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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생의 비애도 들어보실라우?

ㅠ.ㅠ 조회수 : 2,419
작성일 : 2008-10-15 15:07:11
1975년생. 이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같은 70년대생이 조금 있으면 마흔이 된다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박)명수 형님이 내년이면 마흔이시죠? 그냥 좀 얼빵한(?) 동네형 같다 하는 이미지였는데, 그런 이미지의 분이 마흔이 된다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75년생들 이야기도 하나 올립지요.



82년. 국민학교를 입학합니다. '우리들은 1학년'이라는 것을 배우며 3월 한달동안 운동장에서 지냈습니다. 우리학교만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군요. 통계적으로는 70년생이 제일 많지만 75년생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서울 변두리의 부천이라는 신도시에서 국민학교를 입학했는데 한 반에 60여명이 있었습니다. 교실이 모자르지요. 그래서 한 교실을 두 반이 나눠 씁니다. 그래서 나온 기묘한 방책이 뭔고 하니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는거죠. 오전에는 홀수반이 오후에는 짝수반이 교실을 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오전반과 오후반이 서로 교대를 하지요. 인구가 넘쳐나던 동네는 이런 일이 흔하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면 한참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진행되던터라 시골에서는 폐교하는 학교가 속출하기 시작한 것도 80년대부터인 것으로 압니다.



84년 LA올림픽을 합니다. 빰빠암빰빰빰 빰빰빰빠바밤빰빰빰. 빰빠빰빠밤 빠바밤 빠바밤 빰빰~하는 올림픽 응원가가 생각이 나네요.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정수라씨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히트합니다. 음. 정확한 연유야 기억나지 않지만, 이 노래는 대중에게서 자발적으로 인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미뤄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에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갈수록 정이 드는 논과반 우리의 가슴속에 희망이 언제나 넘쳐나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영예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곱씹어 부르니, 이건 뭐 가요가 아니라 완전히 국가네요 국가(國歌)!!

당시엔 한강 개발이 한참이었고, 그래서 한강변에 가면 지금은 고수부지가 된 그곳이 모래밭이었죠. 한강 바닥에서 퍼올린 흙들이 높은 산을 만들곤 하던 그곳에서 일요일마다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유람선이 돌아다녔고, 그러면서 우리나라 참 살만한 나라다 라는 생각을 저 노래를 들으며 부르며 자랐습니다. 정말 우리의 뚜렷한 사계절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북한과 비교해 봤을 때 자유로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도 했죠.

학교 운동회 때는 이 노래에 맞추어서 군무를 연습해서 공연을 했고.. 올림픽에서는 세계 10위에 들었다며 좋아하기도 했던. 국민소득은 2000달러에 육박하던 때였습니다.



86년 아시안게임을 합니다. 우리나라가 금메달 93개인가로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했습니다. 중국은 94개. 단 한개 차로 2위. 그것도 그 당시에는 굉장히 큰 이슈거리였나 봅니다.



87년. 민주화항쟁이 서울과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던 때. 당시 6학년이던 우리는 뭐 아나요? 호헌철폐라는 구호를 듣긴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다만 데모만 했다 하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최루탄 냄새에 시도 때도 없이 눈과 코와 입이 매운 경험을 했던 때입니다. 집에 가서 물로 씻으면 더욱 따가왔던 시절. 그 때는 데모가 그렇게 미웠고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던 시절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두환 대통령 각하가 데모하는 대학생들 때문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는 모습이 안스러워보였던 그 당시. 그리고 세상은 바뀌어서 직접선거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6학년인 우리에겐 그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또 한 걸음 나아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해 말 사람좋아보이는 보통사람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지랄맞던 야당에 정권이 넘어가지 않은 것에 안도했던 기억도 납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때, 우리는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한참 성에 눈 뜨던 사춘기 시절. 음란잡지를 알음알음 알던 녀석들도 있었고, 그저 산딸기니, 뽕이니, 애마부인이니, 감자니 씨받이니 하는 영화들의 비디오를 구해서 보거나, 심야에 할 때 엄마 아빠 몰래 훔쳐보면서 지식을 쌓곤 했었죠. 감자나 씨받이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이긴 하지만, 어린 우리들에겐 그저 야한 영화였을 뿐입니다. (나만 그랬나?) 나름대로 멋을 부리기 시작하던 때, 운동화하면 엘레쎄. 청바지하면 졸다체(조다쉬를 잘못 발음하여) 라면서 한껏 자랑하던 눈꼴시린녀석도 있었죠.

