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남편이 제게 우울하진 않지? 라고 물었죠.

참모르는구나 조회수 : 1,227
작성일 : 2012-05-25 12:56:46

보름 전에 남편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죠.

사고도 사고지만 입에 대지 않겠다고 아버지 애들까지 들먹이며 약속한 사람이

결국 또 술을 마셨다는 사실에 저는 더 화가 났죠.

 

결혼하고 일년에 서너번 그러다가 술 마시고 그러는데 질려서

제가 난리 난리 친 이후로는 일년에 한번 그래요. 네, 일년에 딱 한번이네요.

큰애만 있을 땐 그래 이렇게 사느니 이혼하자, 쉽게 생각했지만

둘째까지 있으니 그게 생각마저도 쉽지 않아요.

늘 이혼 얘기는 남편이 술김에 먼저 꺼내놓고 정신 차린 후에 제가 이혼하러 가자 하면

잘못했다 다시는 안그러겠다 싹싹 비는 남편이라 제가 이혼하자고 한들 하네마네 실랑이 벌일 힘도 없구요.

 

이번엔.. 화가 나지는 않고 그냥 마냥 슬프더라구요. 지금도 그냥 슬퍼요.

이 상황을 어쩔 수 없다는게 슬프고, 이 상황을 끝내려면 내 마음만 다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슬프고,

천진한 큰애 웃음소리 들으면 슬프고, 제 언니에 치이고 엄마 감정에 치여 제대로 보살핌 못 받는 둘째 생각에 슬프고.

 

남편은 원래 점심먹고 나가서 일하고 밤에 들어오는 사람인데

보름 전에 그렇게 사고를 친 이후로는 아침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네요.

자기 사무실이 있으니 일찍 나가 있다가 밤에 일 끝나면 pc방 가서 게임하고 오던가 그럴거에요

 

저는 아침에 큰애 등원시키고 남편이 일찍 나가고 나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둘째랑

종일 있다가 큰애 하원하면 애 둘 뒤치닥거리하고 밥 먹이고 씻기고 해 지면 재우고.

애들이 자면 제 시간도 그대로 멈춰버리죠. 캄캄한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기도 하고

하릴없이 블로깅하면서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 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인터넷 쇼핑을 하기도 해요.

그러다 12시가 되면 저도 애들 옆에 가서 눕고.. 한시간 쯤 후엔 남편이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들리면 저도 그대로 잠이 들어요.

 

제가 지친만큼 남편도 지쳤겠죠.

남편 말로는 그렇게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는게.

자기가 있으면 제가 불편할테니 그런다고는 하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 그럼으로써 자기도 불편한 순간은 피할 수 있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남편도 저도 대화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고 지난 일을 잊고.. 하는 그 모든 과정들에 쏟을 기운이 없나봅니다.

 

그랬는데 어젠가 그제 아침엔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자기는 우울하거나 그렇진 않지?' 그러네요.

최근에 직장 동료 한분이 우울증이 있어서 퇴사까지 했거든요. 남편 생각엔 우울증이 그렇게 무서운거구나 싶었나봐요.

 

이 사람아,

우울증이 뭔지나 알고 그렇게 묻니..

우울하다는게 뭔지나 알고 그렇게 묻는거니.

내가 지금 우울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이겠니.

하루 종일 일반 성인과는 말 한마디 섞을 기회도 없이 애들 돌보다 보면 어느새 아무도 없는 밤이 되어 버리는데.

컴컴한 집에서 나 혼자 무슨 생각을 할거같니. 애들 잠자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어떤 눈물을 흘리는거 같니.

아빠 엄마 아이들이 다정하게 유모차밀고 자전거 타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기분일거 같니.

 

내가 우울하지 않냐고 물었지.

내 우울의 근원이 당신이라는건 모르겠지.

그걸 알면 당신은 또 당신 나름대로 슬퍼지겠지.

 

우리는 그냥 이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이렇게 말 없이 사는게 더 나을지도 몰라.

저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슬픔이 결코 우리 서로에게 닿지는 않겠지.

