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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웃어" 라고 세 살 아기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onemoretime 조회수 : 3,883
작성일 : 2012-03-15 20:59:43

온가족이 감기에 걸려 골골하던 지난 주말이었어요.

 

일요일에 아빠는 회사 간다고 훌쩍 가버리고.

 

아프니까 외출은 꿈도 못 꿨죠.

 

그래도 아들이 제일 먼저 감기에 걸려서 제일 먼저 나아가는 중이었어요.

 

앉아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이 아파서 평소엔 잘 보여주지 않는 TV를틀어주었는데

 

25개월 우리 아들,

 

“재미없어! 재미없어!” 하면서 몸을 뒤틀더군요.

 

하도 찡찡대길래 “맘마 먹을래?” 했더니식탁으로 달려가는 녀석.

 

옳거니!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불고기에 밥을 줬는데

 

아 글쎄 다 뱉어버리는 겁니다. 먹이는 족족.

 

“밥 먹는다며?” 하면서아무리 먹여봐도 먹진 않고

 

자기가 뱉어놓은 걸 손으로 문지르며 장난질하는 걸 보고

 

제가 그냥 폭발해버렸습니다.

 

“먹기 싫음 먹지마! 배고프대서밥 줬더니 장난질이나 하고 이게 뭐야!!!!

 

 먹지마먹지마! 엄마가 너무너무 힘든데 좀 도와주면 안 되니?”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 밥을 다 치워버리고선

 

안방문을 꽝 닫고 잠궈버렸어요.

 

처음엔 영문을 몰라하던 아이가 문을 두드리며 울기 시작했죠. 엄마아아아아~~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요.

 

내 몸뚱이 아프고 힘들다고

 

겨우 세 살 아기에게 화를 내고 있는 엄마라는 작자의 한심한 인격이라니.

 

쟨 그냥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 뿐인데.

 

내가 어릴적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을 나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니 너무 괴로웠어요.

 

결국 문을 열었죠. 약 3분만에.

 

훌쩍훌쩍대며 엄마 팔에 폴싹 안기는 작은 몸.

 

토닥토닥해주었더니 금세 방긋 웃으며 장난을 칩니다. 작은 천사.

 

`엄마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미안미안…..’

 

 

 

그러고 있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밥을 먹였어요.

 

오물오물 잘 먹더군요.

 

예쁜 입에 밥을 쏙쏙 가져가는 아기의 얼굴을 매만지며 제가 따뜻하게 말했습니다.


죄책감이 컸거든요. 아기가 그 순간과 감정을 기억하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고.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잘못했어.

 엄마가아직 그릇이 작고 모자라서 잘못 없는 네게 화를 낸 거야.

 넌 아무 잘못 없어.

 엄마가진짜 미안.

 앞으론다시 그러지 않을게, 미안미안…..”

 

이렇게 말하는 제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나, 한심한 엄마.

 

이런 작은 일들이 아기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나 같은 애가 어쩌자고 아기를 낳았대?

 

아기에게 사과를 하면서 소리내어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그때 아기가 날 바라보며 말합니다.

 

“엄마, 웃어”

 

우느라 처음엔 잘 못 들었는데 “응,뭐라구??”

 

“엄마, 웃어”

 

 



25개월 짜리 아기가 엄마한테 웃으랍니다. 엄마를 위로합니다.

 

괜찮으니까 웃으랍니다.

 

“엄마, 울지마”도 아니고 “엄마, 웃어.”라니.

 

EBS 다큐 보니까 남자아이들은 남의 감정에 대한 감응력이 약해서

 

엄마가 칼에 베인 척을 해도 걱정도 안 하고 잘만 놀던데 신기하기도 했어요.

 

 

 

“응? 엄마 웃어? 응, 알았어. 엄마 웃을게…  엄마 항상 웃을게….”

 

라고 말하는 전 울다가 웃다가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하루종일 감기로 끙끙 앓았던 고통과

 

아기에게 화를 내버린 죄책감과

 

조그만 입으로 엄마를 위로해준 세 살 아들에게 받은 감동이 뒤엉켜서

 

전 한동안 웃다울다를 반복하고 있었죠.

