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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대흥사의 가을

| 조회수 : 1,402 | 추천수 : 1
작성일 : 2019-11-19 01:22:17



<달마산 미황사에 이어서>


고계봉서 바라본 해남읍 & 삼남면

우측 멀리 해남읍 보이시죠?

바로 앞 야산이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이 있는 덕음산 .

앞으로 펼쳐지는 들녁이 삼남면인데 한때는 죄다 해남 윤씨 소유 토지.

고산 윤선도와 증손자 공재 윤두서의 문학,예술적 성취도 저 물적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얘기.

대흥사도 삼남면 구림리.


해남 하면 이리 넷!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

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

땅끝,

넷은 해남읍을 기점으로 북에서 남으로 이어집니다.

해남읍~녹우당~두륜산 대흥사~달마산 미황사~땅끝 사자봉.

위도상으로 부산 보다도 아래인 해남읍에서 승용차로 40여분을 달려야 땅끝에 이르니  땅끝은 땅끝이라는.

왠 금쇄동이 냐구요?

고산 윤선도 (尹善道,1587~1671)가 오우가를 저기서 썼 거든요.

우리말로 쓰여진 가사문학의 최고봉 '어부사시사'는 인근 완도 보길도에서.


- 오우가 ( 五友歌 )-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구름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 위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 서리를 모르는다

구천에 뿌리 곧은 줄 글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좌측으로 진도 앞바다도 보이고.

저기 까지가 서해.




뭘까요?

팥배나무 열매.

열매가 팥,꽃은 하얀 배꽃같아서 팥배나무.

겨울되면 직박구리 의 겨울 양식.



고계봉 전망대.

고(髻)는 상투를 의미.

아래서 보면 상투같아서겠죠.

동쪽

동쪽으로 강진 주작산 능선이 동서로 이어지고.

주작산은 작은 공룡능선이라 불리는데 설악산 공룡능선 분위기가 나서.

저 능선 길은 땅끝기맥 .

땅끝기맥은 장흥서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후, 

월출산~만덕산(다산초당)~주작산~두륜산(대흥사)~달마산(미황사)을 거친 후 땅끝 사자봉에서 남해로 빠집니다. 

왼편 봉우리 바로 너머가 강진읍으로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그곳 에.

고계봉

고계봉 아래로 대흥사가 보이고.

아래 우측 계곡길이 대흥사 2.4키로 진입로.


왼쪽 봉우리가 두륜산 정상 가련봉(703미터)

저런 봉우리 8개가 대흥사를 빙둘러 안 고있어요 .

가련봉 너머로 고금도,신지도,완도가 보이고.

왼쪽 바다가 강진만으로 더 들어가면 다산초당 앞 구강포구가 나옵니다.

고금도는 추사 부친 김노경 유배지.

김노경 은 해배 후 아들 추사 김정희 절친인 초의를 만나러 일지암을 찾습니다.

저 고갯길을 넘어 대흥사로 갔 겠죠.

신지도는 원교 이광사 유배지로 서체의 진경산수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곳.

정상 가련봉에서 내려다 본 대흥사.

가련봉에 오른 인물 중 가장 유명인은 누구일까?

다산 정약용!!

다산은 24세 연하 초의선사,그리고 제자 황상과 함께 아래 대흥사를 출발해 정상에 올랐습니다.

아참,

문재인 대통령도 청년 시절 아래 대흥사에서 올랐네요.

당시 7번 공부방은 보이는 사찰 내 가장 위쪽.

뒤로 고계봉 케이블카 전망대도 보이고.

일주문이 둘이나 있어요.

첫번째 일주문 편액은 '두륜산 대둔사'

대흥사 원 이름은 대둔사였습니다. 대흥사는 한말 이후 부터.

백두산과 중국 곤륜산 가운데 글자를 따서 두륜산.

늦가을이면 형형색색 2.4키로 진입로가 예술.

http://www.youtube.com/watch?v=oRzca9LdmuI

Handel / Largo

두시간 연속.



