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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제 목 : (키친테이블노블) 11. 상처의 생존력

| 조회수 : 2,583 | 추천수 : 4
작성일 : 2020-03-13 00:06:03
#키친테이블에서 앉아 혹은 누워 쓰는 소설
 #키친테이블소설_첨이쥬?
#첫회는 여기로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6&cn=&num=2954020&page=1

도착한 리버사이드 아파트는 맨해튼에 있는 그 수준의 다른 아파트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로, 대리석으로 꾸며진 입구에는 24시간 상주하는 안전요원이 있었다.
나는 그의 안내를 따라, 샹들리에 아래 소파가 놓인 로비를 지나 안 쪽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운동기구가 놓인 짐과 부엌이 딸린 파티룸 옆에 있었다.
오래되어서 여기저기 구식인 구조임에도 잘 관리되고 유지된 흔적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풍기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나서 공용 출입문과 우편함의 열쇠를 받아 들고, 6층의 아파트로 올라갔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기억들로 산만했었는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니 정신이 차려졌다.
침이 꼴깍 삼켜졌다.
엘리베이터가 6층에서 서자, 서둘러 내렸다.
눈으로 아파트들의 홋수를 훑었다.
진수덕화백과 이정선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603호였다.
코너에 있는 아파트였다.
내가 머물 아파트에서 한집 건너에 있었다.
이 아파트 건물은 한 면만 허드슨강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그 리버뷰를 각 아파트에 최대한 골고루 배분하려고 설계를 한 것 같다.
아파트가 생활 동선의 편리보다 강을 볼 수 있는 것에 중점이 되어, 모두 긴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천천히 복도를 지나서 내가 머물 아파트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 갔다.
누군가가 지금도 살고 있는 듯한 아파트의 공간이 나의 방문을 맞이하듯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주인은 오십 대 독신여성으로 가족 없이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제대로 상속을 할 가족마저 없어서, 애리조나에 사는 그녀가 만나지도 못한 조카뻘의 두 명에게 모든 유산이 돌아갔다.
그들은 Estate전문업체에 위임해 재산을 처분함으로써 뉴욕까지 오는 수고를 덜었다.
Estate업체 직원들이 집안의 물건 리스트를 작성하느라 집을 헤집고 돌아다녔나 보다.
온 집안 여기저기 생활용품들이 소란스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사람이 손길이 머물렀던 아파트는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펫처럼 햇살을 가득 담고 나를 반겼다.
현관에 서서 멍하니 햇살이 가득한 어지러운 살림살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중얼거렸다.

“웰컴 투.. 뉴욕시티.. 쎄라”






