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개월 째 못 뵙고 있답니다... 마음만은 항상 아빠 곁에 있다는 거 알아주셨음 좋겠어요...
출근하고도 마음이 안잡혀 일손을 놓고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작년 엄마 생신 때 산소
가면서 싼 도시락 사진이 있네요. 엄마가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한동안 엄마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매일 매일 엄마 꿈꾸고... 엄마가 불치병에 걸리셨다거나 사고가
나서 오래 못산다는 말을 듣고 절망하고, 울부짖다가 잠에서 깨어나 안도하다 보면...
'아, 엄마가 돌아가셨지'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곤 했답니다.
저, 엄마를 너무 사랑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단 한번도 사랑한단 말을 못했네요.
정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 말 들으셨음 아마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 하셨을텐데...

나뭇잎 모양 김밥이에요. 엄마가 해주시던 거 흉내 내봤어요. 직접 배울 수가 없어 상상해가며
했는데, 비슷하게 모양은 나지만 엄마 솜씨 만큼 이쁘지가 않네요.
어렸을 때는 소풍이나 운동회 하면 제 도시락 통을 열때마다 친구들이 '우와' 그러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해주셨음 했거든요.
어렸을 때 옷도 엄마가 만들어주셨어요. 뜨개질도 곧잘 하셔서 백화점에서 옷 보고 오면 똑같이
만들어 내셨답니다. 집에 항상 일본, 외국 잡지가 가득했어요. 그런데 전 그것도 싫었어요.
밖에 나가면 아줌마들이 저 붙들고 '옷 참 특이하다. 어디서 샀니?' 이러시는 게 어찌나 귀찮던지요.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 김밥도 쌌어요. 재료는 간단하지만 제일 맛있대요.
참 동네 아줌마들이 저를 귀찮게 한 게 또 있었어요. 어렸을 때 부터 전 항상 긴 생머리였거든요.
기차 안에서 아빠가 엄마의 긴 생머리에 반해서 쫓아 가셨대요. ^^; 엄마는 제 머리를 감기고 나면
말려서 수십번씩 빗질을 해주셨어요. 아침에는 머리 감고, 땋거나 올리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죠.
아줌마들이 '머리결 좋다', '머리 모양 특이하다'며 붙잡고 신기하게 보시곤 했는데, 전 또
그게 싫어서 아침마다 엄마한테 머리채 잡힌 채로 입이 이만큼 나와 있었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을 빼놓을 수 없죠. 아빠한테 낚여 일찍 결혼해 연년생으로 저희 셋을
낳은 엄만 참 젊고 고우셨어요. 저 중학교 때까지 엄마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질 않았어요.
어렸을 때는 그것도 싫었답니다. 다른 엄마들처럼 푸근하고, 고상한 모습이 아니라 아가씨
같았거든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런 엄마 모습을 싫어 할때 엄만 저보다 어린 나이였네요.
엄마도 여자였는데... 나처럼 이쁜 거 입고 싶고, 즐기고 싶은 젊은 여자였는데...

엄마는 제가 엄말 무시한다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꿈이 대통령이어서 공부만 죽어라
파고, 집에 가면 말도 없이 뚱 했었거든요.
엄만 저 고 3때, 저녁 도시락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교로 갖다 주셨어요. 다른 친구들은
사먹기도 하는데, 엄만 잘 먹어야 한다며 꼬박꼬박 따뜻한 밥을 지어 갖다 주셨답니다.
좋아하는 밤 까먹을 시간에 공부하라고, 일일히 밤을 까서 간식통에 넣어서요...
그런 엄마 한테 전 5분만 늦어도 자율 학습 시간에 늦는다고 신경질을 내곤 했답니다.
눈물 나요... 민망해 하며 어색한 웃음 짓던 엄마 얼굴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철이 들면서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하나 하나 깨닫게 됐어요.
또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는지도 알게 됐구요.

받은 사랑 돌려드릴 날이 많을 줄 알았는데...
엄마 속 썩인 만큼, 못되게 군 만큼 내가 다 갚아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일찍 가셨는지... 그래도 결혼 전 3~4년 동안은 철이 들어서 엄마 한테 참 잘했어요.
발렌타인 데이도 크리스마스 이브도 엄마랑 보냈구요. '연애 안하고 엄마랑 이게 뭐냐'
하시면서도 얼마나 좋아하셨는데요. 퇴근할 때는 전화해서 몇분 쯤 도착하니 족발, 통닭 등등
시켜놓으라고 하고 소주 2병 사가서 제가 계산하고.. 때로는 엄마가 안주거리 만들어서
같이 한잔 하곤 했어요.
결혼하고도 한동안은 참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엄마 없었음 저 정말 산송장 됐을 거예요.
무슨 말이든 다 들어주고, 다 받아주고, 언제나 내 편이었던 엄마...

엄마 그림은 참 따뜻한데, 오늘은 제 마음이 얼어 붙는 거 같아서요...
엄마는 화가셨어요. 공부를 중단하고 아빠와 결혼해서 젊은 세월 갖은 고생 하며 보내시고
저희 초등학교 고학년 될 때 쯤 다시 그림을 시작하셨어요. 평생의 꿈이었죠...
사람들은 고운 모습만 보고 고생 안하고 사신 줄 알지만, 군인이셨던 아빠 따라 전방 다니며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세 아이를 길러내셨어요.
게다가... 동생이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나 당시 서울 대학병원에서 심장 수술까지
받았답니다. 5살 때 한 수술이 실패해, 7살 때 또 했죠. 당시 집 한채 값이었던 수술비
때문에 엄마는 삯바느질까지 하셨어요. 실은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옷이 더 싫었답니다.
아줌마들이 제가 입은 옷 보고 만들어 달라고 해서 똑같은 옷 입은 언니들 보면 창피하고
그랬거든요...
평생 그림에 대한 꿈을 못 버리고 다시 시작해서 상도 많이 받으시고, 돌아가시기 전 해에는
인사동에서 개인전도 했답니다. 돌아가시던 해에도 12월에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공평아트센터에 예약 취소 하러 갔다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길거리에 주저 앉아 울던
기억이 나요. 갤러리가 커서 400호 짜리 그림도 여러 점 그리셨는데...
저... 5년이 지났는데도, 엄마를 못 떠나 보내겠어요. 엄마한테 해드린 게 너무 없어서...
엄마 한테 꼭 하고 싶었던 이 말, 엄마가 들으시면 너무 행복해 하셨을 그말을 아직도 못했는 걸요.
엄마,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