행정구역으로는 삼산면 구림리(九林里) 장춘동 (長春洞)

장춘동 계곡을 옆에 끼고 아홉구비 숲길을 걸어가는 거죠.



이 길을 자동차로 휙! 지나간다?

아,이런 바보같으니라구.


상록활엽수 동백나무 군락지이기도.


장춘동(長春洞) 계곡





숲길이 아홉번 꺽이기에 九林里


저 아스팔트만 벗겨내면 사찰 집입로 중 '탑 오브 탑'









예전 민가 몇채도 남아 있고. 저 너머가 대흥사.

예전엔 일대에 숙박시설이... 지금은 아랫 주차장 단지로 이전.








동백나무 숲.

세상은 다 때가 있는 법.

천하의 동백나무도 만추에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맙니다.





유선여관.

광주민주항쟁 시 해남 거점.







두번째 일주문은 두륜산 대흥사.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한 도량이라는 뜻.

다산과 교류한 그 혜장선사가 13대 대강사였습니다.


부도밭.

국내 사찰 부도밭 중 가장 유명한 곳.


석가 입멸 후 수습한 사리는 탑(스투파)의 형식으로 안치됩니다.

 그래서 사찰에서 탑은 가장 중요한 위치에.

고승이 죽으면?

 수습된 사리,잔골은 고인과 연이 있는 곳이나 사찰 외곽 한적한 곳에 부도 형식으로 안치.

그러나 요즘은 장소가 크게 달라졌어요. 사세를 뽐내야 하겠죠.

그래서  쇼 윈도우 마네킹처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

사찰 주변에 산재해 있던 부도들도 진입로 쪽에 모아둔다는.


부도밭엔 대흥사를 대표하는 인물 셋이 잠들어 있으니.

서산대사,초의선사,혜장선사.


부도들의 밭,,,,맞네요!


계곡을 넘으면 본격 사찰 영역.



13 대종사도량 표지석

 대종사는 덕 높은 승려,대강사는 일종의 교수.

대흥사 12대 대강사는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 13대 대종사는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

유가의 다산,추사,,,,, 불가의 아암,초의 

강진,해남 변방서 이루어진 이들의 교류는 알면 알수록 재밋고 신기하다는...이게 내 결론!


꽃무릇

꽃무릇의 진면목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드러나요 .

꽃이 지고나면 본격적으로 난초같은 푸른잎이 돋아납니다.

사찰 근처에 많이 심은 이유가 있더군요.

 추출한 녹말로 불경을 제본하고,탱화를 만들 때도, 고승들의 진영을 붙일 때도 썼답니다.


사천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해탈문.


해탈문

원교 이광사 작품.


사찰 내 남원 구역.


작년(2018) 양산 통도사,영주 부석사,보은 법주사,공주 마곡사,순천 선암사,안동 봉정사와 더불어

대흥사가 '산사(山寺)'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포인트는,

신을 모시는 '神社'가 아니라 산에 있는 山寺!!




사찰 경내 정중앙 남원 구역

천불전 등 25개 당우가 들어서 있고.


경내가 워낙 넓어  크게 세개 영역으로 구분.
경내는 북쪽으로 치우친 채 금당천이 흐르는데 이 금당천을 경계로 해,
1.천불전 일대를 남원(南院)
2.대웅보전 일대를 북원(北院)
  3.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表忠祠),대광명전,동국선원(문대통령 공부방)이 있는 별원으로 구분.




경내 중심지 남원 앞 무염지(無染池),,,, 화재 대비 차원이기도.

초의선사 때 조성.



적묵당


적묵당 앞 수령 200년 매화 나무

초의가 심은 것.

좌는 배롱나무


가허루

창암 이삼만(1770~1847) 작품


창암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통해 동국진체의 진수를 터득한 후 자신만의 창암체를 완성.

서체로 호남지역을 석권하고 당시 추사와 더불어 조선 3대 명필.

