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에서야 부랴 부랴 준비했어요. 실은 또 빠져 있는 게 있어서... ㅋ

뭐에 쓰이는 물건일까요? 쳇, 제목에 다 써놓고, 82 선생님들을 바보로 아나.
네~ 맞습니다. 막걸리 만드는 재료예요. 좋은 쌀과 물, 그리고 누룩과 효모만 있으면 집
에서도 막걸리를 담글 수 있어요. 요즘 막걸리 열풍이잖아요. 집에서 만든 막걸리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고, 좋은 쌀로 깨끗이 만들기 때문에 숙취가 없대요. 누룩과 효모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답니다. 광목천과 1차, 2차 거름망도 같이 주문 했어요.
난데없이 막걸리를 담가보기로 한 이유는 올해 부터 현미밥으로 바꿔 볼 계획이거든요.
그런데, 집에 쌀이 엄청 많아요. 남편 회사는 12월 창사 기념일에 쌀 한가마니, 그러니까
80kg이 나오거든요. 시댁에 반 드리고도 지금 30kg도 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좋은
쌀을 그냥 묵히기도 아깝고 해서 쌀로 뭘할까 고민 고민 하다가 막걸리로 결정.
마침 막걸리가 대세라니까 매주 만들어서 주변에 선물하려구요. 해보니 대충 감이 와요.

막걸리는 쌀을 잘 씻는 게 가장 중요하대요. (제가 만년 초보자로 매번 첫 시도면서 성공
하는 이유는 하기 전에 레서피를 주구장창 파요. 왜? 라는 물음에 시원한 답이 없으면
선뜻 시도를 못하거든요. 이번에 막걸리 공부 솔찮게 했다지요.)
백세라고... 백번 씻으라고 하지만, 요즘 쌀은 도정이 잘 돼있어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고,
뿌연 물이 안나올 때까지만 씻음 돼요. 요리 하면서 숫자 놀이 하는 거 좋아하는 저, 20번
세아리며 씻었답니다. 요리 할때 숫자 놀이 하면 힘이 안들어요. 지겹지도 않구요.
채 썰 때도 속으로 '하나, 둘, 셋', 열무 다듬을 때도 속으로 '하나, 둘, 셋', 전 부칠 때도
'하나, 둘, 셋', 설겆이 할 때도 '하나, 둘, 셋' 과도한 노동을 즐기는 저만의 비법이지요.^^
깨끗이 씻은 쌀은 충분히 불려야 해요. 전 하룻밤 전에 불려 놨어요. 12시간 정도.

술 만드는 도구는 모두 팔팔 끓는 물에 살균해줘야 해요. 술은 미생물이 번식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술 만드는 미생물이 나쁜 세균과 싸우느라 본업을 등지면 곤란해요.
광목 천과 거름망도 모두 삶아줬어요. 바부팅이 같이 거름망은 1주일 후에 사용할 건데,
함께 삶았다가, 1주일 후에 한번 더 삶았다는.

술은 고두밥만 잘 지으면 반이상 성공한 거래요. 왜 고두밥이어야 하는지, 고두밥 상태는
어찌해야 하는지 또 열심히 공부해 봤어요. 누룩의 성분이 쌀에 잘 스며들어 안에서 배양이
돼야 하기 때문이라네요. 그러니까 쌀의 모양은 유지하면서 속은 물러야 하는 거죠.
겉은 단단하게, 속은 무르게. 30분 정도 중불에서 찌다가 아래 위를 뒤집어 준 후, 40분
정도 약불에서 뜸 들였어요.

쌀 찌는 동안 누룩을 잘게 부숴줘요. 절구통이 없어서 돌솥에 칼국수 미는 밀대로 콩콩.
아니 쿵쿵, 아니 쾅! 쾅! 누룩이 어찌나 단단하던지...

