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시안게임중계가 별로 없어 비교적 여유가 생겼어요. 대한민국 일 혼자 다하는 척. -_-
82cook 기웃거리며 댓글도 달고, 김장 계획도 세우다 보니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으로라도
인사함 드리고 싶어 허접한 사진 몇장 올려요. ^^;
올해 첫 유자예요. 제가 매번 주문하는 농장에서는 16일부터 배송된다고 해 예약 해놨는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감기 환자가 늘어나면서 은근 제 유자 선물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차장님 유자차 먹어 보니 시판 유자차는 설탕맛만 낫 먹겠어요' 하는데,
어쩔. 하여 장터에서 10kg 주문했답니다. 못난이 유자인데, 크기가 잘긴 하지만 향은 좋아요.
제가 주문하는 유자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다는 장점이 있죠. 못난이라 썰때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맛도 향도 아주 좋은 편이에요. 마시는 분은 어차피 채썰어 받으니까. ㅋㅋ
(엄허, 트위짓을 하다 보니 82어르신들 앞에서 ㅋㅋ 막 이런다.)
그런데, 진정 슬로우푸드의 1인자인 저, 요리하는 과정과 모양, 재미가 몹시 중요합니다.
비슷한 크기의 유자 30개 씩 골라서 사흘 밤을 유자 썰었어요. 나란히 나란히~ 줄 맞춰 하면
재미도 있고, 힘든 줄도 모른답니다. (이 말은 '안 먹어도 배부르다'식으로 이해해 주시길.^^;)
유자는 이렇게 8등분해서 사선으로 일정한 길이를 유지하며 썰어줘야 유자청이 가지런히 이뻐서
나중에 유자차 마시는 재미가 있어요. 저 왜 일케 오늘 재미 타령이래요? 아 맞다! 재미는 친정
강아지 이름이에요. 재미 엄마는 유리인데, 우리집 첫 강아지죠. 유리는 우리집에 온 이후부터
줄곤 부산 관사에서 진도개랑 같이 뛰어놀며 자랐어요. 요크셔테리어인데, 인형처럼 이뻤죠.
그런데, 아빠가 전역하시고 서울로 올라오니, 맘껏 뛰어놀 수가 없잖아요. 밖에 나갈 때는 목걸이
해야 하고, 나가도 온통 아스팔트 천지이고. 그래서 강아지 신분에 황송하게도 우울증에 걸린
거예요. 그 밝던 녀석이 낯선 사람이 오면 슬슬 눈치 보고, 가끔 거실 카페트 가장자리만 빙빙 돌고..
그래서 엄마가 새끼를 보면 좀 나아질까 하고 시도를 했는데, 처음은 유산, 두번째 시도에서
암컷, 수컷 강아지 두마리를 낳았어요. 그런데, 암컷 녀석이 태어나자마자 상태가 안 좋은 거예요.
지금도 눈에 선할 만큼 이쁘게 생겼었는데... 엄마가 정말 3일 동안 잠 한숨 안자고 옆에서 계속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호흡할 수 있도록 계속 배를 문질러 줘야 한대요. 그래서 살아나나
싶었는데, 엄마가 안심하고 잠깐 새벽에 잠든 사이... 글쎄 유리가 새끼 배를 눌러서 호흡곤란으로
죽고 말았어요. 엄마가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그 이후로 유리의 우울증은 더 심해졌어요.
엄마가... 유리를 미워하기 시작한 거죠. 자기 새끼 물어 죽은 강아지는 무섭다고, 누구보다
유리를 이뻐했던, 머나먼 스페인에서 사는 이모가 선물해준 강아지라 동생처럼 아꼈던 엄마가
유리를 미워하기 시작한 거예요. 세상에 자식 만큼 귀한 것이 없다고 믿는 엄마 였기에,
그런 유리의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
그런데요... 엄마 돌아가시고 유리가 1주일이 넘도록 밥을 안 먹었어요. 어린 시절 친엄마에게
버림 받은 엄마, 그리고 새끼 물어죽인 유리... 둘 사이에 그토록 애증이 깊었던 걸까요.
유리는 알고 있었던 거죠. 자기를 미워했던 엄마지만, 그 미움 속에 더 큰 정이 있었음을..
엄마 돌아가신 후 유리는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한번은 패혈증에 걸려서 죽음 직전까지
갔죠. 동물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는데, 그 소리 듣고 퇴근 길에 바로 달려갔어요.
온통 주사 바늘 꼽고 고통스런 호흡을 내뱉던 유리 모습이 생각나네요... 저 유리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때가 엄마 돌아가신지 2년 쯤 됐을 때라 '엄마'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던 때여서 유리마저 보내면 엄마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말 간절히 유리가 깨어나기만
기도했죠. 그런데 참 신기해요... 나흘 동안 사람도 못 알아보고, 혼수상태였던 유리가 눈을
뜬거죠. 수의사 선생님이 제가 너무 울어 혼절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며, 이렇게 강아지
아끼는 마음이 깊은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약속도 해주셨어요. 그리고, 유리는
정말 기적처럼 살아났죠.
