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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제 목 : 살고 지고

| 조회수 : 10,680 | 추천수 : 6
작성일 : 2021-04-27 18:04:55

오늘은 최근에 먹은 사진을 들고 왔습니다.

오늘 너가 먹은 것이 너라고 한다더만, 뭘 먹고 놀고 댕겼나 봅니다.



동네 레스또랑이라기는 뭐하고 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는 한 종류 하는 집입니다.

와인 콜키지도 없다고 하여, 한 병 들고 가서 비오는 창 밖 쳐다보며 나름

우아를 떨고 왔습니다.


전생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안 태어났을 겁니다.ㅎ

냉장고에 김치는 없어도 버터는 있는.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식사가 좋습니다.

물론 소주 반주는 자주 환영이구요.^^



평소 집에서 육식을 못하기 때문에 아마도 사진 보니 밖에서는 주로 육식이군요.

혼자 참 잘 먹고 다니네요. ㅎ


이렇게 몇 번 혼자가 미안해서 엄니 모시고 외식하러 갑니다.

이번엔 LA갈비네요.^^



엄마와 가까이 산 지 6개월이 넘어 갑니다.

슬슬 일상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주 안 가도 그려러니 하는 정도가 되어

제가 편합니다. 반찬과 간식, 병원 모시고 가는 일들은 당연히 제가 하는 거고

같이 한 공간에 안 사는 것만으로도 서로 평화롭습니다.



40대 여자분 혼자하는 돈까스와 치킨집입니다.

치킨집 매장에서 혼자 닭다리 뜯는 일은 혼술 베테랑도 살짝 불편한 게

양도 많고 조명도 훤하고 무엇보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바로 뜯어 먹는 그림이 조금 민망합니다.

근데 동네 이 집은 테이블 3개, 그것도 일요일 늦은 밤에 가면

혼자 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프로 틀어놓고, 다 못 먹더라도

매상은 올려줘야지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속 시려 커피대신 앙파껍질과 말린 무우차입니다.

티백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 먹습니다.^^

속이 좀 편해집니다. 그러면 다시 커피를 마십니다.


----------------------------



제가 봄이 오면 꽃다발을 들고 꼭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올해 10년째 입니다.

해마다 제가 어떻게 변했는지 나아졌는지 더 이기적으로 괴팍하게 늙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거기에다 지난 시절을 되씹으며 눈물 뚝뚝 흘리다가 통곡으로 가는

그런 곳입니다. 저라고 왜 후회되고 울 일이 없겠습니까!

미안하고 서운한 사람들이 번갈아 교차되면서 울고불고 하다보면

절로 정화되는 그 곳이,

오래 전 많은 보살핌을 주신 분의 산소입니다.


가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과의 대화가 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대화인가 싶기도 한데 그냥 하염없이 감정과 말을 쏟아 부을 수 있어

확실하게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그 곳에 있습니다.

그 분 살았을 적 느낌이 여즉 이어지고 있어 그렇습니다.

죽으면 다 끝이 나는 게 아닌 것같습니다.

남은 이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지 가끔 궁금합니다.

그게 척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어렷을 적부터 무덤가에서 잘 놀았습니다.

지금 부산 남천동 매립지 말고 기존 아파트 있던 곳이 공동묘지였어요.

중학교 때는 버스타고 용호동 천주교 공동묘지가서 뭔 생각을 그리 했는지

제가 무슨 철학계의 박세리도 아니고^^

서울에서 마지막 살았던 곳도 벽제 화장터 안쪽으로 들어간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면서 꽤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역시 죽은 자들이 조용하군 하면서^^


자기 만의 공간 하나쯤 갖고 있는 것도 좋습니다.

공간이 주는 힘도 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하고

저는 이렇게 봄날 그 곳에 다녀오면 나머지 일년 살 힘을 얻고 옵니다.



제가 캣맘이 됐습니다. 길냥이 밥 준지 한달차 입니다.

집구석에는 이 녀석들이 저렇고 있으니 고양이를 들일 형편이 안됩니다.

