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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 소백산(上)

| 조회수 : 869 | 추천수 : 3
작성일 : 2021-08-02 14:14:28


영주시 풍기읍.

뒤로는 소백산 연봉들.

중앙선 열차 안에서 바라본 시점.

우측으로 최성해,진석사의 동양대학교가 보이고.

 

풍기읍은 중앙선 철도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는데 사진은 동쪽,구시가지는 서쪽.

 소백산 연봉을 따라 평행해 20키로 동진(東進)하면 부석사가 나옵니다.

장대한 소백산의 입체감이 사라져 아쉽네요.

풍기읍~부석사 중간에는 순흥이 나와요.소수서원이 있는 그곳.

소백산 정산 비로봉 아랫마을이 풍기라면,제2봉 국망봉 아랫마을이 순흥.

자차가 아닌 열차를 이용한 부석사 여행이라면,

가장 좋은 게 풍기역에 내린 후 읍내서 점심 먹고

갈 때는 택시,올 때는 버스를 타는 것.

소백산 연봉들과 어깨 걸고 가는 길이라 풍경들이 산뜻합니다.

소백산서 흘러내린 지능선을 헤쳐가는 여정이기도.

물론 풍기 하면 예전엔 인삼,인견,소수서원이였겠지만 지금은 부석사와 소백산.



부석사 주차장서 10여분 걸으니 일주문.

큰 바위나 선돌이 있어 입석리,돌미륵이 있어서 미륵뎅이나 미륵리,

탑이 있어서 탑리,관음상이 있어 관음리.부석사가 있어서 부석면 부석리겠죠.

매표소를 지나면서 마사토 흙길.

앞이 훤히 터져 시원하면서도 왠지 호젓한 분위기.

마치 황소 등을 타고 오르는 듯 평온함을 느낍니다.

하이라이트 무량수전 까지는 1㎞,느린 걸음으로도 15분이면 족합니다.

 

이 음악으로 보폭 맞추면 어떨까요?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5번.

릴리 클라우스 연주..5번 하면 이거!

https://youtu.be/HX5aUgxx5ts


요즘 소백산 일대는 온통 사과밭...인삼에서 사과로 바뀐 것.


길 양옆으로는 은행나무가 바투 붙어 오가는 이를 안내하고

너머로는 억쎈 팔뚝의 사과나무 밭이 푸릅니다.

80년대 이전에는 이곳 일주문 일대는 사하촌.

적당한 경사로라 가벼히 힘을 주며 걷는 발걸음이 상쾌합니다.

사과꽃 피는 4,5월도 좋지만 붉은 사과와 노란은행 잎이 조화를 이루는 가을이 최고.

그런데 한여름 지금도 너무 좋아 우열을 가릴수 없네요.

누워서보단 앉아서,책상 위가 더, 그리고 책상 위보단 걸어서 하는 사고가 으뜸.

나아가 다리에 적당한 긴장감까지 주어지는 이 길은 최적의 사색로.

능선 위를 따라 꾹꾹 발길을 누르면 몸은 자연스레 직진하게 됩니다.

산행으로 다저져선지 밟는 발길에 더욱 힘이 실리고.


  멀리 일주문이 보입니다.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창출한다!

앞에 보이는 외기둥인 일주문이 그렇네요.

부석사는 건축물마다 자신만의 공간을 연출해 냅니다.

그래서 부석사는 산등성이 길 위로 세워진 건축물의 총합이라죠.




어,그런데 현판이 태백산 부석사네요?

부석사는 소백산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죠.

소백산 국립공원이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

  저간의 사정은 이러합니다.

부석사 뒷산은 봉황산.그리고 봉황산 줄기는 선달산으로 이어집니다.

선달산은 백두대간 길로 여기서 서행하면 소백산,동행하면 태백산으로 이어져요.

이렇게 봉황산은 태백산~소백산 주능선(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지능선.

