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흉보는 겁니다.
제가 사골국 하나 기똥차게 끓입니다.
뭐 대단한 노하우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무식하고 우직하게, 우리 엄마가 하던 그대로,
끓이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 냄비옆에 붙어 끊임없이 기름을 걷어내고, 걷어내고 하는게 비법이라면 비법이지요.
가난했던 엄마가, 큰 맘 먹고, 자식들 보양식이라고 해 주셨던 거라
지금 이 글에서 사골국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은 지양해 주시고요,
그저 저에게는 좋은 추억이 많은 음식이고,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사골국의 나쁜 점에 관해서는,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미리 그 걱정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잘 합니다. 네, 자신있게 말씀드려서 잘 합니다, 제가.
시어머님이 어릴 때 사고로 관절을 다치셨는데, 어머님 어릴 때 어머님의 어머님이 한번씩 이 사골을 고아주시면 아픈 관절이 씻은듯이 안아프곤 했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음식이고, 잘 하는 음식이고, 한번씩 할 때마다 워낙 많은 양을 하게 되는 음식이기도 한지라
만들면 몇 봉지씩 시어머님께 보내드리곤 했었지요, 예전에.
보내드리고 잊어버릴만 하면 시어머님 전화를 하십니다.
대략의 내용은 늘 동일해요.
내가 너무 기력이 없어서 꼭 땅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으로 벌벌 기어다녔는데
어느날 갑자기 힘이 불끈 나더라, 도대체 왜 그런가하고 봤더니 세상에 니가 해 준 그 사골국을 2-3일 연달아 먹었더니 기운이 나고 눈이 떠 지고 힘이 나더라, 넌 사골을 어떻게 그렇게 냄새 하나 안나게 맛있게 하냐 블라블라블라...
음식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내가 해 준 음식 누가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또 해주고 싶어지는지.
그래서 매번, 아, 그러셨냐고, 그러면 다음에 또 보내드리겠다고... 마침 냉동실에 몇봉지 남아 있는데 보내드릴까요, 하면
진짜 기를 쓰고 말립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랍니다.
다음에는 절대로 보내지 말랍니다. 그거 하는게 얼마나 힘든데 니들이나 해서 먹으라고
제가 지금 순화해서 글을 써서 그렇지,
진짜 절대로 해서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또 안보내고 잊고 있다가
올 봄에 남편이 내려갈 일이 있는데 마침 또 보낼 고기가 냉장으로 있는 상황인데 냉동실에 넣어둔 얼음팩도 없고 하길래, 얼음팩 대용으로 냉동실에 얼려뒀던 사골국 몇봉지를 고기와 함께 보내드렸죠, 남편 편에.
며칠 뒤, 시어머님 전화가 또 왔습니다. 내용이야 늘 동일하죠.
네, 죽을듯이 기운이 없었는데 제가 해서 보내 준 사골국을 먹고 기운이 났다, 힘이 났다 블라블라블라.
혼자사는 시어머니, 그러시냐고, 올 여름 잘 나시게 사골국 한번 더 해서 보내드리겠다, 마침 우리도 해 먹을 참이었다, 우리거 할때 어머님 드릴 거 몇봉지 따로 얼렸다가 보내드리겠다....
이 통화를 할 때 남편이 옆에 있었어요. 차에서 핸즈프리로 전화를 받는 상황이어서 남편도 그 대화를 다 들었죠.
시어머니 또 진짜 펄펄 뛰며 거절에 거절에 거절을. 이게 적당히 체면치레를 하는 거절 정도가 아니라
남편조차 민망해질 정도의 거절을...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말했죠. 이게 해 달라는 소리로 들리기는 하는데, 저렇게 기를 쓰고 하지말라고 하시니 해 드리기가 너무 민망하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남편도 차마 할 말이 없어서 흠흠흠흠. 하고 말고.
이번 추석에 저는 일이 있어 안내려 갑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내려갈 때 시어머니 드시라 제가 갈비찜을 한 솥 해서 들고 내려가거든요.
저희도 먹고, 시어머니도 드시고, 제가 해 가는 갈비찜 정말 좋아하세요. 한번은 해마다 너무 갈비찜만 하니 지겹지 않으시냐고, 이번엔 다른거 해 볼까요, 물었을 때도, 얘 갈비찜 이상가는 게 뭐 있니. 하고 또 갈비찜을 은근히 원하실 정도로.
올해는 솔직히, 갈비찜도 패스할 생각이었습니다. 10년동안 매 명절마다 해서 가져갔으면 이제 좀 쉬어도 되잖아요. 저 이번 추석 진짜로 바빠 못내려가는 거 남편도 알거든요.
그런데 어제 남편이 그러네요.
은근슬쩍 스스로 좀 민망해하며, 올해는 갈비찜 하지말고(어차피 안할 생각이었는데????)
사골국만 좀 해서 몇봉지 들고 내려가면 어떠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엄마 좀 먹게 해 주고 싶었나봅니다. 여든 다 된 노파가 기운 없어 땅을 기어다니다가 그거만 먹으면 눈이 번쩍 뜨인다는데 자식 입장에서 얼마나 먹이고 싶겠습니까.
자기도 저 말하기 얼마나 민망했으려나 싶어서 두말 없이 아주 나이스하고 상냥하게
그래, 그러자. 가기 전에 미리 해서 좀 얼려 둘게 가지고 내려가.
하고 말기는 했습니다만.
다른 분들이 듣기엔 어떠세요.
저희 시어머님 말씀이 해 달라는 소리로 들리세요,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세요?
체면치레의 거절도 적당히 해야지... 정말.