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엄마가 요양원 들어가신지 벌써 세달이 되었어요
5년 동안 모시다 제가 잠도 못자고 힘들어서 옮겨드렸는데 오히려 거기서 집에 계실 때는 못해본 혹은 안해본 것들을 하며 지내시네요
집에 계실 때는 밤에 안주무신다고 고집 부리셔서 저랑 밤마다 실랑이하다 심하면 싸우다 12시 넘겨 겨우 주무시고 (그냥 두면 방바닥 아님 책상 밑에서 잠드시곤 해서 꼭 침대에 들어가 누우신걸 확인해야 했거든요) 씻는 것도 알아서 하신다며 잔소리 그만하라고 하시고 (하지만 실상은 알아서 못하시니..) 데이케어 가실 때 옷도 계절에 안 맞게 입으셔서 매번 확인해서 입혀드려야 하고...
그러다보니 의식주 챙겨드리고 병원 모시고 가기 바빠 다른건 신경도 못썼는데 요양원 가시니 꽃분홍 매니큐어도 발라주셔서 좋아하시고 꽃꽃이도 하시고 캘리그라피도 하신다고 (인지는 안 좋으셔도 워낙 손으로 뭔가를 하시는걸 좋아하고 잘하심) 좋아하시네요
추석이나 설명절도 송편에 떡국 대충 사먹고 지냈는데 어제는 요양원에서 추석맞이 한다고 한쪽에 과일 그득한 추석상 차려놓고 할머니 힐아버지들 삼삼오오 모여 직접 송편 만들고 전도 부치고 하셨어요
저도 보호자로 가서 엄마계신 테이블 할머님들과 인사도 하고 같이 송편 빚으며 이 얘기 저얘기 하고 녹두전 부쳐서 따끈따끈한거 바로 꺼내 같이 먹으니 맛있더라고요
집에서도 안한지 십년도 넘은 송편빚기와 전부치기를 요양원에서 하고 옴 ㅎㅎ
한가지 인상적이었던건 그 테이블의 한 할머님이 소녀처럼 말씀도 차분 조곤조곤 하시고 다소곳 여리여리한 인상이시길래 "소녀같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하셔서 속으로 '앗 잘못 말했나?'하며 소녀처럼 순수하고 이쁘시다, 말씀도 조곤조곤 이쁘게 하신다고 말씀드렸더니 사람들은 나보고 말도 어눌하고 바보같다도 하는데.. 라며 그런 칭찬하는 사람이 제가 처음이라고...고맙다고 하시는거예요
순간 가슴이 툭 내려앉으며 그냥 느낀대로 말씀드렸을 뿐인데 그걸 그리 고마워하시다니.. 하는 생각에 부침개도 하나 더 드리고 챙겨드렸더니 그분도 그때부터 저에게 친화력이 너무 좋으시다, 이렇게 시간내서 봉사도 하고 너무 고맙다고, 엄마가 따님 덕분에 든든하시겠다,..라고 하시네요
저는 엄마가 계셔서 왔을 뿐인데..
나중에 인사드리고 가려고 하니 그분 몫의 과일도시락을 안 드시고 저에게 쥐어주시며 가서 먹으라고, 수고많았다며 손잡아 주시더라고요
저도 거기 갈 때에는 살짝 귀찮은 맘이 있었는데 직접 가서 전 부치며 고소한 냄새 맡으며 할머님들과 수다떨며 송편빚고 하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어요
그리고 별 생각없이 한 한마디에 어떤 사람은 마음이 환해질 수도 있구나 새삼스레 경험하니 이쁜 말을 좀더 많이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모두들 힘들지 않고 맘편하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