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제 목 : 이병률, 여진 (餘震)

| 조회수 : 7,133 | 추천수 : 0
작성일 : 2019-09-01 00:23:42

여진 (餘震) 

                          이 병률


다 살고 치우고 나서야 알게 된다

찬장 뒤쪽으로 훤히 나 있는 뒷문을

그 문 뒤로는 한여름에도 눈이 펄펄 날린다는 비밀을


한참을 열어 놓고서야 알게 된다

처음의 처음까지 다 이해할 수 있음을

여진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러고도 가끔은 자고 있는 중에 문이 열린다

열린 문이 열린다


봄날은 갈 것이다

그 사실을 보내는 동안 여름날도 갈 것이다

양손으로 상자를 받았는데 상자를 내려놓지 못하고

상자를 열게 되더라도

무엇이 뼈고 무엇이 옷이며 지도인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야 다 볼 수 있으리


뒤늦게 더듬어서라도 다 볼 수 있다면

아무것 없이도 아름다우리라고

대륙의 끝으로 자신을 끌고 가

한없이 데리고 울다 지친 이


그가 들썩일 때마다 뒷문이 울린다

조금은 알게 될 것이라고

그가 끄덕일 때마다 뒷문이 따라 열린다

비릿한 뒷일들도 문지방을 넘게 될 것이라고


갈라진 마음 끝에 빛이 들듯

그렇게 가을날도 갈 것이다


                                                       -이병률, 시집'눈사람여관'. 문학과지성사


아..와 어..는 다른데,

그 다름의 으뜸은 시


소란스런 일상에

내 손바닥의 자석

휴대폰도 노상 잃어 먹는데,

지친 지난 여름에 산 시집쯤

어드메 집구석에 있고 말고

찾을 생각은 아예 하덜덜도 말았지


이병률시인이야

모두의 탁월한 선택이라

흔한 넘의 집 담벼락에 굵게 올린 시

또렷함이 맘에 들어 퍼와보니


올린 이

나처럼 노안이구나

군데군데 틀려, 고치려니

둘러 가다

올 데 갈 데 없이 멱살 잡힌 격


잡힌 참에 통성명부터 다시 나누니,

말을 들을 수록, 맘이 들리고

말을 새길 수록, 뺨이 새겨진다


어느 끝이든

끝까지 가 본 사람은

그 곳에서 벼락치고, 눈보라 일어도

빛이든, 바람이든, 꽃이든

제 마음대로

피었다가 또 지었다가 하는 걸 보았겠지





*사진 위는 시인의 시

*사진과 사진 아래 사설은 쑥과마눌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雲中月
    '19.9.2 12:50 AM

    백일홍 그릴에서 우아하게 식사하는 팔랑나비는
    세월의 빠름을 알까 모를까~

    - 吟觀月 [음관월] 달을 보며 읊다 -

    玉魄梧桐掛裸枝 [옥백오동괘나지] 둥근달이 벽오동 벗은 가지에 걸리고
    蔦蘿紅葉覺飛茲 [조라홍엽각비자] 담쟁이 붉은 잎에 세월 빠름을 깨닫네.
    靑蓮弄月詢今月 [청련농월순금월] 이태백이 놀던 달이 지금의 저 달인가
    白髮爬頭詠一詩 [백발파두영일시] 흰머리 긁적이며 시 한수를 읊어 본다.

  • 쑥과마눌
    '19.9.2 8:14 AM

    팔랑나비는 지금 먹방중이라죠.

    밑에 시조가 좋아, 저도 댓구를..쿨럭~

    날마다 변심하는 달따위야 안물안궁
    오가는 시절속에 사라져간 인물궁금
    그곳은 안온한지 이곳은 치열한데..
    남은 세상 잘해보려 버둥버둥 쎄 빠진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5493 출근길 부러워서 한컷 4 푸른감람나무 2020.08.06 102 0
25492 인애를 생각하다 도도/道導 2020.08.05 85 0
25491 장마가 그치고 양춘삼월이 되기를 도도/道導 2020.08.04 160 0
25490 챌시 중성화수술 하고 왔어요. 13 챌시 2020.08.03 484 0
25489 깊은 산속의 비경을 만나다 4 도도/道導 2020.08.03 260 0
25488 계류에서 힘을 얻다 도도/道導 2020.08.01 226 0
25487 홍수 주의보 발령 도도/道導 2020.07.31 401 0
25486 지붕위 늙은 어미와 아기5마리 (모두 구조) 8 Sole0404 2020.07.31 926 0
25485 지붕위 늙은 어미고양이와 새끼5마리 2 Sole0404 2020.07.30 841 0
25484 보고 배울 수 있는 지혜 2 도도/道導 2020.07.30 292 0
25483 지상 90m 에서 흔들리는 경험 도도/道導 2020.07.29 385 0
25482 1~2개월된 숫냥이 입양처를 찾습니다 레몬즙 2020.07.27 580 0
2548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 도도/道導 2020.07.27 316 0
25480 (유머)호랑이 부부와 사자 부부의 차이 카렌튤라 2020.07.26 660 0
25479 한 주간을 마무리하며 도도/道導 2020.07.25 273 0
25478 사랑의 공감과 실망 2 도도/道導 2020.07.23 368 0
25477 이 씽크대 부속품 이름 좀 알려주세요? 플리즈..ㅠ 2 나무꾼 2020.07.22 673 0
25476 언제나 한 주의 시작은... 도도/道導 2020.07.20 395 0
25475 훼손되지 않기를 2 도도/道導 2020.07.18 549 0
25474 연꽃 사진 45장 도도/道導 2020.07.17 632 0
25473 아래 비슷한 글이 있네요(치즈냥이좀 봐주세요) 7 누리심쿵 2020.07.17 827 0
25472 떠날 때는 말없이 도도/道導 2020.07.17 402 0
25471 점봉산 곰배령의 여름 6 wrtour 2020.07.17 638 0
25470 잠시 그리고 잠깐 도도/道導 2020.07.16 317 0
25469 변함 없는 네 모습과 소리를 듣고 싶다 도도/道導 2020.07.15 342 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