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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끼어 쏟고 가는 내 이야기.

이제는 조회수 : 1,580
작성일 : 2010-11-26 15:06:26
며칠간,
<남편의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네요.
슬쩍, 이 틈을 타 제 속도 한 번 털어놓으면
더 가벼워질까, 하는 욕심에서 주절주절 해 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 <그런 남자>, 버렸습니다. 제 인생에서 파냈어요.
물론 연애 8년, 결혼 8년. 성인이 된 이후 제 인생의 상당 부분도 같이 잘려나갔습니다.
그러고 난 뒤 5년이 지났지요.
바로 오늘 아침의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고,
이젠 전생의 일처럼 아득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그 일을 겪으며
제일 의아했던 것은
미친 사람같은 분노였습니다.
평생, <사람의 마음, 남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인생은 예측불허>라고 믿었었기에
저를 잡아먹을 것처럼 일렁이는 분노가 너무나도 괴로웠어요.

당시의 남편이었던 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유부남인 것을 알면서도 만난 그 여자
난생 처음 누군가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살의를 느끼면서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건가
이러다가 이 분노가 날 다 태워버리겠구나,
슬프고도 무서웠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꼴 사나운 온갖 장면들이
사람이 눈이 뒤집히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이해도 되고 나도 한 번 그래볼까, 상상도 하고.
그 똥물, 나까지 뒤집어쓰지 말자,
생각을 고쳐먹었다가 또 속이 뒤집혔다가, 그렇게 미쳐 갔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배신감과 분노>로 위장한 이 감정이
사실은 너무나도 깊은 절망이라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그걸 다 아는 너란 인간이 나한테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칠 수 있나,
이를 득득 갈았습니다.
자려고 누웠다 숨이 막혀 일어나 가슴을 치고 꺽꺽 울기도 했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제 경우 저를 미치게 만든 것은 사실 분노도 배신감도 아니었어요.

“뭐가 그렇게 좋았니?”라는 내 질문에
“같이 얘기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이, 발상이 너무 재미있었어.”라는 답변.

이젠 나는 더 이상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반짝거리는 사람이 아니구나.
누가 사랑할 만한 매력이 나에겐 없구나...라는 자괴감이
저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더라구요.
이 사실을 직시하고 나니까
타인에 대한 증오, 미움, 살의보다
훨씬 커다랗고 무서운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 없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멸감이 저를 잠식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떠났습니다.
저를 배신한 사람하고는 다시 어떻게든 잘 해 볼 수 있어도
저로 하여금 스스로 가치없고 자격 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 사람하고는
살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결말을 짓고 나서도
한 번 무너진 자기애는 회복될 기미가 없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행복하게 가볍게 살자, 수없이 생각하면서도
극심한 무기력증과 대인기피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지요.

이제는 지금을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스스럼없이 칭하고
그렇게 살아야지, 했던 방식대로 가벼이 즐거이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어쨌든 훌륭한 약이고
자기가 노력하면 대나무 마디처럼 인생의 매듭도 지어질 수 있는 것이고
인연이란 놓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음을
이제는 압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 년에 한 두 번
온몸의 피가 손끝으로 발끝으로, 다 싹 빠져나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꿈에서 경험하곤 합니다.

결국 인생은 상투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그 순간을 겪는 사람의 마음은 상투적일 수 없는 것 같아요.

.....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습니다.
두서없는 얘기, 쏟아놓고 갑니다.
IP : 124.138.xxx.126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0.11.26 3:11 PM (211.104.xxx.37)

    읽고 보니, 원글님이 매우 멋진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서울 사시면 친구 하고 싶어요.

  • 2. ㅇㅇ
    '10.11.26 3:18 PM (118.218.xxx.38)

    마음이 아프네요... 얼마나 아프셨을가.
    정말 시간이 약이죠. 저런 못된 남자 잊으시고 좋은분 만나세요...
    사랑 외모 이런것보다 의리있고 돈많은 남자루요.ㅎ

  • 3. 토닥토닥
    '10.11.26 3:19 PM (124.2.xxx.68)

    말없이 가까이 앉아 긴팔로 어깨를 감싸 안아드립니다......

