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인지 뭐인지는 모르고, 항상 차가운 바람 부는 어느 겨울날 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팥죽이 솥에 한가득 있던 기억이 나요.
- 엄마가 게을러져서 새알심 빚기 귀찮아 그냥 찹쌀 풀어 넣었다.
하면서 살짝 부끄러워 하시던, 어느 겨울 날 저녁도 떠오르네요.
'엄마, 엄마의 어떤 게으름도 딸의 부지런함이 못 쫓아 간답니다.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지도, 잊혀지지도 안잖아요...'
어쨌거나 숙제 처럼 던지신 에스더님과 경빈마마님 격려 덕에 저도 미리 동지 팥죽
해먹었어요. ^^V 에스더님의 팥시루떡이 몹시 땡겼으나 아직 떡은... ^^;

팥은 두어 시간 정도 불린 후, 팔팔 끓여서 끓인 물은 버렸어요. 그리고 난 후 팥이 무르도록
삶아 줘야 하는데, 이 시간이 만만치 않으니, 시간 넉넉히 잡아야해요. 전 약속이 있어 나가는
남편 한테 든든히 먹여 내보내겠다고 서두르다 아주 생쑈를 했어요.

팥 삶는 동안 새알심 만들기. 쌀가루가 없어 전 찹쌀가루만 했는데, 쫀득하니 괜찮더라구요.
찹쌀 가루에 따뜻한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익반죽 해줘요. 계량이라는 게 재료 마다, 도구마다,
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계량에만 의존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가감해주심 돼요.
처음부터 계량해서 물을 붓지 말고 조금씩 물을 부어 가며 반죽을 치대면 어느 순간 각을 잡아요.

서로 들러 붙으니까 전분을 묻혀 가며 일단 길게 늘여줘요.
이렇게 세줄로 늘어놓고 칼로 김밥 썰듯이 일정한 크기로 썰어줬어요.

새알심은 나이 만큼 먹어줘야 한다는데, 남편 나이 다 하믄 배 터질 것 같아서 메추리알 보다
작은 크기로 아주 작게 빚어 줬어요. 그래도 왜일케 많은 거예요. 흑흑.
엄마가 귀찮아서 하셨다는 방법처럼, 새알심을 넣지 않고, 찹쌀을 풀어 밥알을 동동 띄워 먹어도
맛에는 아~무 지장 없어요.

새알심은 팔팔 끓는 물에 미리 삶아 건져서 찬물에 샤워~. 그래야 더 쫀득해지거든요.

남편이 하도 재촉해서 팥이 원하는 만큼 무르게 익지 못했어요. 이럼 채 내리기 힘든데...
할 수 없이 핸드블렌더에 확 갈아 버렸죠. 팥껍질이 많이 섞여 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곱게 잘
갈려서 앞으로는 힘들게 채 내리지 않고 이렇게 하려구요.

팥 삶은 물을 살살 부어가며(어차피 팥 삶은 물도 같이 끓일 거니까 넣어줘도 돼요.) 남은
팥 껍질을 걸러내요.

음, 초콜렛 처럼 곱게 걸러진 팥.

급한 남편 먼저 먹여 내보내고, 조금 더 끓이니 이렇게 걸죽한 팥죽이 완성 됐어요.
남은 새알심 띄워 장난질도 함 해보고. 죽의 농도가 걸죽해서 위에 동동 뜨는 것이 참 이쁘죠?

오랜만에 염장 샷, 아~~ ㅋ

이것은? 추석도 아닌데, 웬 밤? 어 옆에 대추도 보이네?

예~ 난생 처음 약식에 도전해보기로 합니다. 레서피는 82cook 히트레서피 꽃게님 걸 기준으로
해서 응용해 봤어요.
찹쌀 800g을 미리 물에 불려두고,
약밥물 준비 : 물 3컵, 흑설탕 1컵 반, 참기름 3큰술, 진간장 3큰술, 소금 1작은 술.
캬~ 어찌나 레서피를 파댔던지 아예 외워 버렸네요.
미리 물을 끓여 설탕과 양념들을 녹여 밥물을 만들어 둬요.

밤만 깐다고 능사가 아니죠. 엣지있는 마무리를 위해 대추꽃도 미리 만들었어요.

대추꽃은 이렇게 대추씨를 돌려 깍은 후 돌돌 말아 썰어주면 돼요.
엄마가 대추나 오징어로 모양 내는 거 참 잘하셨는데, 못 배워둔 게 넘 아쉬워요.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해볼랍니다.

풀리지 말라고 랩으로 감싸놨어요. 대추씨가 닭다리뼈 같죠? ㅋ
원래 약식에 대추도 넣지만, 제가 대추를 싫어해서 패쓰~ 솥뚜껑 든 자의 특권! ^^V

네시간 불린 찹쌀. (원래 2시간만 불리려 했는데, 재료 준비하고, 팥죽 하다보니.. T.T) 뭐
반나절씩 불리기도 한다니까요. 밤, 잦, 호박씨를 넣어준다.

밥물 투하. 그리고, 쿠쿠 압력솥 잡곡 메뉴로 밥짓기. 칙칙칙 쿠쿠가 맛있는 잡곡 취사를 시작합니다~

흐흐~ 첨 해보면서 겁도 없이 800g이나 덜컥 했지만 맛있을 줄 알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레서피는 다 이유가 있는 거군요. 다만 히트레서피의 설탕양은 좀
조절이 필요할 것 같아요. 꽃게님은 3컵이라고 하셨는데, 다른 분들 레서피 보니 그 보다 훨 적게
넣더라구요. 대충 봐도 3컵은 넘 달 것 같아 1컵 반 넣었는데, 딱 적당했어요. 찹쌀은 800g짜리
한봉지 다 넣었는데, 저울로 재봤더니 900g 정도 되었구요.

쟁반 위에 랩을 깔고 평평하게 꾹꾹 눌러 모양을 잡아 줘요. 두께가 일정해야 나중에 조각 냈을
때 모양이 이쁘겠죠? 이렇게 눌러 놓고, 위에 대추꽃 장식하고, 랩을 씌운 후 도마를 얹고, 위에
무거운 걸 얹어 놨더니 아주 단단하게 모양이 잡혔어요.

네모 모양으로 잘라서 하나씩 랩 싸두기.

쿠키 커터기로 하트 모양도 몇개 만들었는데, 사진상으로는 잘 안보이네요.

남편이 먹어 보더니 지금까지 먹어본 약식중 최고로 맛있다며... 흐흐~
오늘 회의가 있다며 직원들이랑 나눠 먹는다고 해서 종이 호일로 싸서 실로 묶어 줬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냉동실로~
뭐 할거냐구?

감이 오시나요? 팥죽하면서, 약식하면서 바로 이 팥앙금까지 만들었다죠.
편강으로 단련 됐는데도, 조리면서 수분 날려주는 건 여전히 힘들어요. 완전 노가다라는.
어쨌거나 처음 만들어본 팥앙금도 성공했고, 목표가 완성되고 나면 팥앙금 만드는 법도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