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남편 만난지 딱 11개월 만에 결혼을 해서 결혼을 앞둔 발렌타인 데이가 남편과의
첫 발렌타인 데이였어요. 그래서 엄마와 함께 복작대며 초콜렛을 만들었죠.

이건 4년 전에 만든 거네요. 불과 4년 전인데도 왜 일케 귀여워 보이죠? ㅋ
엄마... 살아계셨으면 남편에게 참 좋은 장모가 되어주셨을텐데... 남편이 엄마와 보낸
명절이 결혼 전까지 합쳐서 네번이었는데요... 그때마다 남편이 밥 두 그릇, 국 두 그릇
씩 비웠어요. 탕국 맛있다고, 남김 없이 싹싹. 원래 탕국을 좋아하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시댁에서 차례 지내고 밥 먹을 때 보니 탕국을 거의 먹지 않더라구요. 고기는 아예 다
남기구요. 엄마가... 참 요리를 잘하긴 잘하셨나 봐요.

이건 재작년 발렌타인 데이에 만들었던 초콜렛이에요. 당시 함께 일하던 분들이 남자들이
많아서 대량 생산을 위해 몰드 초콜렛으로 갈아탔죠. 밤을 꼬박 새서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커버처 온도 맞춰 중탕해서 몰드에 붓고, 굳는 거 기다려서 떼어내고...
엄마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엄마 제사상과 친정 차례상을 제 손으로 차렸어요. 딸은 시집
가면 평생 해야 한다고, 늘 명절 마다 남동생과 오빠를 조수로 쓰셨기 때문에 저희 친정
남자들은 차례상도 잘 차려요. 전도 잘 부치고.
그래도 여자들로 북적 대는 시댁에서 전 부치고 있다보면 친정에서 허둥대고 있을 아빠와
오빠, 동생이 생각나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래서 끝내고 늦은 저녁에 친정에 들러
나물과 탕국은 제가 끓이곤 했거든요.

올해 부터는 당분을 조절할 수 없는 초콜렛이 아니라 양갱을 만들기로 했어요. 설날에
시댁 가야 하니 시아버님과 남자들, 남편까지 무려 7명이네요. 우아~ 앙금과 밤조림은
다들 사서 하시던데, 이왕 건강을 생각해서 만드는 거 모두 다 직접 하기로 했어요.
앙금은 팥죽 만들고 남은 팥으로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뒀어요.
팥을 불려서 삶은 후, 체에 내리고, 물기를 꼭꼭 짜준 후 설탕을 넣어 저어주면 걸죽한
팥이 포실포실한 앙금으로 변하거든요. 그런데, 저 '저어주면'이 보통 노동력을 요하는
게 아니에요. 팥앙금 한번 만들어 보니, 편의점 입구에 동글 동글 돌아가는 호빵이 대단해
보여요. 앙금을 품었으니-.
그런데, 여러분들 집에서는 탕국을 어떻게 끓이시나요? 탕국 끓이는 방법도 집집 마다
각양각색이더라구요. 저희 친정은 꼭 문어를 넣고 끓여요. 쇠고기와 문어를 통째로 넣어
국물 우린 후에 밥 먹을 때 잘라서 국에 띄우거든요.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렇게 문어를
좋아하셨다고, 엄마는 평생 탕국에서 문어를 빼놓지 않으셨어요.
스무 살에 혼수도 없이 시집 가셔서 시집 살이 참 심하게 하셨는데, 미운 정이 더 깊어서
였을까요...

1회분만 조금 하려다 조그마한 밤톨이 넘 귀여워서 1.5kg을 통째로 사와 불렸어요.
그러고 보니, 저희 할머니도 엄마와 비슷한 50대 초반에 뇌진탕으로 돌아가셨어요.
부엌에서 넘어지셔서 갑작스럽게... '이제 나도 어머님한테 큰소리 좀 쳐보며 살아보려
했는데 이렇게 가시냐'며 혼절 하시던 엄마가 기억나요.

팥앙금 무게를 재보니 700g이에요. 애매하네요. 검색해 보니 레서피가 천차만별이에요.
난감. 처음으로 양갱 만들어 보는 저, 맘대로 상상 절충하여 한천 가루 14g과 물 250g,
설탕 50g으로 낙찰. 한천 가루는 홈플러스 베이킹 코너에서 샀어요. 한천이 콜레스테롤을
없애주기 때문에 고혈압과 당뇨에 좋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양갱을 좋아하시나
봐요. 직접 만들면 당분도 조절할 수 있고.
어린 여동생이 넷이나 딸린 장남에게 시집와 손자 둘, 손녀 한명까지 줄줄이 낳은
맏며느리를 할머니는 왜 그리 구박 하셨을까요. 저희 할머니도 참 힘겹게 살아오셨다고
들었어요. 돌아가신 그날 까지도 시장 가판에서 채소와 생선을 파셨으니까요. 젊었을 때
흑백 사진이 한장 남아 있는데, 참 고우셨어요... 단아하고...

