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나는 싸가지 없는 딸이다.

나의 고백 조회수 : 3,681
작성일 : 2012-05-09 00:59:20

늘 그랬었다.
작은 부당함에도 바락바락 대들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 집에 관한 일은 홀라당 잊었다.
당연히, 전화니 안부니 짤이 없고.
멀리, 머얼리, 엄마나 아빠집에서 떠나고 싶어서,시집을 이역만리로 갔다.
이주노동자, 이중언어장애..대박..

그래도, 엄마는 내가 편하다고 했다.
우유부단한 자신 대신, 칼처럼 잘라버리는 내가 좋다고 했다.
넣지 말라는 신문을 몇달씩 넣고 신문대금을 받으러 온다던가,
일을 개떡같이 해놓고, 돈을 청구한다던가..하면
순덕엄니처럼 온순하게 생기고, 사투리 쓰는 엄마대신,
어려도, 깍쟁이 서울말씨에 패티킴 닮은 내가 싸워 이겼다.

부부싸움이 도가 지나쳐,
살림살이를 부수던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할때,
나는 가까운 파출소를 걸어가 순경을 데리고 왔다.
안 온다는 걸, 십대의 패티킴이 억지로 끌고 왔었다.

며칠전, 소식이 궁금해 전화하신 엄마한테 인사말을 전했다.
어버이 날이 다가오는데, 잘 지냈었냐고.
니가 웬일이냐고 엄마가 묻길래,
그냥 할말 없어 한번 한 말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엄마가 전화를 다시 했다.
아들놈이랑 며느리랑 일언반구도 없이,
조카만 시켜 저녁에 전화해서, 담에 할머니랑 놀러가자고 하더라고.
자신 닮아 우유부단한 아들은 화목하지 못한 아내 눈치만 살피고,
엄마한테는 엄청 쌀쌀맞게 대한다고..
미안해서 그러는 거 같아, 속 상한다고.

아...혹여, 오해마시라.
순덕이 엄니는 시집살이 모 그딴 거 없는 사람이다.
이건 며느리측에서도 인정한거다.

구절구절 나름 속 상해서 이말저말 딸한테 일러바칠라고 전화한 거 같은데,
싸가지 딸은 한마디로 잘랐다.
나 바쁘다고.

그러다, 패티킴의 힐링캠프에서 그녀가 말한 하와이의 석양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 패티킴 사랑한다.
노래때문에, 딸이랑 비슷한 외모때문에.

나이 드는 거.
하와이 석양처럼 아름다울수도 있잖나.
엄마,
내년 겨울휴가에는 내가 과부땡빚이라도 낼테니, 좀 알아보슈.
엄마랑 아빠는 한국서 출발하고,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 만나.

갑작스런 도발에 엄마는 속풀이를 홀라당 잊어버리고, 딸에게 말려들고.

석양을 보고,
아름답다고만 생각될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곁에 있을때라며,
웬수같건, 뭐 같건, 그래도,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억울한 생각, 부당한 기억, 없는건 아닌데,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건.
더하고 빼고 해도,
나한테 잘해준게 눈꼽만큼이라도 많아서겠지.

자식은 기르는데 20년만 고생하는데,
우리는 왜 부모를 20년 플러스 무한정으로 보살펴야 하냐..며 툴툴거리며 전화 끊었지만, 
단순, 우유부단, 순둥이 바보같은 우리 엄마는
하와이 여행패키지 상품을 돋보기 쓰고 찾아보느라,
아들내외때문에 속상한건 몇시간정도 잊겠지.

IP : 68.227.xxx.97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ipol
    '12.5.9 1:01 AM (216.40.xxx.117)

    이러니 요즘은 다들 딸선호하나 보네요..

  • 2. ..
    '12.5.9 1:19 AM (183.97.xxx.186)

    에구..제맘 같네요..
    울엄마 오래만 사시기를..

  • 3. ---
    '12.5.9 1:25 AM (178.83.xxx.120)

    헐... 글을 어쩌면 이리도 잘 쓰시나요.
    감탄 x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 4. 저 님땜에 울잖아요 ㅠㅠ
    '12.5.9 2:17 AM (219.241.xxx.63)

    싸가지없는 딸로는 1등 먹는데..오늘 또 한건 했나봐요 ㅠㅠ
    엄마 미안해..

  • 5. 솔직한찌질이
    '12.5.9 2:37 AM (203.243.xxx.18)

    너~~~~~~~무나도 좋은 글이라서 좀 퍼갑니다.

  • 6. 어머
    '12.5.9 3:50 AM (119.70.xxx.201)

    글 너무 잘쓰시네요

  • 7. ...
    '12.5.9 6:15 AM (112.156.xxx.44)

    정멀 글 잘 쓰시네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

    그러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글..