그 공간에서 손님방으로 보이는 곳을 찾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랭을 만나러 나갔다.
나가는 길에 진수덕화백이 사는 아파트를 흘낏 쳐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서부터는 뜀박질하듯이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랭과의 약속 장소는 컬럼비아대학의 코너에 있었다.
랭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다고 팔짝팔짝 뛰었다.
오지랖 넓고 에너지가 충만한 랭은 정변의 말 많은 여자버전같았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에 마신 라테 한잔이 전부라서 속이 쓰려 왔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난 뒤에 랭이 디씨에 사는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배도 고프고,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며 안부를 나누는 촘촘한 대화가 피곤하기만 했다.
먼저 나온 커피에 크림을 잔뜩 부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랭이 궁극적으로 궁금해하는 정변의 안부로 직진했다.
“다들 잘 지내. 정변도 여전하고.. 여전히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서 채이고 다니느라 좀 바쁘긴 해도..”
랭이 내 말에 활짝 웃었다.
“그는 왜 그렇게 차일까?”
랭의 목소리에 기쁨이 반, 안도가 반 묻어났다.
“눈치가 드럽게 없으니까!”
우리는 둘 다 웃었다.
랭이 웃는 나를 쳐다보다 말했다.
“마크(정변의 영어 이름)가 어제 전화를 걸어, 쎄라를 부탁했어. 하루에 한 끼를 쎄라랑 꼭 먹으라고..”
나는 랭을 쳐다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도 웬 오버인가 했는데, 아까 쎄라를 보는 순간, 마크가 걱정할 만하구나 했어.”
“ 내가 어땠는데?”
“ 쎄라가 우리 단체로 법률봉사 처음 온 날도 그런 표정이었어. 법률 조언을 하러 온 사람인지, 법률 조언을 받으러 온 사람인지 헷갈리는 얼굴 말이야.”
음식이 나오자, 허기가 몰려왔다.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몸에 탄수화물이 들어가고, 카페인 음료수까지 곁들이니 살 것 같았다.
랭의 말이 찔려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물론, 랭이 듣고 싶어 하는정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나야말로 그의 사리사욕 없는 일 욕심에 죽어 나는 사람이니, 정변을 그 누구보다도 씹을 권리가 있다.
한참을 그를 뒷담화했다.
랭은 깔깔거리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쎄라, 그런데, 죽은 사람의 물건이 가득한 아파트에서 머무는 것 괜찮겠어? 무섭지 않을까?”
랭이 걱정스럽게 물으며, 원한다면 좁긴 해도, 자신의 방에서 재워주겠다고 한다.
랭이 머무는 컬럼비아대학의 숙소도 리버사이드에 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심란하긴 하지만, 괜찮아. 죽은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어.. 죽은 사람은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럼, 쎄라는 뭐가 무서운데?”
“음.. 글쎄.."
잠시 생각을 하다가, 솔직하게 말을 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전남편을 마주칠까 봐 무섭지..”
랭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쎄라, 니 Ex도 죽은 사람이야. 남편으로는 말이야.”




​랭의 말이 맞다.
나도 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랑 함께 산 일 년이라는 시간보다 몇 배의 시간이 흘렀다.
이젠 그도, 나도, 서로를 추억할 만한 그 어떤 연결고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은 쉬이 죽어도 상처는 오래 살아 남더라.
때를 기다리는 그림자처럼, 사람에게 달라 붙어 숨을 죽인다.
평상시 바쁜 일상은 깜깜한 밤과 같아서, 그림자는 어둠과 구별되지 않게 섞여 있다.
면역력이 가장 약해질 때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해와 거리가 최대치로 멀어지는 해 뜰 녘과 해 질 녘에, 가장 길고 짙은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힘들 때에 가장 힘들게, 아플 때에 가장 아프게, 서러울 때에 가장 서럽게 등장한다.
누군들 이미 끝나버린 관계를 붙잡고, 계속 통곡하고 싶을까.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랭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고 있는 말이라도, 가장 상투적인 말이라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걸,
귀로 듣는다는 건,
혈관에 따뜻한 피를 수혈받는 것 같다.
랭은 정말로 나와 하루 한 끼를 날마다 같이 할 작정인 듯했다.
추수감사절도 같이 지내고,
컬럼비아 대학의 도서관도 같이 이용하고,
생기 넘치는 랭이 줄줄이 읊어대는 계획을 들으며,
나는 정변이 말수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랭이 그동안 뜸하게 먹었던 한국음식을 먹자고 했다.
32번가에 있는 한인타운에서 내일 만나 저녁을 먹자고 했을 때에,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랭이 나를 핑계로 정변에게 계속 연락을 할 것을 알기에 그러기로 했다.
배가 부르고, 친구가 옆에 서서 같이 걸으니,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아까처럼 사납게 느껴지지 않았다.
리버사이드 아파트에서 한 블록 아래에 랭의 기숙사인 Carlton Arms에 먼저 들여 보냈다.
그리고는 총총걸음으로 리버사이드 아파트의 앞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아래로부터 6층을 세어서 603호가 있는 곳를 올려다보았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긴 공간이 코너에 있었다.

