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제주의 납골당에 잘 모셨습니다. 주변분들 불편하게 하지 말라 하셔서 지역구인 제주에 알리지 않고 돌아가신 병원 인근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널리 알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리고, 소식을 듣고 위로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암 말기 진단을 받고 거의 2년간 투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병원에 계셨던 마지막 3주 동안 동생들과 교대로 간병을 하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악화되는 증상을 곁에서 보며 조금씩 보내드릴 준비를 했습니다. 임종도 지킬 수 있게 자녀들이 모인 늦은 저녁에 돌아가신 걸 보면 끝까지 자식들 마음 편하게 해 주시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여러 면에서 어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 외모도 성격도 닮았고, 그래서 더 좋아했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하시고 교직에도 잠시 계셔서 자식을 자율적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학교가 교복을 도입하려고 하자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주류처럼 보이는 삶을 살았지만 마음은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성향은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애교가 없는 첫째라 서운하셨을 일이 많았을 텐데, 중학교 이후 혼난 기억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어릴 적부터 장남으로 특별히 존중을 해 주셨고, 저도 그런 책임감으로 항상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시 어머니를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이제 한 시대가 가고 제가 첫째로 동생들과 그 다음 세대를 챙겨야 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슬퍼 많이 울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책임감에 눈물을 흘리기 조심스럽네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어머니가 학창 시절을 보낸 부천과 인천을 고민했던 건 사교성이 좋으셨던 어머니에 기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서울 강남구에서 출마했을 때, 인지도가 없는 아들을 위해 양재천을 수십번씩 돌아다니며 명함을 드렸습니다. 고향 제주에서 처음 출마했을 때에는 말 그대로 산과 바다를 넘나들며 선거운동을 하신 어머니 덕분에 4%의 신승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는 힘들어도 뒤에서 말없이 응원해 주시며 큰 힘이 되어 주셨던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1년 사이에 두 분을 모두 보내니 평소에 건강을 못 챙겨드린 죄책감과 그리움에 힘드네요.
부모님께서 제 어릴 적부터 꿈은 높게 가지되 마음은 깨끗이 하고, 생활은 검소하게 살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제라도 잘 지키려고 합니다.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는 바른 정치를 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투병 생활 동안 의료 대란으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진심을 다해 저희 어머니를 치료해 주신 모든 의료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위로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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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의원 페북 글입니다. 조금 뭉클하네요. 자녀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부모가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