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이는 우리나라의 밀전병 같은 거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스페인 오믈렛, 또르띠아 진짜 물건이에요.

웬만큼 밥 해먹고 사는 집에 감자, 양파, 계란은 꼭 있죠? 이거면 폼나는 요리가 탄생하거든요.
제가 82cook을 좋아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해외에 사는 분들이 참 많다는 거예요.
저 어렸을 때부터 엄마 형제 분들이 이민 생활을 하셨어요. 엄마가 끔찍히 아꼈던 손 아래
이모는 제가 다섯 살 때인가 스페인으로 가셨죠. 저도 참 좋아했던, 너무 너무 이쁜 이모예요.
그러고 보면, 엄마는 평생 그리움 속에서 사셨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집 나간 엄마를 그리워 하며, 결혼 하고서는 훌쩍 월남에 파병된 남편을 그리워
하며(말씀 드렸나? 저 유복자 될뻔 했다는. ㅋ), 그리고, 아이들 낳고 살만 하니 사랑하는 동생과
존경하는 오빠들을 그리워 하며... 엄마가 동생 수술로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그때마다
이모 생각하며 참 서럽게 우시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스페인은 저에게도 그리움이랍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가 한달 여간 이모댁에 다녀 오셨는데, 다녀 오셔서 해준 게 바로 이
또르~띠아예요. 스페인어의 'R' 발음을 잘 살려야 해요. 또띠아, 절대 아니되어요!!!
엄마 생각하며 늘 그리웠는데, 옆에서 하시는 것만 봤지 노하우를 전수 받지 못하여 그리워만
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있더라구요. 참 좋은 세상. ^^
'초보'는 용감해요. 실패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어요. 만년 초보인 저, 과감하게 팔
걷어 부쳤어요.

감자는 1cm 크기로 깍뚝 썰어서 깨끗이 씻은 후, 물에 담가 전분을 제거해 줘요.
감자에 전분이 많으면 기름이 튀거든요. 이 요리는 기름을 많이 두를 거라 튀면 곤란해요.
한동안은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 그리워만 했지 해볼 생각은 엄두도 못냈어요.
하다가 막히면, 또 엄마 생각나 씽크대 앞에서 핸드폰 부여 잡고 주저 앉아 울게 될까봐요.
그런데, 82cook 도움으로 올해 처음으로, 엄마 발명품인 줄 알았던 쑥버무리를 성공하면서,
자신을 얻었다지요. ^^v

물에 10분 여 담갔던 감자의 물기를 제거한 후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반 정도 익도록 튀기 듯 볶아 줘요.
엄마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확실 했어요. 외할아버지가 늘 그러셨대요.
'먹는 데는 돈 아끼지 마라. 모자라다 싶을 때 그만 먹어라.'
그래서 늘 풍족하게, 맛있게 먹으면서도 우리 식구들이 비만이 없었던 듯. ^^
그리고, 엄마의 음식들이 일관되게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씩 아쉽게 젓가락을 놓아서. 엄마의 계략이었을 까요? ^^

햄은 안 넣어도 되는데, 뜨거운 물에 데쳐서 넣어 줬어요. 베이컨이나, 브로콜리, 피망, 당근
같은 거, 집에 남아도는 거 넣어주심 때깔도 나고 좋을 것 같아요.

양파 한개, 잘게 썰어서 볶아주구요.

양파가 투명하게 볶아지면 감자, 햄을 넣고 같이 볶다가 서로 맛이 잘 어울어졌다 싶으면 모양을
잡아줘요. 이대로 모양이 잡힐 거기 때문에 재료 분배를 해주는 거죠.
햄이나 감자가 한쪽에 몰리면 쫌 그렇겠죠?

그리고, 달걀 풀어 소금 간한 달걀 물을 부어줘요. 감자 두개, 양파 하나, 햄은 감자의 2분의 1
정도 되는데, 달걀은 6개 풀어 넣었어요. 번거롭게 체에 걸러 곱게 풀어줄 필요 없어요.
이건 약간 성근 느낌이 더 먹음직 하거든요.

처음에 잠깐 센불로 달걀 단백질을 급 응고 시킨 후, 바로 약불로 줄여 찜 하듯 세월아,
네월아 놔둬요.
놔두면서 또 잡담. 제가 몹시 착하고, 모범적인 딸 처럼 이야기 하지만, 울 엄마, 하늘에서
피식 웃으실 듯. 저 엄마랑 싸운 적도 많고, 엄마 마음에 숱하게 생채기 낸 말썽쟁이
딸이었어요. 여기서 잠깐.

엄마 유품 정리하면서 다른 건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고, 엄마 수첩들만 가져 왔어요.
패물이나 값어치 나가는 건, 엄마가 평소에도 며느리들 주실 거라고 하셨거든요. 엄마가
생전에 쓰셨던 수첩과 지갑은 제가 챙겨 왔어요. 한동안은 수첩에 빼곡히 적힌 일기들과
엄마의 요리 레서피를 볼 엄두가 안났지만, 어제는 찬찬히 살펴 보았답니다.
저 참 못된 딸이었더라구요...

