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 문제가 82에도 올라왔었조.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이 문제를 잘 설명해주셔서 퍼왔습니다.
1.
요즘 강동구 핵심지인 고덕동, 상일동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냥 아파트 보행로 문제 아니냐”고 말하고, 누군가는 “생활권을 건드린 심각한 사안”이라고 반응하는데, 이미 뉴스까지 보도되면서 단지들 간 감정의 골이 너무나도 깊어졌다.
이 이슈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왜 화가 났는지,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2.
핵심은 ‘아르테온이 펜스를 세우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유지이면서 공공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 어떻게 관리돼야 하는지, 사고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단지 간 생활권은 어디까지 존중돼야 하는지라는 질문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사례이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먼저 공간부터 이해해야 한다. 고덕아르테온 단지 중앙에는 넓은 보행로가 있다. 이 길은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과 인근 단지들을 잇는 가장 빠른 동선이다.
고덕자이, 고덕센트럴아이파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 고덕그라시움 주민들까지 수년간 이 길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아이들 등하교를 시켜왔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미 ‘동네 길’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면 이 보행로는 국가나 지자체 소유가 아니다. 땅의 소유권은 고덕아르테온 입주민들에게 있다.
다만 재건축 인허가 과정에서 이 공간은 ‘공공보행 기능을 하는 통로’로 설정됐고, 행정 해석상 일반인의 통행이 허용돼 왔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용은 공공에 가깝고, 소유와 관리 책임은 사적이다. 이 애매한 구조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됐다.
3.
첫 번째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하나의 사고였다.
2024년 초, 인근 단지인 베네루체 입주민이 이 보행로를 이용하다가 보도블록 단차에 걸려 넘어졌다. 부상을 입었고, 치료비가 발생했다.
이 보행로는 사유지였기 때문에, 책임은 고덕아르테온 측에 귀속됐다. 결국 아르테온은 단지 보험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외부인이 다쳤는데, 비용은 아르테온 입주민들의 관리비 구조 안에서 해결된 셈.
이 사건은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테온 입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다.
‘공공보행로’라는 이름 아래 누구나 지나가지만, 사고가 나면 책임은 우리 몫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눈이 오면 제설은 누가 하나” “또 다치면 또 우리가 책임지나”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4.
두 번째 사건은 같은 해 여름에 발생했다. 고덕자이와 베네루체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아르테온 지하주차장에서 소화기를 분사하는 장난을 벌였다.
이 일은 단독으로 보면 청소년 일탈에 가까운 사건이다. 다른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미 불만이 쌓여 있던 아르테온 입주민들에게는 ‘외부인 출입으로 인한 문제’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보행로를 통한 외부인의 자유로운 유입이 단지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5.
이 무렵,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감정의 불씨가 더해진다.
고덕자이 입주민 게시판에 “우리 단지는 외부인이 다니지 않아 조용하고 안전하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고, 해당 내용이 캡처돼 돌기 시작했다.
특정 단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르테온 입주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단지가 암묵적으로 비교 대상이 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사건 자체보다 ‘우리는 안전하고 너희는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가 감정을 자극했다.
이렇게 사고와 사건, 감정이 겹치면서 아르테온 내부에서는 본격적인 대응 논의가 시작됐다.
결론은 하나였다. 보행로를 통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자는 것. 그 방법으로 거론된 것이 펜스 설치였다.
단지 외곽과 경계를 명확히 하고, 외부인의 무단 출입을 막자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입주민 투표가 예고됐다.
6.
그러나 여기서 행정의 해석이 변수로 등장한다.
강동구청 공동주택과는 “해당 보행로는 사유지이지만 공공보행로로 지정된 만큼, 일반인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24시간 개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펜스를 설치하더라도 보행로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아르테온이 선택한 대응 방법은 이러했다. 보행로는 열어두되, 이용 방식은 제한하겠다는 것.
자전거, 킥보드 통행 금지. 외부인의 반려견 통행 제한. 이를 어길 경우 10~20만 원 수준의 ‘질서유지부담금’을 부과하겠다는 공지가 나갔다.
이 내용은 인근 단지들에 공문 형태로 전달됐다.
7.
문제는 이 지점에서 더욱 커진다.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에는 법적으로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권한이 없는 것이었다.
즉, ‘벌금’이나 ‘부담금’은 법적 근거가 없는 사적 제재에 해당할 소지가 컸다.
그럼에도 공문이 발송되면서 인근 단지 주민들, 특히 고덕그라시움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해졌다.
8.
결정적인 충돌은 11월 중순에 발생한다.
고덕그라시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인근 상가의 빵집을 이용하기 위해 아르테온 보행로를 지나던 중, 관리 인력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반려견이 동반돼 있었고, ‘아르테온 입주민 전용 인식표’가 없다는 이유였다.
현장에서 언성이 오갔고, 상황은 길어졌다. 이 일은 곧 단지 차원의 문제로 확대됐다.
아르테온 생활지원센터는 고덕그라시움 측에 공식 공문을 보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사안은 언론에까지 알려졌고, 방송 보도로 이어졌다. 법률 검토
결과, 사적 제재의 위법성이 지적되면서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9.
여기서 갈등은 또 한 번 방향을 바꾼다.
이번에는 학군 문제였다. 고덕아르테온의 중학생 상당수가 근거리 원칙과 달리 고덕중학교로 배정받고 있다는 점이 거론됐다.
이에 대해 일부 그라시움 주민들은 “생활권을 침해받으면서 왜 학군에서는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느냐”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보행로 문제에 대한 대응이 학군이라는 더 민감한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10.
이제 상황을 정리해보자.
보행로는 행정 해석상 계속 개방돼야 한다. 펜스는 설치됐지만 길 자체는 막지 못한다.
아르테온은 이용 행태를 통제하려 하고, 인근 단지들은 그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여기에 학군과 생활권 문제가 겹치며 갈등은 단지 간 감정싸움의 단계로 넘어와 있다.
이 사안이 흥미로운 것은 누구 한쪽의 일방적 잘못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테온 입주민의 불안과 부담은 현실적이다. 반대로 인근 단지 주민들의 생활권 침해 인식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문제는 사유지 위 공공 기능이라는 애매한 구조를 만든 제도와, 그 책임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은 행정에 있다.
11.
고덕의 이 갈등은 보행로 하나에서 시작됐지만, 아파트 밀집 지역이 안고 있는 구조적 질문을 드러내고 있다.
공공성과 사유재산권은 어디까지 조화될 수 있는가.
관리 책임과 이용 권한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없는 한, 비슷한 갈등은 다른 동네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