서울올림픽은 하나의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을 한다면서 썸머타임제를 실시했고 밤9시가 되어도 깜깜해지지 않는 풍경에 괜시리 큰길까지 나와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던 기억도 나네요. 학교에서는 단체로 경기관람을 갔는데, 주로 비인기종목 위주로 동원이 되었죠. 우리는 성남의 필드하키장에 갔습니다. 경기는 네덜란드와.. 독일이었나? 암튼 우리나라 경기가 아니었죠. 당연히 관심밖의 일. 여기저기 보이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돌아다니고, 여자들이건 남자들이건 반바지, 반팔, 심지어 탱크탑, 아예 웃옷을 벗은 남자의 모습 등을 보면서 충격을 먹고, 이제 막 배운 영어를 그들에게 써먹어보며 신기해하던 시절입니다.



90년. 중학교 3학년 연합고사를 치룹니다. 조금씩 우리세대만의 독특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연합고사에서 최초로 주관식이 나왔던 것으로 우리들은 기억합니다. 180점 만점에 12점인가는 주관식이었던... 그해 인문계 커트라인은 128점이라고 얼마전 어떤 친구가 얘기해주더군요. 우리 학교는 서울시내의 학군 안 좋은 곳에 있었습니다만, 128점이면 한반 58명 중 29-30등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잘하는 학교(강남 8학군) 같은 경우는 꼴지도 그 점수는 다 받는 곳도 있었고, 시골에 내려가면 절반 이하가 인문계를 가는 학교도 있던 때입니다. 지역간 학력격차는 그 당시에도 엄연히 존재하던 일이었죠. 그리고 그 해 우리 때부터 대학 입시의 큰 골자가 바뀐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정보 부족으로 뭐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그냥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겠지 하고 내심 여유 부렸던 때이기도 합니다.



91년. 고등학교 1학년.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서 이상한 시험을 보게 됩니다. 실험평가였지요. 이른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실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소한 형식의 문제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큐 테스트 같은 문제. 대부분의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설마 이런 문제로 대학 입시를 치루게 하겠어라며 반신반의하던 우리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2학년 2학기까지 학력평가식의 시험문제로 내신과 모의고사를 보아옵니다. 간간히 대수능 실험평가나 모의고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험 보고 나면 아이들 사이에서 많은 술렁거림이 있었죠. 비근한 예로..



이른바 8학군에서 전학온 어떤 녀석 8학군학교에서는 반에서 20등. 우리 학교에 오더니 전교에서 20등. 그런데 수능형식으로 시험 보면 또다시 반에서 20등. 그런데 400만원짜리 과외를 한다는 소문이 있고..



어떤 녀석. 머리는 안 좋아서 무척 열심히 공부하는 데도 반에서 4등까지 나오는게 최대. 근데 대수능으로 시험보니까 반에서 30등.



어떤 녀석은 머리가 너무 좋아. 근데 공부를 너무 안해서 반에서 30등. 근데 대수능으로 시험보면 반에서 5등.



본인. 중학교때는 1등도 곧잘했건만 고등학교 올라오니 반에서 5등. 죽어라 공부해서 반에서 2등까지 올려놓았더니, 대수능 보니까 반에서 4등. 어쩔 땐 10등도 하고..



어떤 녀석은 수업시간에도 죽어라 소설책만 봐. 선생님들에겐 맨날 야단 맞아가며 공부함. 내신 15등급중에서 10등급 받던 녀석. 반에서 20등 안에 들면 잘하던 녀석. 그런데 대수능으로 보니까 언어영역이 맨날 60점 만점에 58점. (본인의 경우 54점 정도 나오면 잘 본것으로 자평하던 시절. 학력평가식으로 시험 보면 거의 만점에 가까웠던 국어점수에 비하면 형편 없었음) 결국 나중에 진짜 수능 보니까 거의 전교에서 13등 수준.