그래서 부석사는 태백산 끝자락으로 봉황산 중턱에 있다는.

옛 문헌에는 봉황산 부석사,범종루 현판도 봉황산 부석사네요.

양백지간(兩白之間)!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일컬고 옛사람들,소위 십승지로 여기는 곳이 많아요.

중간에 구룡산(1345),선달산(1236)이 있고

부석사 바로 뒷산이 봉황산이요,뒷뒷산이 선달산.



 일주문을 지났으니 부처의 땅이겠죠.

흙길 속으로 박석을 깔아 넣었으니 발걸음이 리듬을 타네요.

왼편으로 4미터 우뚝 솟은 석조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는 절이요!

하는 표시의 당(幢)을 거는 당간(幢幹)을 고정시키는 지주,즉 당간지주.

9세기 신라 말기 작품.

1200년의 풍파에도 지주엔 석공의 공력이 묻어납니다.

단아하고 날렵함이 현존 당간지주 중 명작.



부석사 특징 중 하나.

처음 온 사람에게도 매표소만 지나면 자신의 절반은 훤히 드러내준다는 것.

고개를 위로 치켜들면 금방 부석사의 아웃 라인이 들어와요.

그러나 수직 공간 너머의 수평 공간엔 심연이 있습니다.






부석사 명작,대석단(大石壇)

남북으로 길게 뻗은 수직의 대석단 9개를 세우면서 부석사는 경영됩니다.

나도 모르게 석축에 바짝 붙고는 석단 위로 오릅니다.

시야로 들어오는 서쪽으로 소백 연봉이 산뜻해서죠.


 

9세기에 쌓은 건데 믿어지나요?

예술작품의 향기까지.



이땅 최고 석축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잘났든 못났든,서로를 다치지 않고 조화롭고.

유명 답사기 표현대로,

못난이도 잘난이에 전혀 꿀림이 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부석사는 소등짝 같은 널널한 수직의 산록을 수백년간 수평으로 경영한 역사.

수평적 경영의 요채가 바로 저 대석단!

천왕문을 지나면 대석단(大石壇)이 '떡' 하며 버티어서는데

'열이면 열' 석축에 눈길을 뺏기고 발길을 멈추게 되죠.

혹 놓치고 지나셨다면 자신의 정서를 의심해봐야.

높이만 4미터가 넘고 양 길이가 80미터.

부석사는 이런 석축들의 연속이요 총합.

의상이 676년 터를 닦은 이래 해동 화엄종이 절정에 이른 9세기 즈음 완성.

선암사 처럼 산사는 보통 깊이 안기던지 높이 드러나든지 둘 중 하나.

부석사는 바로 높이 드러내는 대표 사찰.




대석단 앞에 서면 그 수평적 경영의 요체를 보고있는 거나 진배없고.

주먹 만한 돌에서 2미터가 넘는 돌까지 서로를 다치지 않고 역할에 충실.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 각자의 역할따라 구조적으로 기능한다는.

 

이를 교리적으로 해석하면 이리~~~~.

해동화엄의 초조(初祖)는 의상.

의상이 쓴 <화엄일승법계도>는 '법계도' '법성게'(法性偈)등으로도 불립니다.

의상이 당의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 내용을 추려서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시죠.

해동화엄(海東華嚴)으로 통하는 명문(名文).

의상이 부석사를 설계할 때 기본 아웃 라인은 원융사상.

/모든 것이 완만하고 조화로워 나뉨이 없고,하나가 모두요,모두가 하나/

대석단은 곧 법성게 사상의 실현인 것.

대석단의 저 질서야 말로 '多中一,一中多'인 원융의 세상의 구현이고.

그래서 건축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부석사 대석단은 이땅 최고 석축.

-유홍준 답사기 부석사편에서-


4×80미터가 넘는 석축이지만 내 눈엔 긴 캠퍼스 처럼 보여요.