아일랜드 식탁 위에서 빻는 대도 워낙 힘을 줘야 해서 아래집 울릴까봐 방석 깔고 빻아요.
빻다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나요. 저희 아파트 윗집에서 간혹 밤 늦게 마늘을 빻곤 했거든요.
제가 좀 예민해서 소음을 못 참아요. 참다 참다 한번은 인터폰 하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그냥 놔두라고 하시더라구요. 요즘 다 간 마늘 사서 먹는데, 저렇게 빻는 거 보면 할머니
아니시겠냐고. 몰라서 그러실텐데, 무안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젊은 사람이라면 낮에 빻을
시간이 없어 하는 걸텐데, 어쩌겠냐고.
또, 요즘 같은 세상에 젊은 사람이 직접 마늘 빻아 먹는 거 대견한데 우리라도 이해하자고.
그 후로 마늘 빻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어요. 요즘도 어디선가 쿵쿵 마늘 빻는 소리가
들리면, 시골집에라도 간 듯 푸근함이 느껴진답니다. 그렇다고 울 윗집 사는 게 아니신
한 야밤에 절구통에 마늘 빻진 마세요. ^^;
누룩 부수기 전에 찬물에 효모를 넣어 미리 배양시켜 주세요.
참 비율은요, 이게 또 각양 각색이에요. 쌀 100%, 누룩 15~20%, 물 150%, 효모 약간.
대략 이렇게 정리 되는데, 전 쌀 2kg, 누룩 310g(빻으면서 날아갈 거 감안. ^^;), 물 3.5L
했어요. 물이 3L가 아니라 3.5L인 이유는 누룩 양도 고려해야 하고, 쌀 무게의 1.5배인지
부피의 1.5배인지 몰라 몹시 고민 했는데, 생각해 보니 쌀이 물을 흡수하는 거라면
무게가 중요친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불린쌀 부피의 1.5를 했더니 대략 3.5L.
이제 계량도 하고... 기특 하네. 흐흐

고두밥은 찐 후, 부채로 부쳐가며 재빠르게 식히세요. 속은 무르고 겉은 단단하게 하려면
빨리 차갑게 식히는 게 좋아요. 이렇게 쪄서 식혀 주면 표면에 균열이 생겨 효소가 들어가
자리 잡기 좋다는 군요.

잘게 빻은 누룩과 배양한 효모를 식힌 고두밥과 잘 섞어줘요. 골고루 잘 섞지 않으면 누룩
이 한군데로 뭉쳐 술맛이 고르지 않고, 상할 수도 있대요. 식혔으니 손 델 염려도 없고,
하나, 둘 세가며 열심히 골고루 섞어줘요.

소독한 유리병에 물과 함께 넣어줘요. 입구는 비닐로 밀폐하되 숨을 쉴 수 있도록
작은 구멍 10개 정도 뚫어주구요. 에어락이라는 게 있던데, 정통주 만드는데,
외래어가 웬말이래요. 필요 없는 물건이다 싶어 과감히 생략.

하루 지나면 이렇게 쌀이 물을 다 흡수해 버려요. 2~3일은 아침 저녁으로 저어주라고
하는데, 전 그냥 놔두고, 생각 날때마다 몇번씩 세차게 흔들어 줬어요. 무슨 음식이든
과정 중에 재료 손 타는 거 별로 안 좋잖아요. 쌀알이 뭉그러질수도 있고.

온도는 20~25도를 유지해줘야 한답니다. 넘 높으면 쉽게 쉬고, 낮으면 발효가 잘 안
이뤄지니까요. 난방비도 아낄겸 방 온도를 21~22도로 유지한 후 이렇게 꽁꽁 싸줬어요.
이틀째 되는 날 부터 보글 보글, 퐁 퐁, 소리가 들린답니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

딱 1주일 째 되는 날 걸렀어요.

술지게미라고 하나요? 배고픈 시절엔 저것도 먹고, 아이들이 대낮에 헤롱 헤롱 취해있었
다는... 슬픈 이야기 속에만 등장하던 술지게미를 직접 보게 될줄이야! 것도 내 손으로
만들어낼 줄이야... -_-

최대한 맑게 만들려고 2차 거름망에 한번 더 걸렀어요. 2차 거름망이 훨 촘촘해요.

짠~ 정말 백옥 같이 하얀 막걸리 탄생!

맛이 어떤지 비교해 보려고, 시판 막걸리 한병 사왔어요. 색깔이 확연히 다르죠?
시판 막걸리는 단맛이 확 나고, 끝맛이 톡 쏘는데, 제가 만든 막걸리는 첫맛이 깔끔하면서
뒷맛이 싸~해요. 찹쌀로 하면 단맛이 더 난다고 해서 두번째는 찹쌀 반, 맵쌀 반으로 해서
지금 발효중.