제 일터에 밥을 주고 있어요. 까만 야옹이가 쓰레기를 뒤지는 걸보고

아차 내가 왜 진작에!


밥 준 첫 날 마주친 야옹이 눈을 잊지 못합니다.

1미터 거리에서 한참 저를 쳐다 봅니다.

제 해석으로는 "음, 좀 착하게 보이군.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겠군

고맙네"하는 표정이였습니다.

저 황홀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ㅎ

이름을 고고라고 지었습니다. 근데 못 알아묵습니다.ㅎㅎ

새로 생긴 맛집이라고 서로 공유했는지 제법 밥을 먹고들 갑니다.


집에 들어와 쟤들한데 "오늘은 야옹이 세 마리가 와서 밥을 먹고 갔어

너무너무 좋아아하하" 생뚱맞은 표정으로 지들끼리 살짝 맛이 갔나합니다.^^


----


저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 입장이라 상대방이 쓰는 단어를 집중해서

잘 듣습니다.


어제 만난 50대 여성은 너무너무 싫다와 좋다를 자주 사용합니다.

양극단을 오고 가지요.

그래서 살짝 우리가 어렷을 적에 주로 한 표현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머쓱해 합니다.

나이와 생각과 지혜가 언밸런스되어 있는.


나이가 허수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특히, 50대를 만나면 사고가 트인 것같다가도

기존 사회에 깊숙히 들어간 그 논리를 반복하는 소릴 들으면

50대가 참 어중간하구나

50대에 노후 준비(돈, 아파트말고)해야하는데 청춘도 아닌데

방황하면 어쩔 것이여......

뭐 그런 생각이 요즘 듭니다.


아고 야옹이들 밥주러 가야겠습니다.^^

후다닥~~~ ㅎ



2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노란파이
    '21.4.27 7:12 PM

    50대 정말 어중띠지요. 팍 늙지도 젊지도 않고 잡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고요. 60대가 되면 달라질까요..
    나이는 허수 맞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사고는 유치하고 욕심은 다락같은 사람들 많습니다. 나이먹을 수록 마음공부가 절실하다고 느끼는데 정작 나부터도 쉽지않아 남말 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생명을 돌보는 고고님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냥이 고고 모습도 올려주세요~

  • 고고
    '21.4.28 5:46 PM

    냥이 고고가 딱 1미터를 어찌나 잘 유지하는지 ㅎ
    사진 찍었는데 제가 흥분해서 초점이 흐릿했어요.

    저도 야옹이와 집 아새끼들을 보면 영락없는 대여섯살 아이로 지능이 추락합니다.^^

  • 2. Alison
    '21.4.27 8:38 PM

    고고님, 저도 저 돈까스집에 홀로 앉아 누가 차려주는 밥상을 먹어보고 싶네요. 코로나 이후 식당을 못갔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식당을 간다해도 가족들의 의견이 엇갈려서 제가 가고 싶은 식당을 못가는 경우가 다반사 였구요. 가족들과 메뉴 왈가왈부 할것없이 저런곳에 앉아 혼자 조용히 식사해보고 싶습니다.

  • 고고
    '21.4.28 5:48 PM

    다행히 여기는 먹고싶으면 살며시 갈 수 있어 저같은 사람에게는 훌륭한 방역입니다.
    혼자 밥 먹으면 맛에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코로나 끝나고 꼭 함 해보셔요. 강추!
    여행기가 즐겁고 눈도 시원하고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 3. 행인
    '21.4.27 8:46 PM

    고고님 글속에서 나이와 지혜와 생각이 언밸러스한 제가 보입니다.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순간입니다.
    고고님 포스팅을 볼때마다 항상 제 자신의 감추어진 그늘을 보는 느낌입니다.늘 지금과 같이 일상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고고
    '21.4.28 5:49 PM

    밸랜스가 유지된 사람이 거의 드물어요.
    저도 그렇고.
    모쪼록 이 일상이 제대로 된 리듬을 찾고 싶은 요즘입니다.

