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를 반박하지 못하자 사람을 공격하는 공론장으로 변질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비판 아닌 사회적 폭력
불편한 목소리를 제거하는 정치문화가 민주주의 무너뜨린다
유시민 작가의 다스뵈이다 발언은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다. 그의 ‘증축론’이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는지, ‘문가산점’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평택을 공천 해석이 타당한지, 일부 평론가들을 향한 표현이 과했는지는 당연히 따져볼 수 있다. 공적 인물이 공론장에서 한 발언은 검증의 대상이다. 유시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정상적인 비판의 범위를 넘어섰다. 논리를 반박하기보다 사람을 몰아붙이고, 발언의 맥락을 따지기보다 의도를 단정하며, 문제 제기를 토론하기보다 발언자를 공론장에서 퇴출시키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집단적 낙인찍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비판을 넘어 집단 린치에 가까운 사회적 폭력이다.
비판과 린치는 다르다. 비판은 주장에 답한다. 린치는 사람을 겨냥한다. 비판은 “당신의 논리가 왜 틀렸는가”를 설명한다. 린치는 “당신은 말할 자격이 없다”고 몰아간다. 비판은 근거와 논증을 요구한다. 린치는 낙인과 조롱을 반복한다. 이번 유시민 논쟁에서 적지 않은 반응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웠다.
유 작가의 핵심 질문은 비교적 분명했다. 이재명 정부의 외연 확장이 기존 핵심 지지층의 신뢰를 흔드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존 지지층이 기대한 것은 기존 기반 위에 새로운 지지층을 더하는 ‘증축’이었는데, 실제 국정운영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재건축’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이 맞는지 틀린지는 토론하면 된다. 그러나 이 질문 자체를 반명, 구태, 노욕, 권위주의로 몰아붙이는 순간 논쟁은 사라지고 낙인만 남는다.
정상적인 반박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첫째, 코어 지지층은 실제로 이탈하지 않았다는 여론조사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 외연 확장이 기존 지지층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정치적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셋째, 현재의 인사와 공천, 개혁 속도가 왜 정권의 안정적 확장에 부합하는지 논리적으로 말해야 한다. 넷째, 유시민의 ‘증축론’이 왜 현실을 잘못 해석했는지 대안적 분석틀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비판은 이 길을 가지 않았다. 대신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공격했다.
이것이 문제다. 유시민의 논리가 틀렸다면 논리로 이기면 된다. 그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면 사실로 반박하면 된다. 그의 비유가 부적절하다면 더 나은 비유와 설명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논리의 싸움 대신 인격의 싸움으로 끌고 가는 것은 반박이 아니라 회피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 사람을 문제 인물로 만들어 질문 자체를 묻어버리려는 방식이다.
물론 유시민의 표현에도 문제가 있었다. ‘용역 평론가’, ‘촉법 평론가’, ‘자가면역 질환’ 같은 표현은 다소 거칠었고, 상대를 낙인찍는 말로 들릴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이 거칠었다고 해서 그의 문제 제기 전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과 논리는 구분해야 한다. 표현은 비판하되, 논리는 따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당수 비난은 표현을 빌미로 논리 전체를 폐기하려 한다.
더 큰 모순은 유시민의 낙인찍기를 비판한다는 사람들이 더 거친 낙인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용역 평론가”라는 표현이 문제라면서 유시민을 향해 “반명”, “노욕”, “구태”, “퇴장해야 할 인물”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낙인을 비판하면서 더 큰 낙인을 찍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갈라치기를 비판한다면서 더 큰 갈라치기를 수행하는 것은 위선이다. 공론장의 품격을 말하면서 한 사람에게 조롱과 모욕을 퍼붓는 것은 품격이 아니라 폭력이다.
집단성이 붙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한두 사람이 비판하는 것과 다수가 동시에 한 사람을 향해 공격을 집중하는 것은 다르다. 평론가가 때리고, 정치인이 받아치고, 언론이 확대하고, 유튜브가 조롱을 재생산하면 개인은 순식간에 공론장의 표적이 된다. 그 순간 논쟁은 내용의 검증이 아니라 공개 처벌의 형식을 띤다. “저 사람의 말은 틀렸다”가 아니라 “저 사람은 맞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민주적 토론이 아니다.
