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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남이 다시 한번 물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반가운소식 조회수 : 372
작성일 : 2010-10-13 13:15:08
명계남이 다시 한번 물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연극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 관람기
(노무현재단 / 강기석 / 2010-10-12)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고 너무나 비통해했던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저러다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가 힘들지 않을까”하는 우려까지 주었던 명계남이 드디어 연극무대에 돌아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노무현재단> 관계자들을 초청했다. 무료관람에 덤으로 잘 차린 저녁 한 끼 대접하려고 초청한 게 결코 아니다. “명계남이 복귀를 결심할 만큼 의미 있는, 심혈을 기울인 연극인데 재단 사람들이 먼저 보고 평가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그의 당당한 요구로 받아들였다.
하여, 8일 저녁 우선 형편이 닿는 재단 관계자들이 한명숙 전 총리를 앞세우고 그의 연극을 보러 갔다(‘한명숙을 지키는 사람들’과 ‘사람사는 세상당’ 당원들도 함께 했다). 아프리카에 있는 가상국가 ‘코르마 민주공화국’을 지배했다 몰락한 아르피무히마쿠(줄여서 ‘아큐’라 부른다 함)라는 독재자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정치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이라는 사전지식 정도는 가졌다.
좌석을 꽉 채우면 1백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소극장에, 복도는 물론 무대 앞쪽까지 두 줄로 어깨를 부비며 앉으니 2백 명 남짓 들어찼다. 연극이란 영화와 달리 관객이 배우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라는데, 나는 문득 이 소극장을 가득 메운, 20·30대가 주류인 이들 관객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 인사를 나온 연출자 탁현민이 간단히 연극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연극은 결코 어느 한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풍자하거나 비판할 의도가…”까지 말한 후 잠깐 멈추는 순간, 순식간에 관객석을 덮치는 실망감. 그리고는 탁 연출자가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재치있게 반전하자 “왁!” 터지는 웃음소리.
나는 금방 이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 편’임을 눈치챘다(‘우리 편’이라는 대사는 이 연극의 한 중요한 구성 요소다). 먹구름처럼 어둡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정치 현실에 짓눌려 있으되 결코 절망하지 않고, 이글거리는 분노의 불덩어리가 됐든, 가볍게 흔들리는 희망의 촛불이 됐든 가슴 속에 불꽃 하나씩을 품은 채,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격려하고자 이 극장을 찾은 우리 편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불덩이 가슴에 안고 본 연극
연극은 무대전환 없이도 독재자 아큐가 갇힌 감옥 속, 독재자 아큐의 집무실, 배우의 연습장소, 심지어는 영상을 통해 먼 산골로 배경을 바꿔 가며 명계남의 모노드라마를 중심으로, 기획자이자 연출가이며 또한 배우를 지향하는 여균동이 등장하는 2인극이 때때로 섞이면서 이어져갔다.
아큐는 독재에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 끌려 내려와 그 죄로 감옥에 갇혀 처형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니다. 퇴임 후 여유자적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훈장을 물어뜯은 개를 때려죽이고 그러다 보니 온 동네 개들을 다 때려죽인 동물연쇄학대범으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동네 개들을 삽으로 다 때려죽인 그 광기는 비록 놀랄 만하되 총살에 처해 질 범죄는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런 터무니없는 죄로 죽어야 하는 것을 억울해하는 아큐는 결국, 그를 독재자로 만들어 놓은 탓에 그를 독재라는 ‘중죄’로 처단하지 못하는 국민(혹은 군중)의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큐는 “너희들은 왜 뽑아놓고 지X이야. 내가 부정 선거했어?”라든지 “파시즘의 어원이 뭔지 알아? 파숑이야, 파숑! 패거리로 묶는다는 거지, 동창회, 향우회, 너희들이 만날 하는 거야”라면서 우리를 얼마든지 조롱하고 능멸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재자는 절대군주제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 있는 것이며 거짓말과 야비함과 교활함으로 군중을 조작한다는 사실을 명계남 등은 아큐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아큐는 가상의 아프리카 독재자가 아니라 역사 속의 히틀러이며 무솔리니이며 박정희이다. 또한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다시 불러낸 지금 이 순간의 이명박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계남 등은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극은 묻고 답한다. “독재자는 왜 광범한 공포를 조성하는가”-“군중은 두려운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해칠 때 덜 주저하기 때문이다”(마키아벨리). “독재자는 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가”-“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되기 때문이다.” (괴벨스).
희극인가, 비극인가 - 통쾌함과 불편함의 차이
한명숙 전 총리는 관람 후 조촐한 뒤풀이 자리에서 “오랜만에 정말 통쾌했다. 명배우의 씩씩한 귀환을 축하한다”고 덕담을 했다. 천박하고도 야비한, 평균 이하의 인격체에 불과하면서도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채 온갖 변명과 거짓말로 날을 새우는 독재자의 진면목을 직설적으로 폭로하고 공격하는 용기를 높이 평가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연쇄동물살해라는 희극적인 죄목으로 사형당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음직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무척 불편했다. 명계남 등은 독재자를 공격할 뿐 아니라, 자유선거로 그런 독재자를 만들어 내고 그 독재자에게 침묵하고 복종하는 군중의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나는 과연 그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 역시 한나 아렌트가 갈파한 ‘평범한 악’에 속해 있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호라티우스가 증오해 마지않은 ‘천한 민중’의 하나로까지 떨어졌다면 아큐의 삽자루에 맞아 죽은 개x끼와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극은 분명 비극인 것이다!
명계남은 자신이 증오하는 독재자를 연기하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그런 갈등 때문에 이 연극이 예정된 상영기간 30일을 못 채울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진담인 것 같지는 않다. 왜냐? 그는 배우이니까.
나는 어떤 한 배우에게서 “배우에게는 어떤 배역을 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 있을 뿐, 하기 좋거나 싫은 배역이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독재자를 경멸하거나 증오한다면,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 독재자를 경멸하거나 증오하게 만들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연극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며, 다음에는 불편함을 빼고 통쾌함만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와보기로 결심했다.
한 번 더 볼 이유는 또 있다. 이 연극은 트위터로 올라오는 관객의 의견을 받아 곧장 극에 반영하기 때문에 매일 연극 내용이 즉각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명계남이 대사를 잊어버리면 10분 정도 줄어들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면 10분 정도는 더 늘어난다고 할 정도다.
이 연극은 후불제다. 입장할 때 받아든 봉투에 관객들이 알아서 돈을 담아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돈을 안 내 연극이 중단될 것 같지는 않다. 명계남이 탁현민에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수입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언했다는데 정말 딱 그만큼의 수입이 들어온다고 한다. 중단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전국 순회공연도 계획 중이란다.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출처 : http://www.knowhow.or.kr/foundation_story/story_view.php?start=0&pri_no=99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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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반가운소식
'10.10.13 1:15 PM (58.235.xxx.68)출처 : http://www.knowhow.or.kr/foundation_story/story_view.php?start=0&pri_no=99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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