한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린 자국이 살이 터서 오랫동안 그상태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그런 아빠가 나중엔 뇌졸중도 걸리고 췌장암도 걸려서 아무것도 못먹고 다리는 초록색으로 갈변한채로 벌벌 떨면서 낡은 마루위에 앉아 있는 이빨빠진 노인이 되어버린 그 세월앞에서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과 , 자식으로써 뭘해줄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눈물만 마구 솟아나던 그 20대,

이미 7,8년 직장생활하면서 저축한 돈들은 늙고 가난한 부모님께 앞뒤 가릴새없이 빚막음 하느라 두세달 사이에 이미 없어져서

저도 역시 돈없고 가난하기는 별반 다르지않았구요.

제가 이세상에 태어나기전 이미 알콜중독자였던 아빠는 제가 이세상에 태어나 엄마품에 안겨 젖먹고 잠들었을때에도 종종 세들어 살고있던 문을 박차고 들어와  벌벌떨며 기저귀마다 오줌을 뜨겁게 싸고 우렁차게 울어댔다고,그런 아기를 안은채 눈이 시퍼렇게 빛나는 남편눈치를 보며 달래느라 역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몸을 떨던 젊었던 시절의 우리엄마.

그렇게 맘고생하면서 살던 엄마는 지금 73세의 나이에 눈도 귀도 다 잃고 심장수술도 하고 암투병중이에요.

지금은 저랑 같이 살고 있는데 엄마가 고맙고 미안했던지 평생을 지금까지 네게 한번도 사랑한단 말 못했는데 그중 제일 사랑한것은 너였단다라는 말에 갑자기 맘한구석이 노여워지고 차갑게  맘이 돌아섰어요.

이미 시력도 ,청력도 다 잃은 껍데기만 남은 엄마는 말없이 앉아있던 제 등의 촉감만으로도 무슨뜻인지 다 알았는지 힘겹게 일어나 방으로 갔어요.

 

고모네집에서의 생활도 무척 힘들었어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새마을 운동 노래를 들으면서 청소와 빨래, 마당을  쓸어내린뒤 마지막으로 개똥들을 삽으로 치우고 뒤란의 계란을 모아들였어요. 틈만나면 저는 무릎꿇고 앉아 걸레질을 했어요. 반짝반짝 윤이나게 넓은 응접실과 나선형으로 이어진 이층계단들을 닦아올라갔어요. 전 언제나 고모네집의아웃사이더였어요. 저를 향해 흘겨보는 고모부앞에서 억지로 웃었지만 돌아오는건 경련하듯 마구 떨리는 입술끝이었어요.

그런 2년간의 생활끝에 집으로 왔는데 그때에도 심한 구박과 폭언과 배고픔의 연속이 이어지던 날들이었어요.

 

저도 두아이의 엄마이고 등뒤에 귀신이 와 서있는걸 안다는 42세의 나이기도 한데 가끔은 엄마아빠가 저에게 마이나스 저질이라는둥, 머리에 두부만, 똥만 들었다는둥, 너는 중학교도 보낼수없으니 식모살이나 하라는식의 발언을 촉도낮은 전구불빛 아래에서 한없이 들으면서 풀죽은채 앉아있던 그런 시절들이 어쩔수없이 종종 떠오르곤 해요.

 

돌아보면 20대의 그 푸른 청춘이었던 때에도 사람들은 너에겐 그늘이 있다고 했어요.

지금은 절 의지하고 같이 사는 눈멀고 청력잃은 엄마가 있고요.

고생많이 한 엄마, 맘아플까봐 따듯한 말로 건네지만 엄마도 촉감으로 알아요.

제겐 엄마에 대한 원망이 앙금처럼 있다는것을.

 

가끔 제곁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까 혹은 구박을 많이 받은 사람일까

어딜가든 사랑을 받는 사람일까 궁금해요.

차분한편인 저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어쩐지 미움받는 사람인것 같거든요.

 

 

 

 

 

IP : 221.158.xxx.249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제일 사랑한단 너였다
    '17.4.6 12:47 PM (211.106.xxx.133) - 삭제된댓글

    그진심을 믿으세요.
    님때문에 어머니가 버틸 힘이 났을겁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방법을 찾지못한 어머니에게
    남만이 힘이었을겁니다.