 

IP : 121.147.xxx.25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2.5.25 1:10 PM (125.61.xxx.2)

    토닥토닥....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코칭이나 단기해결중심 상담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한번 검색해보시고 책도 사서 보시고..하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글 읽는 나도 슬퍼지네요 . 아기들을 위해서라도 엄마행복을 챙겨주세요

  • 2. ,,,,,,,
    '12.5.25 10:20 PM (180.70.xxx.31)

    무슨수를 써서라도 행복해지세요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만의시간을 갖는게 중요해요
    유모차 밀며지나가는 가족들도 행복하기만 하진 않읅꺼잖아요
    얼굴맞대고 으르렁대느니 마주치지 않는게 좋을수도 있어요
    그시간엔 온전히 내편이 되어줄수있는 사람 찾아 속풀이도 하시구요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구요 남편쯤 내 인생 의 메인자리 내어주지 말구 디저트쯤으로 생각해요
    꼭 내이야기같아서 답글달아요
    지금은 좀 살만해졌지만 어떻게버텼을까 끔찍했던 시절이었죠 꼭 힘내요

  • 3. 에혀~~
    '12.5.26 10:48 AM (110.47.xxx.79)

    술먹는 남편땜에 돌아버린 여자 여기 한사람 추가요~~
    님남편은 일년에 한번
    우리집은 한달에 한번.....ㅠㅠ
    주말부부라서 얼굴안보고 사니 차라리 낫네요.
    님의 심정에 백프로 공감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26333 월급을 못받았아요. 1 두번째별 2012/07/02 1,072
126332 (퍼옴)군대와 시집가기 공통점과 차이점 8 해피 2012/07/02 2,029
126331 김포공항과 봉천동으로 출.퇴근을 하는데요... 5 어디로..... 2012/07/02 1,349
126330 애들참 신기해요~ 8 반찬 2012/07/02 2,560
126329 생리때 운동 가세요? 12 ㅡㅡ 2012/07/02 6,836
126328 골밀도 검사 4 43세 2012/07/02 2,284
126327 ............. 5 Raty 2012/07/02 1,426
126326 트로트 무료로 듣는 방법.. 궁금해요? 이러슨 2012/07/02 1,958
126325 원목마루 부분 보수(쪽갈이) 해보신분~? 5 패닉상태 2012/07/02 20,245
126324 산부인과 글 올린 한겨레기자 기사썼네요 20 기억저편 2012/07/02 6,734
126323 체력이 좋아지면 정신력도 쎄질까요? 8 빠샤 !! 2012/07/02 3,158
126322 아파트 명의를 누구한테 이전하는게 좋을까요? 4 명의이전 2012/07/02 1,825
126321 급) 와인 따다가 콜크가 부러졌어요. 11 난감 2012/07/02 2,627
126320 가슴 초음파 남자분들이 주로 보시나요? 3 검진 2012/07/02 2,038
126319 네이버 등등에 상품 검색하면 인터넷 창 가로세로로 광고줄이 떠요.. 아이귀찮아!.. 2012/07/02 937
126318 병원에선 이상없다는데 매일밤 발가락이아프대요 5 순이 2012/07/02 3,905
126317 존스빌 소시지요.... 19 새댁 2012/07/02 5,600
126316 <폭풍의 언덕> 보고 싶어요 17 ... 2012/07/02 2,352
126315 아니.. 한겨레신문 엄지원 기자님! 6 그러면안되요.. 2012/07/02 4,397
126314 트위터에 ..82cook...밥차지원 글 .. 감동!~~ 3 주부들의 힘.. 2012/07/02 2,353
126313 양말이 비싸네요. Meoty 2012/07/02 737
126312 유무선 전화기 추천좀 부탁드려요 그린T 2012/07/02 1,109
126311 요리 기구 1 알리슨 2012/07/02 769
126310 자연드림 조합원인데 인터넷으로 물건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7 미도리 2012/07/02 1,967
126309 홍삼을 먹었더니 5 ... 2012/07/02 2,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