그러나 추사의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

원교는 사후에 추사의 그늘에 가렸다면,청암은 생전에 추사에 가린 불운의 서예가. 


천불전


천불전

원교 이광사 작품


넒은 이마에 긴코...부처님 얼굴 맞죠?


남원과 북원 사잇길.

공간 마다 여유가 있어서 좋은.





남원과 북원 사이 600년 팽나무.


뿌리가 붙은 연리근.


남원과 북원(北院) 사이로는 금당천이 흐르고


침계루.

계류를 베게 삼았다는.

 원교 이광사 작품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작품

백설당은 해사 김성근 작품,,,,김씨는 당시 동학혁명 진압 전라도 관찰사.

일제 강점기 친일 귀족으로 작위까지 받으며 영화를 한껏 누렸죠,,,,서재필 스승.



 

대웅보전

원교 이광사(1705~1777)  작품

大자 보실레요?

성큼성큼 걷고 있는 형상을 표현한 것.

대흥사 이해의 키워드 인물이 몇 있죠.

그 중 한사람이 원교 이광사.

두륜산 정상 너머에 그의 총 23년 유배 중 12년을 살다 죽은 신지도가 있습니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추사체를 완성했듯 원교는 신지도서 동국진체 완성.

원교 이광사(1705~1777) 초상,,,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 作


대흥사를 얘기하는데 추사,초의,원교를 뺄수는 없겠죠

원교는 서체에 있어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완성자.

회 화에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가 있다면 서예에는 동국진체.

동국진체란 말그대로 중국이 아닌 조선의 서체로 향토색 짙은.

그가 동국진체를 더욱 숙성하고 세상에 퍼트린 것도 귀양지에서.

 부친은 예조판서,왕족 후손인 원교는 51세 때인 1755년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에 연루돼 회령에 유배.

다시 진도로 이배되었다가 결국 신지도로 옮겨 12년 후 생을 마쳤네요.

두륜산을 넘으면 바로  보이는 게 완도요,그 옆이 신지도.

동국진체는 성호 이익의 형인 옥동 이서를 시작으로

공제 윤두서(옥동과 친구),백하 윤순을 거쳐 원교에 의해 집대성.

대부분의 유배객들이 그러했듯 그도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인근 사찰등에서는 글과 글씨를 많이들 요구해 왔고.

이게 바로 전남 서해안 일대 사찰에 원교 현판이 많은 이유.

구례 천은사엔 <지리산 천은사>·<극락보전>·<명부전>, 강진 백련사엔 <대웅보전>·<명부전>·<만경루>, 

고창 선운사엔 <정와>·<천왕문>, 부안 내소사엔 <대웅보전>·<설선당> 현판이 있습니다.

대흥사의 대웅보전,해탈문,침계루,천불전도 이리 탄생 .

현 호남 서예는 원교가 뿌리로,

남도를 예향이라 칭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원교 동국진체를 이어받은 서예,

그리고 추사 애제자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한 남종화 등이 어우려졌기 때문.


추사 제주 유배길 일화....원교 이광사


너무나 유명한 얘기지만 추사는 제주도 들어가기 직전 동갑내기 친구 초의를  만나기 위해 대흥사로 .

추사는 대웅전에 걸린 원교가 쓴 대웅보전을 보더니만 '조선의 글씨는 원교가 망쳤다!'며 당장 내리라고 성화를.

그리고 무량수각 현판을 써주고는 대신 달게 했고.

청나라의 선진문물에 열광한 엘리트  추사의 눈에 원교체는  조선적인,쉽게 말해 촌스러운 것.

그도 그럴 것이 연행 길 청나라 최고 지성 옹방강이 추사를 해동제일로 치켜세웠으니 세상 보이는 게 없었던 것 .

더불어 원교는 소론,추사는 노론이라는 반대 당색 영향도.

당시 예단의 절대자 추사의 이같은 평가는 후대까지 큰 영향을 미쳐 원교는 평가절하되고 말았고 .

