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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90년 노무현변호사]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님의 모습이 글에 고스란히 보입니다.
제가 노무현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때 그 분은 정치인이였지만, 글쓴이는 노무현님을 인권변호사로 만나게 됩니다.
글쓴이와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글은 참 감동스럽네요. 글속에 담겨진 노무현님의 모습도 참 새롭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노동자와 더 많이 가까웠던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은 꽤 깁니다. 아래는 글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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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
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여자들 건물)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남자들 건물)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
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
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
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
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1. 소금꽃나무 저자글
'09.6.6 1:20 PM (59.8.xxx.105)글은 하종강의 노동의 꿈이라는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2. 퍼오신 님께
'09.6.6 1:40 PM (115.143.xxx.107)정말 감사합니다.
2번을 뽑고 환호했던 2002년. 단일후보가 되시길 마음졸였고, 희망돼지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뒤 5년은 마음 아팠습니다. 실망도 알게모르게 컸고요.
그래도 미워도 울엄마..라는 심정으로 탄핵때 촛불을 들기도 했지요.
가시고 나니 너무 황망합니다만, 글쓴이께서 생각하시던 노짱의 모습은 청와대서 뵙긴 어려웠겠지요.
그런데 노짱께서 천국으로 가시고 나니, 이 글이 가슴을 후벼팝니다.
이제, 누가 아프고 고달픈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을까요.3. 퍼오신 님께
'09.6.6 1:56 PM (115.143.xxx.107)그런데 이 글을 프레시안에서 봤는데 댓글 내용에 공감이 가기도 했어요.
되레 가신 분께 원망만 늘어놓은 게 아니냐는.
저도 아까 말씀하셨던 것들에 분노했지만 누가 됐다 한들, 사정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엔
지금도 딱히 답을 하진 못하겠더군요.4. 참회
'09.6.6 2:02 PM (96.49.xxx.112)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따를 수 없었던 이유, 환경과 노동이었죠.
노무현대통령을 좌파라고 부르는 좃중동이 참 어이가 없는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물론 많은 노동자 분들, 농부님들이나 환경운동가 분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원망하고
그와 적을 두던 때가 있었지요.
저 역시도 실망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또 지지하고.. 그랬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분을 위해 변명을 하나 하자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많은 반발과 혼란을 다 견딜 수 없었을거예요, 우리 사회가요.
하나씩하나씩 이루고 싶어하시지 않으셨을까요,
그래도 전보다 많이 나아졌으니 민주주의는 바로 섰으니.. 하면서 저를 위로했었습니다.
도로묵이 되어버린 현실이지만
노무현대통령도 노동자에게 마음의 빚이 있으실겁니다.
제가 그런 것 처럼요.5. 저런
'09.6.6 2:19 PM (203.229.xxx.234)저도 저 글 이미 읽었었는데 한 며칠 화가 났습니다.
그토록 자신들을 돌봐준 사람을 왜 끝끝내 같이 하지 않는다고 내칩니까?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심보나 같아요.
노동운동 농문문제..그분들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분 들도 노통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위치와 입장에서의 한계도 좀 살펴 줬어야지요.
가뜩이나 빨갱이 취급하며 보수언론이랑 강부자들이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데...
임기 중반 이후에는 지자체에서 말도 듣질 않았대요.
하기사 임기 초부터 젊은 검사들 하는 꼴을 봐도 그랬지요.
결국은 같은 편인 사람을 그렇게 배신자 취급하고 보수들이랑 똑같이 그 분을 희화 하고...6. 초이
'09.6.6 2:30 PM (125.184.xxx.189)저런님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노동자,농민의 대표는 아닙니다. 누구보다 노동자,농민의 마음을 이해하시는 분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펴야 하는 정책들..본인인들 편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지금 만족하시는지요.
7. 원글이
'09.6.6 3:26 PM (59.8.xxx.105)노무현정신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이어 받자고 합니다. 노무현 정신이 무엇일까요?
이 글은 읽으며 그가 품었던 생각이 저 같은 사람이 쉽게 이어 받겠다고 하기엔 앞서나간 것들도 많았단 생각이 듭니다.
물론 대통령이 되어서 핀 정책 중엔 아쉬운 정책도 있고요.
노무현의 정신이 이어 받겠다는 둥 계승하겠다는 말은 하기 전에 그 생을 오롯히 찬찬히 돌아보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퍼 옮겼습니다.