저 블루 소백연봉의 화엄강산을 그려넣으면 딱 좋겠다는.








  누각 현판은 봉황산 부석사(鳳凰山 浮石寺) 

대석단을 넘으니 범종각의 팔각 지붕이 보이고,

동서 당우들의 앞마당엔 삼층석탑 두기가 아담하네요.

태생은 여기가 아니고 인근 폐사지에서 가져온 통일신라 시대 작품.

범종각 향한 길 좌우로는 아담한 맞배지붕 당우(堂宇)들이 서로들 다정스럽고.

그런데 한켠에선 좀 실망감이 일어요.

일본식 속세 정원 같다는.

여하튼 전에는 아녔는데 오늘은 이리 보입니다.

산 아래서 "좋다,좋다!" 하니 세속의 기교를 너무 부린 것.








위풍당당 범종각(梵鐘閣)

특이하게도 아래서 보면 합각이 드러나는 팔작지붕인데 맞은 편은 맛배지붕.

하늘을 배경으로 합각을 바라보는 눈맛이 정말 시원합니다.

건강하고 단아하고 정말 잘났어요.



측면도 멋지죠?

사람이든 사물이든 파사드 정면관 보단 적당히 비튼 측면관이 더 멋진 법.

경내 누구든 이 시점에선 강열하게 이끌리게 됩니다.

당연 축대 위에서 더욱 높은 범종각(梵鐘閣) 때문.

범종각은 '문(門)'과 '누(樓)'의 역할을 동시에 지녀요.

보통 일층은 게이트로,윗층은 실용 공간이 됩니다.

수직의 경사지를 경영하다 보니 석축 위에서 팔작의 봉황 날개가 더욱 상승하고.


 


안양루와 함께 조선 후기 건축물.

가까이서 보면 고목의 맨살들이 빗바랜채 확연히 드러나 정겹죠.

수차례 부분 수리한 흔적이 역력하고.

그래서 부석사에서 가장 친근감이 드는 건축물.


 

범종각엔 운판,법고,목어가 걸려 있고 정령 있어야 할 범종은 종각에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범종각의 최고 기능은 따로 있다는.

누각에 들어앉으면 기막힌 화엄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죠.


범종각 기둥들은 프레임 자체.

여러 기둥들이 만들어낸 렌즈도 어안에서 광학까지 다양.

기둥과 창방이 만들어낸 사각 프레임 안에서

낮게 드리누운 지붕선 위로 소백의 무한강산이 펼쳐집니다.





강인한 기둥들이 안내하는 대로 소백연봉에 빠져들고.



먼 능선 좌측 2/3 지점 뾰족한 곳이 정상 비로봉.

비로봉 아래 쪽이 풍기읍이 되겠네요.

이어지는 능선 우측 봉우리가 국망봉으로 아래는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


소백산 정상으로 순간이동해보죠.


태백산 방향에서 서진으로 저 위가 비로봉.

비로봉 너머로 연화봉~죽령~조령산~속리산으로 이어지고.



비로봉서 바라본 죽령(서쪽)

앞으로 연화봉이 보이고.

좌측이 경북 영주시 풍기읍으로 낙동강 수계,우측은 충북 단양군으로 남한강 수계.

능선길 따라 걸으면 신발 적실 일 없이(하천 건너지 않고) 지리산 천왕봉까지 다다릅니다.



이런 걸 차경(借景)이라하나요?

앞 마당 정원에 치닫는 소백연봉을 앞 마당으로 끌어왔네요.

엎친데 덮치는데,

범종각을 넘어서는 누대가 또 하나 있으니 안양루!



범종각~안양루는 사찰의 중심축.

남한산성,수원성,북한산성에서 보듯 성(城)의 지휘 본부는 가장 높은 데에 위치한 장대(將臺).

축대 아래서 본 안양루는 산성(山城)의 장대(將臺)보다 더 장대합니다.