    제가 자식키워보니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국 힘을 내야하는건
    자식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대로 보내고
    님 항상 행복하시길

  • 2. 오타가 많아요
    '17.4.6 12:50 PM (211.106.xxx.133) - 삭제된댓글

    한편으로 쓰느라

  • 3. 오타가 많아요
    '17.4.6 12:50 PM (211.106.xxx.133) - 삭제된댓글

    휴대폰으로 쓰느라

  • 4. ...
    '17.4.6 12:54 PM (125.186.xxx.68) - 삭제된댓글

    너무 먹먹하고 가슴이 아파요.
    저도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많이 회복되었지만 자다말고 어릴적 살던 그때 기억에 깨면 하루, 심하게는 며칠동안 우울해요.
    원글님 근데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혹시 작가신가요
    원글님 글을 더 많이 읽고 싶어요. 자주 써주세요.

  • 5. 원글
    '17.4.6 1:08 PM (221.158.xxx.249)

    혹여,, 혹시 지어낸글 아니냐, 라는 질타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비갠뒤 흐린 오늘같은 하늘을 거실 유리창너머로 바라보고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거에요.
    그래도 전 인격장애자로 크지않았고 두아이엄마로 모범적으로 잘 살고 있으니 82님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전 모범적이고 깔끔한 것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그렇게 살려고 해요.^^

  • 6. ..
    '17.4.6 1:17 PM (14.36.xxx.245) - 삭제된댓글

    너무 심하다...
    뭐라고 위로할말 단어 찾기도 어려울만큼 ..
    어릴적 그런 불행의 광경에 익숙할정도였다는 말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원글님 많이 사랑받고 따뜻한 사람들 한테 싸여서 살아가시길..

  • 7. ㅠㅠㅠ
    '17.4.6 1:53 PM (175.255.xxx.137) - 삭제된댓글

    슬프네요...
    그래도 자신과 어릴적 원가족에 대해 잘알고 있는건 다행이라 생각해요
    대부분 아픈 기억은 그냥 묻어두고 아무것도 없던 일처럼 살아가려 하잖아요. 너무 아프니까...

    저도 그런생각해요
    누군가는 정말 잠깐봐도 따뜻하고 밝고 솔직한 기운이 나서
    외모를 떠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건들기만 해라 폭발한다 는 느낌으로 까칠하거나
    조용 한데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다거나 하는..
    느껴지죠..

    어릴때부터 굳어진 성격은 참 변하지가 않더라구요

    그래도 원글님이나 저나 애쓰고 살아가고 있으니
    참 잘했다..앞으로도 잘할거다 위로해줘요..우리..

  • 8. ㅇㅇ
    '17.4.6 10:20 PM (219.250.xxx.94)

    지금부터 행복해지시기를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단정하고 감성 풍부한 분으로,
    참 잘 크셨네요,
    그리도 열악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 9. ㅇㅇ
    '17.4.6 10:23 PM (219.250.xxx.94)

    글도 품위있게, 깊이 있게 잘 쓰시고요.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시든
    내면이 풍부하고 깊은 분 같습니다.
    가슴 저미는 내용인데도 기품이 있네요 글에..

  • 10. 원글
    '17.4.6 10:40 PM (221.158.xxx.249)

    유년시절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우리들의 삶은 다 시간 저너머 어느곳으로 간걸까 하는 생각 가끔 들곤해요.
    그 시절을 거쳐오는동안 저는 사춘기도 겪어보지못한 것 같았어요. 오히려 엄마아빠가 생활에 지쳐서 우리들을 돌봐줄 여력이 없었거든요. 아빠가 끓어오르는 화를 못참고 망치를 들고 오면 엄마한테 도망갈때마다 난 모른다고 앉아만 있는데 그 눈빛이 그냥 멀겋게 허공만 주시하고 있는거에요. 그때마다 저도 아득해지는 기분속에 빠지고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웠어요. 그런 환경속에서도 전 책을 읽으면서 그 책속의 인물들이 내게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해주는거다라고 다독이면서 살았어요. 지금도 생각나는건 카네기가 양털뭉치들을 지고 언덕을 올라가면서도 희망을 가졌다는 내용이랑,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한 갈릴레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많은 안중근같은 위인들, 손문전기를 읽으면서 컸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을수 있었던것 같아요..그래도 제 글을 읽고 같이 공감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11. 공감
    '17.4.6 11:28 PM (69.143.xxx.233)

    그저 눈물이... 그래도 희망을 잃치않고 내 마음을 내보인다는것은 치유의 시작이예요. 나 자신을 볼수 있다는것.... 저도 60이 되어가지만, 아름다운 기억이 없는 유년 시절... 자살을 하고싶은 충동이 너무도 많았었어요. 그래도 성년이 되어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직장생활하고, 다큰아들 둘...

    다시는 그시절 어린나이로 돌아가고 싶지않은 그런마음, 그래서 지금 나이가 좋아요. 지금은 매순간 내가 순간순간의 선택을 잘 하려고 노력해요. 원글님도 앞으로의 삶이 가난해도 평안한 나날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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