    저또한 님과 유사한 일로 버금가는 절망을 맞았었으나, 지금은 마치 티눈을 빼낸것처럼 그 부분만 싹 잊고 푼수같이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간혹 낮잠결에 예전일을 꿈꿀때도 있지만 앞으로는 꿈조차도 곁에 오지 못하도록 단도리하고 살려 합니다

    그러나
    아시죠? 이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얼마나.......................힘든 시간들이었을지.....

    어떤 선택을 하여 지금 이시간에 이르렀든 그 모든 선택들은 피를 말리는 결과였을터
    저의 선택도, 님의 선택도 모두 최선이었을거예요
    우리 멋진 인생을 살아요
    행복하세요

  • 4. 이제는
    '10.11.26 4:13 PM (124.138.xxx.126)

    .님/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멋지다긴 과분하고 이래저래 겪으며 이기며 철이 좀 든 거겠지요.^^
    ㅇㅇ님/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아도, 정말 많은 것을 낫게 하는 것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버린다는 게 삶의 신비일지도요.
    토닥토닥님/예, 맞아요. 모든 선택은 그럴 수밖에 없던 거, 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탓 안 하고, 후회 안 하고, 끝까지 웃으면서 책임지려고 합니다.^^

  • 5. phua
    '10.11.26 4:42 PM (218.52.xxx.110)

    이혼은 정말 큰 용기지요.
    내 자신,자식, 그리고 그것과 같은 무게로 오는
    주위 사람들(친정의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털어 버릴 수 있는 독수리같은
    용맹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수리같은 용맹함을 가지신 원글님~~
    화이팅 !!!!

  • 6. ;;;
    '10.11.26 4:43 PM (58.229.xxx.59)

    이렇게 멋진 분을 두고
    딴짓을 하고 그 사람의 발상이 너무 재미있었어라고 하다니.... ㅉㅉ

    새로움에 대한 비현실적인 바램.. 그것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들었어요.
    시작할 때의 두근거림, 설레임 그 맛에 중독되어 계속 찾는거지요.

  • 7. ^^
    '10.11.26 6:43 PM (112.172.xxx.99)

    위로가 아니라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신 새 삶에요
    미련을 버리고 희망을 가지신 분에게요
    내 손에 들엇다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맘속에 다 잇잖아요
    알잖아요
    좋은것도 나쁜것도 아픈것도
    화이팅요

  • 8. 전문가
    '10.11.26 8:12 PM (211.108.xxx.67)

    가 말하길 단계가 있다고 해요..
    그걸 충분히 느끼라고 하더군요..
    님은 정말 충분히 해내셨습니다

  • 9. 이제는
    '10.11.26 9:43 PM (211.192.xxx.237)

    phua님/지금 생각하면 용기보단 거의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가차없이, 머뭇거림 없이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일을 겪고 나서 3년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고장나더군요. 하지만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완전히 죽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들은 다같이 살 방법을 찾는 거죠. 그 모습이 용기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비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구요. 말씀 고맙습니다.

  • 10. 이제는
    '10.11.26 9:50 PM (211.192.xxx.237)

    ;;;님/제가 어떤 부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해서 그런지, 전 상대방도 왜 그랬는지는 알겠더라구요. 땅에 발 못붙이고 사는 이상주의자에게 별빛은 얼마나 멋졌을까, 자꾸 땅으로 끌어당기는 나는 얼마나 지겨웠을까... 뭐 그런 거지요. 이해는 하는데 용서는 안되는 얄팍한 제 마음도 그냥 그래서 내버려두려고 해요.^^

    ^^님/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혼한 것이야말로 제 인생 최고의 반전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내 시야에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그때 새로운 인생이 열렸지요. 네, 마음이 전부는 아니어도 마음에 열쇠가 있기는 하더라구요.^^

    전문가님/ 네, 저도 나중에 알았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직시하는 것이 치유의 지름길이라고 하더라구요. 고통이 클수록 남에 대한 자리를 비우고 나에게 올인하는 게 남는 것이더라구요.

    모두의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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