범종각 아래로 난 계단을 오르면 안양루는 하늘에 떠있어요.

대석단 위에 올린 누각이라 주변을 압도하고 강렬.

 

승경을 얻고자 온 자에겐 부석사의 상징이 되어버린 안양루.

安養은 극락의 또다른 이름.

법전인 무량수전은 안양루 누대 아래로 난 계단을 밟고 올라야.

범종각와 안양루는 궁극의 무량수전에 이르게 하는 가이드.

그러나 무량수전에 올라 앞마당서 보는 안양루는 쉼터로서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와요.

안양루 넘어엔 당연 서방정토 무량수전이 있겠네요.

그러나 안양루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기나긴 일직선을 포기하고 약간의 변화를 준다는.

범종루 까진 서남(西南) 방향이던 게 안양루 앞에서 정남향(正南向)으로.

궁궐 초입의 금천(禁川) 처럼 지존의 경건성을 방향 전환으로 극대화하는 것.



1층 현판은 안양문,2층 누엔 부석사.


안양문 현판은 이승만 작품.

이승만은 미국서 장로가 되었지만

모친이 북한산 문수사에서 백일기도로 얻었을 만큼 불가와 연이 커요.

장로 대통령이 된 후에는 문수사를 찾아가 현판을 내리기도.

그러나 불교정화운동이라는 미명으로 불교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죠.

그래서 탄생한게 지금의 조계종이니 이또한 역사의 아이러니.




지금까지 궁극의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석축이 9개를 넘어왔어요.

위로 오르면서 극락의 9품 만다라를 구현했다는.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圓'이라는 뜻.

만다라는 신들이 있는 장소로 우주의 힘이 응집되는 곳.

그래서 석축을 하나 하나 넘는 길은 극락정토로 향하는 구도행.

그런데 중생은 이승에서의 선행 정도에 따라 머무는 장소가 달라진답니다.

9품 만다라는 상·중·하품으로 나뉘는데 다시 이를 세 개씩 나누니 아홉 단계.

그래서 일주문 지나 천왕문 까지는 하품,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는 중품,

범종루에서 안양루까지가 상품이 된다네요.

그리고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이 있는 곳은 궁극의 극락정토.

그러니 석축을 하나씩 넘는 길은 극락정토로의 구도행.

혹 구조자,구도승이라면 이어폰으로 탄호이저 '순례자의 합창'이 좋을지도.  

구태여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도 부석사 경영에는 논리적 전개가 있어요.

기승전결은 예술,인문 세계에서 논리 전개의 근본.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 공간이 기(起)라면,

대석단 위 범종각까지는 승(承).

안양문까지는 전(轉).

안양루와 무량수전은 가람의 궁국으로 결(結).

네글자로  점입가경!



불가와 연을 맺은 이들은 안양루 아랫 계단에 이르면 십중팔구는 옷깃 여미고 오를 겁니다.

그러나 산행을 동반한 나는 위풍당당 포스로.

석등의 화사석(火射石)이 먼저 들어오고 이어 무량수전 현판이 들어오네요.

안양문를 열어 제치고 들어왔으니 극락정토에 들어온 셈.

안양루는 오르는 길에서 보면 현판은 안양문(門)이지만 위에서 보면 안양루(樓).

혹자는 이리 말하네요.

미학적으로 보자면 극락세계로 들어가니 '門'이고,

극락세계에서 사바세계를 바라보니 '樓'가 되는 것.



 

무량수전..석등..안양루..뒤로 삼층석탑



안양루

안양이 극락이라는 뜻이니 저 위가 극락 맞네요.




석등은 9세기 작품으로 이땅 석등 중 가장 정교.

3미터가 넘어 크고 날렵합니다.

크지만 단아하고 조각은 정교하고 모던하죠.

저 아래 당간지주와 어쩐지 한묶음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같은 석공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둘은 상승감에 단아함이 닮았는데 화사석 네 면에 공양 보살을 양각.