  • 4. kocico
    '21.4.27 8:54 PM

    어머님 저희엄마와 정말 비슷하게 생기셨어요.. 병원가면 간호사들이 귀여운할머니 라고하네요.
    체구작고 얌전하시고 땡큐를 연발하시며 고마워 하시니 사랑받는 환자세요~
    저는 동네양이들이 친히 저희집문앞 까지와서 야옹해요, 그러면 식사준비하면서 나오는 닭살들을 주면
    먹고 고맙다고 쥐나 새들 잡아다 문앞에 놓아주네요~

  • 고고
    '21.4.28 5:53 PM

    넘들이 보면 귀여운 할머니 맞으세요.^^
    오늘 백신 2차 맞는 날인데 새벽 6시 반부터 설쳤습니다.
    백신 맞고 엄니 보신해드린다고 삼계탕 먹으러 갔어요.
    1차 때 3일 정도 살짝 몸살기가 있다 회복되는 걸 기억하세요.

    제가 밥주는 양이들은 겨우 저와 눈 마주치는 사이 정도입니다.
    그래도 맨날 기다리고 즐거워요.

    어린왕자 속 여우가 한 말이 기억나는 저녁입니다.

  • 5. 주니엄마
    '21.4.28 9:18 AM

    고고님 글은 늘 으렵게 심오하게 와 닿아요
    그리고 어머니 모시고 다니시는 일상들이 참 부럽구요

    냥이한테 찜 ~~~ 당하셨어요

  • 고고
    '21.4.28 5:54 PM

    예, 찜 당해서 너무 기뿝니다. ㅎㅎㅎ

    엄마가 외식을 좋아하세요.
    미리 한 시간 전에 말해야 해요. 치장한다고 바쁘거든요.
    저는 맨날 기다려야 합니다. 꼭 남편처럼 ㅎ

  • 6. 오리
    '21.4.28 2:05 PM

    역시 고냥이를 외면하지 못하셨군요.
    저기 저 동네 파스타집에서 와인 한 잔 하고 싶네요. 그렇지 않아도 글 언제 올리시나 기웃대던 참이예요.

  • 고고
    '21.4.28 5:57 PM

    외면을 솔직히 좀 했는데 눈에 들어오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사는 아파트 냥이들은 구역마다 밥주는 이들이 있어 제가 낑길데가 없어요.

    일터 냥이들은 좀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어요.
    진작에 제가 했어야 할 일인데.

    한 달여 살이 좀 찐 녀석들이 보이고 강아지와 달리 고냥이는 참 신비로운 구석이 있어요.

  • 7. 영우
    '21.4.28 2:17 PM

    역시...고고님!

    저와 비슷한 나이지만...정신연령은 훨씬 언니같은~~
    나이만 먹었지 철없는 사람 여기도 한명 있어요
    저는 엄마랑 같이 살고있지만 최대한 서로 부딛히지 않고 살고 있어요

    직장이 있으니 다행인거지요
    냥이들이 행복하겠어요...

    소식자주 전해주세요^^

  • 고고
    '21.4.28 5:58 PM

    저도 여태 철딱서니 없다는 소릴 듣고 삽니다.ㅎㅎ
    엄마는 최대한 정신적 거리를 두고 살아야 서로 오래 삽니다.^^
    예, 요즘 냥이들 덕분에 일하러 가는지 밥주러 가는지 헷갈립니다. ㅎㅎ

  • 8. 시간여행
    '21.4.28 2:18 PM

    고고님 글은 항상 생각하게 만드는것 같아서 좋아요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대부분 있더라구요...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건 고마운 일이죠^^

  • 고고
    '21.4.28 6:02 PM

    아흐 뭔 생각씩이나 ㅎ
    고맙습니다.

