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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한민국 역사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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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08-16 19:43:11
[기고] 대한민국 역사가 위태롭다
입력: 2008년 05월 13일 18:10:28
모래성 위에 지은 집은 파도 한 번이면 쓸려가 버리고 만다. 기초없이 지은 집을 화려하게 장식해도 거센 바람이 불면 다 날아가 버린다. 요즘 일각에서 추진하는 ‘건국 60주년 사업’이 그 모양이 될까 우려된다.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대한민국이 언제 건국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건국 6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4월22일자 경향신문에 필자는 올해가 건국 60주년이 아니라는 글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에 수립된 것이 아니라, 1919년에 수립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로 수립되었고,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1948년 8월15일 ‘정식’으로 수립되었다는 논지였다.
이에 대해 어느 신문이 “올해는 대한민국 탄생 6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면서 “대대적인 국민 축제로 나라의 환갑을 맞자”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글쓴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닿아 있다”며, “임시정부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금이 간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올해가 대한민국 탄생 60주년”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에 대한 논리나 근거도 없다.
올해가 건국 60주년이란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는 몇가지 예만 보아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1920년에 창간되었다. 창간 후 일제 치하에서 여러 차례 정간을 당하기도 하고 폐간된 적도 있다. 그러나 두 신문은 해방을 맞아 다시 간행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아·조선일보가 창간을 해방 후부터 따지지 않는다.
고려대가 2005년에 성대하게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1905년 이용익이 설립한 보성전문학교부터 연원을 따졌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란 이름은 1946년 미군정청 아래서 정해졌다. 설립자도 다르고, 학교의 이름도 달랐지만 1946년을 건학의 출발로 삼지 않는다. 연세대, 이화여대 등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그리고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가 역사를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일반적인 역사의식이고 역사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임시정부의 역사만 제외시키고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더욱이 역사학자들이 앞장서서 건국 60주년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할 말을 잃는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과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왔다. 그렇지만 건국 60주년이란 주장을 보면서, 정작 우리 자신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것을 왜곡하면서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일본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중국에서 휘몰아쳐 오는 바람, 여기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역사가 위태롭다.
<한시준 단국대 인문대학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131810285&code=...
[기고]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입력: 2008년 04월 21일 17:51:48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에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 대다수가 그렇게 알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언제 어떻게 정해졌는지, 또 대한민국이 어떻게 수립되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 같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그것을 수립하는 근거를 밝혀 놓았다. 7월17일 제헌헌법 전문에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란 것이 그것이다.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를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는 말이다. 3·1 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일컫는 것이고,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것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을 가리킨 것이다.
임시정부는 3·1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 모여 1919년 4월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수립했다.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로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였다. 임시라는 것은 영토·주권·국민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코자 한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결정되었고, 그래서 48년 국호를 그대로 ‘대한민국’이라고 하였다. 연호도 임시정부에서 쓰던 것을 따랐다.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한 것이다. 정치체제도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마련된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수천년 동안 군주주권의 전제군주제였다. 이것이 임시정부 수립을 계기로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제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그것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대한제국’에서 ‘제(帝)’를 ‘민(民)’으로 바꾼 것이다.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바뀐다는 의미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채택 수용된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로 그대로 이어졌다. 흔히 독립운동의 역사를 일제와 맞서 싸운 것만으로 이해하거나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서 1945년까지 민족사가 단절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그렇지 않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민족의 역사가 변화하고 발전한 모습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자산들이 해방 후 그대로 계승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발전을 가져 온 원동력이 되었다.
거듭 말하건대 정부는 1919년 상하이에서 ‘임시’로 수립했고, 일제로부터 독립한 후 1948년에 ‘정식’으로 수립한 것이다. 1948년 8월15일 수립 선포식 때 내건 현수막에 ‘대한민국 건국’이라 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한 의미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은 민족사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단절된 역사로 보는 몰이해,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근대의식을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 한시준 단국대 교수·역사학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211751485&code=...
IP : 121.151.xxx.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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