무량수전 사각 현판은 공민왕 작품이라는 전설이.

공민왕은 동성애자로 등등 후대 왕조에 의해 왜곡되었죠.

그러나 원나라 간섭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한 개혁군주이기도.

그 공민왕 제위 시절 두번 홍건적 침입이 있었어요.

몽진으로 공민왕은 저 죽령을 오고 가고 네번을 넘었다는.

무량수전 현판은 개경으로 넘어 가면서 남긴 것으로 추측.


1916년 보수 공사 중에 무량수전 서쪽 끝 귀공포에서 묵서(墨書)가 발견되었어요.

묵서(墨書)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7년(1358),

 왜구의 침노로 건물이 불타서 1376년에 중창주인 원응국사가 고쳐 지었다고 했죠.

현 무량수전은 공민왕 다음인 우왕 때로 우왕 때 바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있었네요.

고려말 왜구 침탈 40년은 문화재 강탈의 시기로,이때 부석사도 불탔건죠.

역사적으로 왜구 침입이 가장 많았던 시기가 바로 공민왕 제위 기간.

원나라에서 벗어나는 시점서 오랑캐와 왜구들이 발호한 것.

홍건적은 2차에 걸쳐,왜구는 40여년간 통치의 공백 상태를 노렸죠.

왜구는 경상도,강원도 내륙까지 깊숙이 들어왔고.

특히 조창이 많은 서남 해안에 집중되었는데 세곡선이 한양으로 떠나는 금강 하구가 주 타킷.

당시 왜구들은 문화재 약탈에도 열을 올려요.

불상,탱화등을 본토에 가져가면 영주나 사찰에서는 고가로 구입해갔기 때문.

고려불화는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죠.

현존 고려불화 100여점 중 90여점이 이때 일본으로 넘어갔고

국내에는 지금 10여점에 불과.

부석사 무량수전도 이때 불탔고 우왕 때 다시 지은 게 현 무량수전이요,조사당입니다.

의상이 지은 또하나의 부석사인 서산 부석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도 이때 약탈.

그리고  대마도 관음사에 있다 근래에 본국으로 돌아왔네요.





고풍스러운면서도 늠름한.

무량수전의 고운 처마선엔 배흘림,귀솟음 등 다양한 건축적 기교가.



가벼운 포물선의 처마선.

흔히 이 처마 곡선을 한국의 미라고 하죠.

앞 5칸,옆 3칸 주심포 기둥에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각지붕.

주심포(柱心包)란 건물을 바치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다는 뜻.

주심포에서 차차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짜 넣은 다포(多包)로 진화합니다.

공포는 지붕 하중을 효과적으로 기둥에 전달하는 기능.

무량수전은 바로,

맞배지붕에서 팔각지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목조 건축사의 이정표.

나아가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사찰 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기준이 되고.

고려 우왕 때 왜구 침입으로 불에 타 중건한 것으로 조선조 광해군 때 단청을.

이후 수백년 동안 단청은 바래고, 목조의 세로 결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배흘림 기둥


살짝 들린 창틀 보이시죠?

무량수전은 정면이 아닌 측면서 보아야 미적 감각이 더 커진다는.

무량수전의 팔각(八角)지붕은 면적이 넓어 큰 하중이 실림에도 둔중하지 않고 날렵.

측면서 보면 곱게 휜 처마선이 편하고.

살포시 처마 끝선이 하늘 위로 치켜세워져 날렵한 느낌.

이리 보이는데는 몇가지 건축적 미학이 숨어져있네요.

하나...기둥의 배흘림.

배흘림이란 기둥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가늘게 하면서도

아래쪽 기둥의 1/3 지점(눈이 마주치는 지점)을 볼록하게 하는 양식.

기둥이 하중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느낌이 아니라 가볍게 떠받치는 느낌.

그리스 신전 기둥들이 그러한데 이를 엔타시스(entasis) 양식이라 하죠.

