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친정엄마가 나를 찾아 오신 듯

그리움 조회수 : 3,467
작성일 : 2025-11-12 22:29:04

오늘 동네 작은도서관에서 어떤 할머니를 뵈었어요. 

 

동네 복지관에서 하는 아주 아담한 도서관이에요. 큰 방 하나 정도에 원탁과 의자 6개가 둘러 있고, 

바닥에 매트가 깔린 곳이 한 군데 있어요.  등을 기대고 앉을 수 있는 벤치같은 곳도 있구요. 

점심을 먹고 1시 반까지 일하러 가야 해서 시간이 애매했어요.  1시 10분에는 도서관에서 나가야 얼추 일하는 시간이 맞았어요. 

제가 도서관에 간 시간은 12시 30분이었고
할머니는 12시 50분 쯤에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시더라구요. 
그러더니 원탁의자에 앉으셨어요. 할머니는 산에 갈 때 쓰는 얇은 보라색 모자를 쓰고 계셨어요. 

저는 할머니랑 좀 떨어진 곳에 앉아서 책을 보며
할머니가 책을 보러 오셨나보다... 생각했죠. 
책을 보다가 눈을 들어 원탁의자에 앉아계신 할머니를 다시 봤는데 
그냥 의자에 앉으셔서 졸고 계시는 듯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으셨어요. 

잠시 할머니를 바라 보다가 원탁의자보다는 매트에 앉으시는 게 좀 편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르신께 다가가 

"어르신~ 혹시 불편하시면 매트에 앉으시는 게 어떠세요?"

그랬더니 눈을 들어 저를 보시는데... ㅜ

머리는 온통 흰머리에 두 눈은 회색빛이 돌고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있으신 듯 했어요. 
보자마자 저는 3년 전, 94세에 돌아가신 친정엄마랑 할머니가 너무너무 비슷해서, 
아니 거의 똑같아서 그냥 울 뻔했어요. 

어떻게 여기 오셨냐니까
복지관에서 김치 한 통을 준다고 해서 오셨다고, 그 김치를 가져가야 하는데 
복지관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다시 집에 가는 게 불편해서 아예 기다렸다가 가져가려고 오셨다는 거에요.  

복지관 직원들은 1시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은 불을 다 끄고 깜깜했어요.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하니 '아흔 넷'이라고 하시는 거에요. 
저는 어르신 손을 잡았어요. 너무나 엄마 같아서요. 그랬더니
제 손을 꼭 잡으시고 
어쩌면 이렇게 다정하게도 말을 하냐면서 
당신은 오늘이라도 가야 될 사람인데 왜 이렇게 오래 사는 지 모르겠다고 ... ㅠ.ㅠ;; 

어르신 집이 어디신지
어디가 아프신지 이런 저런 걸 묻고 
매트에 앉혀드리고 난방을 좀 올려드렸어요. 

어르신이 앉아있는 데 옆구리쪽에는 오줌줄이 있더라구요. ㅜ
아침엔 요양보호사가 와서 돌봐주고 있다고 하는데... 
그 연세에 독거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실까... 저는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연락처를 여쭤보니 핸도폰은 없고 집에 전화가 있는데 그 번호도 잘 모른다고 하시네요. 

어르신 손은 또 어찌나 차가운지,, 마음이 더 아팠어요. 

엄마가 저를 찾아오신 듯, 오늘 생각할 수록 참 이상했어요.
일하러 가는 동안 혼자 그냥 울었네요. ㅜ
할머니가 사시는 동안 그래도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IP : 211.216.xxx.146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선행
    '25.11.12 10:31 PM (211.235.xxx.45)

    오늘 행하신 일에 감사드리고
    원글님도 그 어르신 덕분에 잠시나마 소중한 순간을 가지셨던것 축하드립니다
    올 겨울은 덜 혹독하길바래요

  • 2. 할머니
    '25.11.12 10:36 PM (218.39.xxx.130)

    맛 있는 김치 드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원글님 마음이 따뜻해 지길 바람니다.