그러나 반전이 있었으니,

해배 길 대흥사를 들른 추사는 당시는 자신이 잘못 보았다며 원교 것으로 바꿔달게 했다는 .

유배 9년을 통해 추사체의 완성과 함께 인간적 성숙도  이루어진 것.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대웅보전 현판과 설선당의 무량수각 현판.

지금 추사 무량수각은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을 향해  읍하듯 아래에 걸려있습니다.


와불(臥佛)

선명히 보이시죠?

머리,가슴,배...그리고 중턱의 두툼한 손등.


신라말 삼층석탑(보물)


금당천.

계곡수에 이르는 계단이 멋스럽고.


이제 남원,북원을 벗어나 사찰 뒤편으로 향합니다.


남원 구역 뒷편.

뒷편에도 넓은 공간이 있어 경내 어디서든 널널합니다.


아래는 사찰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적묵당,천불전이 있는 남원 뒷태.


산사로 들어오는 길조차 깊게 감춰 놓았네요.

정면으로 입구 해탈문 보이시나요?

해탈문 너머 우측으로 장춘동 계곡 따라 2.5키로 진입로가 이어집니다.

아홉구비 숲길 구림리(九林里)에 긴 봄을 뜻하는 장춘동 (長春洞).




이보다 더 그윽하면서 활달한  사찰은 없을 겁니다.

변변한 문화재 없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대흥사가 지정된 이유죠.



민속마을 종가댁 같은.



우측은 대웅전이 있는 북원.

간간히 싱그런 채마밭이 있어 좋은.


왼쪽이 서산대사 표충사.

우측은 성보박물관.

박물관은 흉측한 콘크리트 건물이라 아직 까지 그쪽으로 발길이 간적이 없음.


頭 輪 山,,,,머리가 바퀴처럼 둥근산이라는.

두륜산의 연봉들이 산사를 둥근 바퀴처럼 빙 감싸고 있어요,,,두륜산의 또 다른 유래.

이게 바로 서산대사가  금란가사와 발우를 대흥사에 안치하게 한 이유.

그는 전국을 운수행각하면서 대흥사의 이런 지리적 장점을 알고 있었던 것.

三災不入之處

萬年不毁之地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요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니라.


우측 멀리 성보박물관.


대흥사 맨 뒷켠서 바라본 정상 가련봉.



표충사.

 

정조가 내린 표충사 편액.


경내 맨 뒤켠은 중창불사 중


머리~목~가슴~배.

목 부분은 만월재.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전각 이름이 호국대전이랍니다.

완공되면 대흥사 중심 전각으로 호젓한 맛이 사라질지도.


아래는 동국선원



'26세 청년 문재인 염원의 결실을 이룬 곳'


7 번방.


동국선원 뒤쪽으로 난 두륜산 등산로. 

이제 대흥사를 떠납니다.




꽃무릇



9월 꽃무릇

11월 꽃무릇

내겐 괴기스런 붉은 꽃 보다 더 멋지네요.



표충사를 지나고




정상 쪽 높은 봉우리들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한채 측면을 돌고 돌아 정면까지 연이여져요.

산사 전체를 포근이 감싸안고 있다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혼종

저 3층탑은 왜 튀어나와 눈을 거슬리게 하는건지...







떠나는 길 와불 한번 더 보고.


동백이 피고.


해탈문 나오니 부도전.





왼쪽으로 부도밭

혜장선사 탑비 뒤가 혜장 부도.

부도밭엔 대흥사를 대표하는 인물 셋이 잠들어 있으니 .

서산대사,초의선사,혜장선사.

이들은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원교 이광사,위당 신관호,소치 허련 등등 연관으로,

 조선 후기 찬란한 지역 문화을 꽃피웠습니다.

