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로 살면서 거북목,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안구건조증 달고 살고 게다가 밤샘, 야근 밥먹듯하니 아이때문에 버틸수가 없어 그만두고 15년이 지났어요. 이나이에 디자인 일을 다시하자니 프로그램도 다 바뀌고 저도 팀장으로 퇴직해서 알지만 누가 뽑아주겠어요ㅜㅜ
아이 크고 나니 시간은 남아돌고 자기 효능감 느껴야 행복한 박복한 성격이라 돈걱적 없는 전업이라도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공인중개사, 보육교사 다 생각헤봤지만 주위에 그 자격증 다들 가지고 있어도 안쓰더라구요. 커피전문점 이나 서빙 같은것도 이력서 넣어봤는데 경력 없이 나이 많으니 뽑아주지도 않고 면접보러 가더라도 그 몸으로 힘든 일할수 있겠냐 소리나 듣고( 제가 많이 말랐어요) 좌절중이였는데 당근에서 바로 집앞에 남편하고 몇번 노래들으면서 한잔하던 엘피바에서 주4일 5시간 사람을 구하길래 안되겠지 젊고 이쁜애들 뽑겠지 싶어 돈드는것도 아니니 그냥 지원해보자 했는데 취직이 되어버려 벌써 3개월이 됐네요. 안주도 만들고 칵테일도 만들고 술이라고는 맥주 한두잔이 다 인 사람인데 수없이 많은 와인, 양주 종류 외우고 정말 멘붕이였는데 금방 적응하더라구요. 여긴 아주 작은 바여서 사장님은 안오고 혼자 오픈하고 마감하는데 사람 스트레스 없고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일하니 너무 좋아요. 가끔 손님들하고 세상돌아가는 얘기하고 신청곡 나오면 아이처럼 좋아하는 손님들보면 뿌듯하고 제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취향 파악하고 엘피 추천해 드리면 감동하시고 어떨땐 팁도 주시고ㅎㅎ
혼자 속상해서 술마시는 예쁜 딸같은 어린 친구한텐 인생 상담도 해주고 육아하다 뛰쳐나와 혼자 울면서 술마시는 동네 애엄마 한텐 위로도 해주고 정말 이 직업이야 말로 자기 효능감 엄청 느끼는거 같아요.
이쁘게 데코한 안주에 감탄하면서 사진찍어서 sns올린다고 서로 핸드폰 꺼내드는 젊은 친구들 보면 너무 고맙고 뿌듯하고 혼자 오셔서 구석에서 70년대 노래 신청만 잔뜩하시는 김부장님 같은 분은 조용히 내버려둬 주고 제가 눈치를 많이 보고 자라서 눈치가 엄청 빠른데 이 일할땐 완전 장점인거 같아요.
물론 주말 바쁠땐 혼이 나갈 지경이지만 그렇게 매출 높은 날은 내돈도 아닌데 퇴근할때 힘들어도 뿌듯하고 이 힘든걸 내가 다 쳐냈다 뿌듯함도 느끼고...
매일 저녁상 치우면 잠들때 까지 혼자 소파에 누워서 채널을 수십번 돌리고 유튜브도 재미없고 드라마도 재미없고 뜨개질도 눈이 침침해 못하겠고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다가 이렇게 세상밖으로 나와서 몸 움직이고 일하니 이게 찐 행복이네요.
브런치, 수다, 골프, 쇼핑 흥미 없는 저같은 성격은 집에 있는게 형벌 같았어요.
그냥 날도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 손님이 하나도 없어 수다 좀 떨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