한천 가루를 물에 불려 줘요. 오래 불려야 탄력이 생긴다고 하네요. 뭐 전 밤 까서 밤조림
하느라 본의 아니게 서너 시간은 불린 듯.
저희 증조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시거든요.(이러다 박혁거세 나오겠네.^^;) 그래서 집안을
돌보지 않아, 가세가 많이 기울었대요. 옥살이도 하셨고. 할아버지는 무학이셨는데, 그래도
뼈대있는 집안이라 부잣집에서 잘 자란 처자와 결혼하신 거죠. 거의 할머니 혼자 가세를
꾸려 오셨대요. 저는 그래서 친일파가 너무 너무 싫어요. 조상이 친일한 덕으로 자자손손
잘 배우고, 잘 입고, 떵떵 거리며 잘 사는 게 너무 속상해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울 아빠는 2대에 걸쳐 그렇게 힘겹게 사셨는데...

겉껍질을 까고나니 손목이 시큰 거려요. 저걸 어느 세월에 다 까나 싶으니 심란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엄마가 마음으로부터 할머니를 미워할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대요. 돌아가시기 전 저와
한잔 하실 때면 할머니를 추억하며 마음으로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여러 번
말씀 하셨죠. 어린 시절 자식 버리고 떠난 외할머니에 대한 한이 가슴 깊이 맺혀 있던
엄마에게... 힘겹게 시장판 장사해서 다섯 남매를 키워낸 할머니가 존경스러웠던 거죠.

어차피 한번 삶아줘야 하는 거 깨끗이 씻은 후 속껍질 째 살짝 삶아줬어요. 겉이 부들부들
해지니 한결 까기가 쉽더라구요. 잔머리 대왕.

설탕과 올리고당을 반반씩 넣어 밤 조리기. 참 이쁘죠? 밤 1.5kg을 까 보아야 비로소,
깍아 놓은 밤톨이 왜 이쁜지 손가락 뼈 저리게 깨닫게 된다죠. 안까도 되니까!

그럼 본격적으로 양갱 만들기. 불려 놓은 한천을 분량의 물을 넣고 끓여요. 끓이다 보면
점섬이 생기거든요. 그걸 청이 잡힌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계속 불 위에서 저으면서 제대로 청을 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전 일단
한천이 물에 다 녹아 물 가장자리가 하얗게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식혔어요.
그럼 이렇게 굳거든요.

그리고, 다시 불에 녹여 주니 이렇게 탱탱하게 청이 잡히 더라구요. 여러번 해보니 양갱은
한천 녹이는 과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한천이 많으면 단단해지고, 적으며 야들야들
젤리 같아지고, 또 청을 잘 잡아야 양갱에 탄력이 생기거든요.

설탕과 소금 약간 투하. 설탕이 녹을 때까지 끓여줘요.

힘들여 만든 팥앙금 아낌없이 투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팔목 고문이 시작되어요.
500g 씩 나눠서 하세요. 저 1kg 젓다가 진짜 팔 부러지는 줄 알았어요.
팥 500g, 한천 13g, 물 250L, 설탕 30g, 소금 1ts, 물엿 휘리릭 <- 이 정도면 실패 안해요.

늘어 붙지 않도록 계속해서 저어줘요. 어느 정도 되직해졌다 싶으면 윤기가 나도록 물엿을
넣어줘요.

그리고, 몰드에 붓기. 쉽게 굳기 때문에 빨리 넣어줘야 해요. 굳으면 불에 살짝 올려서
녹여주고.

냉동실에 넣어 두어 시간 굳혀서 몰드에서 빼내면, 짠~ 양갱이가 완성되었어요.
요즘 같이 추운 날은 굳이 냉동실에 넣어 두지 않아도 창가 쪽에 놔두면 금방 굳어요.

상자에 이쁘게 담아 같이 일하는 부서에 뇌물로 주었어요. ㅋㅋ 그날 좀 크리티컬한
미팅이어서 달달한 양갱으로 분위기 잡으려구요. 성공 했다죠. ^^v 맛 검증도 안된
실험용 양갱이었다는 거 알면 분위기 험악해졌으려나. 흐흐~

테스트 후, 주말에 본격적으로 형형 색색 양갱 공장을 차렸답니다.

집에 마침 단호박이 있어서 70% 정도만 삶아 껍질을 벗긴 후,

믹서에 곱게 갈았어요. 너무 푹 삶으면 곱게 안 갈려서 살짝 덜 익혔구요.