이런 방식은 공론장을 병들게 한다. 오늘 유시민에게 쏟아진 집단적 낙인은 내일 다른 사람에게도 향할 수 있다. 내부에서 조금 다른 말을 하면 반명으로 몰리고,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 배신자로 찍히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면 공론장에서 매장당한다면 누가 솔직한 말을 하겠는가. 결국 남는 것은 침묵과 눈치뿐이다. 겉으로는 단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론장의 질식이다.
정치세력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비판이 많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비판이 사라질 때다. 내부에서 아무도 불편한 말을 하지 않고, 지도자 주변에 듣기 좋은 말만 남고, 지지층 내부의 불만을 ‘문제 세력’으로 몰아내기 시작할 때 정치세력은 빠르게 현실 감각을 잃는다. 정권을 진정으로 지키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정확한 경고다.
유시민의 경고가 불편하다고 해서 그 경고를 없애버리면 문제도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경고음을 끈다고 화재가 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반명’이라는 낙인의 남용이다. 대통령을 걱정하는 말과 대통령을 흔드는 말은 구분해야 한다. 지지자가 대통령에게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오히려 지지하기 때문에 위험 신호를 먼저 말할 수 있다. 모든 비판을 반명으로 몰면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경쟁만 남는다. 그 결과 대통령에게 필요한 현실 진단은 늦어지고, 잘못된 판단은 더 오래 유지된다.
유시민이 제기한 코어 지지층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코어 지지층이 흔들리는지 아닌지는 감정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 세대별 지지율, 주요 정치 사건 이후의 변화, 지지층 내부 반응을 놓고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을 제기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다면, 실제 지지층 이탈 여부는 분석되지 않는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말하는 사람만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정치적 자기기만이다.
민주진영이 정말 강한 정치세력이 되려면 불편한 의견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같은 말만 반복하는 사람들의 합창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진단이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해석이 살아남는 제도다. 유시민의 말이 틀렸다면 더 나은 해석으로 이기면 된다. 그런데 더 나은 해석을 내놓지 못한 채 집단적 비난으로 입을 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논리적 빈곤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정치적 논쟁에서 가장 나쁜 방식은 상대의 동기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정권을 흔들려 한다”, “저 사람은 과거 권력을 지키려 한다”, “저 사람은 영향력을 잃어서 분노한다”는 식의 심리 해석은 검증하기 매우 어렵다. 검증하기 어려운 주장은 공론장에서 쉽게 폭력이 된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사람의 내면을 심판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 비판은 동기 심판이 아니라 논리 검증이어야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유시민 개인의 호불호가 아니다. 문제는 민주진영 내부가 불편한 발언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한 사람의 표현이 거칠었다면 그 표현을 비판하면 된다. 그러나 그 사람 전체를 문제화하고, 그 사람의 발언권 자체를 부정하고, 그 사람을 향해 집단적으로 조롱과 낙인을 퍼붓는다면 그것은 비판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회적 폭력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유시민을 무조건 옹호하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비판과 린치를 구분하는 일이다. 유시민의 발언이 틀렸다면 반박하라. 표현이 과했다면 비판하라. 그러나 한 사람을 향해 똥물을 퍼붓듯 조롱과 낙인을 집중하지는 말라. 그것은 민주주의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공론장을 망가뜨리는 응징의 언어다.
정말 성찰해야 할 것은 유시민 한 사람의 표현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것은 불편한 말을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매장하려 드는 이 낙인과 응징의 문화다. 비판은 민주주의를 살리지만, 집단 린치는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지금 유시민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바로 그 경계선을 넘고 있다.
유시민의 논리가 틀렸다면 논리로 이겨라. 그의 분석이 부실하다면 더 정확한 분석으로 압도하라. 그러나 사람을 매장하려 들지는 말라.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공론장의 패배다. 그리고 공론장이 패배하면, 결국 그 피해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가 감당하게 된다.
https://www.discovery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759
너무 공감가는 칼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