  • 3. 따뜻...
    '25.11.12 10:44 PM (125.143.xxx.62)

    참 따뜻한 분이시네요
    할머니도 짧은 시간 행복하셨을거예요
    제가 더 고맙네요

  • 4.
    '25.11.12 10:55 PM (211.58.xxx.57)

    저도 할머니 생각나면서 눈물났어요
    누군가의 어머니고 할머니이고 아내였을 뿐일텐데 .. 혼자 계신가봐요

  • 5. ..
    '25.11.12 10:57 PM (27.125.xxx.215)

    따뜻하면서도 서글프고...

    요즘 인류애 넘치는 글 드문데 인류애가 생겨요.

  • 6. 세상에ㅠㅠ
    '25.11.12 11:08 PM (211.108.xxx.76)

    따뜻하신 원글님 덕에 할머니는 오늘 참 행복하셨을 것 같네요
    어르신들은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네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근데 김치는 어떻게 가지고 가셨을지ㅠㅠ

  • 7.
    '25.11.12 11:20 PM (175.115.xxx.131)

    따뜻하신분이네요.할머님이 잠시나만 행복하셨을거예요.
    저도 종종 길에서 돌아가신 아빠 비슷핫 할아버지들 뵈면
    계속 돌아보게 되요.혹시 우리아빠가 나보러 잠시 오셨나하고...

  • 8. 원글님
    '25.11.12 11:38 PM (175.123.xxx.145)

    원글님 덕분에 따뜻해지네요
    원글님도 할머니도 서로 위로가 되셨을듯 합니다

  • 9. 3주전
    '25.11.13 3:14 AM (124.49.xxx.188)

    돌아가신 엄마 생각나 저도 매일 엄마 생각하며 울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72714 이재명은 비번 안풀더니 공무원들 폰 압수 2 .... 06:03:28 88
1772713 여리고 못난 나에게 ㅇㅇ 06:02:07 71
1772712 김병기 원내대표 발언이에요. .. 05:47:23 290
1772711 애들 엄마 못잊는 남자.. 1 05:30:43 787
1772710 안양고등학교 근처 주차장 새벽 05:21:51 116
1772709 명언 - 낙관주의 삶의 자세 ♧♧♧ 05:00:10 298
1772708 대장동 항소 포기했다고????? 6 야근한 아줌.. 04:52:27 631
1772707 오늘 수능인데 언어문제 하나 풀어보세요 10 ㅇㅇ 03:46:38 839
1772706 싱글맘이 받은 병간호 5 11 03:33:39 1,614
1772705 인터넷 쇼핑에서 바가지 당한것 같다면...? 2 03:19:10 344
1772704 수능 선물도 변했다… 떡·엿 대신 상품권·현금 2 음흠 03:07:43 709
1772703 제주서 사망한 쿠팡 새벽배송 기사 ‘주6일 야간에 하루 11시간.. ㅇㅇ 02:34:29 989
1772702 9년만에 밥솥 바꿨는데 밥맛 기맥힙니다^^ 9 바꿈 02:32:07 2,124
1772701 거절을 못해서 마음이 힘든 거였나 싶기도 해요 4 ... 02:28:37 704
1772700 대학 학위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 팔란티어 CEO 1 ㅇㅇ 02:24:02 627
1772699 알리) 해표 콩기름 대박싸네요 ㅇㅇ 02:05:09 359
1772698 친구한테 조언(충고) 하는게 나을까요? 안하는게 나을까요? 8 소람 02:02:55 1,082
1772697 나솔 라방에 광수 정희 안나왔네요 3 .. 01:59:54 1,849
1772696 계속 고민이 크고 괴로워요 2 01:49:17 780
1772695 삼겹살 생선은 에프가 진리같아요 3 ㅇㅇ 01:46:40 1,279
1772694 감사원장 퇴임식서 유행가 틀고 유병호 ‘행패’.jpg 6 난동 유병호.. 01:30:12 806
1772693 뉴진스말고... 뜰뻔하다가 무슨문제 생겨서 7 .. 01:21:37 1,431
1772692 나솔 라방 시작했어요~~~ 16 .. 00:52:08 2,365
1772691 뉴진스 3명은?? 8 그런데 00:49:13 1,665
1772690 사장이 변덕스러워요 1 .. 00:47:57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