#세라,#첫째딸,#버지니아페어팩스,#파트너는_정변호사_그는_지웬수

#코로나바이러스 끝날 때까지 달릴 소설 (근데, 언제 끝나..아놔ㅠㅠㅠ)
#이래봬도 추리소설
#사랑마저 습관이라..이 소설의 가제입니다(피드백과 다른 제목 제안 부탁)
#첫번째 그림은 Yves Tanguy, 두번째는 앙리룻소, 마지막 조각상은 헨리무어의 왕과 왕비
#잦은 포스팅을 원하는 사람은, 도배에 물타기 할 포스팅하기!
#맞춤법, 띄어쓰기, 시대착오적 혹은,뜬금없음, 지적환영
#피드백과 입소문은 더 환영
#그러하다

2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다람쥐여사
    '20.3.13 1:25 AM

    아 여태 안자고 계속 기다렸어요
    반가운 마음 가득 담아
    일단 댓글달고 읽으러 갑니다

  • 쑥과마눌
    '20.3.13 3:18 AM

    환영합니다!

  • 2. 다람쥐여사
    '20.3.13 1:36 AM

    잘 읽었어요
    요즘 좀 고민이 있었는데
    딱 제 마음에 와서 박히는 문장이 있어요
    ...나도 안다...

    물타기 포스팅을 제안하셔서
    요리바보인 저도 얼른 새 내용 읽으려면
    라면이라도 끓여야 하나 생각하게 하시더니
    이제는 제목을 제안해보라시니
    참 독자들을 부지런하게 만드시는 작가 슨상님이시네요

  • 쑥과마눌
    '20.3.13 3:19 AM

    원래가 손이 많이 가는 타잎입니다.
    미인들이 그런 면이 있지요.

    혼자 달리면, 의무감이 없어서리
    어느 날, 슬그머니 사라진다죠.
    같이 어깨를 걸어야 부담백배하여 쓰게 된답니다 ^^

  • 3. 블루벨
    '20.3.13 4:52 AM

    저녁으로 두부많이 넣고 된장찌개 하나에 시원하게 잘 익는 깍두기로 때우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뭔가 특별요리를 해서 물타기에 동참을 어여해야 하는데^^;; 마음은 그러합니다.

    쎄라는... 음...마음이 따뜻하고 배려가 깊은 좋은 사람이네요.
    쎄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꼭 안아서 토닥토닥~ 해주고 싶어요. 전남편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 얼른 치유하기를. 추리소설에도 로맨스가 덤으로 오겠지요?

  • 쑥과마눌
    '20.3.13 9:38 AM

    특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집밥이 대세인 요새 아닙니꽈아아.

    단지 걱정되는 것은 우리 애들도 휴교가 될듯하여...ㅠㅠㅠ

  • 4. Harmony
    '20.3.13 8:56 AM

    오늘 관공서 약속이라 나갑니다.
    짧게보고 .ㅜㅜ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어요.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야해서..

    위에 그림
    초현실주의의
    프랑스 태생 이브탕기Yves Tanguy 의 그림입니다.

    서치한 것 중.)
    Yves Tanguy는 파리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 화가였습니다. Tanguy의 그림은 기괴하고 비논리적이며 독특합니다. 그들은 이상하고 추상적 인 모양, 암석 및 금속 구조물로 가득 찬 광대 한 꿈 같은 풍경을 묘사합니다. 고독, 공허, 무력감은 반복되는 주제이며 제한된 색채로 그렸다. 그는 또한 그의 작품의 제목에 영감을 얻기 위해 정신과의 교과서를 사용했습니다.

  • 5. Harmony
    '20.3.13 9:09 AM

    뛰어나가기 전 ㅜㅜ

    조금전 감상하던 그림 같이 보아요.


    Yves Tanguy의 그림들


    http://www.youtube.com/watch?v=tV6yJnsVWj8



    http://www.google.com/search?q=yves tanguy&tbm=isch&rlz=1C1SQJL_koKR826KR826&hl=ko&ved=2ahUKEwid296JkJboAhWLyYsBHQtzDvoQrNwCKAB6BAgBEDQ&biw=1903&bih=969

  • 쑥과마눌
    '20.3.13 9:33 AM

    고치러 왔더니, 답글이 똬악!
    대단하신 분입니다.
    짝짝짝!