저주받은 75년생이다 라는 얘기는 이때부터 75년 토끼들 사이에서 상당히 신빙성 있게 회자되기 시작합니다. 역시 가장 큰 것은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였죠. 미처 적응하지 못하던 녀석들도 있고, 너무 쉽게 적응하던 녀석들도 있고. 웃기는 것은 공부하던 녀석들이 혜택을 받는게 아니라 타고난 머리가 혜택을 받는다는 해괴망측한 논리에 많은 학생들이 좌절을 하던 때였습니다.



92년. 고2. 이렇게 공부만 하던 우리들에게 몇가지 문화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그해 2월 뉴키즈온더블록이 내한합니다. 새로운 공연형식에 눈을 뜬 친구들도 있었고, 그 빌미로 야자를 빼먹기도 한 친구도 있었죠. 그런데, 그 해 서태지가 정말 혜성같이 나타납니다. 당시 MBC에서 임백천씨가 사회를 보던 스타탄생인가 하는 신인 데뷰 무대에서 서태지와 그 일당들이 랩이라는 희한한 음악으로 신고식을 합니다. 당대 제일 잘 나가던 작곡가 등 3명이 심사위원이었는데, 그들의 그 똥씹은 표정이란..

당시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저와 제 동생(당시 중3)은 난생 처음 보는 랩과 춤동작에 흥분하여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의 혹평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X세대들은 통하는게 있었나 봅니다. 그 다음주 월요일 서태지는 완전히 화제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태지가 등장햇고, 당시 발라드와 트로트가 양분하던 한국 음악계는 댄스뮤직으로 완전히 통일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교실에서는 춤을 추겠다느 아이들도 서서히 생기고, 남자애들이라면 왠만한 브레이크 댄스 한두번쯤 연습해보지 않은 아이들이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93년. 8월과 11월에 두 차례의 수능을 치루게 됩니다. 웃기는건 8월과 11월 난이도가 너무 틀리다는 것. 난이도가 틀리면 원점수로 평가하지 말고 T점수나 표준점수로 평가를 하던가. 무조건 높은 점수를 제출하도록 규정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8월의 경우 200점 만점에 160점이면 약 1.5%였는데, 11월의 경우는 140점만 되도 1.5%였습니다. 근데 A라는 학생이 8월엔 155점. 11월엔 125점이었다고 치고, B라는 학생은 8월엔 140점, 11월엔 145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 경우 B는 퍼센트로 따지면 11월 퍼센트가 엄청 높아서 A가 상대가 안되는데 절대점수에서 무려 10점이 낮아져 버리는 결과가 생깁니다. 이런 일은 정말 비일비재했지요.

그리고 이때 대수능만 있었냐. 아니죠~. 본고사도 새로 생깁니다. 7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알았던 본고사가 새로 생기자, 그 정체가 묘연하였습니다. 여기저기 우후죽순격으로 본고사용이라는 참고서가 생깁니다. 그저 이상할 뿐이고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봐도 준비가 되지 않는 듯하고, 안 보면 불안하고. 사설 모의고사 업체에서는 약 30만원이 넘는 본고사 준비회원을 모집합니다. 전국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충 다 회원이 되어서 1년에 몇차례씩 있는 본고사 모의고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본고사를 보던 학교는 9개교. 여기에는 이른바 SKY, 성균관, 서강대 등 최상위권 대학은 다 포진해 있으니 상위권 학생들은 본고사를 의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던.. 하지만 준비를 할 수  없었던. 학교에서도 본고사 준비 특강반을 운영했는데, 역시 제대로 운영될리가 없죠.



그리고 94년. 우리는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누구나 그랬듯. 우리는 그간 엄청난 거짓말을 들으면서 자라왓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은 아예 존재조차 몰랐죠. 역사책에 기록도 안되어 있고, 언론에서는 쉬쉬했던 일이니, 분명 6살때 일어났던 일인데,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대통령으로만 알았던 전두환, 노태우가 사실은 그저 정권야욕에 사로잡힌 군인이엇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장로로써 나라의 운명과 장래를 걱정하는 민주화인사로 알았던 김영삼이 3당야합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김영삼 대통령 당선시, 18년만의 문민정부라고 새로운 정권의 등장이라고 선전했던 것도 사실은 군사독재의 잔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또 우리가 북한보다 더 우월할 것도 없는 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것도.



