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역 앞 가정천~~~
보기만해도 맑아지네요.
세미원~~
두물머리 & 세미원~~
접근성이 좋아 언제부턴지 한여름이면 한번은 가는 곳.
높은 수온 등 관리가 잘 이뤄져선지 양수리 강변 보다 세미원 연은 보름 정도는 이르게 펴고.
그림 좋군요.
꽃상여에 두른 꽃이 연꽃인줄 예전에 여기서 알았다는.
저 넓 고 둥근 연잎을 보면 원 효의 원융(圓融)이 생각나~~
일(一)이면서 다(多)요, 다(多) 면서 일(一) 의 관계.
이하는 수련~~~
저녁에 꽃을 오므렸다 정오쯤에 활짝 펴기에 '잠자는 연'이라는 뜻의 睡蓮.
가시연~~
수련 잎은 15분分 정도가 잘려나가죠.
효과적인 부력을 얻기위해.
핸펀으로 찍은 거라 땅기면 이리 초점이 흐려지데요.
보이시나요?
인기척을 줘도 나몰랑!
역시나 강변으로 나오니 전망이 시원~~~~~~~~~
왼쪽 너머가 남종면 귀여리,,,,바로 이어서 분원리.
우측 삐져나온 두물머리로 향합니다.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연결한 주교(舟橋)~~~
인근 능내(마재)에 다산 정약용 생가,유택이 있기에 주교(舟橋) 아이디어를 냈을 터.
이제 남한강 변 따라 북한강 끝머리 까지 산책 해보죠.
피아노협주곡 26번 '대관식' 선률 따라서.2 악장의 우아한 스텝으로.
모짜르트 스페셜이스트 미치코 우치다가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NV8pM3zM4Qg
주교 입구엔 다산과 초의선사 관련 재밋는 설명문 푯 말이 ~~~
고향에 돌아온 다산은 강진 해남서 차를 통해 연을 맺은 초의선사를 퍽이나 그리워했군요.
조선 후기 다도(茶道)는 다산,초의,추사로 이여지니 .
다산은 해배 후 지척인 운길산 수종사를 자주 들러 차를 마시곤 .
21세 진사과 합격 연회를 수종사서 열만큼 수종사와 연이 깊네요.
초의선사는 스승격인 다산과 40년 동년배 지기 추사를 보기위해 한양에 오곤했는데 이때 수종사를 숙소로.
1830년에는 다산,초의,다산의 두 아들인 학연,학유 그리고 홍만주(정조 사위),자하 신위(추사,초의 제자)는
수종사에 모여 다회를 열기도.(이런 연으로 수종사 찻집 삼정헌이 유명)
자하 신위??
관악산 자락에 살며(현 서울대 자리) 관악산 계곡 동서남북을 자하동천이라 칭한 장본인.
처음 여길 왔던 때가 30년 전 동아리 신입생 환영 엠티~~
주변은 싸그리 변했지만 변함없는 건 역시나 저 당산나무군요 .
두물머리를 떠나 강변 따라 북한강 철교까지 걷습니다.
개망초 꽃들이 환하고 .
수양버들~~
위를 보니 하늘소(?)가 버들 가지를 갈가먹고 있네요.
결국 가지는 땅에 떨어지고
남한강변의 갈대를 베고 연(蓮)으로 대체 작업중~~
개망초 꽃길 따라서~~
장관을 이뤘네요.
두물경~~~!!
정확히 말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처인 두물머리는 당산나무 앞이 아니라 이곳 족자섬 앞.
족자섬은 여의도 밤섬처럼 각종 오리,기러기,왜가리,가마우지 등등 물새들의 낙원.
겨울이면 고니,큰고니등 백조들로 이따금 '백조의 호수'가 되기도.
70년대 초 팔당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족자섬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북한강에서 내려오는 뱃사공들의 주막도 .
족자섬 우측 뒤로 길게 보이는 야산이 바로,
1)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태어나고 격동기 서학을 접하고,
2)장가들고,출사하고,유배가고
3)해배 후 18년 간 여생을 보내다 뭍힌 마재.
현재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는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
두물경 빗돌 뒷면엔 詩 한편이~~
황명걸 이분은 원래 실향민인데 이곳 두물머리를 제2고향으로 삼고 살았다네요.
말년에 자비로 저 빗돌을 세우고 자신의 망향가 한편도 폼나게.
멀리 운길산~~
해가 넘어가네요~~
용문산 방향에서 무지개가 ~~
내년에 건강하게 다시 보자는 대자연의 선물 인듯.
&&&.....
1)핸펀으로 찍은 거네요.
2)보통 세미원 거쳐 당산나무에서 남한강 바라보며 쉬었다 되돌아 오시는데
강변 따라 족자섬 앞 두물경 까지 가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