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영 증조부 안상호 경성신사참배기관(천황제 신사) 운영대표였음
https://theqoo.net/hot/4312128639
신사참배기관 운영대표 .
운영대표 8인중 7인은 전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있고
안상호만 등록 안되어있음.
대체 왜 매국노명단에 안오른거지?
안하영 증조부 안상호 경성신사참배기관(천황제 신사) 운영대표였음
https://theqoo.net/hot/4312128639
신사참배기관 운영대표 .
운영대표 8인중 7인은 전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있고
안상호만 등록 안되어있음.
대체 왜 매국노명단에 안오른거지?
진짜 찐 매국로얄이네
증손녀가 큰일했네 ㅋ
일찍 죽었대요
55세에 사망이라서 일찍 죽은것도 아님
증손녀가 큰일했네222222222
명단에서 안상호는 조선인 씨자총대 8명 가운데 한 명으로 정확히 나옵니다.
백인기(白寅基)
박제빈(朴齊斌)
한상룡(韓相龍)
조진태(趙鎭泰)
안상호(安商浩)
예종석(芮宗錫)
김용제(金鎔濟)
김한규(金漢奎)
여기서 ‘씨자총대’가 정확히 무슨 직책인가.
일본어 사전의 정의도 “씨자 가운데 총대로 선출되어 신직(神職)과 협력해 신사의 유지에 힘쓰는 사람”임.
신사를 유지·운영하는 지역 신도 대표자임. (https://kotobank.jp/word/%E6%B0%8F%E5%AD%90%E7%B7%8F%E4%BB%A3-439570)
명단에서 안상호는 조선인 씨자총대 8명 가운데 한 명으로 정확히 나옵니다.
백인기(白寅基)
박제빈(朴齊斌)
한상룡(韓相龍)
조진태(趙鎭泰)
안상호(安商浩)
예종석(芮宗錫)
김용제(金鎔濟)
김한규(金漢奎)
여기서 ‘씨자총대’가 정확히 무슨 직책인가.
일본어 사전의 정의도 “씨자 가운데 총대로 선출되어 신직(神職)과 협력해 신사의 유지에 힘쓰는 사람”.
신사를 유지·운영하는 지역 신도 대표자.
1927년에 죽었으니 덮인 거 같아요. 게다가 의사 등 전문직, 기술자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했다고 생각하고 안 올린 경우 많았답니다.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저런 인간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요.
올려야 하는거 아닌가요
증손녀 덕분에...
자잘하게 친일행위 할수 있는건 다했나봐요
어떡하든 일제의 눈에 들려고요
그러다 고종의 죽음에도 관여했겠죠
조력이었건 방관이었건 은폐였건
생존본능이 남달랐던 사람이었던거 같아요
친일도 탑티어인데 명부에 올려줘야죠
친일인명 사전에 없는 이유가 편찬 당시 전문직(기술직)들의 저항이 심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관직과 제계 인물만 올리게 되었다고.
어제 매불쇼에 나왔어요.
그러한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리지 못한 친일파 엄청나다고..
결국 자손 몇대가 파묘되고 개망신 당한 벌을 받는 권선징악이네요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하니 저런 사람도 조상이라고 대대손손 존경 받으며 살아왔네요
증손녀는 공중파 방송에다 대놓고 증조할아버시 업적 자랑하고
매국노 탑티어
덕분에 역사공부 하네요.
방송국아 정신차려라.
안하영 모두 아웃 퇴출
저 정도면 조용히 찌그러져 살것이지
자랑질 잘난척 나대다가....꼴 좋다
안상호와 안부호가 친일인사로 등재되지 않았던 이유는
명단 작업 당시에 기득권 전문직의 반발이 강하고 극심했기 때문이라고 관련자가 밝혔어요.
안상호 안부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빼고 저렇게 빼고 여기 저기서 압력을 행사 하거나 인맥, 지연으로 압박해서, 등재 가능한 인원이 적었다는게(강점기를 한참 지난 시대에도) 여전한 현실이었다고 함
안상호와 안부호가 친일인사로 등재되지 않았던 이유는
매국 행적이 충분치 않거나 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명단 작업 당시에 기득권 전문직들의 반발이 강하고 극심했기 때문이라고 관련자가 밝혔어요.