청허탑,,,서산대사 승탑(보물).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死也一片浮雲滅)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浮雲自體本無實)

죽고 살고 가고 옴이 모두 그와 같은 것을... (生死去來亦如然)

-서산대사 해탈시 부분-

혜장선사(惠藏,1772~1811) 탑비


나의 관심사는 서산대사,초의 부도가 아니라 혜장.

왜?

드라마틱한 삶으로 다산을 있게한 장본인기에.

혜장은 초의 보다 14세 연상으로 강진 백련사에서 다산을 소개한 인물이기도.

혜장은 다산보다 10세 연하.

비문은 다산 정약용이 직접 지었네요. 사대부가 중의 비문을 지은 것.

다음은 다산이 찬한 비문 마지막 부문~~~


빛나던 스님

아침에 피고는 저녁에 시들었네.
훨훨 날던 금시조(용을 잡아먹는 다는 새,아암을 상징함)
앉자마자 날아가 버렸네.
슬프다. 그대의 아담하고 깨끗함이여,
글로는 표현해줄 길이 없어라.
그대와 함께 연구해 나간다면
오묘한 진리, 깊은 이치도 열어젖힐 수 있었으리.
고요한 밤에 낚싯대를 거두어 들면 달빛만 뱃전에 가득해라.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세월에서 그대 입 다무니
산속마저도 적막하기만 하다오.
이름까지 나이 먹은 어린애인데
하늘이 수명만은 인색했네.
이름은 중이지만 행실은 유학자이니
그래서 군자들이 더욱 애달파하네.

-정약용(丁若鏞) 찬(撰)-


무강진 , 무다산 !

무혜장,무다산!!

네,강진이 없으면 다산도 없었다는 얘기네요.

방대한 다산학은 18년 동안 강진에서 실현되었으니.

그럼 무혜장,무다산!,,,,은 어떤가요?

다산(1762~1836)이 다산초당에 정착하고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할수 있는 계기는 혜장을 만나서 부터.

1801년 신유사옥에 이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정씨 집안은 풍지박산.

세째 형 약종은 장살되고 약용은 둘째형 약전과 함께 유배길에.

약전은 흑산도(16년 만에 사망),다산은 강진으로.

다산은 강진읍성에 도착했으나

다들 천주쟁이라며 피했지만 동문 밖 주막 노파의 배려로 주막 협칸에 정착합니다.

4년 후 정순왕후가 죽으면서 유배생활도 좀 여유 생겼어요.

다산은 인근 노인과 함께 반나절 거리 만덕산 중턱 백련사로 봄놀이를.

그곳서 운명의 혜장(惠藏,1772~1811)을 만납니다.

그때 다산 44세,혜장 34세로 둘은 정확히 10년 차이. 당시 혜장은 백련사 주지로,

30세 때는 대흥사 12대 대강사였을 정도로 학문적 성취가 있었고.

다산은 그날 밤을 백련사서 묵었어요.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 이후 6년간 오간 편지 등을 보면 동성애 착각이 들 정도.

다산은 생필품이나 불경 도움을,혜장은 다산으로 부터 주역 유학 다도를 배우고.

젊어서 진사 합격연을 수종사에서 열만큼 다산은 이미 불가에 대한 이해폭이 넓었습니다.

드디여 혜장은 1804년 우이산 고성사 암자에 다산의 거처를 마련해 줍니다.

얼마나 고마웠겠어요,다산은  1년을 여기서 보냅니다.

혜장은 밥시중,차시중 드는 젊은 중까지 한명 붙혀주었는데 당시를 수체화처럼 그린 시 한편이 남아있어요.

 

/ 대밭 속의 부엌살림,

중에게 의지하니
  가엾은 그 중 수염이며

머리털 날마다 길어지네.
이제 와선 불가 계율 모조리 팽개친 채
  싱싱한 물고기 잡아다가 국까지 끓인다오./
(다산의 시, 다산화사(茶山花史) 中)


혜장은 정이 넘쳤지만 거칠고 니힐리스트적인 성격.

다산은 노자의 가르침 중 '부드럽기를 어린애처럼 하라'는 뜻으로 아암(兒庵)이라는 아호를 줍니다.