'노무현의 정신'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만 본다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우리는 그가 또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분의 아내였다면 내가 그 분의 자녀였다면 내가 그 분의 친구였다면 대통령은 물론 정치는 하지 말았길 하고 바랄 것 같습니다.
글쓴이는 노동운동가로 그 분을 동지로 만났으니, 다음 생에선 동지로 만나길 바라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8. 우습네요
'09.6.6 3:58 PM (116.41.xxx.5)노무현대통령이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였다구요.
제 눈에는 그대들이 조중동과 한편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내치고 내몰던데요.
노동운동가와 대통령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대들은
다음 생애는 꼭 잘난 나리님으로 태어나 노동운동하면서 큰 소리 쳐보시구랴.9. 저 분에게도
'09.6.6 5:42 PM (211.208.xxx.209)자기 자리, 자기 입장이라는 게 있겠지만
참 남의 입장에서는 단 한번도 생각 안해주네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당신들 입장만 대변해주고 당신들 말만 들어주는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 진짜 좌파라는 사람들 너무 경직되어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한테 단 한번도 부드러운 눈길 보낸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들만 잘나셨는지....
그래서 저런 사람들이 구부러지면 한나라당으로 달려가죠.
이재오, 김문수 등등 참 많죠?10. 조아세
'09.6.6 5:45 PM (203.237.xxx.73)민노당 등이 정말 싸워야 할 세력들은 조중동과 한나라당이었는데
지난 5년간 국민들 대다수가 모두 힘을 모아 노통만 괴롭혔죠.
그래서 이제 한나라당이 집권하니까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제가 직장일을 하며 여러 분야의 분들을 만났는데
참여정부 때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여론을 조작하며 정책을 못피게 하고
실제 현실의 우리 생활에서는 민노당이나 진보적인 단체들도
아무런 대안없이 너무나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참여정부 발목잡는 것 많이 보고
우리 사회의 소수정당과 시민단체에 대해 실망한 적이 많았어요.
좀 믿어주고 힘을 보태어 조금씩 전진하도록 했으면 좋았을텐데...휴~~11. 양심선언
'09.6.6 6:44 PM (121.140.xxx.163)꼭 천국 가셨으리라 믿어요
천국이 있다면 꼭 가셨을 겁니다12. 저는 글쓴분이
'09.6.6 7:08 PM (82.225.xxx.150)너무 안 됐습니다.
지금까지도 시련이 많으셨고, 앞으로도 시련이 많으시겠네요.
노동과 자본의 흑백논리로만 세상을 보시는 글쓴이의 반대편에 족벌, 재벌이 있습니다.
그 자본가들도 그런식의 흑백논리에 아주 찌든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그 논리에 찌든 두 종류의 사람들은 계속 싸울수 밖에 없습니다.
자본가는 돈이 있어서, 영향력이 클수밖에 없겠죠.
그럼 노동자들은 ? 쪽수로 밀고 가야 되겠죠.
그런데, 요즘 세상에 현실적으로 과연 노동혁명이 가능하기나 합니까?
이데올로기 다 죽었거든요? 러시아도 자본주의 하는 마당에.
결국 기대할것은 시간은 걸리지만 공감대 형성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통해 구조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할수 있는 정책이 형성되는 겁니다. 문제는... 백날 민주노동당만 찍어봐야 절대로 거기서 대통령 안 나옵니다. 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별로 없어요. 그러니, 그나마 진보성향을 가졌다거나, 노동계에 호의적인 정치인들은 앞뒤를 가리지 말고, 다 끌어다가 연대를 해야겠죠. 그런데,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피해의식이 많고, 흑백논리에 빠져 있으니, 연대가 어떻게 되나요?
노동운동가들이 미움과 피해의식으로 자기들을 외톨이로 만들동안, 자본가는 대법원장을 변호사로 쓰는데... 대법관이 줄대고 서있는데... 정치권으로 들어갔다고 노무현 같은 사람을 그리 미워하면, 노동계에 인재가 없잖아요. 그러니, 발전이 없죠. 결국, 앞으로도 내내 시련이 많다고 할수 밖에...