  • 8. ..
    '12.5.9 6:16 AM (175.112.xxx.72)

    내용이 찡~ 하면서 참 잘쓰신다 하면서 이런게 딸마음이지. 하면서 ......

  • 9. 솔직히
    '12.5.9 7:58 AM (203.142.xxx.231)

    저랑 비슷한 딸이네요. 저도 엄마랑 저녁 잘먹고 기분좋게 있다가 밤 11시 넘어서 한바탕했네요. 남편이 해외출장중이라 와계시는데..
    저도 님처럼 칼처럼 자르거든요.
    근데. 참 원래 딸 좋다는게 같이 수다떨어주고 같이 동감해주고. 이거 아닌가요?
    그런의미로 참 싸가지없는 딸입니다. 저도..

  • 10. 요즘
    '12.5.9 9:28 AM (125.130.xxx.27)

    속 썩이는 자식때ㅐㅁ에 우울한데
    이것도 살아서 곁이 있는 가족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누가 그러더군요 살아서 기뻐하고 살아서 화내고 살아서 슬퍼하라고..
    님 글때문에 기운 얻습니다.

  • 11. .....
    '12.5.9 10:42 AM (155.230.xxx.55)

    짠해요. 이글 지우시지 마세요.....

  • 12. ㅠㅠ
    '12.5.9 10:59 AM (150.183.xxx.253)

    석양을 보고,
    아름답다고만 생각될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곁에 있을때라며,
    웬수같건, 뭐 같건, 그래도,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

    님...이부분 마음이 짠하내요
    진짜 부모님께 전화한번 더 드려야겠어요;;

  • 13. 렌지
    '12.5.9 6:05 PM (1.216.xxx.139)

    나중에 한번 더 읽어보려구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7886 식탁 좀 봐주세용~~ 3 4인용이냐 .. 2012/05/10 1,981
107885 교육열: 중국 vs 한국-교실에서 링거맞아가며 공부하는 중국학생.. 람다 2012/05/10 2,186
107884 잇몸치료후 잇몸사이 벌어져 음식물이 끼네요 7 청수국 2012/05/10 22,548
107883 고3아들과 그의 친구들 넘 웃겨서..... 21 @@ 2012/05/10 7,601
107882 매실장아찌가 이렇게 비싼건가요? 8 와우 2012/05/10 2,213
107881 어설피 재산좀 있는집 자식.. 8 .... 2012/05/10 3,169
107880 칠순 엄마의 유럽여행 옷차림 뭐가 좋을까요? 8 하루 2012/05/10 4,349
107879 점심에 3,40대 여자손님(5명) 치루는데요 상차림좀 봐주세요... 7 내일 2012/05/10 1,754
107878 저렴하면서 괜찮은 등산바지 추천해주세요 4 .. 2012/05/10 2,513
107877 20cm차이면 4인용 식탁, 6인용 식탁 어떤거 살까요?? 6 4인용이냐 .. 2012/05/10 3,312
107876 숙제하고 나니 맘이 가뿐. 1 tnrwp 2012/05/10 1,058
107875 반 전체 생일 초대를 받았는데요. 2 초등1학년 2012/05/10 1,340
107874 이런 경우 어떤 쪽이고 싶으세요? 8 에고 2012/05/10 1,371
107873 초등4학년 수학이요.. 4 수학문제.... 2012/05/10 2,610
107872 날개없는 선풍기...어떤가요? 5 다이슨 2012/05/10 2,337
107871 감기몰 20% 쿠폰행사하네요 9 미도리 2012/05/10 1,746
107870 생)통합진보당 전국위원회 방송중계 15 사월의눈동자.. 2012/05/10 1,322
107869 요즘 20대 중반에 결혼하는 여자들 많나요? 5 ... 2012/05/10 2,363
107868 방문에 제가 없을때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방문열쇠를 만들 수.. 2 .. 2012/05/10 1,538
107867 정말 나이들면 잠이 좀 줄어드나요? 13 흑흑 2012/05/10 3,431
107866 야채,과일이 저희동네는 왜이렇게 싸죠?(서울) 10 .. 2012/05/10 2,469
107865 알레르기 비염으로 눈이 가려우면 안과로 가야할까요? 7 ... 2012/05/10 2,592
107864 적도의 남자요~ 6 ㅎㅎ 2012/05/10 2,409
107863 오십대남편 실손보험과건강보험중... 7 아내 2012/05/10 1,485
107862 딱 서른 중반인데요. 선자리에 나오는 사람들 나이가요. 11 나이 2012/05/10 4,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