어차피 불 위에서 앙금이와 사이 좋게 푹 익을 거라 처음부터 푹 삶을 필요 없어요.
앙금과 단호박은 40 대 60 비율로 섞었어요.

노란색이 이뻐서 해바라기 몰드에 굳혔는데, 잘 어울리죠? ^^

녹차 가루를 넣은 녹차 양갱이에요.

녹차 향이 나는 것이 참 건강해지는 맛. ^^ 어르신들이 참 좋아하실 것 같죠?

이건 백년초 즙을 내어서 만든 양갱이에요. 색감이 참 곱죠? 제일 맘에 들어요. ^^

아직 설날이 1주일이나 남아서 이렇게 상자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 뒀어요.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딱이죠? ^^

유리 쟁반에 평평하게 펴서 굳혀 자른 거예요. 포장 필름과 복스티커는 인터넷쇼핑몰에서
샀구요.

이건 오늘 출근 길에 가져와서 후배들 나눠 줬어요. 많이 안 달고 넘 맛있다고 좋아하네요.
작년에 만들어 돌렸던 초콜렛을 아직도 기억 하더라구요. 역시 먹는 선물은 잊혀지지가
않나 봐요. 실은 후배들이 제가 이런 거 만든다고 하면 놀래요. 살림 잘 안하게 생겼다고. -_-

해놓고 보니 이렇게나 많네요. 이게 끝은 아니구요, 백앙금이 1.7kg 정도 더 있어요.
집에 있는 홍삼 엑기스와 포도즙으로 두가지 색 더 만들려구요.
저렇게 쌓아 놓고 보니 문득 떡상자가 떠오르네요... 결혼하고 첫 남편 생일이었어요.
원래 저희 회사는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떡 돌리는 게 전통인데... 할 수만 있었다면
울엄마 손수 만들어서 해주셨을텐데... 결혼하고 우여 곡절이 많아서 떡 돌리는 건 꿈도
못 꾸고 신혼을 보냈죠.
그게 엄마도 마음에 많이 걸리셨나봐요. 결혼하고 첫 남편 생일에 한달 전부터 미리 떡을
주문해 놓으셨대요. 직접 가서 떡 고르고, 들어가는 성분까지, 색깔까지 맞춰서요.
사위가 큰 수술 치르고 회복 되는 동안 옆에서 도와준 동료, 선후배들 한테 고맙다고...
출근 시간 맞춰서 아침에 회사로 배달 시키셨어요.
그런데, 저희 남편이 숫기가 참 없어요. 남 앞에서 아내 자랑, 집안 이야기 절대 못하죠.
그날 아침, 당황한 남편이 잠깐 보자며 전화를 했더라구요. 장모님이 보내셨는데, 도저히
회사 사람들 한테 못 나눠 주겠다고, 남편 회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쑥스럽다고...
커다란 떡 상자 두개를 보자기 째 들고 저희 회사로 찾아 왔더라구요. 남편 보기 무안하기도
하고, 또 어찌나 야속하던지... 그래도 미안해 하는 남편한테는 뭐라 말도 못하고 회사로
갖고 들어왔어요.
입이 잔뜩 나와 있는데, 마침 엄마 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 그냥
잘 받았다고, 참 고마워 하더라고 둘러댔어야 했는데... 결국 못된 딸은 늘 그렇듯이 또
섭섭한 마음을 엄마 한테 푼 거죠.
- 엄마는 아침 부터 그런 걸 왜 보내서 사람 불편하게 해. 그 사람 그런 거 싫어한단 말야.
해버렸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엄마가 얼마나 신나서 준비한 이벤트였는데... 그이는
엄마의 그 마음과 정성을 헤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난 딸인데, 엄마 딸인데... 그때 엄만
얼마나 무안하고, 힘 빠지셨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 떡이... 엄마가 사위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선물이었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요. 그런데, 사위는 그걸 거부하고, 딸은 엄마 한테 화내고...
돌아가시고 이렇게 추억하고, 이렇게 그리워하고, 죄송해 하면 뭐하나요. 울 엄마 살아
계실 적엔 저 엄마 한테 응석만 부리는 못된 딸이었는 걸요. 딸한테 숱하게 상처 받으면서도
딸이 행복하다면 그저 좋다며 웃으시던 엄마... 오늘 따라 엄마가 왜 이렇게 불쌍한지...
엄마 한테 잘못한 것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이러려고 글을 쓴 게 아닌데, 가슴이 먹먹해져서 가만히 입 모양으로 불러봐요. 엄.마...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을 때, 눈물 흘리지 않아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때, 많이 불러 드리세요...

이 장미 양갱을 보니, 스무살 생일에 엄마가 지점토로 만들어 주셨던 20송이의 장미가 생각 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