안상호 안부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빼고 저렇게 빼고 여기 저기서 압력을 행사 하거나 인맥, 지연으로 압박해서, 등재 가능한 인원이 적었다는게(강점기를 한참 지난 시대에도) 여전한 현실이었다고 함
헐.. 소록도가 험한 건 줄 알았는데 파묘가 끝이 없네요
민족문제연구소 "하영 증조부, 친일파 맞다"
https://v.daum.net/v/20260813190633969
친일인명사전이라니요 ㅠ
친일파라는 호칭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너그럽네요
민족반역자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놈들을 ㅠ
오늘도 몰랐던 역사 한자락 또 이렇게 배워갑니다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민족반역자임이 분명한 자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않은 이유는 매국 행적이 충분치 않았거니 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명단 작업 당시에 기득권 전문직들의 반발이 극심해서 공무직이나 예술계, 교육계에 종사했던 자들 위주로 편찬할수밖에 없었다“
친일인명사전에 4700 여명밖에 실리지 않은 이유는 민족반역자의 숫자가 그렇게 적어서가 아니었고 ”공무원으로 나라의 녹을 먹은것도 아니고 예술가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아 먹고사는 것도 아닌 기득권 전문직 출신들은 빼줘야한다“고 주장한 자들이 많았다는 거군요.
그 기득권 전문직은 당연히 의사나 번호사일거고요
매국노란 단어가 약하네요. 악마.
1. 경성신사 참배기관 운영대표(조선인 총대)의 의미
신사참배 주도: 경성신사는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위해 세운 핵심 종교/이념 시설입니다. 이곳의 운영대표(총대)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단순히 눈치 보며 따라간 수준이 아니라, 일제 식민 통치의 핵심 사상 정책에 앞장서 협력한 기득권 인사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8명 중 7명이 친일파: 나머지 7명이 이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거물 친일파들이라면, 안상호 역시 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일제 당국과 밀착해 활동했다는 뜻이 됩니다.
2. 그런데 왜 그동안 '친일인명사전'에 없었을까?
민족문제연구소나 역사학계의 해명에 따르면, 이는 "친일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사전 편찬 당시 조사와 기준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지속성과 적극성 기준: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 당시, 수만 명의 대상자 중 행위의 적극성, 지속성, 반복성이 수치로 입증된 인물 위주로 4,300여 명을 먼저 선별해 등재했습니다. 당시에는 의사로서의 본업 이외의 행적이나 관변 단체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게 발굴되어 우선순위에서 누락되었던 것입니다.
연구소 측의 최신 입장: 민족문제연구소 역시 이번 논란 이후 인터뷰에서 *"당시 기준 미달로 누락되었으나, 친일 행적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개정판 작업을 진행하며 추가 조사 후 등재 여부를 재심의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ㄷㄷㄷ이런데 사과만하고 연옌하겠다고 여기저기 출연하면 역대급 철판 안하무인 아닌가요?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들면 알아서 안해야 정상
재산 환수하고
영원히 은퇴해라
일본인이라고
그렇게 강조 했었는데
도대체 일본으로 떠나지 않은 잔존 일본한국인을
친일인명 사전에 대표 격으로 올려줘야
일본인이고 싶었던 본인도 좋고
우리도 제대로 알아서 좋은거 아닌가요?
증손녀도 일본인 인증을 하고 싶어서
그리 자랑을 했을것 같은데요
우린 다르다 자랑스러운 일본인이다!!! 이런 마인드 아니었을까요?
자랑스러운 조상을 스스로 파묘 해냈는데요
부정선거로 간첩들이 정권 잡고 나라 파토내는데
일제시대 타령이나 하는 건 매국노들이지?
니들 21세기판 매국노냐?
얼마나 힘이 쎄면 친일등록명부에서도 빠진건지..헐..
친일파 아니라 친일 매국노라고 해야죠
방송에서도 매국노라고 해야하는데 그걸 못해 순화해줘서 친일파라고
매불쇼 봤더니 전문직들은 친일파 인명에 안 올라왔대요.
그들의 입김이 강력해서.
그 시절 전문직들이 친일의 정수들이었을텐데.
하영네 집안이 영화를 누리면서 어렵던 시기에 어려움을 모르고 편안하게 교육도 많이 시키면서 살수 있었던건 친일의 대가인 건데...평소에 얼마나 자기집안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하영이 아무생각없이 몇번이나 방송에서 자랑을 할수 있었던건지...후손한테 연좌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씁쓸하고 도덕이 참 가치가 없게 느껴지네요...
저 명단에 있는 8인중
안상호빼고 나머지 7인의 후손들은 어찌살고있을까요
어디 서울 건물 여러개 소유하고
독립운동가후손들 월세 빨아먹고 살고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