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표창원]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

ㅇㅁ 조회수 : 1,860
작성일 : 2014-06-15 21:53:06

[표창원의 단도직입]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사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405272...

범죄나 사고 자체보다 주변인들의 부적절하거나 몰지각한 언행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 혹은 ‘2차 트라우마’가 더 심각할 수 있다. ‘2차 피해’는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일어나는 독특한 심리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최초의 충격 이후 피해자들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조사나 수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피의자나 관계자들은 숨기고 감추고 회피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는 곧 피해자의 ‘분노’ 감정을 촉발시킨다. 특히 분노를 쏟아부을 특정 대상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이 분노는 ‘모두’를 향하고, 때로 예상치 못한 방법과 상황에서 돌출하기도 한다.

분노와 거의 동시에 엄습하는 것이 ‘의심과 경계’다. 경찰이나 언론, 심지어 자원봉사자까지 모든 사람이 ‘가해자 편’ 같아 보인다. 이와 함께 ‘다 내탓이야’라는 불합리한 자책감이 발생한다. 이러한 복잡한 심리가 뒤섞이며 피해자들은 돌발적인 감정표출을 하다가 침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공격성과 분노를 보이는 피해자들의 내면은 무척 불안하고 취약하다. 피부를 모두 벗겨낸 생살처럼 아주 작은 접촉에도 심한 상처를 입거나 치명적인 감염을 당하기 쉽다. 복잡하고 독특한 ‘피해자화 현상’은 1940년대 독일에서 ‘멘델슨’과 ‘헨티히’의 연구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엔 영국의 ‘프라이’에 의해 국가적인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피해자보호법과 피해자헌장 등을 제정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유엔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뒤를 따라 피해자보호 제도를 도입했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오히려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2차 가해’ 언행들이 끊이질 않는다. 성폭행 등 사건에서 종종 나타났지만, 세월호 참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피해자를 괴롭히며 ‘2차 피해’를 유발하는 가해자들에겐 ‘공감능력 부족’이란 질타가 쏟아지지만 이들의 이면에 있는 심리적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사회현상은 고칠 수 없다. 집단적으로 피해자와 소수자 등 약자를 괴롭히는 이면에는 ‘가해자와의 동일시’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뿌려진 이 ‘악의 씨’는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의 모습과 동일시할 때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인 일제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집단적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전쟁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거듭 ‘강화’되어 ‘내면화 과정’을 겪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하라고 가르치는 ‘이상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국회의원, 교수, 목사, 고위 관료 및 대학생 등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마저 무심결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이면에 숨어있는 ‘집단적 정신 병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별적인 ‘2차 피해’ 유발 가해자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제재, 법과 제도의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적 태도와 합의’다. 독일이 가장 좋은 예다. 역대 총리들이 끊임없이 히틀러 나치의 범죄와 가해에 대해 사죄하고 히틀러와 나치 찬양을 범죄화하면서 ‘강한 가해자와의 동일시’ 그 자체를 금지하고 통제한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적으로 ‘강한 가해자’ 일제, 그리고 군사독재를 인정하고 찬양하고 지지해 온 모든 역사, 정치, 법, 경제, 사회적 제도와 관행을 뜯어 고쳐야 한다. 헌법 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일제강점과 친일, 군사독재 찬양을 금지하고 범죄화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기조와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괴물 같은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IP : 218.239.xxx.18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ㅁ
    '14.6.15 9:53 PM (218.239.xxx.18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405272...

  • 2. 아...
    '14.6.15 10:31 PM (14.47.xxx.165)

    ‘나쁘지만 강한’ 가해자인 일제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집단적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전쟁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거듭 ‘강화’되어 ‘내면화 과정’을 겪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강한 가해자와 동일시’하라고 가르치는 ‘이상하고 잔인한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헌법 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서라도 일제강점과 친일, 군사독재 찬양을 금지하고 범죄화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기조와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괴물 같은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
    글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본 표교수님 글 중 가장 명문입니다.
    근원악을 몰아 낼 수 있는 핵심입니다.
    이런 사회가 되면 숨 좀 쉬겠습니다.

  • 3. 바른 주소입니다.
    '14.6.15 10:47 PM (14.47.xxx.16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272040585&code=...

  • 4. 미래는
    '14.6.15 11:57 PM (125.178.xxx.140)

    감사합니다. 일부 한국사회의 병리가 설명이 되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90990 고등오니 과목별 샘들 호불호가 생기네요 14 고1맘 2014/06/17 1,796
390989 개들은 정말 서열이 높은이가 옆에 있음 안짖나요 15 미안하다사랑.. 2014/06/17 3,513
390988 총리 후보를 생각하며 잠못 드는밤 1 잠이 안와 2014/06/17 1,068
390987 63일째..12 분 외 실종자님들을 부릅니다. 19 bluebe.. 2014/06/17 1,092
390986 홀시어머니의 며느리.. 썼던 사람입니다. 112 멍뚱이 2014/06/17 15,908
390985 나이 들어서 머리가 커지기도 하나요?;;; 큐리 2014/06/17 1,737
390984 우엉차요 10 생각보다 2014/06/17 3,480
390983 리플절실!항생제 소염제 먹고있을때 한약 먹어도 될까요?? 3 ... 2014/06/17 2,021
390982 아이가 갑자기 유치원 다니기 싫어해요. (잦은 벌?) 7 걱정엄마 2014/06/17 1,412
390981 떵누리 박상은 의원 아들 집에서 수억대 현금뭉치 발견 3 참맛 2014/06/17 1,760
390980 [잊지말자 세월호] 12분만 투자합시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3 청명하늘 2014/06/17 1,042
390979 영종 한라비발디 할인분양 분신...중태 14 팔미 2014/06/17 4,925
390978 목아픈데 목침사고 싶으네요 1 가갸 2014/06/17 1,543
390977 고양시 화정,행신동 제주 똥돼지 아시는분~ 10 그네하야 2014/06/17 1,777
390976 비행기예약 대기가 풀리기는 하나요?저 탈 수 있을까요?ㅠ 3 ^^;; 2014/06/17 5,545
390975 제가 친정부모님을 대하는 태도 좀 봐주세요ㅠ 7 treeno.. 2014/06/17 2,409
390974 ebs용서...30번 성형수술한 딸.... 15 포도 2014/06/17 14,035
390973 양파망은 어디서 파나요? 1 베재 2014/06/17 1,592
390972 토익 파트 7 .어렵네요 ㅠ 콩도리 2014/06/17 1,352
390971 [잊지말자 세월호] 요즘 자꾸만 생각나는 노래 2 청명하늘 2014/06/17 1,115
390970 대학원 실험실이 다 이런가요? 6 멘붕 2014/06/17 2,711
390969 라디오방송을 듣다가ᆢᆢ 1 그래도 2014/06/17 861
390968 동서문학상 준비중인 분들 혹시 계신가요?^^ 1 카즈냥 2014/06/17 1,593
390967 무릎에서 우드득 소리날때 2 서하 2014/06/17 2,126
390966 갑자기 수압이 쎄졌어요 1 .. 2014/06/17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