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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가보니

외식의 즐거운 추억, 쓰라린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기

제 목 : 제주도에서 먹은 가정식-조간대 밥집

| 조회수 : 7,249 | 추천수 : 0
작성일 : 2014-08-07 18:22:23

배가 고팠다. 협재해수욕장에 도착해 정신없이 놀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된 것이다. 이 낯선 곳에서 밥먹을 곳을 또 어떻게 찾지? 김포공항에서 아침으로 먹은 비빔밥도 그랬지만, 제주도에 내려서 먹은 열번의 끼니 중 여덟번이 모두 심하게 맛이 없거나 그저 그런 수준이었고 가격은 일관되게 모두 비쌌다. 식재료 대부분을 육지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겠지. 빡빡한 일정이 질색이라 대충 먹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제주도에서의 식사는 고민거리였다.   

스마트폰을 켜서 '협재해수욕장 식사'로 검색하니 식당들이 좌라락 떴지만 다 내키지 않았다. 흑돼지고기는 정말 맛있었지만 이미 먹어봤고, 갈치 고등어 전복 해물  말고 뭔가 다른 것이 먹고 싶었다. 이를테면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는 시골된장찌개나 칼칼한 김치찌개! 그런데 아무리 검색해도 그런 식당이 안나온다.

궁리끝에 검색어를 '협재해수욕장 가정식'으로 했더니 딱 한 집이 뜬다. 상호가 조간대 밥집인데 상세정보 옆에 평가가 달려있다. 맛있다, 친절하다는 글이 몇 개 보이지만 진위를 알 수 없으니 신경쓰지 않는다. 어쨌든 벌써 저녁 7시가 넘은지라 15도 이상의 경사만 만나면 한숨같은 엔진소리를 내면서 끙끙거리는 국민차 렌트카로 열심히 달렸다.

조간대 밥집은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다를 왼쪽에 끼고 가다가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곳에 혼자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2km정도의 거리, 10분도 채 안걸릴 정도로 가깝다. 자리에 앉아 벽에 붙은 차림표를 난생 처음 찍었다. 나흘동안 식당을 다니면서 제주도사람들은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잘 안먹나?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었는데 이곳에서 보니 반가워서.


김치찌개를 시키니 인상 좋은 사장님이 미안해하면서 '고기가 없어서 안된다'고 한다. 괜찮아요. 그럼 된장찌개 주세요. 제주도 와서 조림은 아직 안먹어봤으니 고등어조림도 작은 걸로 부탁한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창밖을 보니 해가 지고 있다. 풍경도 고요하고 식당도 조용하다. 근처의 협재해수욕장은 하루종일 복작복작하는데 이곳은 마치 멀리 떨어져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곳이다. 식당 한켠에 진열된 오래된 카메라들도 역사가 있어보이면서 뭔가 과묵해보인다.

 
반찬들이 나온다. 뱃속에서 갑자기 얼른 집어넣으라고 난리다. 얼마만에 보는 두부구이, 버섯인가? 이 감동적인 광경을 찍어야해! 내가 사진 찍는 동안 한개 남은 저 두부 건드리지 마! 매콤하게 무친 오이며 호박나물, 부추무침, 감자조림, 김치까지 모두 슴슴한 간과 함께 재료 본연의 맛이 난다.  된장찌개가 나왔는데 사장님이 '된장도 괜찮을겁니다'라고 했었지만 아니, 이건 정말 맛있었다. 고등어조림은 김치찌개를 못해줬다고 과하게 투하해준 김치와 감자의 맛까지 발군이라 싹싹 긁어먹었고 사진은 전혀 없다. 먹느라 너무 바빴다. 맛있게 배불리 먹어서 행복해진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다음날 아침. 이날은 해수욕장에서 좀더 놀다가 오후비행기로 서울로 갈 계획이다. 제주도에 더 있고 싶어서 가기싫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태풍 두 개가 오고있다는 일기예보를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아침식사는 당연히 조간대 밥집에서.

 

아침 먹으러 가서 찍은 사진. 돌담위로 저런 방울 같은 모양의 장식들이 다양하게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늘어서있다. 식당주변으로 이렇게 시원한 풍경이 끝없이 너르게 펼쳐진다. 아침부터 엄청 더워서 이만큼만 찍고 식당안으로 피신.