막 담은 막걸리는 15도 정도 된대요. 술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해 거기다 물을 섞어 도수를
낮췄다죠. 막걸리는 정말 서민의 좋은 친구. 전 물은 3분의 1만 섞었어요.
일명 '다죽었어 막걸리' 흐흐흐흐~
실온에 놔두면 계속 발효가 진행 되니까 냉장고 안에 차게 식혀 보관중. 막걸리 한사발
드시구요~ 이제 대보름 준비 해야죠. ^^

대보름 준비하다가 경빈마마님 보름나물 보고 깜놀. 어찌 저걸 직접 말려서 하신대요?
경건한 자세로 존경심을 보내며, 마트로 촐랑 촐랑~ 건나물 6가지와 생나물 3가지
하기로 결정 했어요.

전날 저녁 부터 불려 놨어요. 건호박고지, 건토란대, 건무청시래기, 건고사리, 건가지,
건취나물. 하면서 계속 하나둘 세는데, 꼭 하나씩 빠뜨려서 8개인가? 안되는데...갸우뚱...

묵나물은 볶으면서 푹 익혀줘야하기 때문에 자작자작 육수가 필수예요. 전날 미리 육수
내놨어요. 황태머리, 대파뿌리, 멸치, 홍합, 다시마 넣어 푹푹.

남편이 잔치국수를 좋아해서 육수 내는 날은 꼭 소면을 삶아 줘요.

나물 손질하느라 따로 밥 차릴 시간도 없고, 이걸로 한끼 떼워줘야 겠다 싶어 냉장고를
뒤지니 어묵 만드려고 사둔 오징어와 해물들이 보이네요. 쪽파는 없어서 그냥 대파로.

밑간한 밀가루를 물어 풀어 한겹 깔고, 대파 꾹꾹 눌러 얹고, 사이 사이 해물도 꾹꾹.
그리고, 계란을 대충 풀어서 휙 끼얹어 줘요.

그럼 익었을 때 이렇게 때깔이 좋거든요.

삶은 소면은 찬물에 헹궈서 당근, 양파, 대파, 호박 채썰어 가지런히 얹어두고 마르지
않도록 랩으로 싸줘요. 이 날은 육수가 주인공이니 소면이 기다려줘야 해요.

팔팔 끓는 육수를 부어준 후 김가루, 깨소금 살살 뿌려주면 따로 간하지 않아도 국물맛이
끝내주는 잔치 국수가 완성돼요.

한상 차려 남편의 허기진 배를 달래는 사이, 마눌은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주방으로~

다음 날 아침 부터 삶고, 볶고, 무치고~ 매번 할때 마다 제일 힘든 게 무청 시래기에요.
입에 거친 음식이 몸에 좋기 때문에 먹어줘야 한다지만 너무 거칠면 손이 안 가잖아요.
20~30분씩 삶아도 보들보들한 시래기 나물이 잘 안나와요. 경빈마마님이 식소다 넣음
좋다고 하셨는데, 식소다도 없고, 얼마를 넣을지 가늠도 안되고. 그렇다고, 넘 오래 삶으면
영양가가 팍 떨어질 것 같고. 그래서 이번엔 나물을 삶은 후 볶기 전에 줄기의 겉껍질을
다 벗겨줬어요. 이번엔 성공. ^^

나물 삶고, 된장찌게 끓일 재료 다 준비 한 후 쿠쿠에게 3시간 불린 오곡을 안겼어요.

짜잔~ 시금치, 콩나물, 무나물까지 가세한 9가지 나물들. 보고 있자니 속이 든든해요. ^^

대보름에 오곡밥과 9가지 나물을 큰 김에 싸서 입이 쩍 벌어지게 먹으면 벌린 입으로 복이
쩍하니 굴러 들어 온다죠? 복이 덩굴째 굴러들어 올 듯. 이미 일복은 넘치게 받아 다달이
일렬종대로 대기중이니 이제 다른 복 주세요! (일 생각 하니 앙탈이구만요.)

설날 어머님이 싸주신 전과 잡채 데웠어요. 전 할 때는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하고, 다시
뎁힐 때는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약한 불에 은근히 뎁혀요.
잔뜩 싸들고 와서 냉동실에 얼려두면 한달 정도는 반찬 걱정 없어요. ^^
막걸리도 만들고, 9가지 나물도 만들고... 여기까지 오니 제가 푸근한 시골 아낙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네요. 흐흐

흐흐, 시골 아낙을 변신 시켜줄 빠다 친구들 되시겠습니다. 뭐할지 감이 오시죠?
드라마 덕에 요즘 파스타가 열풍이라죠?