기둥 아래는 44cm...중 49cm...상 34cm

둘...처마 끝선을 살짝 치켜 올렸네요.

이는 지붕이 넓으면 건물이 처져 나타나는 둔중함을 없에 주겠죠.

같은 이치로,석탑도 지붕돌의 탑날개를 살짝 하늘로 반전시켜 탑의 상승성을 높입니다.


귀솟음


셋... '귀솟음'으로 귀솟음이란 건물 양모서리 기둥을 좀더 길게하는 것.

양모서리의 기둥이 높으면 처마선이 가벼운 포물선을 긋게되고 지붕의 상승감이 높아진다는.

귀솟음이란 끝기둥을 다른 기둥보다 약간 높게 세우는 기법.

 이는 처마가 올라가게 만들기 위함인데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여요.

실용적 목적이 있으니,비로 기둥은 늘 젖을 수밖에 없죠.

 지붕의 처마가 들려 올라가게 해 햇볕으로 나무를 말리기 위함.

중국의 남부 지방에 있는 건물들의 처마가 극단으로 올라간 경우가 많은데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기 때문.

마찬가지로 기둥 아래 기단을 세우고 초석을 깐 이유도 습기로 부터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본 고건축을 보면 초석없이 기둥이 세워진 경우가 있어요.

이후 초석을 세우는 기술이 한반도에서 넘어갔습니다.


윗 사진에서 보듯 무량수전의 목조건축을 받치고 있는 기단을 보면

지대석,면석,갑석 이라는 삼단으로 이루어졌음을 알수있어요.

석탑의 기단도 바로 지대석,면석,갑석으로 이루어지죠.

이해 오시나요?

최초 자동차 외관이 마차와 비슷하듯 석탑은 목조건축에서 유래한다는.

그럴수밖에 없는 게 석가의 사후 쉼터가 석탑이니.

목조 건물과 석탑의 연결 고리를 읽을수 있는 그런 무량수전입니다.

 

그리고 우측 기단 끝이요?

무량수전 기단에 700년 전 건축실명제가 구현되었네요.

7백년 전 석공 金愛先의 실명.

무량수전 동쪽 기단(삼층석탑 방향)에 '忠原 赤花面 石手 金愛先'라고 새겨놓았다는.

700년 전 기단석을 다듬은 석수 김애선은 누구일까요?


김애선이라는 이름에서 당시 사회사를 읽을수 있으니~~

고려 중기에 '金'이라는 성을 가졌다는 사실은 석수의 지위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

지금은 누구나 성씨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조선 시대 후기 때부터.

고 려 시대에 성을 가진 인구는 전 국민의 20% 미만.

더욱이 건물의 정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을 정도라면?

석수와 같은 기능인들의 사회적 신분이 꾀 높았음을 의미한다는.

고려청자의 경우도 고려 중기에는 도자기 밑면에 도공의 성과 이름이 명기되었지만,

후기에 들어서 명기된 도공은 성이 없는 이름뿐이었다는.

 그나마도 점차 기명을 하지 못했는데,이는 고려자기 도공들의 사회적 지위가 점차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




석수 김선애가 채석한 채석장이 무량수전 뒷편에 있다는....

부석사 이름을 얻게 된 그 현장!


(계속)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uliana7
    '21.8.2 7:45 PM

    저기 가서 석양을 본적이 있어요
    진짜 좋더라구요
    언제 또 가보나싶네요.

  • wrtour
    '21.8.12 12:58 AM

    홍도,홍단이,홍련이~~~~~
    범종루에서
    안양루에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동에 서서
    한컷하면 정말 좋을듯 합니다!!

  • 2. 쓰니
    '21.8.5 8:34 AM

    원글님 기행문 참 좋습니다
    두고 두고 봐도 좋은 ...감사합니다

  • wrtour
    '21.8.12 1:00 AM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에서 인문지리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 써본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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