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의 <천자문>(청년사)을 읽었습니다. 한문은 물론 한자 외기에는 워낙 재주도 없어서 넓을 홍,거칠 황이 내 관심사의 끝인지라, 한자는 아예 보지 않고, 천자문 글귀 아래 김성동이 쓴 짧은 글만 읽었습니다. 소설 쓰는 이로만 알았던 김성동이 옛날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그 이후로 한학이 그이와 그이의 소설에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걸 넌지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에 이 책은 하드커버로 크기도 굉장히 크게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격도 지금 기억으로는 2만원이 넘었던 것 같았습니다. ‘책값은 언제나 싸다’는 게 평상시 지론이었지만 그 가격을 보고는 대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만원?’
결국 그때는 감히 책을 잡지 못하고는 “원, 저리 비싸서야 어디 읽겠나?”하며 “이 책을 사지 않는 건 내 지론을 접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책값이 터무니없기 때문”이라는 자기합리화를 모의했던 것 같습니다. 그 책이 보급판으로 나왔으니 손이 대뜸 가더군요.
천자문 8글자마다 한 편의 군말을 보태놓았으니 125편의 군말을 보게 된 것입니다. 각 편편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장 감동적인 글은 ‘별을 찾아서’라는 글이었습니다. 日月盈昃 辰宿列張(날일 달월 찰영 기울측 별진 별자리수 벌릴렬 베풀장)에 달린 군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목차로는 두번째 글이네요. 참 좋아 그대로 전합니다.
언제나 배가 고팠습니다. 흙이라도 파 먹고 싶고 돌멩이라도 깨물어 먹고 싶었으며 잠자리라도 잡아먹고 싶게 장(늘) 배가 고픈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잠자리를 잡아 먹어 본 적도 있는데, 날개를 떼어 내고 짚불에 살짝 구워 낸 보리잠자리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정월 초하룻날과 가윗날 그리고 제삿날 밤 말고는 처음 먹어 보는 남의살(‘고기’의 변말)인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6.25 바로 뒤의 어린 넋을 못 견디게 했던 것은 배고픔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배고픔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리움이었습니다. 뒷동산 산소마당에 아그려쥐고(엉거주춤 꾸그리고) 앉아 신작로만 바라보았습니다. 붙여 세운 두 무릎을 가슴에 대고 가슴에 댄 두 무릎 사이에 턱을 올려놓은 채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러나 오시지 않았고, 허릿바(허리띠의 충청도 말)처럼 길게 줄대어진 신작로 끝 산모롱이를 적셔 오는 것은 놀이었습니다. 놀을 밀어내며 발등을 적시는 것은 그리고 어둠이었습니다. 달은 없었습니다.
“별무리 총총 박혀 있는 저 밤하늘이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일 수 있던 시대. 하늘의 별빛과 인간 영혼 속의 불꽃이 하나이던 시대의 흐믓한 넉넉살이”를 가슴 뭉클 말한 것이 루카치였습니다. <소설의 이론>이라는 책 앞머리에 나오는 말이지요.
시방은 누구도 별자리를 보고 길을 가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모든 길과 그 길에 이르는 꾀를 가르쳐 주므로 그럴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별은 이제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찔러 이겨야 할 맞수”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은 보람차고 즐거워서 흐믓한가요?
꿈속에서 별을 헤며 살아왔던 게 사람이라는 이름의 하늘 밑에 벌레였습니다. 숨탄것(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사람들한테는 꿈이 없습니다. 꿈이 없으니 앞날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남김없이 까발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돈’이 골칫거리일 뿐이지요. 돈만 있으면 달나라도 갈 수 있고 별나라도 갈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돈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아퀴짓는(결정하는) 오늘입니다.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휴~~ 다 썼다….
저도 오늘 밤에는 하늘 한번 쳐다보고 자렵니다. 별이 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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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
이성수 조회수 : 900
작성일 : 2004-04-22 01:15:43
IP : 211.178.xxx.4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싱아
'04.4.22 8:54 AM (220.121.xxx.58)저도 지금 사놓고 두께에 엄두가 안나서 몇장 뒤적였어요.
열심히 읽어 볼께요.2. 지성원
'04.4.22 11:06 AM (61.84.xxx.42)제에겐 싫었던 고전, 한문, 국어시간들을 좋아했다는 신랑을
위해서 선물을 해야 겠네요.
청년사의 천자문, 김성동저자로 검색하면 되겠죠.
글 잘 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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