그렇게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면서.. 1학년은 원래 학고를 먹는거야라는 선배들의 말을 진리처럼 여긴채, 학고도 먹어주시고, 그래도 왠지 죄책감은 있어서 2학기 때는 공부를 하기도 했던 우리들입니다. 어느 친구는 이성친구 사귀는데에 진력하고, 또 어떤 친구는 알바하느라, 또 어떤 친구는 동아리 하느라 바쁜 20세의 시절을 보냅니다. 단돈 1만원이면 소박한 하루종일의 데이트가 가능했던 당시의 물가입니다. 영화를 보려면 종로나 충무로 정도는 나가줘야 됐죠. 대한극장, 서울극장, 피카디리, 피카소, 명보극장, 스카라 극장, 신촌에 오면 녹색극장, 신영극장 (기억나나요?), 신촌사거리에는 그랜드백화점과 그레이스백화점(지금은 현대백화점), 세미나하면 민토, 연대에는 독수리다방,



우루과이라운드때문에 쌀개방을 해야해서 데모하던 기억. 95년 연대점거농성, 별로 학생운동은 안햇지만, 몇가지 기억나는 시위현장이 있었죠. 그렇죠. 당시엔 학생운동을 하던 안하던 어느 정도 학생운동하는 학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변질된 학생운동이라며 목청 높인 친구들이 있기도 했고, 여전히 가열차게 학습하며 운동하던 진지하고 열렬한 친구들도 꽤 있었던 시절입니다.



가요계에는 김건모라는 걸출이 등장했죠. 94년 여름은 뜨거웠습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을 잘못된 만남이 달궈주곤 했던 것 같네요. (기억이 틀릴 수도)



90년대 초반은 암울하기도 하고, 경제적 호황이 있기도 했던 때입니다. 당시 선배들은 공부 많이 하지 않아도 다 좋은 기업에 취직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하지만, 학생운동하던 선배들에겐 예외죠.) 당시 알바비와 지금의 알바비는 거의 차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롯데리아 시급 1,800원-2,500원. 지금은? 비슷하지 않나요? 대학생 알바도 일주일에 2,3번 가면서 25만원이 보통, 30만원 받던 친구도 있고, 50만원 받던 친구도 있고. 지금 과외 알바비? 비슷하죠? 당시 20대 초반 초대졸들의 월급은 5-60만원이었습니다. 대졸이래봐야 80-100만원 정도였죠. 거기에 비하면 알바비는 엄청 쎘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과외 두 건과 공장 하나 다니니가 한달 140만원이 나오더군요. 지금으로 치면 약 300만원 정도에 필적하지 않을가 싶네요.



그런데, 반면 93년 성수대교 붕괴, 94년 아현동 가스폭발사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굵직굵직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93년  성수대교 붕괴땐 주변일이 아니었지만, 아현동 가스폭발사건때는 마침 30번 버스 (상신운수. 지금의 5714번 노선?) 타고 가던 길이었고, 또 내가 나고자란 동네이기도 해서 아래 남동생네 반에서는 이로 인한 피해학생이 부지기수였기도 했죠. 삼풍백화점 붕괴 때는 아는 친구의 누나가 그만 비명횡사를 하기도 했죠.



96년. 94학번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군대에 가있던 시절. 한국은 OECD에 가입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당시 과소비라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흘러나오지만 남의 일 같기만 하던 그 때.

그리고 얼마 안 있어 97년. 11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맙니다. IMF 구제금융신청.

우리는 IMF가 왔다.. 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외환위기로 인해서 IMF가 구제해주러 온 거였죠. IMF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구원투수인 셈인데, 여하튼 국민들에겐 IMF가 야속함의 대상이 되었던 그 시절. 그리고 그 IMF로 인해서 전례없던 어려움을 우리 국민들은 겪습니다. 돌이켜보면 90년대초반처럼 호황이던 때가 없었던 것입니다. 94학번 여학생들은 이때 졸업을 해야했으니 취직은 더욱 어려웠죠. 많은 여학생들이 졸업을 유예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던가,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는 삶을 시작합니다.



