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뼈아픈 후회

| 조회수 : 1,621 | 추천수 : 3
작성일 : 2019-10-09 03:18:37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밀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 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음으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처음 읽었을 때엔

무척이나 찔렸던 시


세월 지나 다시 읽으니

뼈아픈 후회는 없다


나를 위했던

너를 위했던

채웠던 시간이

애쓰던 사랑이라는 거


그걸로 올킬


그 누구를 위한 사랑은

그 누구도 위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 사진 위는 시인의 시

* 사진 아래는 쑥언니 사설

* 사진은 사랑하는 계절을 떠나 보내는 우리 막내의 노숙자 스삐릿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너와나ㅡ
    '19.10.9 11:37 PM

    어디인가
    멋지네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생각나네요.

  • 쑥과마눌
    '19.10.10 4:10 AM

    동네 공원이네요.
    나무도 실연한 소년의 맴을 알아 주는듯해요

  • 2. 행복나눔미소
    '19.10.10 11:53 PM


    실연이라니 ㅠ
    아픈만큼 성숙해질터인데
    소년에게 위로되는 말은 아니지요 ㅠㅠ

    건성으로 보다가
    숨은 그림 찾기 했네요 ㅎ

  • 쑥과마눌
    '19.10.11 1:33 AM

    계절에 실연당하는 건
    당연지사 ㅋ

  • 3. 피어나
    '19.10.11 10:48 AM

    소짜 아니고 막내라 쓰셔서 쑥과 마눌님 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 시를 읽으니 뭔가 뜨끔한 게 잘못 산 게 분명합니다 ㅠㅠ

  • 쑥과마눌
    '19.10.11 11:30 AM

    우리는 고작 인간
    나를 위한 사랑이라도..
    나를 위한 희생이라도..
    그게 어딘겨

    내 맴은 내가 알아 하니
    니 맴은 니가 알아 받아
    오고 가는 지옥 속에
    커져 가는 폐허만 어찌 남기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말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1892 어느 가족의 저녁시간 2 도도/道導 2022.08.21 2,192 0
21891 주사 84일차 순돌이입니다. (주사종료, 모금종료, 비용업데이트.. 10 지향 2022.08.21 2,451 0
21890 황토길과 소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보라색 물결 2 도도/道導 2022.08.20 1,803 0
21889 오염이 없는 세상 2 도도/道導 2022.08.19 1,717 0
21888 석양을 맞이하는 마음 2 도도/道導 2022.08.18 1,765 0
21887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2 도도/道導 2022.08.17 1,809 0
21886 맥스 4 원원 2022.08.17 2,000 0
21885 홍대앞 계단집 사진입니다. Juliana7 2022.08.16 4,231 0
21884 빠져서 사는 세상에서 벗어날 때 2 도도/道導 2022.08.15 1,724 0
21883 안타까운 비소식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2 도도/道導 2022.08.12 2,294 0
21882 비오는 날 들리는 소리는 2 도도/道導 2022.08.11 1,776 0
21881 예고 없는 피해 2 도도/道導 2022.08.10 1,874 0
21880 여름의 길목에서 [임실 맛집 수궁반점 5월의 이야기] 2 요조마 2022.08.09 2,148 0
21879 어쩔 수 없는 편법......... 2 도도/道導 2022.08.09 1,854 0
21878 시절은 거스를 수 없네요~ 2 도도/道導 2022.08.08 1,928 0
21877 온라인 사진 전시 (겨울 왕곡 마을 풍경) 4 도도/道導 2022.08.07 1,714 0
21876 스며드는 볕에도 여름이 숨어 있습니다. 2 도도/道導 2022.08.06 1,705 0
21875 어두움 뒤에는 반드시 2 도도/道導 2022.08.05 1,684 0
21874 잘 흘러 가면 아름답습니다. 4 도도/道導 2022.08.03 1,798 0
21873 빗 소리를 들으며 날을 새웠습니다. 2 도도/道導 2022.08.02 1,756 0
21872 花無十日紅 이고 權不十年 이라는 데 2 도도/道導 2022.08.01 1,726 0
21871 시작되면 막을 수 없다 2 도도/道導 2022.07.31 1,743 0
21870 더워도 일하며 행복해 합니다. 2 도도/道導 2022.07.30 1,859 1
21869 연화정과 연꽃 8 도도/道導 2022.07.29 1,847 0
21868 주사 61일차 순돌이입니다. (모금현황 및 비용 업데이트) 1 지향 2022.07.28 2,78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