다음은 혜장이란 사람을 알수있는 다산의 시 한수.

/굳은 의지에 어질고 호탕한 사람
  이따금 표연히 산 속을 나간다네.
눈 녹은 비탈길 미끄러운데
  모랫가의 들집은 깊이 잠겼네.
얼굴에는 산중의 즐거움이 가득하고
  변하는 세월에도 몸은 편하다네.
말세의 인심 대부분 비루하고 야박한데
  요즘에도 그런 진솔한 사람 있다네/
( 다산의 시, 혜장이 찾아오다,1807년 초봄)


다산은1806년 가을 제자 이청의 집에서 살다,

1808년 봄부터는 외가인 해남윤씨 윤단의 산정에 정착합니다.

해남윤씨 자제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 .

(제자들은 수많은 책을 펴내는데 큰 힘이 됨. 누군 자료 모으고, 필사하고,교정보고, 제본하고 등등.)

본격 10년 다산초당 시대가 열리고 둘의 밀착은 본격적으로.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에는 초동들이 다니던 800여미터 산길이 있었으니.

혜장은 곡주가 들어있는 호리병을 허리에 찬채 초당을 찾곤했는데 둘은 밤에도 아예사립문을 열어놓았다는.

당시 글을 보면  기다리는 심사들이 절절합니다.


당시 차는 음료를 넘어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여기던 시절.

다산도 갖은 속병에 시달렸기에 차의 집착이 컸고.

그런데 만덕산 주변엔 야생차들이 많았어요.

다산은 한양 시절 부터 차를 즐겼기에 당장 혜장이 마련해준 차가 절실했고.

나중에는 다산이 직접 차잎을 따서 제다(製茶)까지 합니다.

다산이 1804년 혜장에게 차를 청하는 편지가 그 유명한 '걸명소(乞茗疏)'!


/나그네는 근래 차 버러지가 되어 버렸고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

부끄러움 무릅쓰고 차 보내 주시는 정다움 비는 바요
듣건데 죽은 뒤, 苦海의 다리 건너는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영약)이 뭉친 차 한 줌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말고 베풀어 주소서/

                             

추사가 초의한테 차를 보내달라고 하소연하던 그 제주도 편지가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다산은 숫제 혜장을 '차의 임금님'으로 여기고 소(疏)를 올리고 있다는 .
5 년이 흐르고 다산이 그리 의지했던 혜장은 술병이 깊어지면서 대흥사 북암에서 세상과 등집니다.

 1811년 가을, 아암 나이 40세.

아래는 입적을 슬퍼하며 다산이 쓴 만시(輓詩).

 

/ 이름은 중(僧) 행동은 선비라 세상이 모두 놀라거니
  슬프다, 화엄의 옛 맹주여.
논어 책 자주 읽었고  구가의 주역 상세히 연구했네.
찢긴 가사 처량히 바람에 날려가고  남은 재 비에 씻겨 흩어져 버리네.
장막 아래 몇몇 사미승  선생이라 부르며 통곡하네./


다산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는 흑산도 형 약전에 보낸 글에서도 알수있으니~~

/대둔사에 어떤 승려가 있었는데 나이 마흔에 죽었습니다.

이름은 혜장 호는 연파,별호는 아암인데 본래 해남의 미천한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법을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주역의 원리를 들을 때부터는 몸을 그르쳤음을 스스로 후회하고 실의하다가

 6,7년 만에 술병으로 배가 불러 죽었습니다.

그가 죽을 무렵 수차 혼잣말로 무단히,무단히(방언으로 부질없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내게 보내준 시는 이랬습니다.

" 백수(柏樹,참선) 공부를 누가 힘써 할 것인가
  연화세계(극락)는 이름만 있는 것이지
  광폭한 노래들이 근심 속에서만 불려지니
  술만 취하면 맑은 눈물이 흐르네"/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는,한 아웃사이더 지식인의 전형을 아암에서 보게된다는.