99년.. 이번엔 남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알아보는데, 여전히 IMF 여파로 취업시장은 얼어붙어 있고, 대기업의 채용인원은 소폭 늘기는 하였으나,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지고,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면 그나마 다행. 스펙이 부족하다고 느낀 친구들은 저마다 어학연수에 목을 메고, 그나마도 아니면 대학원에 들어가서 잠시 유예기간을 가지는 친구들도 상당수.



2000년. Y2K를 뒤로 하고, 원래대로라면 사회에 명실상부하게 등장해야했을 75년생들. 대다수가 아르바이트, 대학원, 공부 등등으로 자리를 못 잡았던 것 같네요. 본인은 한 중견회사에 취직을 하기는 하였으나, 친구들 만나면 그나마 직장 갖고 있는 제가 제일 나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친구들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건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서.. 대학원 다니던 녀석들이 졸업해서 이 곳 저 곳 좋은 곳에 취직도 하기 시작하고,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가 때려치고 교사하는 친구들도 자리를 잡고,

2002년의 열기를 뒤로 하고 2004년즈음에서야 75년생들이 그나마 사회에서 자리 잡지 않았나 기억을 합니다. 그러나 나이는 이미 30세. 결혼은 아직 안한 친구들이 대세..



그리고 08년..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75년생들. 요샌 친구들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다들 회사에서는 대리, 혹은 과장 초년병. 결혼은 60%정도는 한 것 같은데, 아직 안한 친구들도 꽤 있고, 또 결혼한 친구들은 세네살박이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 없는 때이기도 합니다.



아이고.. 이렇게 지난 시간 정리해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정리도 안되고 그냥 주저리주저리 써봤습니다.



IP : 203.250.xxx.43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같은 75년생으로
    '08.10.15 3:31 PM (125.141.xxx.246)

    공감이 많이 가네요^^
    철없던 6학년 시절, 젤 인상 좋아보인던 노태우와 이쁜 영부인 김옥숙이 좋아보이던거며,
    설마 이런 시험보고 대학 갈까라며 반신반의했던 수능시험하며 (진짜 내신이랑 수능이랑 차이 나는 애들 많았어요. 그쵸~), 대학가서 UR때문에 쌀개방 반대 시위한다고 선배들 따라다니던거 하며...
    IMF이후 몇 년간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구요...--;;;;
    제 친구들은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애들이 평균 3-4살 정도되는 평범한 대한민국 30대 중반들인데, 앞으로 몇 년이 어찌될런지 참...

  • 2. 공감
    '08.10.15 3:34 PM (218.39.xxx.237)

    수능1세대에다 어줍짢은 반쪽자리 본고사까지 부활된
    저주받은 75년생이란말---> 그때 당시 많이하고 다녔지요.

    공감 100%

  • 3. 사랑이여
    '08.10.15 3:34 PM (210.111.xxx.130)

    <텔레비전을 보면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두환 대통령 각하가 데모하는 대학생들 때문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는 모습이 안스러워보였던 그 당시. 그리고 세상은 바뀌어서 직접선거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6학년인 우리에겐 그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또 한 걸음 나아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해 말 사람좋아보이는 보통사람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지랄맞던 야당에 정권이 넘어가지 않은 것에 안도했던 기억도 납니다.>

    제 아들에게 요즘 네 친구들 명박이 어케 생각하남?
    아들: 전체 국민이 잘 알고 있잖아요. (끝)

  • 4. 라라
    '08.10.15 3:35 PM (221.154.xxx.23)

    네..저도 그 수능에 피본 75년 생 입니다.
    두번의 점수는 비슷한데...백분율로 따지면 11월에 본 것이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점수제로 하여....ㅜ.ㅜ...너무 억울하네요...지금까지도...
    INF시대로 인하여 어렵게 취직하고, 이제서야 사회에서 자리잡고 살지만...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냈네요...