  • 6. 테디베어
    '20.3.13 9:42 AM

    사랑마저 습관이라.....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쎄라에 푹 빠져~ 손님방에 같이 있는 것 같아요~
    내일 한인타운 저녁약속이 기다려집니다.

    화이팅하시고 힘나실 때 달려주세요^^

  • 쑥과마눌
    '20.3.13 10:42 AM

    화이팅입니다.
    한인타운 저녁약속을 하고픈 밤입니다.ㅠㅠ

  • 7. 초록
    '20.3.13 10:24 AM

    그림자....
    약해질때를 기다려 들어오는게...
    때로는 약일수도 병일수도 꽃일수도.....--

    근데 603호는 불이 켜져있는지 꺼져있는지 느무 궁금하네요 ㅎㅎ

  • 쑥과마눌
    '20.3.13 10:39 AM

    약일수도 병일수도 꽃일수도..2222

    사진이 없어졌었다는...ㅠㅠㅠ

  • 8. 미달이
    '20.3.13 11:35 AM

    키친토크에 물타기용 글 올리려고 했는데 모바일은 안되네요 털썩..
    둘째 낮잠 잘때 데스크탑 켜고 올리겠습니다
    최근 요리 사진이 무려 작년 봄이네요 ㅎㅎ

  • 쑥과마눌
    '20.3.14 11:36 AM

    묵힌 봄을 펼쳐 보시길..ㅎㅎ
    화이팅요!

  • 9. 고고
    '20.3.13 11:59 AM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운 긴 공간이 코너에 있었다.

    --> 이 편 마지막 구절이 참 좋습니다.

  • 쑥과마눌
    '20.3.14 11:37 AM

    신경 쓴 문장을 귀신같이 아심!

  • 10. 예쁜이슬
    '20.3.13 3:45 PM

    저도 물타기하며 응원차 올릴려니 모바일에선 사진이 안올라가는군요ㅠㅠ;

    알고 있는 말이라도, 가장 상투적인 말이라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걸, 
    귀로 듣는다는 건, 
    혈관에 따뜻한 피를 수혈받는 것 같다. 

    우왕...
    가슴에 울림이 남는 문장이에요
    (밑줄 쫘악~~/서한샘쌤 버전ㅎ)

  • 쑥과마눌
    '20.3.14 11:38 AM

    말보다는 의도가 더 아프게, 혹은 더 따스하게 들리더군요. 말은 마음이예요^^

  • 11. juju
    '20.3.13 5:29 PM

    왜때문에~!!! 한 편씩만 올라옵니까~~~~
    처음처럼 두편씩 올려주셔요!!!
    물타기용 글 올리고 싶은데 모바일로는 안된다고..
    폰 사진을 컴에 옮기고 그걸 다시 키톡으로 옮기는 과정은 제겐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가 금성 들러 오는 수준의 일이라..ㅠ

    근데 랭은 왜 정변한테 고백을 못했을까요..차일까봐? 좀 차이면 어때서..아님 뭐 이루어질 수 없는 장벽이라도?

  • 쑥과마눌
    '20.3.14 11:39 AM

    정변놈은 눈치가 읎써서 ..ㅠㅠㅠ

  • 12. 패터슨
    '20.3.13 11:28 PM

    아침에 글이 올라와 있지 않아서 잠시 궁금했어요
    오늘은 늦은 시간 읽어요.
    읽고 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끌림이 있는 글 좋아요~

  • 쑥과마눌
    '20.3.14 11:40 AM

    지가 좀 낚아유 ㅋ
    감사해요^^

  • 13. 소년공원
    '20.3.15 9:06 AM

    패어팩스 버지니아에서 맨하탄...
    몇 번 가본 곳이라서 그런지 막 눈으로 장면이 보이는 것 같아요.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저도 곧 글 하나 올릴터이니, 하루에 한 편씩은 꼭 올려주세요!

  • 쑥과마눌
    '20.3.21 2:46 AM

    감사합니다.
    이사 준비 잘 하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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