 
저멀리 아침 물질을 하고 나오는 해녀도 손가락크기만큼 보이고, 수평선 너머로 배도 지나간다. 저녁도 아침도 조용한 이곳. 나온 반찬들은 어제 먹었던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아니, 아침에도 맛있잖아! 어제 배고파서 과하게 맛을 느꼈나 했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딱 맛있는 맛이다. 성게미역국과 옥돔구이를 뚝딱 먹어치웠다. 역시 맛있다.(언어의 빈곤이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아이가 '난 배도 안고팠는데 많이 먹었어.'라고 한다. 항상 정량을 먹고 과식하는 법이 없는 아이인데 처음 먹어본 옥돔이 정말 맛있었단다. 엄마는 주인아주머니께서 너 주려고 따로 만들었다는 그 오뎅조림도 정말 맛있었어.  

예전에 TV에서 어떤 요리사가 '사람마다 입맛이 다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맛집은 어느 누가 와서 먹어도 맛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조미료를 쓸 수밖에 없다. 향신료도 많이 써서 맛도 더 강하게 내어야 하고. 식당은 이윤을 내는데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먹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것은 가정에서 준비하는 식사가 최고다. 가정이 맛집의 흉내를 내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을 했다.

조간대 밥집에서 우리가 그토록 맛있게 먹었던 두 번의 식사가 어느 누구에게는 불만스러울지도 모른다. 아주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갔는데 뭐야, 흔한 식당이잖아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식구는 참 좋았다. 내어주는 물 한잔도 그냥 생수가 아니었던 조간대 밥집. 모든게 다 의미가 있고 생각이 들어있고 정성이 깃들어있어서 먹으면서 기뻤고, 먹고나니 힘이 났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생각이 났다. 가정식. 그것 말고는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너머에 (peacoal)

82를 사랑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방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에이프릴
    '14.8.7 9:34 PM

    저도 태풍을 몰고 제주도 다녀왔습니다. 시댁식구들과 제주에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결항,지연,또결항 결국은 다 못오셔서 저희 세식구만 태풍속에 나가지도 못하고 ㅠㅠ
    제주공항은 이틀째 난리법석이더군요.중국인지,한국인지 난리 법석이였어요~

    가는31일부터 밥사먹었는데 맛집이라고 적어간곳은 정말 다아니였습니다. 이번엔 덤장까지도 맛이 변한거 같았어요.
    삼부식당,덕성원,미향등 남편이 오죽하면 맛집아닌곳 가자고...
    다만
    서귀포 이마트근처에서 맛있는 빵집을 발견해 이것저것사서 한번해결했구요~
    성산일출봉맛집이라고 찾아간 집은 최악이였답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 쌍둥이아빠 이휘재가 사먹은 오메기떡과 보리빵도 괜찮았어요.

    삼박사일이 참길었던 여행이였습니다.

    맛집올리신거 잘보고 골라가셔야 할거같습니다~~~

  • 2. 지금은
    '14.8.7 11:29 PM

    제주도는 육지와 다르니 대충 먹고 다니라는 경험자들의 조언에 따라 맛집은 대체로 피해갔던 저희에게도 온통 지뢰밭이었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될까요? 성산일출봉 앞에서 묵으면서 아침을 먹었던 한 식당의 성게미역국과 전복죽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비릴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였습니다. 조리기술문제가 아니라 재료자체의 신선도가 정말 의심스러웠지요. 밑반찬까지 어느 하나 먹을만한게 없었는데도 계속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들. 저희처럼 모두 관광객들이었구요.ㅎㅎ 식당의 깨끗한 외관에 기본은 하겠지 하며 들어갔던 곳인데 차라리 조금전에 지나왔던 낡고 후즐근해보이던 그 가게에 갈걸 하고 후회했어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밥을 먹고 있어서 어떨까 해서 망설였었거든요. 나중에 그 동네를 산책하다가 본 소박한 찰보리빵집에서 개당 500원씩 하던 찰보리빵과 쑥빵을 맛본다고 5개만 사갔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순식간에 다 먹어치우곤 많이 사올걸 하고 후회했어요. 결국 여행의 의외성을 즐겨야겠지요.ㅎㅎ

  • 3. 밀랍고릴라
    '15.1.16 11:17 AM

    제주여행을 계획하는 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맛집은 역시 소문이 반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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