 

아마 누가 보면 미친 여자인 줄 알았을 거예요. ^^

 


 

그때서야 82에서 선배엄마님들이 말해주신 얘기가 생각났어요.

 

아이는 항상 제 2의 기회를 준다고.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늘 다시 시도하라고.

 

한 번 실수했지만 두 번 실수하지 않으면 되고,

 

두 번 실수해도 또 노력하면 되겠죠.

 

그러다보면 아기는 아이가 되어있을 거고 어느샌가 어른이 되겠죠.

 

좀 크면 얘기해주렵니다. 아들에게.

 

힘들고 외롭던 어느 날 네가 말해준 “엄마, 웃어.”라는 말,

 

그 말 때문에 엄마는 그 이후에 있던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물론 그 녀석은 기억 못하겠죠.

 

작은 입으로 엄마를 어떻게 울렸는지.

 

엄마가 그 말 한 마디를 붙잡고 얼마나 열심히 살게 되었는지. 


네. 미래완료형으로 얘기했지만 그날 이후 그 말 한 마디가 절 깨워줍니다. 


일하기 싫을 때나 녀석이 말썽 피우고 떼쓸 때도. 


그리고 이 얘기 82에 꼭 하고싶었어요. 


쪼그만 녀석이 내게 준 감동에 대해서요. 


자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된 순간에 대해서요. 


선배엄마님들, 여러분도 이런 순간 다들 있으셨어요? 


IP : 222.109.xxx.108
1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우리앤 남자라
    '12.3.15 9:01 PM (1.251.xxx.58)

    그런적 없어요 ㅠ.ㅠ

  • 2.
    '12.3.15 9:04 PM (211.196.xxx.174)

    애는 없지만 뭉클하네요...

  • 3. 있죠
    '12.3.15 9:07 PM (112.153.xxx.36)

    아 쓰려니 눈물나네요...
    말도 못하는게 수건 가져와서 엄마 눈물 닦아주고
    힘든 엄마에 안겨서 엄마 어깨 토닥토닥 두드려주던...
    님 그런 마음으로 사세요 순간순간 시행착오도 하고 성질내고 후회하고 깨닫고 그러면서 성장하는거죠. 아기도 엄마도요.
    그래도 원글님 정말 좋은 엄마 되실거예요 글 보니까.

  • 4.
    '12.3.15 9:10 PM (175.112.xxx.103)

    ㅠㅠ
    이런게 사는건가????ㅠㅠㅠ

  • 5. onemoretime
    '12.3.15 9:11 PM (222.109.xxx.108)

    고맙습니다. 글 쓰고 댓글 보는 지금도 눈물나네요.
    혹시 나중에 사춘기 오면 문 꽝 닫고 들어가선 말도 안 섞는 무심한 아들놈이 되더라도 이 순간은 잊지 않으려고요.
    그런 마음으로 글 썼습니다.

  • 6. ...
    '12.3.15 9:15 PM (211.246.xxx.78)

    저도 아기는 없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하네요 ㅠ 이런 마음 계속 가지고 가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되실것 같아요 !

  • 7. 허브향기
    '12.3.15 9:31 PM (125.178.xxx.147)

    아 ...제 아들도 23개월 세살이구요..
    순간제가 쓴글인가 착각할정도로 느낌선이 비슷해서 깜짝놀랐어요..
    원글님... 우리 노력해서 정말 좋은 엄마되자구요... 원글님 아기 너무 사랑스러워요...
    우리 아긴 아직 그정도까진 말못해요..ㅋㅋ

  • 8. ..
    '12.3.15 9:31 PM (211.52.xxx.83)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 아들인데 제 아픔에 많이 공감해요.
    제가 아이 토마토 잘라주다가 칼에 살짝 베어 아야아야 한 적 있는데, 그다음부터 제가 칼만 들면 쫓아와서 엄마 아야하면 안되요~조심하세요~ 그래요 (그말할때 대략 30개월).