  • 5. ..
    '08.10.15 3:37 PM (222.237.xxx.86)

    같은 75년생으로 많이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다행히(?) 저는 그 수능이라는 거에 혜택을 많이 본지라..그래도 8월 수능에 160점이면 2%대였던듯 싶어요.

  • 6. 저는
    '08.10.15 3:48 PM (221.139.xxx.171)

    79년생이지만 오전 오후반이 기억에 나네요... 저학년때만 그랬었는데, 전 나름 재밌었던거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인형놀이 한바탕하고 학교가는게 재밌었어요..

  • 7. 서태지
    '08.10.15 4:04 PM (124.57.xxx.54)

    서태지와 아이들 처음 나온 프로그램에서 혹평을 했던 사람이
    전영록씨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너무 떠버려서 전영록씨가 어떤 마음일까
    늘 궁금했다는...

  • 8. 전 그보다
    '08.10.15 4:08 PM (122.35.xxx.18)

    앞서는 나이지만 수능때문에 피해봤네요.학력고사 세대지만
    다음해엔 교과서가 바뀌고 그 다음해엔 수능으로 시험이 바뀌는 바람에
    어떻게든 대학 들어가야하는 세대였는지라 대학경쟁률이 사상최대였다는
    그 바람에 재수 꿈도 못꾸고 대략 눈물 머금고 들어간 대학에서 꿈도 못 펼치고
    이렇게 살고있네요.
    그 당시 대학가앞 지나가면 늘 이상한 최루탄 냄새에
    데모로 맞고 잡혀가는 대학생들 눈앞에서도 몇명 봤었네요.무서워라.

  • 9. 79년 98학번
    '08.10.15 4:22 PM (211.189.xxx.250)

    대학 붙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입학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했죠...
    IMF 전후 학번들은 죄다 고생했어요.

  • 10. 샤카레맘
    '08.10.15 5:25 PM (59.26.xxx.177)

    정말 공감합니다....

  • 11. 76년생..
    '08.10.15 5:43 PM (125.178.xxx.80)

    원글님의 상황, 그대로 쏙쏙 전해집니다. -_-
    초등학교 때 오전반 오후반.. 서울이었는데, 한 반이 50명 남짓이었어요..
    저 6학년 때, 88올림픽.. 학교에서 틀어줬죠. 보면서 응원하라고.
    중학교 입학시험 봤던 기억도 나네요. 중학교 졸업할 때쯤에 과고 간다고 난리쳤던 신기한 애들이 몇 있었는데..;
    고등학교 땐.. 제가 고 3 때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있었어요. (원글님 성수대교 사고는 94년도랍니다^^) 저도 그 다리 건너 학교 다녔고,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저희 학교 학생들 몇 명이 희생되어서..학교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지요.. 휴..
    남편에게 가끔 농담식으로 얘기하곤 합니다. 나 만난 걸 천운으로 알라고.. -_-;;;
    남편은 수능 1세대, 전 다시 돌아온 본고사 1세대.. 대학입시 얘기만 나오면 서로 본인이 더 고생했다고 우겨요. ^^;;;
    대학교 1학년 때 경북대까지 가서 한총련 몇 기 출범식에도 참여했었고,
    대학교 2학년 때는.. 공권력이 한총련을 공중분해시키는 걸 직접 봤습니다.. 연대에서 저항했었죠..
    신영극장, 그레이스 백화점..오래간만에 들어보네요. ^^
    IMF는...얘기를 말지요. 저도, 부모님도 너무 힘들어하시던 걸 많이 봐서.. 얘기를 꺼내고싶지도 않네요...

  • 12. 저 75
    '08.10.15 6:13 PM (218.209.xxx.145)

    수능은 변별력이 넘 없지 않았나 싶어요.예고도 없이 고3때 모의고사 몇번보고 대학시험을 봐야하고..어린나이였지만 뭐 이딴 정책이 다 있나 싶었어요.그리고 1차2차 난이도도 넘 틀렸고..전 2차보면서 망했다 싶어서 그냥 대충 시험보고 나왔는데(1차로 하려고) 택시타고 집에오는데 웃기는게 뉴스에서 이번 수능이 너무 쉬었다고 하는거였어요..전 너무 어려워서 죄다 1차시험점수 갖고 대학가겠군 했는데요.. 공부 정말 별로였던 친구들이 한반에 한명씩은 꼭 점수를 너무 잘받아서 수시(?)로 미리 대학합격해서 잘난척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졸업때 취업안된건 당연하고 결혼하면서 집값은 왜 이리 오르는지..정말 잘나고 똑똑하거나 능력있는 부모님을 둔 75아니면 이거 먹고살기 힘들다 생각들었네요..

