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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번역가의 "가족잃은 자를 위한 종결"

번역가 조회수 : 2,923
작성일 : 2022-11-03 15:20:59
“giving them a closure”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종결을 주다”라는 뜻인데 사법의 영역에선 관계 당국이 범인을 잡아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여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게 일종의 ‘맺음’을 주는 것을 말한다.

7년 전, 아버지는 차를 몰고 정차 후 좌회전을 하려다 좌측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던 차와 추돌했다. 속초 산길의 좁은 교차로였고 신호등이나 볼록 거울 따위는 없었다. 아버지의 차는 정차 후 갓 출발해 고개만 튼 상태였고 좌측에서 내려오던 차는 속도가 붙어 있었다. 추돌 후 아버지의 차는 세 바퀴나 굴러 전복됐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돌아가셨다. 즉사였다. 조수석에 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얼굴만 맞대면 싸우는 견원지간 같았지만 이런 식의 이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던 장례, 그 와중에 날 가장 황당하게 한 것은 아버지에게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는 거다. 상대 차량은 피해 정도가 경미했다. 부상자도 없었다. 그런데 직진 우선이라는 원칙 하나로 아버지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이런 맺음은 인정할 수 없었기에 재판을 청구했고 2년을 법정에서 싸웠다. 하지만 결론은 상대방 과실과 교통부의 과실을 아주 일부 인정받았을 뿐이다. 주황색등이 깜빡이는 길이었음에도 과속과 전방주의 태만을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국과수에 의뢰해도, 민간에 의뢰해도 쉽지 않았다. 차가 세 바퀴를 구르고 전복할 정도였으나 과속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블랙박스엔 어머니와 분담해서 좌우를 면밀히 살피고 출발하는 대화가 명확히 녹음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좌측 내리막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교차로 좌측엔 3미터 가까운 커다란 세로 간판과 큰 나무가 시야를 막고 있었고 정면엔 볼록 거울도 없었다. 몇 번을 직접 확인해도 좌측에서 내려오는 차를 물리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는 길이었다.

항소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시스템이 주는 종결은 받았다. 그 길 좌측의 간판과 나무가 모두 제거됐고 볼록 거울이 생겼고 내리막길엔 과속 방지턱과 과속 방지 카메라가 설치됐다. 불만스럽더라도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의 종결. 그 결과를 받고서야 아버지 차를 폐차할 수 있었다.

2년이나 폐차 동의서에 서명을 못 했다. 피가 잔뜩 말라붙어 종잇장처럼 구겨진 그 차를 폐차도 하지 않고 지옥처럼 2년이나 붙들고 있었다. 도저히 폐차할 수가 없더라. 그 족쇄 같던 차를 종결을 받은 후에야 간신히 폐차했다. 그게 내겐 맺음이었다. 물론 마음의 상처는 맺음이 없다. 지금도 사고 차량이나 전복 차량을 보면 공황이 온다.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와서 빨리 내 차를 갓길에 세운다.

남겨진 자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부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주는 것이다.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묻고, 사후 조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 유가족에겐 저런 시스템상의 종결이 완전한 종결이 되지 못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다만 그런 종결이라도 있어야 개인적인 맺음을 향한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다. 그 걸음이 평생이 걸리더라도 그 계기는 될 수 있다.

우리의 애도는 무용한 것은 아니겠으나 유가족에게 그리 닿지는 않는다. 애도는 오히려 유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담한 내 마음을 위한 것일지 모르겠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이다. 지금은 책임자들이 유가족에게 앞다투어 애도와 위로를 건넬 때가 아니라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그들에게 종결을 줘야 한다. 맺음하고 비로소 진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종결을 줘야 한다.


이렇게 퍼와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생각해볼 문제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p/Ckci5k8LmGT/?utm_source=ig_web_copy_link
IP : 218.152.xxx.183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2.11.3 3:34 PM (211.196.xxx.99)

    우리의 애도는 무용한 것은 아니겠으나 유가족에게 그리 닿지는 않는다. 애도는 오히려 유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담한 내 마음을 위한 것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책임자들이 유가족에게 앞다투어 애도와 위로를 건넬 때가 아니라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마음에 깊숙히 박히는 말이에요.

  • 2. 진짜 맞는 말.
    '22.11.3 3:37 PM (47.136.xxx.178)

    애도는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공감이고 슬픔인데
    무슨 기간을 정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나요?

    위정자의.진짜 애도는
    철저히 희생자 가족입장에서 생각하고 종결하게
    도와주는 거겠네요. 책임질넘은 책임지고
    그 죽음들이 의미가 있게 개선할 거는 확실히 개선하고
    해야지요.

  • 3. ...
    '22.11.3 4:00 PM (58.148.xxx.122)

    지금 정부 태도는
    어. 그래. 1주일 전 국민 애도할게. 됐지?

  • 4. franlb
    '22.11.3 4:32 PM (110.47.xxx.102)

    이 글이 최근 많이 읽은 글에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 5. 이거였어요
    '22.11.3 5:18 PM (14.63.xxx.250) - 삭제된댓글

    가슴이 답답하고 누가 돌덩이 올려 놓은 것처럼 답답했던 이유가. 가족이 실종되면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을 찾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죠. 그런 것처럼 꽃다운 청춘들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왜!!! 도대체 왜!!! 이렇게 어이없게 죽었는지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갑자기, 그것도 사람들을 사지로 몬 책임자들이 뻔뻔하게 애도기간이라며 입막음하는 분위기를 만드니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분통이 치밀었던 거예요.

    천안함도 한달 뒤에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했다더군요. 유족들도 부상자 가족들도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국민들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요. 공감능력도 없고 슬프지도 않고 지들 죄 덮기에 급급하고 지들 밥그릇 챙길 궁리만 하는 검사들. 무당. 사기꾼. 국짐당. 역겹고 역겨워요.

    악의 무리들아.
    하늘이 노할 것이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살 봄날 뺏어간 죄값 받을거다.

  • 6. ....
    '22.11.3 5:54 PM (221.154.xxx.34) - 삭제된댓글

    이글 추천!! 추천 !!추천!!억만번해도 모자를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 7. ....
    '22.11.3 5:54 PM (221.154.xxx.34)

    이글 추천!! 추천 !!추천!!
    억만번을 해도 모자를것 같은데
    추천버튼이 없어 아쉽네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 8. 왕추천
    '22.11.3 5:57 PM (14.63.xxx.250) - 삭제된댓글

    원글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9. 그들이 봐야죠
    '22.11.3 6:07 PM (123.214.xxx.132)

    애도 먼저 하라던
    수많은 글들

    충격으로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자고
    같이 슬퍼하고
    분노했던 사람들을 향해

    애도하라던

    그들이 봐야죠

  • 10. 베스트
    '22.11.3 6:16 PM (118.176.xxx.105)

    로 보내고 싶네요
    마음으로 추천..

  • 11. ...
    '22.11.3 6:23 PM (221.154.xxx.34) - 삭제된댓글

    유가족분들에게 사법적인 종결을 주고 싶어요.
    종결을 주게 될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12. ...
    '22.11.3 6:23 PM (221.154.xxx.34)

    유가족분들께 사법적인 종결을 주고 싶어요.
    종결을 주게 될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13. 구구절절
    '22.11.3 6:35 PM (218.39.xxx.130)

    구구절절..맞다.. 이유가 납득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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