    제가 아이에게 화를 내면 "엄마 착한 엄마 하세요~~" 그래요.
    아이랑 제가 하는 착한엄마 나쁜엄마 놀이가
    아이랑 제가 마주보고 있다가 아이가 제 두눈을 두손으로 잡고 위로 쭉 잡아당겨요... 그러면서 "@@야!" 하고 소리쳐요. 제가 자기 야단치는거 흉내내요.
    그리고나서 다시 양손으로 제 눈꼬리를 내리며 "@@야아아아~~~~~" 하고는 이거는 이쁜엄마 착한엄마래요, 아, 저도 님과 비슷하게 폭발한 적 종종 있었지요. 저도 님처럼 생각해요.
    저런 천사같은 순간들...절대 잊자말자고요.

  • 9. ..
    '12.3.15 9:32 PM (115.137.xxx.150)

    감동입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상처 받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요.

  • 10. 예뻐요
    '12.3.15 9:59 PM (211.214.xxx.67)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쓰세요...
    ㅠㅠㅠㅠ 감동으로 울컥해지네요

  • 11. oks
    '12.3.15 10:02 PM (81.164.xxx.230)

    원글님 글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기의 천사같은 마음 오래오래 잃지 않도록 항상 좋은 엄마가 되세요

  • 12. 아름다운...
    '12.3.15 10:25 PM (125.177.xxx.8)

    짝짝짝~~~

  • 13.
    '12.3.16 12:20 AM (106.103.xxx.190)

    왠만하면 리플 안다는데 글 읽으면서 울었네요ᆢ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ᆢ
    부럽기도 하고 아이가 사랑스럽기도 하고ᆢ
    자식은 부모에게 그런 존재인가봐요ᆢ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기도합니다ᆢ

  • 14. 힝1127
    '12.3.16 12:51 AM (211.246.xxx.109)

    지금 임신입덧때문에 힘들었는데
    이글보니까 힘이나네요 ㅠㅠ

  • 15. 동이마미
    '12.3.16 9:54 AM (115.140.xxx.36)

    네... 정말 너무 천사네요... 저희 딸네미(30개월) 한참 그윽하게 눈을 쳐다보더니 '엄마 사랑해'하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 16. 콜비츠
    '12.3.16 10:26 AM (119.193.xxx.179)

    으흑흑... 저도 눈물이 살짝....
    대체로 좋은 엄마인 것 같고,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다는데...

    요즘 좀 지쳤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도.
    마땅히 해야할 훈육이었는데도 (물론 체벌없는...) 하고 나서 마음이 좋지 않은 이유는, 저의 감정이 섞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저도 미안해~ 잘못했어~ 했네요. 딸이라 그런지 감정이입은 잘 되는 듯합니다. '엄마 잘못한 거 없어!'해주길래 미안하고 고맙고 했네요....

    이런 아가가 어느새 커서는 제 나이(아주머니)도 되고 할머니도 되고 하겠죠?
    참 신기한 인생이예요~~

  • 17. 어쩜ㅠㅠ
    '12.3.16 10:30 AM (112.162.xxx.120)

    애기가 없는 저지만 눈물이 나요

  • 18. 눈물이..
    '12.3.16 1:05 PM (222.112.xxx.121)

    아이가 제 2의 기회를 준다는 말을 저만 이제 안거예요......?
    돌이켜보니 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해달라는데로 하면 되는 거였어요..
    엄마의 고집을 내려놓고 아이를 따르면 아이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어요.ㅠ.ㅠ
    그걸 이제서야 안 제가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하염없이 미안해 집니다.
    벽은 아이가 아니라 제가 쌓고 있었어요.ㅠ.ㅠ

  • 19. onemoretime
    '12.3.16 5:52 PM (222.109.xxx.108)

    원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니 감사하네요.
    돌이켜생각하면 우리의 엄마들도 우릴 키우며 그렇게 작고도 커다란 감동이 있었으니까
    지금 효자효녀랑은 거리가 먼 우리들(아, 우리 부부 얘깁니다^^)를 아직도 사랑해주시는 거겠죠?

    콜비츠님,
    마땅히 해야할 훈육이지만 내 감정이 섞였다는 말, 정말 동감해요.
    그리고 어렸을 적 엄마한테 혼날 때
    지금 내가 혼나는 게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화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은 다 알고있는 듯.

    눈물이..님
    아이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는 말, 잘 기억해둘게요.
    아이들은 원하는 걸 늘 표현하는데 어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주장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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