아암이 죽고 1년 후 대흥사 아암 제자들이 다산초당을 찾아옵니다.

아암 승탑명과 비문을 다산에게 부탁한 것.

이렇게 아암장공탑명(兒菴藏公塔銘)이라는 탑명과 탑비가 탄생하죠.

탑비는 지금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비문은 다산이 써준 그대로 인데 탑비명은 '兒菴藏公塔銘'이 아니라 '동방제십ooo대사'.

왜 일까? 유교적 탑명이다 보니 불가식으로 바꾼 거겠죠.

초의선사가 다산초당을 수시로 드나들자 대흥사 측에서 환속 염려로 견제가 있었듯이.


草衣塔,,,가운데


초의선사 승탑

草衣塔,,,보이시죠?

草衣塔 이라는 탑명과 탑 비문은 다산의 추사의 제자 위당 신관호 작품,


무다산,무초의

다산이 없었으 면 초의선사도 없었을 겁니다.

아암 혜장이 죽기 2년 전인 1809년, 혜장은 24세 초의를 다산초당에 대려옵니다.

혜장이 초의 보다 14살 연상. 다산 나이 48세.

다도의 역사에 있어 중요 순간이죠.

이후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고 차,유서(儒書),시학(詩學)을 배웁니다.

보통은 초의가 다산에 차에 대해 일러주는 것으로 아는데 반대라는.

 다산을 얼마나 극진하게 모셨는지는 '탁옹(다산)선생에게 드림' 이란 시를 보면 잘 알수 있어요.


/부자는 재물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진이는 말로써 떠나보내네.

지금 선생께 하직하려 하지만,

저는 마땅히 드릴게 없습니다.

 먼저 공경하게 누추한 마음 펼쳐 은자의 책상 앞에서 말씀드리리라.

하늘이 맹자 어머니같은 이웃을 내려주셨네.

 덕성과 학업이 나라의 으뜸이요. 문장과 자질이 함께 빛나시네.

 편안히 머물 때도 항시 의로움을 생각하고 실천에 나서면 어짊을 보였네.

 이미 넉넉하면서도 모자란 듯 하였고 항시 비우고 남을 포용하였네.

 내 이런 도를 구하기 위해 멀리 와서 정성을 드립니다.

 이제 또 헤어지는 자리에 종아리를 걷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수레가 떠나갈 때 주신 말씀은 가슴에 깊이 새기고 또 띠에다 써두렵니다./


둘은 얼마나 가깝게 지냈냐면,1812년 가을엔 초의와 다산은 영암 월출산엘 가요.

 초의는 백운도(白雲圖)를 그렸고, 다산은 청산도(靑山圖)를 그립니다.

시서화 차,건축,단청,원예,범패,장담그기,,,등등 못하는게 없는 초의 .

그리고 1812는 초의는 다산초당도를 그려요.


다산초당도(茶山草堂圖).....1812,초의선사


현 다산초당 복원은 초의가 그린 茶山草堂圖가 모태.

다산은 대둔사(현 대흥사) 스님들과도 긴밀했는데 1823년에는 대둔사지 편찬에도 참여해요.

  다산,혜장,초의 3인의 공동참여, 최근 발견된 자료를 보면 아예 다산이 총감독.


대둔사지(大芚寺誌)~~

조선후기 불교사 이해의 귀중한 자료이자 가장 신빙성 있는 사지(寺誌)로 인정받고 있다는.
우리나라 사찰 사지(寺誌)들을 보면 과장 일색.
많은 사찰이 실증적 근거도 없이 근원을 의상,원효,자장까지 올립니다.
실학자 다산에 혜장,그리고 불가의 실학자로 평가 받는 초의선사 3명이 참여했으니 저간의 사정을 알만하고.
다산은 이미 제자들과 함께 만덕사지(백련사)를 편찬한 경험이.
혜장은 사지 편찬 시 대둔사 기원을 기존 주장인 6세기로 올리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며 무시하고 
유물에 근거해 통일 신라말,고려 초로 잡아요.
다산이 대흥사 스님에 보낸 편지13통이 2009년 발견되었는데
내용을 보면  다산의 실학자 다운 실증적 자세를 볼수있다는.
수신자는1통을 제외하곤 모두 완호대사 상좌인 호의(1778~1868)스님.
1813~1815년까지 3년간 다산초당에서 대둔사로 발송한 것.
1813년 8월 편지에는 이리.