그후로도 이런 병 저런 병에 시달리다가 3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딱 5일 후네요. 그때는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하늘나라에 외롭게 계실 엄마 곁에서 맘껏 뛰어다니라고, 이젠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커다란 눈망울 속에 슬픔을 굴리지 말고, 강아지답게 명랑하라고.
재미는 제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유리처럼 우울해하지 말고 늘 재미나게 지내라고. 그 녀석
수컷인데 애교가 장난 아니에요. 완전 개구장이. 이름 한번 잘 지었죠. ^^
아놔~ 오늘은 수다 안떨고 간단히 인사만 하고 갈라켄는데, 강아지 땜에 또 엄마 생각.
이렇게 썰어놓으면 정말 뿌듯하죠~ 퇴근 후에 씻고, 정리하고 9시 부터 칼을 들어 1시까지
썰었어요. 1kg 짜리 유리병 4개 조금 넘게 나왔는데, 첫날 담근 건 월요일에 아나운서국에
드렸고, 둘째날 담근 건 남편이 작가선생님 만난다고 해서 들려 보냈어요. 울 그이 내년 봄에
드라마 들어가요. 많이들 봐주실거죠? ^^
좀 일찍 했음 중계팀 광저우 가기 전에 미디어센터 내에 들려서 보내는 건데... 광저우가
몹시 더운데,
미디어센터는 방송 장비 때문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몹시 춥다더라구요.
감기 환자가 막 늘고 있다고 해서 안타까워요.
어제 퇴근하니 16일 예약 주문한 고흥 유자 5kg이 또 도착했네요. 일단 김치 냉장고칸에 넣어
뒀고, 틈날 때마다 썰려구요. 선물 할 사람이 넘 많아서 아시안게임이고 뭐고 11월 달에는 내내
밤새 가며 썰어야 겠어요. 오늘 장터에서 주문한 도가니 도착했다고 택배 메시지 왔던데,
어쩔.. -_-
그래도 머 유자는 내가 썰고, 도가니는 가스렌지가 끓여주는 거니까 머 막 이래. ㅋㅋ (또 ㅋ)
어쨌거나 유자 덕에 매 가을이 향긋하고 포근합니다. 저 무지하게 바쁜 줄 알면서도 유자차
선물 기대하는 거 보면 주위 분들도 그렇겠죠? ^^
저 여기서 욕 먹을 짓 한번 하고 갑니다. 이거 수면양말인데, 전 발이 시원한 게 좋은데, 남편은
발이 차가우면 못견뎌해요. 집에서도 슬리퍼 찾아 신고. 수면양말 노래를 해서 커플양말로 사다
줬어요. 근데, 아시안게임 때문에 점심, 저녁도 잘 못챙겨먹고, 그나마 틈나면 유자 썰고 있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나봐요. 전 잘 안챙겨 신는데, 자다가 인기척에 잠을 깨보니 남편이 핑크
양말을 찾아다가 제 발을 신겨 주고 있더라구요. 흐~ 그리고, 아침에는 유자차 타서 침대로 갖다
줍니다. 음핫. 자, 돌 피해주고~~ 아니 뭐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째라 남편이 그
정도는 해야죠. 또 이런다.
실은 저 주말에 김장 해보려고 들어왔다가, 필 꽂혀서 수다질에 자랑질이네요. 편강에, 유자에,
사골에... 김장까지 하면 가을 숙제가 넘 과해질 것 같아 눈 질끈 감고 김장은 외면했는데,
강화도에서 텃밭하는 에스테틱 원장 처자께서 사고를 치셨어요. 글쎄, 저에게 손수 가꾼 배추를
무려 10포기씩이나 준답니다! 한참 배추값 금값일 때 제가 얼굴에 팩 붙이고, 배추 비싸 배추 비싸
노래를 했더니 덜컥 주겠다고 약속을 한 거예요. 전 잊어먹었겠거니 했는데, 전화 왔네요. 주말에
배추 캐서 10포기 갖다 주겠다고. 이런 고마운 마음을 어찌 거절하나요.
그렇다고 배추 10포기 죄다 배추전 부쳐 먹을 수도 없고. 김장 도전!!!
텃밭에서 나온 갓, 무우도 주신댔고, 젓갈은 강경에 사러 가시면서 제 것도 사다주신댔고,
그럼 전 소금, 고춧가루, 생강, 마늘, 대파만 준비하면 되는 거죠? 좋은 소금이랑 고춧가루
추천 좀 해주세요. 내일은 주문해야 주말에 할 수 있을텐데. 양은 어느 정도 하면 되나요?
배추 10포기인데, 작년에 주신 배추 1포기 보니 속이 꽉차서 아주 무겁더라구요.
아, 성공해야 할텐데...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 부탁 드려요. ^^;
아, 글쓰고 보니 제가 작년 유자차 글에도 [닭]을 달았군요!
유자만 보면 애정 돋는 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