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맞아요
'25.10.7 10:53 PM
(211.112.xxx.189)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
2. ㄱㄴㄷ
'25.10.7 10:56 PM
(112.148.xxx.172)
알면 알수록 대단한분 22222222
3. ㅁㅁㅁ
'25.10.7 10:57 PM
(58.78.xxx.59)
너무 멋진분,존경스럽고요
2세가 없어서 안타까워요. . 지금이라도
4. —
'25.10.7 11:02 PM
(118.235.xxx.23)
그렇더라구요 ㅜㅜ 재복 아내복까지 훌륭하던데요. 매년 3억씩 기부해왔다고 하던데 재산은 기부한다고 쳐도 유전자 아깝네요
5. 페북에서 본
'25.10.7 11:02 PM
(211.208.xxx.87)
이은탁이란 분의 글입니다.
TV로 방송된 3시간짜리 조용필 콘서트 보고 생각나서 적는다.
“그것은 명백히 광주의 학살에 대한 분노를 담은 노래이다. 나는 체질적으로 정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수감 중에 교도소 개구멍에서 내 노래를 듣고 이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했다는 김지하 씨도 만난 적이 있고, 그런 인연 중에 내가 어머니라고 불렀던 전옥숙 여사와 같이 노래를 만들었다. ‘생명’은 내 나름대로의 투쟁이었다”
조용필이 1982년 5월 17일 발매한 4집 노래 '생명'에 대해 세월이 지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전두환 정권의 검열로 가사를 여러 차례 수정했다고 한다. ‘생명’은 광주항쟁 영령 추모곡이었다.
“저 바다 애타는 저 바다/노을 바다 숨죽인 바다/납색의 구름은 얼굴 가렸네/노을이여 노을이여/물새도 날개 접었네/저 바다 숨 쉬는 저 바다/검은 바다 유혹의 바다/은색의 구름은 눈부시어라/생명이여 생명이여/물결에 달빛 쏟아지네...”(작곡 조용필, 작사 전옥숙/홍상수 감독의 어머니)
1년 뒤 1983년 조용필이 일본 ‘NHK 콘서트 실황’ 앨범을 내놨다. ‘생명’이 16곡 가운데 마지막 노래였고, 발매일은 광주항쟁 3주년인 5월 18일이었다.
6. rudnfqkek
'25.10.7 11:05 PM
(211.112.xxx.189)
윗님 자세한 글 감사해요
예전에 예술의전당에서 생멍 라이브 정말 감동이었어요
7. 은퇴하며
'25.10.7 11:06 PM
(211.208.xxx.87)
똥 뿌리고 간 쌍도남하고 비교되죠...
8. goat
'25.10.7 11:10 PM
(118.235.xxx.23)
조용필 서울 1987이랑 그 앨범에 있는 곡들도
그 시대 민주화운동에 관한 내용를 검열 아슬아슬 피해서 넣은것이라더라구요.
윤리 도덕성도 최고내요
유투브 복고맨에서 듣기론
9. goat
'25.10.7 11:12 PM
(118.235.xxx.23)
옷도 이상한 빤짝이나 유치찬란한 것 안 입고 자꾸 갈아입지도 않고 패션도 요란 안 떨고 깔끔해서 좋더라구요. 반면 무대에는 엄청 돈 안아끼고 투자한 것 같았구요
10. 생명
'25.10.7 11:29 PM
(58.123.xxx.22)
댓글에 생명 가사에 대한 이야기
https://youtu.be/eRCcXo5ylAA?si=XcEHkUiTXz9foDtt
11. rosa7090
'25.10.7 11:34 PM
(222.236.xxx.144)
조용필님의 최대 히트곡 허공에서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는 민주를 상징한다고 해요.
1980년대 민주화 시위가 실패힌뒤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로 표현했다고 해요.
12. 전옥숙
'25.10.7 11:34 PM
(58.123.xxx.22)
1982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조용필의 노래 "생명" 작사(홍상수 모친)
13. 소록도 일화
'25.10.7 11:39 PM
(222.236.xxx.144)
조용필님이
소록도에샤 tv 방송으로 2곡 정도 부르셨는데
그후 다시 온다는 약속를 지킨 유일한 가수라고 합니다.
오빠가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나병 환자와 돌봐주시는 분, 주민들 앞에서
무료 공연하시는데
노래 부르시면서 한분 한분 손잡아 주시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몸을 숙이고
귀를 귀울이면서 노래하는데
놀랐어요.
훌륭힌 분이고 그 연세에 그런 노래를 하는 자체가
초인의 삶이죠.
14. ..
'25.10.7 11:40 PM
(211.112.xxx.78)
80년대 곡들도 지금 들어도 너무 세련됨.
바운스도 60대에 쓰셨다고해서 정말 놀램.
대단한 뮤지션이에요 진짜.
15. 소중한 시간
'25.10.7 11:46 PM
(1.216.xxx.99)
수많은 빅히트 자작곡들에 놀랐음
어릴땐 조용필 싫어했는데
50중반 어제 제대로 라이브 들어보니
하나 하나 주옥같은 명곡들이네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을것같아요
16. 안타깝
'25.10.7 11:56 PM
(49.172.xxx.18)
유전자가 너무나 아까운 분
17. rudnfqkek
'25.10.7 11:56 PM
(211.112.xxx.189)
소록도 일화는 자칭 오랜 팬인 저도 너무 감동이었어요
같이 손잡아주시고 춤도 춰주시고...
말씀은 많지 않으시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많으신 분이죠
18. 허공
'25.10.8 12:11 AM
(58.29.xxx.131)
허공의 가사는 김지하가 쓴걸로 알고 있어요. 출감해서 쓴 첫 작품이라고
19. 허공
'25.10.8 12:34 AM
(58.123.xxx.22)
https://www.abcn.kr/news/articleView.html?idxno=79297
정풍송 작사 작곡인 ‘허공(1985. 11. 정규 8집, 타이틀곡)’도 그렇다. 정풍송 작곡가의 인터뷰에 의하면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라는 노랫말에서 ‘멀어진 그대’의 원래 가사는 ‘멀어진 민주(民主)’였다고 한다. 1985년은 전두환 정권 말기로 ‘호헌 철폐’ 구호가 거리에서 외쳐지고, 김영삼·김대중 후보단일화와 차기 민주 정부 탄생의 기대가 드높았던 시기이다.
그러나 일개 가수가 대중가요에 ‘민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는 ‘가수 생명’쯤은 간단히 끝나던 시절은 이어지고 있었다. 군(軍) 사조직 ‘하나회’는 여전히 공고했고, 미국은 군부 정권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민주 진영은 사분오열(四分五裂)이었다. 이런 시대사를 알고 본다면 조용필의 시도는 가히 저항 시인의 행위에 버금가는 거사(巨事)가 아닐 수 없다.(펌)
20. 허공
'25.10.8 4:23 AM
(175.208.xxx.193)
허공 속에 묻힌 그 약속~~
이 가사는 시민들의 투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룬 후 후보를 단일화 하겠다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정풍송씨가 이때의 허탈함을 노래로 만든 것이라고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