 1.대둔사지 편찬을 위해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절에서 잔뜩 보내왔다

2.그러나 각종 기록에 믿을 만한 사료가 하나도 없다.

3.옛 탑을 헐어서라도 임진왜란 이전 시기의 신뢰할 만한 문적(門跡)을 찾아오라 했다.

(그렇치 않으면 대둔사지 편찬은 불가능하다)

4.북암과 상원암, 진불암과 도선암 등 네 곳에 있는 판기(板記)를 베껴와라 했다

 5.불교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전등록' 전질을 구해오라 등등.


다산은 1808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아예 차를 만들어 마시기 사작합니다. 

 (다산초당에는 약천,다조 유적등이 이를 증명)

강진을 떠날 때 제자들과 맺은 '다신계절목'에는,

제자들과 찻잎을 따서 덖고, 바쁠 땐 동네 아이들의 노동력을 빌려 찻잎을 따오게 한 기록도 나오고.

다산은 1810년에 이미 자신이 만든 차를 선물도.

1815년에 호의 스님에게 떡차 10개,1816년에 우이도로 떡차 50개를 보낸 내용의 편지가 남아있다는.

이렇게 조선 후기 다도(茶道)는 다산에서 시작해 초의가 완성.

초의와 추사 관계는 생략.

(구체적인 건 지난 4월 게시글 참조.)


일주문 나옵니다 .


해남읍이 멀리 보이고.


&&&&...

주로 지난 4월 게시글 발췌 정리한 것 .

자세한 건 여기서.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7&cn=&num=2754238&page=1&searchType=...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평화로움
    '19.11.19 3:46 PM

    멋진 풍경
    감사합니다
    몇화면 모셔갑니다

  • wrtour
    '19.12.4 1:35 AM

    감사합니다 늘 평화로우시길~~~

  • 2. 늘행복한날
    '19.11.22 1:32 PM

    멋지네요. 당장이라도 사진 속 풍경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 wrtour
    '19.12.4 1:36 AM

    사진 풍경속에서 더 행복하시구요 ㅎ

  • 3. 변인주
    '19.11.24 10:14 AM

    가을은 가을대로 멋스럽네요.^ ^
    지난번 올리신 것도 보면서 사진속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어요.
    꼭 가보리라 하면서요.
    가을 산사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wrtour
    '19.12.4 1:40 AM

    10년 째 템플 스테이! 템플 스테이!!
    언제 하실건거요?
    즐거운 농담입니다 ㅎ

  • 4. 루피나
    '19.11.26 10:20 AM

    대흥사와 미황사...
    고향이라 정말 많이 갔었는데 제 기억속의 대흥사와 같은곳도 있고 변한곳도 있네요
    저 울창한 숲길을 많이도 걸었고 금쇄동도 반갑고 ㅎㅎ
    한동안 안갔는데 이번주에는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wrtour
    '19.12.4 1:43 AM

    해남은 진짜 대흥사,미황사가 있어서 복받은 동내같아요.
    아니 두륜산,달마산이 있어서.
    땅끝이야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니 그런거구.

  • 5. 샘물
    '19.11.30 3:47 PM

    정말 아름다운 사찰 곳곳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향이지만 샅샅이 보지 못했어요.

  • wrtour
    '19.12.4 1:45 AM

    많이들 그러시더군요
    저도 제 고향은 잘 몰라요
    그래도 나이 들어가니 좀 알아가게 되더군요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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