파스타는 재료만 있고, 면만 잘 삶으면 끝인데, 우리 최쉪은 왜 맨날 버럭버럭이신 건지.
(저 식당 아줌마는 못하겠죠? 니 입맛만 맛이냐? ^^;;)

제가 좋아하는 느끼한 연어크림소스 스파게티. 훈제 연어에 양파랑 브로콜리 넣었구요,
주황색 컬러 날치알로 폼 좀 잡아봤어요. 톡톡 터지는 게 아주 그만~

남편이 좋아하는 봉골레. 청양고추, 저민 마늘, 모시조개 넣었구요, 바질로 마무리.
남편이 후루룩 한 입에 다 먹어치우고, 제 스파게티까지 반도 더 먹었어요. 그럼 맛있는
거 맞죠?

오리엔탈 소스 뿌린 샐러드와 치즈바게뜨, 쉪은 버럭하실지 언정 내 맘대로 피클까지~
저 접시는 엄마가 결혼할 때 사주신 건데, 이번에 첫 개봉했어요.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결혼할때 넘 바빠서 모든 살림살이를 엄마가 장만해주셔서 아직도 '이것이 뭐에 쓰는 물
건인고' 하는 게 나온다니까요. 저거 장만하시면서 딸이 사위랑 분위기 잡을거 생각하며
빙그레 웃음지으셨겠죠, 엄마는... 4인세트예요. 아들, 딸 하나씩 낳았음 하셨나봐요.
조오기~ 보름 밥상의 한식기도 엄마가 장만해주신 거예요. 몇인조 세트인지도 모르게
잔뜩 있어요. 결혼 초엔 뭐 이런데 밥 먹을 일이 있다고 자리 차지하게 이런 걸 사주셨나
했는데, 명절이나 한식 먹을 때 분위기 잡기 그만이에요. 역시 선견지명 있으신 울엄마.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죠... 한 수 앞서 딸의 일생을 내다보는...
내일이 제 생일이어서 그런지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해요. 아빠가 월남에 계셔서 엄마 혼자
절 낳으셨거든요.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요... 그래도 입덧도 없이, 진통도 별로 없이
쑨풍 낳았다며, 날 때부터 효녀였다고 고마워 하셨어요. 말씀이 그렇지, 몹시 고통스러우
셨을텐데, 자식 낳고 나면 그 고통 쯤은 잊어 버리시나봐요. 엄마들은...
그러고보니... 아빠 월남 가셨을 때 시댁 들어가 살면서 모진 시집살이 했다 하셨는데...
저 가지고 힘들었단 말씀은 단 한번도 안하셨네요. 분명 매일 매일 눈물 바람이었을텐데.
오빠 가졌을 때 할아버지가 하도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서 아기가 들을까봐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 귀 막고, 배를 감싸고 있었다거나, 동생 낳을 때 진통이 넘 심해서 죽다
살았다는 말씀은 하셨어도 저는 마치 하나님이 비단 이불에 싸서 안겨주고 가신양 곱게만
추억하셨 거든요.
딸이 엄마 닮을까봐, 엄마처럼 임신하고 눈물 바람으로 보낼까봐, 아기 낳고 홀로 외로울
까봐 엄만 고통스러운 기억 마저 지우셨던 걸까요. 그런데, 울엄마, 한가지는 생각 못
하셨네요. 엄마 딸은 엄마 닮아서 강하게, 꿋꿋하게 어떤 일이든 이겨낼 거라는 거.
절 세상에 낳아주신 엄마께 깊이 감사하며, 또 그리워하며...
전 이만 아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을 큰 선물과 맛난 음식과 함께 축하하라고 남편
닥달하러 갑니다. 닥달 안해도 알아서 서프라이즈 해줌 좋겠구만, 어쩌겠어요.
전 금성에서 왔고, 그이는 화성에서 온 걸요. '기억하나 안하나 두고 보자' 이런 손해나는
짓 절대 안해요. 스스로 기억한 거나 억지로 기억 시킨 거나 제 손에 들어오는 건 같아요.
그런데, 기억 못하면 국물도 없잖아요. 기분만 나쁘고.
흐흐, 행복은 쟁취하는 자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