노동상황이 30년전이나 지금이나 바뀐게 없다고 하시지만, 아마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운동가들도 바뀐게 별로 없을겁니다. 코앞만 보지마시고, 작전을 바꿔보세요. 30년후에는 다른 결과가 있을수도 .... 그저 잘 되셨음 좋겠습니다. 비정규직문제도 노동환경문제도....진보여, 제발 분열로 망하지 맙시다. 서로 미워하지 맙시다.13. 참담합니다
'09.6.7 6:26 AM (121.88.xxx.243)특히 비정규직으로 인간적인 삶을 열망하는 분들은.
외국처럼 사회 보장이 잘돼있는것도 아니고
처자식과 인간다운 삶을 살기 버겁습니다
이런분들에게 타협을 강요하기보다는 배려를 먼저 해주는게 사회적 도리가 아닌가요?
한나라당이 양도세 깎아주고. 다주택자 중과세 깎아주고 이럴때 민주당이나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은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 처럼 처절히 괴뇌하고 움직였나요
그런 사안들이 강건너 불 아니었나 싶네요
그 분들이 우리에게 오라 강요하기 보다는
우리가 가서 그 분들을 조금더 배려해야 맞잖았을까요?
우리라 써서 좀 그렇네요 죄송14. 원글이
'09.6.8 9:55 AM (59.8.xxx.105)댓글을 읽으며 (댓글의 도움으로) 글을 읽으며 느꼈던 실타래와 같았던 복잡한 마음이 조금씩 정리가 됩니다.
물론 모든 문제가 정리가 된 것은 아닙니다.
새롭게 정리가 된 것은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글로 이 느낌을 잘 정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 위에 지적하신 대로 글쓴이가 조중동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 듭니다. 노무현정부와 조중동이 한 편이라는 시각은 저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신문을 읽지 않고 조중동을 읽는 것이 더 큰 문제지요.
2. 비정규직에 대한 나누지 않는 정규직을 이기적이라고 바라보는 언론과 사회의 시각에 대해서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글에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불안감은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여를 많이 받으면 받을 수록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내 자식을은 직장 구해 가정를 꾸려 나갈 연봉을 받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어 사교육에 돈을 들입니다. 심지어 정치권에 뇌물을 퍼 주는 기업주도 나름 생존 본능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겠지요. 성공하면 성공할 수록 실패가 더 비참해 지니까요.
결국 같은 사업장내의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배려하지 않는 점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 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런 심리가 이해 될 수는 있지만 개선되어야 겠지요.
3. 그런데 2번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요.
과연 내 남편이 내가 비정규직과 임금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정규직이라면 손을 쉽게 내 밀까? 손을 내 밀수 있는 사람만이 손을 내 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지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고민이 되더군요. 같은 사업장의 정규직 뿐 아니라 비정규직이 없는 직업군에 근무하는 내가 나의 임금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여서 비정규직에게 도움을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하면서 제가 버뜩 드는 생각은 '내 남편은 급여가 적은데 내 남편도 줄여야 하나? 월급 많이 받는 사람들이 줄이면 되지. ' 저 역시 비정규직에 손 내밀지 않는 정규직에게 손 내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였습니다. 부끄럽게도.... 노력을 해야지요. "내 급여를 줄여서라도 내 세금을 늘여서라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뜻을 모아야 한다고요. 저를 자꾸 세뇌 시킬려고요. 바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나 때문이다. 내가 생각을 고처 먹어야 한다. 내 아이들이 비정규직이 되어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싫으면 나 부터 생각을 고쳐야 겠습니다.'
너무 우숩죠. 나는 안 변하면서 '니들이 문제야 니들이 이기적이야 그러니까 @@중공업 정규직이 급여를 @@중공업 비정규직에게 나눠 줘' 하고 있었던 제 모습이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문제에 손을 내 밀어야만 해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4. 노무현 정권시대에 더 힘들어 졌다는 글쓴이의 지적은 그 평가가 사실이라 할 지라도 대통령만의 잘 못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16대 대통령만큼 자신의 집권기간에 자신의 뜻대로 행한 것이 적은 대통령도 없을 테니까요.
5. 댓글에 지적하신 대로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걱정하는 길을 나는 밟지 않을려고 노력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러면 작은 차이로 편을 가르고 우리 서로를 나누지 않아야 겠지요.
또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구름이 아닌 햇님입니다. 따뜻한 말로 서로를 변화 시키고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아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민스런 글을 읽으시면 댓글 달아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글을 올릴때는 망설였는데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여러 분의 댓글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