    시간여행님 쿠스코 사진보고 2006~2008년 전후 꽤 일관련 여러 곳을 다녔는데
    컴 바꾸면서 죄다 다 날아갔어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 사진이 모짜르트 영감님 생가 앞 노천카페 길바닥에
    주저앉아 담배 피고 있는 제 모습을 같이 간 일행이 찍은 것 ㅎㅎ

    아 쫌 멋지더라구요. ㅎㅎ

  • 9. ripplet
    '21.4.28 2:18 PM

    무장해제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
    제게도 그런 곳이 있습니다. 그게 지인의 산소란 것도, 평소 성직자 묘지에서 시간 보내길 좋아한다는 것도 저랑 같으시네요(거긴 확실히 사람을 철학적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을까 잠시 상상하다가도, 수많은 사람들을 울며불며 보낸 제가 어느새 그들 없이 덤덤히 살고 있는 걸 느끼며 아차! 합니다. 이것 또한 욕심이겠구나.
    그저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이 지구에 폐를 덜 끼치기를 바랄 뿐, 그 뒷일까진 차마~입니다(사실은 거기까진 머리가 아파요ㅜㅜ).

  • 고고
    '21.4.28 6:05 PM

    그려요, 그 곳이 있는 사람은 알지요.

    저는 혼자 살다보니 장례식이라는 게 할 수 있을까?
    가족들 다 먼저 가고 나 혼자 남으면 누가?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불량식품 더 먹고 먼저 가야지 ㅎㅎㅎ
    그럽니다.

    글쵸 내가 사라지면 세상도 사라지는데 뭔 걱정을 하겠습니까!^^

  • 10. 솔이엄마
    '21.4.28 10:37 PM

    고고님 소식, 반가워요~^^
    어머님께서도 좋아보이셔서 다행이구요.
    고고님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생각을 하게 되요.
    감사합니다~♡

  • 고고
    '21.4.29 11:05 AM

    솔이어머니 많이 허전하시지요?

    저는 아버지 가시고 난 뒤 고개를 못 쑥일 정도로 매일 울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봄날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언덕길 위에서 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돌아서 가는 걸 보고 그제서야 눈물이 그쳤졌어요.
    아버지를 많이 좋아한만큼 애도의 시간이 길었나 봅니다.

    솔이네 밥상이 늘 부러운 고고입니다.^^
    고맙습니다.

  • 11. 해피코코
    '21.4.29 9:13 AM

    고고언니~
    따뜻한 일상, 멋진 글 너무나 좋아요.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고
    '21.4.29 11:06 AM

    코코는 잘 있나요? ㅎ
    봄은 가고 있는데 해피코코님 봄 마당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요?
    밥상은 넘사벽이라 ㅎㅎ
    마당이 궁금합니다.^^

  • 12. 챌시
    '21.4.30 9:03 PM

    헐, 냥이를 거두시기까지, 너무
    바쁘신거아녜요?
    어머님 챙기랴, 두 댕댕옹들 모시고,
    거기다 길냥이들까지,
    속정 대단하신분 맞네요. 고고님 진짜 츤데레 맞죠?
    알면알수록, 매력덩어리셔요^^
    아ㅡㅡ그래도 기뻐요. 길냥이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본인 건강도 꼭,잘 챙기세요.

  • 고고
    '21.5.3 4:43 PM

    첼시 사랑만 할까요^^
    동네길냥이들 살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 중입니다.^^
    옙, 제가 건강해야 부양가족들이 잘먹고 살지요.

  • 13. 윤집사
    '21.5.2 1:15 AM

    길냥이들 사진들도 올려 주세요~

  • 고고
    '21.5.3 4:44 PM

    이 녀석들이 아직 곁을 주질 않아요.
    100일이 지나야 할까요?
    사진찍을 수 있는 거리까지 오길 저도 기다려요.^^

  • 14. 오늘도맑음
    '21.5.2 10:00 PM

    캣맘 되셨군요!

    해가 갈수록 다른 생명들이 그저 보아넘겨지지가 않네요.
    길위의 삶을 혼자 살아내는 어린 것들...어린 것들을 데린 어린 어미들.

    고고님 같은 분이 또 한 분 챙겨주신다니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집니다.
    감사해요.

  • 고고
    '21.5.3 4:45 PM

    제가 덩달아 즐겁고 흐믓한 일이라 고마울 뿐입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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