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들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터너와 프리드리히가 소개되고
있어서 어제는 터너, 오늘 아침은 프리드리히 이렇게 나누어서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실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마음속의 자연, 마음의 폭발이나 마음의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 그들의 뿌리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독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독일의 후진적인 정치상황과도 연관이 있었을 겁니다. 토지귀족 융커가 주도권을
쥐고 귀족과 군인이 끌고 가는 정치속에서 산업과 상업으로 부를 쌓았지만 스스로의 정치 세력화를 이루지
못한 시민계급들이 느끼던 답답함. 그렇다면 그 밑의 계급이 느끼는 생활상의 부담은 어땠을까요?
19세기를 읽다가 지금의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어서 그래서 서구의 19세기를 읽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에 납득을 하게 되네요.
지난 금요일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여러 권의 책을 구했습니다. 마침 어제 택배가 도착했길래 무엇부터
읽어야 할까 고심하다가 우선 세 권을 챙겨서 들고 나갔지요.
그 중 한 권이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였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사회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한 다음, 더 어린 아이들에게는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줬을까? 라는 책을 읽어보게 했지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어서 각자 읽고 싶은 이야기를
한 편씩 읽도록 했습니다.
제가 읽는 부분중에서 피노키오 이야기는 생각거리가 많은 부분이었지요. 피노키오는 과연 사람이 되어서 행복했을까
라는 의문을 펼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깊어보여서 다른 글을 읽어보는 것도 기대가 되네요. 한 아이가 글을 읽더니
말을 합니다. 동화는 순수한 것인데 이렇게 다르게 해석해도 되는가 하고요. 그래서 제가 되물었습니다.
과연 동화는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순수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한 권은 우파니샤드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도를 여러 번 여행한 고진하 시인의 여행기입니다.
인도, 제겐 낯설고 약간은 두려운 나라, 왜 두려운가 생각해보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 가면 다시 가고 싶은 나라, 다른 누군가에는 불결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 그래서 듣고 있는 제가 헛갈리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제는 인도와 만날
준비가 된 것일까요? 여기저기서 인도가 불쑥 나타나서 나를 제대로 알아봐 도망가지만 말고 그렇게
유혹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마음의 소리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 몸이 원하는 것
그리고 함께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욕구에도 귀 기울여서 내가 생각한 기준만 고집하지 말고 열어두자
이런 것들을 늘 실천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먹고 있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숨구멍이 생기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아침에 듣고 있던 플룻 협주곡, 이제는 유투브를 검색하면 그 음악을 만날 수 있어서 올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