  • 13. good
    '08.10.15 6:35 PM (222.232.xxx.5)

    같은 나이로 공감해요.

    글 정말 잘 쓰셨네요.

    저도 당시엔 데모냄새(최루탄 냄새죠)를 멈추게 해주었다며 노태우를 좋아했었어요.

    88년엔 과천에 마술경기(말타고 허들 넘는것)을 단체관람했었고

    91년, 고1때 우리반에도 뉴키즈온더블록 콘서트에 다녀온 아이가 있었고

    92년, 고2 여름방학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풍이 대단했었어요.

    수능은... 제가 1차보다 2차에서 10점이 올라서, 메이저 신문사에 백분율로 응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탄원서도 써봤네요.

    ---> 이부분 읽으면서 뭉클했어요. 나만이 겪은 것 같은 이 억울한 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니요...

    그리고 IMF와 취직이 어려웠던 것. 그덕분에 이십대에 사람구실 제대로 못하고

    아직도 서른이 넘어 기반을 못 잡고있네요.

    물론 뛰어난 소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리 잡고 우뚝 섭니다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시대가 어려우면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님 글 잘 읽었습니다.

  • 14. 추억이 새록새록
    '08.10.15 9:55 PM (124.50.xxx.169)

    저도 4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왔는데 한반에 70명이 넘었고 오전/오후반했었어요.
    오후반 하는 날은 느지막히 일어나서 학교갔었죠.

    그리구 중3연합고사는 180만점에 체력평가가 20점이었던가요? 암튼 200점 만점이었는데
    저 193점 받았답니다 ㅋ
    게다가 수능은 11월 것이 몇점 점수가 더 올라서 결국 그 성적으로 대학갔구요.
    (기구한 인생이여~저도 탄원서 생각했었거든요.)
    캐나다 어학연수 갔었는데 imf터져서 귀국날짜를 서둘렀다죠.
    (그 해에 다이아나 황태자비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구요.)

    고2때 서태지가 바람같이 나타나서
    그 이후 제 수학정석책표지는 언제나 서태지였습니다.

  • 15. 저.. 77년생
    '08.10.15 10:45 PM (121.165.xxx.105)

    저희 반 68명에서 72명정도까지 있었습니다.. -_-;;;

    울학교 제가 2학년때 오전/오후반 없애겠다며.. 학교 증축했더니...
    정부에서 반을 늘려서.. 결국 오전/오후반 계속 되었습니다...

    72명... 쌤들 어떻게 가르쳤을까... 후후
    남자 38번인가 까지 있었구.. 여자도 36번인가까지 있었죠... 허어어억...

    요즘은 한반에 28명인 곳도 있다던데... 흐흐흐...

  • 16. 저도94학번
    '08.10.16 6:37 AM (115.88.xxx.164)

    정말 공감가네요..까먹었던 일도 생각나구요..수능1세대..전 수능덕에 대학갈수있었어요..평소실력보다 수능점수가 너무잘나와서...4년제갈수있었거든요...졸업후..취직할데없어서..너무 힘들었고..그때 막유행하던 다단계에 친구2명빠져서 그때돈2000만원날리는것도 봤고...그때 시작을 잘못하여서..(저 중소기업에 취업겨우했거든요) 줄창 박봉에 형편없는 인맥...현재까지..별볼일없는인생이네요..
    이럴때 또다시 국가위기라니..정말 힘듭니다

  • 17. 원글님
    '08.10.20 5:46 PM (212.120.xxx.130)

    이야 정말 글 잘 쓰셨어요. 동지애가 팍팍 느껴집니다...
    윗 분 친구중에 다단계 빠진에 저 유인해서 꼼짝없이 당할뻔 했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해도 고등/대학 시절으론 절대로 다시 가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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