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만난지 38년째이다.
아내가 요리를 잘하는 편인지 모든 집안 행사에 혼자서 수고를 하는 것 같았다.
특히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
몇 일전 오전 아들과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별안간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주섬주섬 모아 끓였다. 한 2년만에 끓이는 것 같다.
호박 절반, 감자 두알, 양파1개, 된장 3스푼, 청양고추3개, 고춧가루 약간, 중상크기 멸치 20마리,
또..... 파 뿌리 쪽으로 약간....
그릇에 물을 붓기도 전에 재료가 거의 뚜껑까지 올라오는 양이었습니다.
한 30분을 끓이니 국물이 그릇주변뿐 아니라 레인지로 넘쳐 난리 부르스였고
아마도 불을 줄인 채로 10여분을 더 끓이고 맛을 보니 씁쓸한 게 아내가 끓인 것과는 맛이 다르다.
작년 초 혼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근처에서 살고계신 어머니께 가서 말동무도 되어 드릴 겸
홀로 계신 당신의 몸과 마음의 잦은 아픔을 잊게 하려고 된장찌개도 끓여보고 반찬도 만들어 봤는데 영 아니다. 아내는 독립운동(?)을 하러 다니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나를 대신하여
직장에 다니면서 매 토, 일요일은 어머니를 수발했습니다.
다 끓은 된장찌개를 혼자서 먹으려 하니 맛도 그렇고 분위기도.....
이걸 버릴까하다가 그냥 놔 둔 채 오후에 볼일을 보고 저녁에 KBS 앞을 촛불집회 다녀서
항상 그렇듯이 새벽 12시 반이 넘어 귀가 하니 놓고 나간 된장찌개 그릇이 옮겨져 있었다.
물론 가정을 멀리한 죄로 평소에 대화를 잘 안하는지라 눈치만 보고 있으려니까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된장찌개가 식탁에 올라와 있는 채로 한마디를 건낸다.
아내 : 된장 몇 숟갈 풀었수?
나 : 세숟갈
이 된장은 한 숟갈을 넣어야 하고 감자도 너무 크게 썰었단다.
아내가 물을 더 붓고 다시 조리를 했는지 첨 맛이 아니다.
아마 애초 아내가 끓인 것이라면 지금 쯤 그릇이 비워졌을텐데 내몫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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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끓인 씁쓸한 된장찌개
용 조회수 : 490
작성일 : 2008-09-30 18:47:08
IP : 118.33.xxx.56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웃음조각^^
'08.9.30 9:38 PM (210.97.xxx.7)살림 7년차인데 아직도 맛난 된장찌게 끓이는게 쉽지 않네요.
원글님께선 아내되시는 분의 음식맛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마음 깊이 있으신 것 같은데.. 자주 내색해주세요.
그러면 아마 많이 좋아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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