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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동경미 조회수 : 1,218
작성일 : 2004-05-10 14:59:31
올해로 우리 부부가 함께 살기 시작한지 11년이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 아이 넷을 낳고 살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미워하며 살았던 시간도 있었고...남들과 다름없이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서러웠던 때도 많았고...돌아보면 결혼이라는 게 누구나 다 비슷한 굴곡이 있나 봅니다.

친정과 멀리 떨어져서 나 혼자 덩그라니 미국에 가서 층층시하 손위 시누이들 모두 30분 거리 안에 살고 시어머니 모시며 살던 그 시절에는 어쩌면 그렇게도 내 마음에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던지요. 막내 며느리인데도 늘 맏며느리 구실은 도맡아해야했고 그러고 나서도 생색은 하나도 나지않고 참 힘이 들고 억울하기도 했어요. 외로움이 함께 겹치니까 더 힘이 들었겠지요. 몇 년 뒤에 어머님께서 따로 나가 사시게 되었지만 늘 내 마음 속에는 나는 신혼이란 게 한번도 없었던 것같다는 서운함이 있었지요.

결혼한지 10년 만에 서울에 오게 되어서 무엇보다도 친정부모님 자주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요. 하지만 출가외인인지라 이제는 친정부모님도 예전처럼 한없이 편하고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닌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멀리 있을 때에는 그리운 마음으로만 포장이 되었던 관계가 자주 만나면서 갈등도 생기고...그러다 보면 남편의 눈치도 살피게 되고 하네요.

사람 마음이 참 우습지요. 시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껴질 때에는 목이 터져라 불평을 하던 시간도 있었고 남편이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막상 내 부모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실 때면 남편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안절부절합니다. 그래도 남편은 정말로 아무 표현 하지 않는 참 선한 사람이더군요. 나라면 이제야 복수의 기회(?)가 왔다, 하고 불평을 할 법도 한데...

11년을 살고서 이제야 남편과 나의 사람됨의 차이를 느낍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해보며 미안함이라기에는 너무 큰 감정을 느낍니다. 큰 아들만 편애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엄마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해서 늘 마음이 헛헛한 사람인데, 나는 사랑을 주기 보다는 늘 빚장이처럼 내가 받지 못했던 아빠의 사랑을 채워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았던 것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사업을 확장시켜보려고 나온 서울행이었는데 갈수록 힘이 들다보니 서로의 의견이 어긋나는 일도 많았지요. 10여년을 함께 일을 해오다 보니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게 때로는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고, 일과 가정이 제대로 분리가 안되어 일하면서 느낀 서운함이 집에까지 올 때도 있어요. 그래도 남편과 내가 꼭같이 믿는 것은 경제적 곤란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고난이라는 겁니다. 건강에 의한 것이나 사별, 아이들 문제 등에 비하면 덜먹고 덜쓰는 어려움은 견딜만하니까요.

오늘 큰 아이가 학교에서 2박 3일 수련회를 떠났어요. 처음으로 긴 시간 동안 집을 떠나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다 챙겨주고 싶었는데 마음 뿐 어렵사리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아프네요. 친구들은 수련회 간다고 새옷 사러 가고 난리라고 하는데도 자기는 있는 옷 가져가면 된다고 걱정말라고 큰 아이처럼 얘길 하더군요. 아이가 탄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딸은 엄마보다는 훨씬 현명한 경제감각을 가진 거라고 자위를 했습니다.

큰 아이 보내고 2만원 남은 돈을 남편과 반반씩 나눠들고 서로 마주보며 비시시 웃었어요. 남편이 그러더군요. 우리가 돈의 있고 없고에 따라 행복지수가 달라지지 않는 첫 세대가  되어야 앞으로 우리 아이들도 돈때문에 기죽고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요. 만 원짜리 한장 달랑 들고 웃으며 대문을 나서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내 마음에 오래 남을 것같습니다...
IP : 221.147.xxx.7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홍이
    '04.5.10 3:10 PM (211.227.xxx.246)

    경제적 곤란이 가장 쉬운 고난이란말 맘에 오네요 기운내야겠어요 ~~

  • 2. 강금희
    '04.5.10 3:12 PM (211.212.xxx.42)

    믿음직한 남편을 두셨군요. 멋있는 부부네요.

  • 3. 김흥임
    '04.5.10 3:30 PM (220.117.xxx.130)

    아이는 아이다움이 최고인건데 환경이 아이들을 성숙 시키는게 가끔
    가슴 아려오지요?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엄마 아빠 있음에
    님에 아이들이나 제 아이들은 행운아입니다.

  • 4. 싱아
    '04.5.10 3:47 PM (220.121.xxx.62)

    힘을 얻습니다.
    아이 스스로 나날이 어른스럽속으로 들어 가는거 같아 가끔은 마음이 짠해요.

  • 5. 훈이민이
    '04.5.10 5:04 PM (203.241.xxx.50)

    맘이 찡하네요.

  • 6. 키세스
    '04.5.10 7:29 PM (211.176.xxx.151)

    경제적 곤란이 가장 쉬운 고난이란 말 늘 하는 언니가 있었어요.
    친언니는 아니구요. ^^
    그 언니 지금은 옛말하고 삽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성공의 발판이 되는게 맞다는 본보기처럼 여겨지는 사람이지요. ^^
    동경미님댁도 꼭 그렇게 되실 거예요.
    남편분도 정말 멋지시고, 잘 키운 아이는 표시가 나네요. ^^

  • 7. 김혜경
    '04.5.10 8:46 PM (211.178.xxx.7)

    맞습니다, 경제적 곤란이 가장 쉬운 고난이라고...
    저랑 kimys도 늘 그 얘기 하고 삽니다.

  • 8. 강은정
    '04.5.10 9:59 PM (211.179.xxx.171)

    저도 찡합니다.
    저도, 불과 1년전까지.남편의 사업이 너무나 힘들어...정말로,
    해결점이 안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정말로, 경제적 곤란이 가장 쉬운 곤란이라는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발을 빼고(?)나니..조금은 떨어져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그렇게 싸우지말고, 보둠어 줄걸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며,,,맘이 찡해지는건, 그때의 아쉬움과, 미안함때문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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