수첩 안에 이런 글귀를 적어 놓으셨더라구요. 엄마는 이런 마음으로 요리를 하셨을까요...
언젠가 엄마 수첩 안의 요리들을 하나 하나 해보려구요. 이제 들여다 봐도 안 울 자신
있으니까... ^^

윗면이 뒤집어도 흐르지 않을 정도로 익으면 뒤집어 줘요. 저는 같은 크기의 후라이팬이
있어서 후라이팬에 바로 엎었는데, 없으면 좀 더 익기 기다렸다가 접시에 엎어서 다시
뒤집어 엎어주면 돼요. 어렸을 때 엄마가 하던 거 보고 참 신기했는데, 신기하게도 저도
잘 하더라구요. 나, 엄마 딸 맞아! ^^V
제가 두어 달 백수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워낙 잘나가다 보니 눈은 높고, 실력은
안되고, 정말 죽을 맛이었죠. 어느 날, 엄마가 보다 못해 '그렇게 노느니 어디 적이라도 두는
게 어떻겠냐'며 잔소리를 하시더군요. 태어나 처음 들어본 꾸중이었을 거예요.
엄마는 오죽 하셨을까요. 그렇게 믿고 있던 딸이 저리 무기력한 모습을 보니...

쨘~ 끼아~ 탄성을 질렀답니다. 엄마가 해주신 그 모양과 똑같았거든요! 음, 좀 못한가.
비교샷 없으니 그냥 내 맘이에요. 정말 내가 해낼 줄이야. ^^;;;
기억은 잘 안나는ep 엄마가 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씀을 좀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만 바로 아빠가 근무중인 지방으로 내려 가셨고, 전 엄마가 야속해서 펑펑 울었죠.
제가 엄마 닮아서 눈물이 많아 한번 울면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울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오후 면접이 있었거든요. 모 대기업의 사내 아나운서 자리
였는데, 원고도 직접 쓰고, 방송도 만드는, 계약직이지만 보수도 꽤 좋은 자리에 추천을
받았었어요.

아까 제가 재료 자리를 잡아주라고 했잖아요. 자리를 잘 잡았더니 자른 단면이 이렇게
지들끼리 사이좋게 엣쥐를 잡았네요. ㅋ
그런데,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갔으니...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어요. 면접 보시는
분들이 제 얼굴만 보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 하더라구요. 손수건이라도 건네주실
기세였다는. 엄마가 참 미웠어요. 엄마는 그러고 가셔서, 딸 앞날을 망치고 가셔서
전화 한 통 없으셨죠. 1주일 내내 엄마를 미워 했고, 그 후로도 종종 그날 일을 지울 수
없었답니다. 전화 한 통만 주셨어도, '엄마 나 면접 망쳤어' 그러고 엉엉 울고 풀었을 것을.
그런데... 엄마 수첩에서 그날의 일기를 보고 말았답니다...


케첩 발라 먹으면 죽음이에요, 진짜!! 아이들 간식으로 해주세요. 정말 저처럼 10년, 20년이
지나도 못 잊을 걸요? 전 인터넷으로 이리 검색 저리 검색 해보고 했는데요, 이제 좀
자신이 생겨서 엄마표로 해보려구요.
1996년 2월 16일이었네요...
'15일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했다. 아이를 혼내고 달래줄 겨를도
없이 차를 타야 했다. 야단친 건 잘한 일이지만 마음이 무겁다. 나름대로 애쓰고 있고
고통스러울텐데, 짜증 섞어 야단을 쳤으니...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터라 좀 심하게 야단을
쳤다.
그냥 한량 없이 버려두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아프지만
가슴을 때리는 말을 많이 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성숙했기에 이해하리라
믿으면서... 그러나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전화라도 해서 달래줄까 싶은 마음이 내내
들지만 참고 있다.
아플 땐, 아니 이왕 아팠을 때 아픈 만큼 아픈 다음에 깨끗이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주리라 믿어 본다.'

인터넷에는 다 깍뚝썰기 하라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어렸을 때 기억은 감자를 슬라이스
해서 나이프와 포크로 썰어 먹었거든요. 깍뚝썰기 하니 썰 때 좀 부서지더라구요.
엄마표로 다시 해서 올려 볼게요. ^^ 맛은 정말 강추입니다. 전 엄마가 접시에 폭 엎을 때
케익처럼 모양이 잡히는 게 신기했던 추억을 살려서 모양 잡느라 신경 썼지만, 해드실
때는 모양 신경 안쓰셔도 돼요. 부서지면 감자 많이 넣은 오믈렛이라 생각하고 숟가락으로
퍼먹음 되죠 머.
엄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신 거, 안타까워할 자격 없다 싶어요. 차라리 모르고 가셔서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난 그날 엄마를 정말 많이 미워 했는데, 엄마는 제가 이해하고
성숙하리라 믿고 계셨더군요. 아셨음 얼마나 제게 실망하셨을까요... 더군다나, 그날,
면접이 있었다는 것을, 엄마에 대한 원망의 눈물바람 때문에 떨어졌다는 것을, 아니
적어도 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셨음, 울 착한 엄마, 얼마나 자책하셨을까요.
늘 엄마가 조금만 더 사셨음 좋았을 걸 하지만... 어쩌면, 엄마가 지금껏 살아계셨음
그동안도 전 엄마에게 받기만 했을 거예요. 엄마 마음에 숱한 상처 남기면서도, 엄마
마음은 헤아릴 생각도 못하면서...
일찍 가셔서,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철나게 된 거, 고난과 아픔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줄 알게 된 거... 그나마 감사해야 할까봐요.

제가 엄마 수첩을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토을 달지 못했어요. 엄마 지갑을 여니
아빠도, 살갑던 막내 동생도 아닌 제 사진이 있더군요... 대학 졸업 앨범 사진이에요.
일찍 가신 거 아쉬워 하지 않고, 30년 넘도록 남들 몇배 되는 사랑 주신 거 감사하며
살려구요. 그리고, 평생 단 한번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했지만, 늘 하고 싶었던 그말,
20년 만에 추억 속의 엄마 요리를 그대로 재현 해낸 기념으로 한번 해볼래요.
엄마, 사랑해. 내 평생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